80화 폭풍 발차기
오늘은 3차 예선 첫 비무가 있는 날이다.
총 두 개의 비무장에서 24개의 비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중엔 당연히 황극린과 기등교의 비무도 있다.
‘바로 비무 신청을 날름 받았다고?’
기등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최대한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다.
백룡회의 회원들에게 황극린에 대한 정보를 부탁했고, 그가 2차 예선에서 대진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첫 번째 상대인 쾌검극가의 극수인은 싸우지도 않고 기권했으며, 그 이후의 무인들도 몇 합 겨루지도 못하고 황극린에게 패배할 정도로 수준이 낮은 이들이다.
황극린이 속한 만뇌문에 광견살검이라는 천하백대고수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황극린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여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문파에 초고수가 있다고 문도 모두가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물론, 황극린이 하북팽가의 장남인 팽여해와의 힘 싸움에서 이겼다는 사실이 조금 걸렸지만, 그 부분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팽여해는 그날 아침부터 손목 젖히기 싸움을 했다지?’
수백 명의 상대와 힘을 겨루고, 진이 다 빠졌을 때 황극린과 겨룬 것이다.
그렇게 하면 자신도 팽여해에게 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 거기다 기등교도 권법을 수련한 무인이었다. 근력 하나만큼은 다른 무인보다 자신이 있었다.
이번 비무에서 확실히 자신의 실력을 보여 준다.
부풀려진 명성을 가진 황극린을 꺾고 자신이 1번 전각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3차 예선은 2차 예선과는 달리 관중의 입장을 허가한다.
물론,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혼잡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선착순으로 총 300명의 관중만 입장할 수 있다.
무림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나 다른 문파의 무공을 견식하려는 무인들이 관중석에서 눈을 빛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용봉지회 3차 예선의 첫 경기는 황극린과 기등교였다.
무릉파의 대제자인 기등교는 적호붕권(赤虎鵬拳)이라는 별호도 가지고 있다. 27회 용봉지회에서는 아쉽게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3년 동안의 수련으로 확실히 약점을 보완한 상태였다. 처음 용봉지회에 참가한 황극린과는 경험 자체가 다르다.
“무릉파의 적호붕권 기등교!”
기등교의 이름이 호명되자 관중이 함성을 내지른다.
첫 경기이다 보니 기대감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 1차 예선과 2차 예선을 통과하고 3차 예선에 오른 무림인들은 전체적으로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되어 있다. 수준 높은 비무만큼 짜릿한 볼거리는 무림에 흔치 않았다.
“만뇌문의 황극린!”
“오, 새로운 인물이군.”
“듣자 하니 만뇌문에 광견살검도 있다고 하던데?”
“조금 불안하긴 한데? 광견살검이 정상적인 무림인은 아니잖아.”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지 않은가? 아마 황극린도 강할 것이 분명해. 팽여해를 힘 싸움으로 이겼다는군!”
“그건 팽여해가 미리 진을 뺐기에…….”
그리고 관중들 틈에는 광견살검도 있었다.
황극린을 평하는 관중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고 있다.
‘멍청한 관중 놈들.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군.’
광견살검은 알고 있다.
이미 황극린은 무림 최고 명문가 출신들이 포진한 칠룡오봉과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니, 부족한 게 아니라 더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광견살검은 칠룡오봉의 실력을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소문을 듣자 하니 칠룡오봉 상위권의 실력자들은 이미 천하백대고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하긴 하지만… 그건 황극린도 마찬가지 아닌가? 황극린과 숱하게 비무를 해 온 광견살검이었기에 그의 실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비무장에 오른다.
이미 투기를 뿜어내며 전투 준비를 완료한 기등교와는 달리 황극린은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다.
‘빈틈이 너무 많군.’
기등교는 황극린의 자세를 보고 생각했다.
그 또한 권법을 익혔다고 했다. 주먹을 다루는 기초는 하체와 상체의 균형에 있다. 상체를 낮춰 최대한 중심을 잡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뻗을 준비를 해야 한다.
‘호랑이의 기세를 보여 주마.’
두 사람이 포권지례로 예를 표한 뒤.
심판이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쳤다.
띠이잉-!
기등교는 다짜고짜 황극린에게 달려들진 않았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빈틈이 많아 보였지만, 저것은 함정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천천히 황극린의 주위를 돌며 탐색을 한다. 주먹을 내지를 완벽한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풍권천운(風捲天雲). 하늘의 구름처럼 다가가 폭풍을 쏟아 낸다.’
서서히 기등교가 황극린에게 접근한다.
“합!”
기등교가 기합성을 내지르며 보법을 밟아 황극린의 지척에 쇄도했다. 호랑이의 앞발처럼 강렬한 일격이 황극린의 옆구리를 노린다.
‘이건 허초다!’
황극린은 이 허초를 피하려고 허리를 비틀거나 뒤로 걸음을 물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패착이다. 호랑이는 등을 보인 상대에게 더욱 악착같이 달려든다. 호랑이의 발톱이 놈의 몸을 난도질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등교의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갔다.
황극린은 그의 주먹을 피하지 않았다.
툭.
“어?”
황극린이 왼손으로 그의 주먹을 그대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푹.
옆구리에 강렬한 통증이 전해진다. 황극린이 남은 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타격했다.
“컥!”
황급히 몸을 비틀어 피해 내려 했지만, 잡힌 오른손이 복병이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주먹을 잡힌 것은 상대에게 검을 뺏긴 거나 마찬가지다.
‘커억, 제, 제기랄……!’
기등교가 분노했다.
그리고 기회를 포착했다.
‘이노옴! 한쪽 주먹을 쓰지 못하는 것은 네놈도 마찬가지다!’
각법.
권법을 익히는 자들은 필수적으로 각법도 익힌다. 권법이 가진 거리의 한계 때문이다.
부우웅!
황극린에게 잡힌 왼손을 중심축으로 하여 크게 발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발이 황극린의 허벅다리를 강타했다.
촤아악-!
마치 채찍이 부딪치는 듯한 파공성.
단순 파괴력으로는 주먹보다 각법이 훨씬 강하다.
“어떠냐!”
“…….”
하지만 대답 대신 황극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푹!
“커억……! 이노오오옴!”
주고받기가 시작된다.
한쪽은 옆구리를 얻어맞고 있었으며, 한쪽은 바위마저 부술 만큼 강렬한 발길질을 정통으로 맞고 있었다.
푹! 촤아아악! 푹! 촤아아아악! 푹! 촤아악!
화려하게 보법을 밟아 가며 서로의 수를 피하는 비무는 아니었지만, 관중은 힘과 힘의 대결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
그런 관중의 함성은 인간의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기등교는 반사적으로 다리를 휘둘렀다.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말이다. 발에 전해지는 감각은 확실하다. 자신의 발이 아플 지경이었으니… 황극린은 어떻겠는가?
‘이, 이노오옴… 네놈이 불구가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겠다!’
촤악! 촤악! 촥! 촥! 촥!
무자비의 폭풍 발차기! 기등교는 발에 온전히 전해지는 타격감에 스스로 전율했다. 이 정도면 놈의 다리가 부서져도 한참 전에 부서졌을 게 분명하다.
촤악! 촤악! 촤악!
흥분한 상태로 연신 발길질을 해 대던 기등교가 심판을 바라본다.
‘왜 안 말리는 거지? 황극린의 다리가 흐물흐물해졌는데?’
때리면서 느꼈다. 뼈가 꺾였다는 것을 말이다.
이대로 가다간 황극린의 무공 인생은 끝장난다.
좍! 좌악! 좌악!
기등교가 다시금 심판을 바라본다.
좌아악! 좌아악!
왜인지 관중의 환호가 줄어들어 있었다.
‘내, 내가 너무 심했나?’
애처로운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왜……. 그런데 왜…….’
흥분이 가라앉은 기등교.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진다. 근육을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타들어 가는 고통이 뇌리에 전해지고 있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자신이 찬 것은 인간의 허벅다리다. 강철이나 바위 따위가 아니다. 그런데 대체 왜?
왜 자신의 다리가 부서졌단 말인가?
“설마 반탄강기(反彈罡氣)……?”
“뭐, 비슷한 거다.”
“……!”
황극린은 이제야 기등교의 손을 놓아준다.
솔직히 그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을 때부터 승부는 결정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전의 기운을 담아 제대로 쳤다면 내장이 파열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황극린은 그러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기등교의 발차기는 위력이 제법 훌륭했지.’
괜히 용봉지회 3차 예선에 진출한 것이 아니다. 그는 확실히 후기지수 중에서는 강했다. 단지 황극린과 비교하기엔 많이 모자랐을 뿐. 황극린은 비무를 수련의 연장선상이라 여겼다. 그가 혼심의 힘을 다한 발차기는 육체를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굳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필요는 없다.’
용봉지회는 전략이 중요하다.
만약 여기서 누구도 도전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위를 선보인다면 아무도 비무첩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비무를 끝낸 거다. 물론, 오늘의 비무만으로 황극린의 수준을 간파한 자들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끄아아아아악-!”
황극린이 주먹을 놓아주자 기등교가 자신의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른다.
비무가 끝났음에도 환호보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뼈가 부러진 모양이야.”
“허벅지가 얼마나 단단하면……?”
“허벅지가 단단한 게 아니라 맞는 순간에 내력을 발산한 거다. 내력의 제어가 수준급이라는 소리지!”
“허허허, 반탄지기를 사용했다는 말인가?”
“정확히 말하면 반탄강기지.”
그런 군중의 대화를 들으며 광견살검이 비웃음을 흘린다.
아직도 이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크크크크, 반탄지기? 아니다. 황 장로님의 육신은 그야말로 혼돈에 가깝다. 인간의 육신을 아득히 넘어서는 탄력과 강도! 무인들이 흔히 말하는 반탄지기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황 장로님의 근육을 뚫으려면… 병장기를 쓰지 않고선 힘들 거다.’
그가 익힌 혈풍뇌전신공은 소림사의 대반야금강공을 기초로 한다.
대반야금강공은 결국 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을 추구하는 무공이다.
단순히 금강불괴를 추구하는 대반야금강공과 ‘뇌전’을 견디기 위한 육신을 만드는 혈풍뇌전신공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중간 과정은 비슷하다. 거기다 황극린은 온갖 영약을 취하며 크고 작은 환골탈태를 거쳤다.
광견살검의 생각처럼 그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예리한 검으로 그의 살을 베어 내거나… 제대로 된 강기(罡氣)를 담아야 한다. 물론, 기등교의 각법엔 기(氣)가 담겨 있긴 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의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오히려 어정쩡한 위력이었다면 기등교의 발은 무사했으리라.
“만뇌문의 황극린 승리!”
비무장을 가득 채운 탄식.
하지만 승리자가 확실히 정해지자 탄식은 함성으로 바뀐다. 기등교가 불쌍하긴 하지만, 화끈한 전면전을 보여 준 두 무인에게 환호가 쏟아진다.
“그래도 재밌었다!”
“이렇게 싸우는 건 처음 봤어! 멋지다!”
그리고 환호성 사이에서 진중한 얼굴로 황극린을 직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당연히 용봉지회에 참가한 후기지수들이었다.
‘역시… 황 소협은 뭔가 다르군! 피가 끓어오른다아아!’
‘검기(劍氣)가 안 된다면 검강(劍罡)으로 베어야 하겠어.’
‘싸우고 싶어. 저 사내의 몸은 나와 비슷하다.’
하북팽가의 팽여해와 모용세가의 모용가아 그리고 진주언가의 언교연까지.
모두가 황극린과의 싸움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 신기하네? 저 사내는 어떤 맛의 선천지기(先天眞氣)를 가지고 있으려나?’
유난히 붉은 입술을 가진 여인이 입술을 핥고 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위험하고 농밀한 내음이 황극린의 코를 간질이고 있다. 그 냄새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황극린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모용가아의 옆에 있던 여인이로군.’
황극린이 작게 입꼬리를 올린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그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혈귀비(血貴妃).’
* * *
용봉지회는 계속 진행됐다.
황극린의 힘을 과소평가한 후기지수들이 비무첩을 보냈고, 황극린은 모든 비무를 받아들였다. 오늘로써 그는 4승을 챙겨 승점 12점을 얻었다. 칠 주야에 한 번 치러지는 비무에서 모두 승리했기에 그의 승점은 최상위권이다. 이대로만 흘러가면 무난히 본선에 진출할 수 있으리라.
당일 비무를 끝낸 황극린은 천천히 전각을 나선다.
다리가 부러져 강제적으로 만화각에서 퇴소한 기등교를 제외한 총 9명의 후기지수. 막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그들이 황극린을 보자 화들짝 놀란다.
“화, 황 소협! 식사하러 가십니까?”
“그렇소.”
“아하하… 맛있게 드십시오.”
“하하… 오늘 고기가 비린내도 없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고맙소.”
당연히 무릉파의 기등교와 성황파의 조심홍이 황극린에게 패배한 이후, 소위 백룡회라 불리는 이들은 황극린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이제는 백룡회에 들어오라는 소리도 하지 못하고, 황극린만 보면 이렇듯 어색하게 인사만 할 뿐이다.
이제 1번 전각에서 황극린을 귀찮게 할 무인들은 없다.
여유가 생긴 그는 과거, 아니… 이제는 미래가 될 편린 중 하나와 마주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