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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72화 (72/316)

72화 바느질

황극린이 봇짐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기괴하면서도 무언가 신비로운 분위기의 검은 선들이 각인된 의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뭐야?”

“화마를 견딜 수 있는 옷.”

“화마를 견딘다고?”

“그래.”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두야랑은 의아스러웠지만 가만히 황극린이 하는 것을 지켜본다.

그가 묵철로 된 단검을 꺼내 의복을 자르기 시작한다. 두야랑은 그것이 묵철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지만, 딱히 놀라진 않았다. 그녀가 놀란 것은 묵철로도 의복이 쉬이 잘리지 않는다는 것에 놀랐을 뿐이다.

황극린이 세심한 손놀림으로 소매 부분을 잘라 내었다. 그리고 두야랑의 손을 바라본다.

“여기에 손을 대 보아라.”

두야랑의 손 크기에 따라 붓으로 선을 그린다. 두야랑의 손보다는 조금 더 넓은 반경으로 말이다. 하나를 완성한 다음에는 그것과 똑같이 세 장을 더 만들어 냈다.

“설마 장갑을 만들려고?”

“그래.”

사실 황극린의 허벅다리에 붙어 있는 인면지주의 실을 뽑아서 장갑을 만들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려운 방법이다. 실 하나하나를 뽑아서 장갑을 완성하는 시간도 상당할뿐더러 융중산의 인면지주와는 크기부터가 다르다. 영물의 힘은 얼마나 오래 살아왔는가로 판가름 난다. 육신의 크기는 그 세월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였다.

아마도 이놈의 실을 뽑아서는 뇌불의 장보도 수준으로 화마를 막지 못하리라.

그렇기에 황극린은 과감하게 소매를 잘라 냈다.

어차피 비동의 위치는 알고 있었으며, 장보도는 혹시 몰라서 가지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 이것으로 만년화리를 얻을 수 있다면 솔직히 일부를 자르는 게 아니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매듭을 짓는 실은 인면지주의 것을 이용하는 게 좋겠지.’

탁. 탁탁. 탁탁탁.

황극린이 묵철로 바닥을 몇 번 친다.

여덟 개의 눈으로 그것을 빤히 지켜보던 인면지주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몸을 홱 돌린다. 동시에 엉덩이에서 하얀 실을 뿜어낸다.

“와, 뭐야? 인면지주가 정말 네 말을 알아듣잖아?”

“그렇군.”

황극린도 확실히 그 부분이 신기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영물이었기에 지능이 평범한 동물보다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황극린의 말을 듣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지능이 높아도 사람 말을 듣지 않는 동물들이 많았다.

“그걸로 장갑을 만들 수 있어?”

지금 존재하는 건 인면지주가 뽑아낸 실과 의복을 잘라 낸 천뿐이다.

아무리 봐도 엉성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어라.”

인면지주가 마구잡이로 뽑아낸 실을 정리한 뒤, 황극린이 바늘을 꺼냈다.

‘대체 무인이 왜 바늘까지 들고 다니는 거야?’

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내였다.

그가 뿜어내는 살을 보면 무림의 대마두의 그것과 비슷한데, 가끔 보면 무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손놀림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데?’

두야랑은 바느질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하는 이들을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다. 무림인들은 무공을 익혔기에 감이 좋아 바느질을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 막상 해 보면 막히는 구석이 많다. 어디를 찔러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전혀 막히는 부분이 없이 바늘을 놀리고 있다.

옷에 난 구멍을 메꾼 경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단하구나.’

두야랑은 무공을 익혔다.

그리고 황극린은 무공을 접목하여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두야랑은 홀린 듯 황극린의 바느질을 바라보았다. 바늘과 실이 움직이는 것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으며, 단조로운 듯 보였지만 착실하게 천과 천이 연결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몽롱한 기분이 든다.

‘왠지 기분이 좋네.’

어떤 소음도 들려오지 않는다.

평생 바느질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분위기에 취한 것일까? 아니면 황극린의 손재주에 홀린 것일까?

“자.”

하지만 그러한 상념도 황극린의 목소리에 깨졌다.

그는 어느샌가 완성한 장갑 하나를 두야랑에게 내밀었다.

“응……? 왜?”

“껴 보아라.”

“아!”

두야랑이 장갑을 낀다.

부족하지도 않고 크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딱 맞다.

“오오……! 딱 맞는데?”

“그래.”

황극린은 나머지 장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야랑은 다시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장갑을 낀 채로 바느질을 가만히 지켜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샌가.

‘일정한 규칙… 연결이 되려면 똑같은 거리에… 매듭은…….’

두야랑의 눈동자가 더욱 몽롱하게 변해 갔다.

* * *

“…….”

황극린은 약간 황당했다.

바느질을 보는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었다. 그녀가 바느질을 신기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에겐 홀로 무림을 떠도는 게 일상이라 이런 기술들을 많이 익혔다. 장인 수준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은 할 줄 알았다.

거기에 황극린의 초감각까지 더해지니 바늘을 잡는 순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감이 잡혔다.

황극린은 그 ‘감’에 따라 바늘을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면서 뇌전의 기운도 바늘 끝에 실었다. 평범한 바늘로는 인면지주의 천을 잘 뚫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했기 때문일까?

지금 두야랑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채 명상하고 있었다. 은은한 독기(毒氣)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바느질을 보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무공을 충실히 수련한 자들은 타인이 보기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깨달음은 준비된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니까.

‘뭐 나쁜 일은 아닌가.’

두야랑이 깨달음을 얻어 더 성장한다면 만년화리를 가져올 가능성도 더 커진다.

황극린은 가만히 그녀의 명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번쩍!

두야랑이 눈을 뜬다. 무언가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기분이다.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느낌이 들었다.

“축하한다.”

황극린의 목소리에 두야랑이 미소를 머금는다.

“고마워.”

그녀의 앞에는 세심하게 만들어진 장갑이 놓여 있었다.

황극린은 이미 장갑을 완성한 것이다.

“지금은 무조건 훔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꼭 훔쳐 와라.”

두야랑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당장이라도 어느 정도로 성장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걸 입고 가라.”

“응?”

장갑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기괴한 선이 그려진 의복.

두야랑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 의복이 열기를 막아 줄 것이다.”

두야랑이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만독문으로 향했다.

* * *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왠지 모르게 얼굴이 창백했지만, 병에 걸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위험한 분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의 손톱은 검게 물들어 있었으며, 눈은 녹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마치 뱀의 그것과 느낌이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내는 높디높은 성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음, 또 왔군.’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딸 두야랑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왈가닥에 포기를 모르는 아이였다. 분명히 다시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다. 무언가 방법을 찾은 것인가? 유심히 그녀를 지켜보던 사내, 만독문주가 눈을 가늘게 뜬다.

‘분위기가 바뀌었군.’

본래 그녀는 만청독수의 7성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당연히 못에 똬리를 튼 만년화리를 맨손으로 잡진 못한다. 적어도 10성 수준은 되어야지만 만년화리의 열기를 감당할 수 있다.

영물이라 불리는 것들은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세월을 살아오며 내력을 쌓는다. 인간처럼 내공심법을 익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무기는 시간이었다.

그러할진대 두야랑은…….

‘하루 만에 성장했다?’

만독문주 독수마제(毒手魔佛)가 진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언젠간 문주의 자리를 후계자에게 물려줘야 한다. 독수마제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자식들의 재능은 뛰어났다. 언젠간 그중에서 한 명을 골라 후계 또한 정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두야랑은 후계자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무공을 대하는 태도가 진심이었고, 재능 또한 출중하긴 했지만… 순수한 성격이 발목을 잡았다.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진다. 그녀는 형제자매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녀는 하루 만에 그 차이를 어느 정도 좁혔다.

무슨 방법을 썼을까?

아니, 그것보다.

‘장갑을 꼈구나.’

매번 몸으로 부딪쳤던 그녀가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도구에 의존하는 태도는 무림인에게 좋지 않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써야 하는 게 도구였다. 두야랑은 미련할 정도로 순수한 무력에 집착하곤 했었다.

그런 사소한 변화가 독수마제의 마음에 들었다.

‘하나, 쉽지 않을 것이다. 맨손으로 만년화리를 잡을 수 없다면 넌 그것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만독문 내에 있는 모든 보물은 문주의 것이다.

그리고 독수마제의 자식 중 하나는 만독문주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만독문에서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 능력만큼만 가져야 한다.

과연 그녀는 만년화리를 잡을 수 있을까?

아무리 장갑을 끼고 무공이 성장했다 하더라도… 만년화리는 독수마제의 장남도 가져가지 못한 영물이자 귀물(鬼物)이었다. 준비하지 않고 그것을 만진다면 인간의 살점과 뼈는 녹아 버릴 것이다.

가만히 지켜본다.

그래도 두야랑이 양손을 잃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만약 그녀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독수마제는 어제처럼 그녀를 막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1년의 제약을 둘 생각이었다.

‘성장은 기특하지만… 아직은 무리다.’

그는 두야랑이 뿜어내는 독기의 농도로 그녀의 경지를 파악했다.

아직은 만년화리의 용암처럼 뜨거운 열기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 직접 만져 본 후에는 바로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

두야랑이 보골보골 끓어오르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거기에…….

만년화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사실 만년화리는 움직임이 그리 재빠르진 않았다. 애초에 물속에서 놈의 천적은 없다. 근처에만 다가가면 알아서 익어 버리니 주위에는 먹잇감뿐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손으로 잡아채는 건 문제가 없다.

단지, 그 손이 열기에 녹아내린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타닷.

사대마제 중 하나인 독수마제가 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연못으로 뛰어내린다. 벽면을 타고, 금세 땅에 도착한다. 만년화리를 두 손으로 잡은 두야랑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린다.

‘헙! 또 왔어! 이번에도 안 되는 거야?’

하지만 독수마제는 그런 두야랑을 보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걸 직접 잡았구나.’

독수마제는 두야랑이 실패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만년화리를 아무렇지 않게 잡고 있었다. 장갑의 효용일까?

애초에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사파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져야 한다. 만독문주는 자식들에게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후계 경쟁에서 뒤처졌던 두야랑은 단번에 선두권으로 진입했다.

“아빠! 오늘만 봐주면 안 될까? 정말 이게 꼭 필요…….”

“내게 물을 필요 없다.”

“응?”

“이제 만년화리는 네 것이다.”

“내 거라고? 정말?”

두야랑은 아빠가 장갑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장갑을 끼고 만년화리를 잡은 줄 알았으면… 진짜 실력이 아니라고 다시 연못에 내려놓으라 할 수도 있었다.

“나중에 딴말하지 마! 이건 내 거니까!”

황급히 두야랑이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만년화리를 들고 연못을 빠져나온다.

“나 간다!”

“잠시.”

움찔!

두야랑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부녀지간이라 해도 그는 만독문의 문주. 그가 멈추라면 멈춰야 한다. 그의 말은 만독문 내에서 절대적이었다.

“그 장갑은 어디서 구했느냐?”

두야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장갑을 봤다! 이러다가 만년화리를 내려놓으라고…….

“친우한테서…….”

친우라…….

하기야 두야랑을 어릴 때부터 친우 사귀기를 좋아했다. 최근에는 남장하고 중원을 떠돌며 기행을 벌이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친우를 사귄 모양이다. 무림에서 만난 인연은 언젠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오늘처럼.

“좋은 친우를 두었구나.”

“그, 그치……?”

두야랑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독수마제가 말한다.

“이대로만 해라. 너에게도 분명 기회가 있을 거다.”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정도로 두야랑은 멍청하지 않았다.

만독문의 후계가 될 기회. 만독문주의 독문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말이다.

“알겠어!”

하지만 기회에 설레는 것도 설레는 거지만, 아빠가 혹시 변심할까 걱정된 두야랑은 황급히 연못에서 빠져나간다. 새빨간 잉어 한 마리를 들고 뛰어가는 공녀의 모습을 본 만독문의 무인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굳이 막아 세우지 않았다.

만독문에서 만독문주의 자식들은 왕족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만년화리의 내단을 취하여 더 강해지거라. 그리고 첫째 놈과의 격차를 더 줄여 보아라.’

만년화리의 내단을 취한다고 하여 장남과의 격차는 쉬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나, 장남은 추격해 오는 동생에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더 속도를 올릴 것이다.

경쟁은 무인을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강한 무인이 후계자가 된다면, 만독문은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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