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왜 안기는 거야
만독문이 위치한 곳은 곤명(昆明).
운남성의 성도로 사계절의 기후변화가 역동적이진 않아 겨울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사계절 내내 꽃이 피어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낭만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곤명현에는 사파에서도 최고로 악독하고 잔인하다고 알려진 ‘만독문’이 존재했다. 독에 대해서라면 중원제일으로 꼽히며, 조금이라도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중독되어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만독문이 소중한 독을 쉽게 낭비하는 성향은 아니었지만… 곤명현에서 만독문의 문도들을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이들이 없다. 그렇기에 곤명현의 백성들은 만독문의 의복만 보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했다.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운귀고원(雲貴高原)의 수호자 역을 자처하는 만독문이었기에 곤명 곳곳에는 만독문의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혹시나 모르는 적의 등장을 사전에 알아내기 위함이었지만…….
작정하고 기척을 숨긴 황극린을 주목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황극린은 운귀고원에 오르자마자 만독문의 성과 가장 가까운 객잔의 특실을 예약하고, 그녀와 미리 말을 맞춰 놨었던 대로 오삼반점에 서신을 남겨 두었다. 두야랑에게 그 서신이 전해지면 그녀는 만년화리와 인면지주를 가지고 이곳으로 올 것이다.
아직 만년화리인지는 정확하게 확신할 수는 없으나, 양기의 내단을 지닌 영물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과연 만년화리의 내단을 취하면 어떻게 될까?’
성수신의가 제조한 화령단을 취한 후, 양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뜨거움을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는 체질로 변화한 것이다. 호남성 형동현에서 성수신의와 헤어진 후 혼자서 이것저것 확인을 해 보았는데 그나마 평범한 영약을 취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였다.
성수신의 또한 그러한 황극린의 변화를 알아채고 특성이 뚜렷한 영약을 취하는 게 가장 좋다는 의견을 냈다. 만년화리를 취한 후의 변화와 비교해 똑같은 영물인 인면지주를 취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해 보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는 게 좋다는 의견도 냈다.
그것은 황극린의 생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객잔에서 하루 정도 기다렸을 때였다.
“왔군.”
두야랑의 냄새가 났다.
황극린의 초감각은 한 인간의 냄새를 기억할 만큼 뛰어나다. 특히 두야랑은 독공을 익혔기에 평범한 사람과는 다르게 코가 톡 쏘는 듯한 독 내음을 품고 있었다.
“나야, 문 열…….”
두야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런데 왜인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황극린은 대번에 그녀가 실패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만년화리는 가져오지 못했군.”
“어떻게 그걸 알았어? 제길! 아빠한테 걸려서 만년화리를 빼앗겨 버렸어!”
분노가 가득한 두야랑의 얼굴.
그녀의 얼굴은 호남성에서 볼 때와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그땐 머리를 위로 묶어 사내처럼 변장하고 있었다면, 지금은 머리를 길게 늘어뜰이고 있었다. 그래도 꾸미지 않았다는 것은 차이가 없었지만 분위기는 차이가 있었다.
“어떡하지? 다시 기회를 노려 볼까? 오늘 밤에 다시 훔쳐 볼까?”
황극린에게 해답을 묻는 두야랑.
당연히 그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만독문의 사정을 잘 모르니 그녀에게 문파의 보물을 훔쳐도 괜찮다고 말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동시에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넌 괜찮나?”
“뭐가?”
“만년화리를 훔치다 걸렸다면서.”
황극린의 물음에 두야랑이 피식 웃는다.
“아버지의 자식은 어떤 짓을 해도 용서가 돼.”
“어떤 짓을 하더라도?”
“응, 우리 아빠는 날 사랑하시거든. 물론, 자식 전부를 사랑하시지만… 왜 그런 줄 알아?”
“왜지?”
두야랑이 손바닥을 펼친다.
그녀의 장(掌)에서 녹색의 독기가 스멀스멀 차오른다. 저 독수(毒手)에 당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웬만한 해독제로는 치료할 수 없으리라. 보통의 검기나 권기처럼 무언가를 가르고 부수는 힘은 없었지만, 생명을 중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내공이었다.
“아버지는 능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만독문은 원래 그래. 우리 아버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제자매들과 경쟁해서 그 자리에 올랐어. 장남이 문주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는 개념이 우리 만독문에선 없어. 실력만이 그것을 증명할 뿐이지. 거기다 나는 형제자매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니까!”
세 손가락 안에 든다라…….
황극린이 알기로 만독문주의 자식들은 총 20명이 넘는다.
확실히 두야랑은 재능이 있었다. 물론, 소문주의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재능이냐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황극린이 알기로 먼 미래에 만독문주가 되는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언제든 시도해도 돼. 만년화리를 훔치다가 걸렸지만… 난 혼나지도 않았어. 다음번에는 잘해 보라는 조언만 들었지.”
“그렇군.”
그렇게 말하던 두야랑이 대뜸 행낭 속에서 커다란 거미를 꺼낸다.
황극린이 융중산에서 보았던 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놈이다. 하지만 생김새는 조금 달랐는데, 놈의 머리에는 인간의 얼굴이 작게 두 개나 자라나 있었다. 하나는 여인의 얼굴처럼 곱상했고 하나는 사내의 얼굴처럼 선이 짙었다.
‘무슨 차이일까?’
황극린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인면지주가 여덟 개의 다리를 뒤흔들며 두야랑에게 벗어나려 했다.
“좀 가만히 있어!”
두야랑이 독기를 끌어 올려 거미를 잠재우려 했지만,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인면지주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엉덩이에선 질척한 실을 마구 뿜어내고, 입에서는 검은 독을 흘려 대고 있었다.
잠시 그것을 보던 황극린이 손을 내민다.
“나한테 오게 해.”
“응? 오게 하라고?”
“그냥 놔줘.”
두야랑은 군말 없이 황극린의 말대로 인면지주를 놓았다.
그리고…….
- 끼이이이!
인면지주가 황급히 달려와 황극린에게…….
“뭐야? 왜 안겨?”
여덟 개의 다리로 황극린의 허벅다리를 감싸 쥔다. 하지만 독 따위를 내뿜고 있지 않았다. 마치 자식이 부모한테 매달려 있는 것처럼 황극린의 다리에 안겨 있었다.
“내게서 인면지주의 냄새가 나는 모양이지.”
“헐, 그놈이 널 동족으로 안다고? 미쳤네!”
두야랑이 두 눈을 반짝반짝 뜨며 귀엽게(?) 엉덩이를 흔드는 인면지주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외친다.
“설마!”
“……?”
“설마… 인면지주가 너한테 구애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황극린은 왠지 모르겠지만 놈의 더듬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감정을 유추할 수 있었다. 사실 짝짓기를 바라는 개나 말들도 인간의 눈으로 보면 파악할 수 있지 않은가? 단순히 주인이 반가운 것인지, 주인을 발정 대상으로 보는 것인지 말이다.
그것처럼 황극린은 인면지주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었다.
‘반가움.’
물론, 그 이상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인면지주의 기분을 어느 정도는 예상한다는 이야기다.
‘초감각의 힘과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여 얻은 체질 때문인가.’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고, 처음으로 만난 인면지주다.
애초에 중원에서 인면지주의 숫자는 매우 적을 테니 저놈도 동족을 만나는 것은 처음일 것… 아니, 황극린은 동족이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와, 좋겠다. 내가 맨날 손으로 잡으려 하면 깨물려고 하고 독만 톡톡 쏴 댔는데… 강아지처럼 키울 수 있었어!”
황극린도 순간 고민했다.
이 인면지주를 어떻게 해야 하나? 본래 계획이라면 만년화리로 추정되는 잉어의 내단과 함께 취해 보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인면지주는 상급의 독을 계속 생산해 낼 수 있다. 거기다 이놈이 뽑아내는 실은…….’
황극린의 봇짐 속에는 뇌불의 장보도가 그려진 의복이 존재했다.
그것은 화마를 견딜 수 있는 천혜의 의복이다. 어찌어찌 잘 만들어 본다면 도검도 어느 정도 막아 낼 수 있는 의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현재 만뇌문에는 상당한 실력을 가진 대장장이도 있었고, 성수신의라는 손재주 좋은 의원도 있었다.
‘이놈은 데려가야겠다.’
황극린은 결정했다.
당장 놈의 내단을 취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만뇌문에 데려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으리라. 혹자는 정 때문에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지 못하는 거라고 하겠지만, 만약 명확한 이익이 보인다면 황극린은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툭툭. 툭. 툭툭.
황극린이 본능적으로 손가락으로 땅을 쳤다. 잠시 멈칫하던 인면지주가 땅으로 내려온다.
황극린이 봇짐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주 천천히.
고민하던 인면지주가 그 속으로 들어간다.
“와!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사실 황극린도 잘 몰랐다.
단지 사람처럼 ‘말’로는 놈이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뿐. 황극린은 인면지주를 취하고 진동을 감지해 내는 초감각을 얻었다. 거미는 과연 어떻게 의사소통할까? 그것을 고민해 보고 대충 감정을 담아 땅을 쳤을 뿐이다.
물론, 인면지주가 멈칫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을 보면 완벽한 의사소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두야랑의 눈에는 몹시 놀라워 보일 뿐이다.
“와아! 정말 대단하다! 너처럼 인면지주를 그렇게 쉽게 다루는 사람은 처음 봤어.”
흥분하여 콧김을 내뿜는 두야랑을 바라보며 황극린이 말한다.
“그래서.”
“응?”
“어떻게 할 거지?”
인면지주와 황극린이 보여 준 신기에 감탄하던 두야랑의 귀가 축 처졌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짐하듯 말을 내뱉었다.
“난 포기하지 않아. 그리고 약조는 꼭 지켜.”
결연한 눈빛.
두야랑은 가끔 보면 멍청하게 보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멍청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열망을 표출하는 성격일 뿐이었다. 지금도 사실 인면지주를 가져왔으니 천기피독신주의 존재라도 확인해 볼 법한데 전혀 묻지 않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어? 내가 꼭 방법을 찾아낼게. 아빠 몰래 만년화리를 훔쳐 올 방법을…….”
가만히 두야랑을 지켜보던 황극린이 말한다.
“내가 도와주지.”
“응?”
“만년화리를 훔치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도와줘? 같이 만독문에 들어가게? 그건 위험할 수도 있는데…….”
황극린이 고개를 젓는다.
만독문주가 뇌불에게 빚을 졌다고 한들, 그것만 믿고 무리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아무리 황극린이 빠르게 성장했다지만 사흑련의 지존 중 하나인 만독문주를 이길 수는 없었다. 최소한 그는 현재의 뇌불보다 강했으니까.
사실 황극린이 만독문주보다 강했다면, 굳이 두야랑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으리라.
“만독문주에게 어떻게 걸렸는지 자세하게 말해 줄 수 있나?”
아마 만독문주는 인면지주를 훔쳐 가는 두야랑을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독공을 익히고 독을 제조하는 문파인 만독문에서 인면지주를 훔쳐 가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인면지주가 없어져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는 걸 뜻했다.
인면지주의 가치를 그리 높게 생각하지 않거나.
혹은… 자식의 성장이 인면지주보다 훨씬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만년화리가 있는 연못까지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어. 근데 만년화리를 잡으려고 작살을 들려고 하니까 아빠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 있지?”
“왜 작살을 사용했지?”
“그 잉어가 얼마나 뜨거운데. 그냥 잡으려고 하면 손이 녹아내릴걸? 펄펄 끓는 물보다 더 뜨거워.”
“혹시 예전에도 너희 형제자매들이 만년화리를 훔치려 했던 적이 있었나?”
“그럴걸? 아직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래서 내가 최초가 되려 하는 거야.”
황극린은 왠지 만독문주의 성격을 알 것 같았다.
무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막대한 보물을 쌓아 놓기만 하고 사용하지는 않는 이들이 말이다. 그런 이들은 대개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거기다 뇌불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만독문주 독수마제는 배포가 큰 사내라 했다.’
그 배포가 어느 정도인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황극린은 만독문에 직접 찾아가지 않았다.
다만, 두야랑은 만년화리를 훔쳐 가려던 것을 들켰는데도 이렇게 무사히 만독문에서 빠져나왔다. 만약 흑살문이었다면?
당연히 문파의 보물을 훔치려 했던 살수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났을 것이다.
‘영물을 그대로 두는 게 자식들을 시험하려 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는 현 상황이 이해가 된다.
만년화리를 단순히 감상용으로 놔두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정파에서 유일하게 독을 다루는 사천당문도 그러하듯, 독을 다루는 문파는 실리를 따른다. 독이라는 것이 그런 성질을 띠고 있다.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
처음 실패했다고 하여 당장 남창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황극린은 하는 데까지는 해 보기로 했다.
“만년화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게 해 주마.”
황극린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두야랑은 긴가민가했지만…….
왠지 모르게 황극린의 말이라면 뭐든지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