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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68화 (68/316)

68화 완벽한 육신

성수신의의 얼굴은 갈수록 하얗게 질려 갔다.

황극린의 육신은 대체 어떻게 돼먹었길래…….

‘영초의 영험한 기운이 그대로 녹아든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인간의 육신은 이렇게 기(氣)를 흡수할 수 없어……!’

이런 경우는 난생처음 보았다.

십년하수오보다 더 급이 높은 영초나 영약들도 황극린이 취하면 사라진다. 아무리 대단한 공력을 지닌 고수라도 영약을 취하게 된다면, 운기행공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성질이 다른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익힌 내공심법을 활용해서 기의 속성을 변환해야 한다.

하지만 황극린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

영초가 몸에 들어오면 그대로 집어삼키고, 성수신의가 직접 연단한 영약도 마찬가지였다.

“허허… 허허허허…….”

사실이었던가?

황극린은 자신이 영약의 특성을 그대로 흡수한다고 했다. 당연히 성수신의는 그것이 말이 안 된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었다.

황극린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영약과 영초의 기운이 세맥에 스며들고 있다. 그 순간을 진맥하고 어찌나 놀랬던지 성수신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하나, 실제로 존재한다.’

인간의 체질은 개선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간이 성수신의의 탕약으로 엄청난 효과를 본 이들도 존재하긴 했다. 특별한 체질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황극린은 그런 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특수하고 비범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자연의 정순한 기운을 담은 영초는 세맥으로 흡수된다. 하나…….’

성수신의는 마지막으로 붉은 환단을 꺼냈다.

화령단.

사실 황극린이 취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것은 염공계의 내공심법을 익힌 이들만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취한다면 내장이 다 녹아 버릴 수도 있었다. 속성을 지녔다는 건 위험을 뜻한다.

“화령단입니다. 이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좋소.”

황극린이 화령단을 받아 망설임 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

모두의 표정에 긴장이 역력했다.

동시에 황극린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역시 화령단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황 소협께서 화령단의 기운에 최대한 당하지 않게 바라는 수밖에…….’

성수신의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황극린을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후끈!

맥을 짚은 손가락에 막대한 열기가 침범해 온다.

‘화령단의 기운? 어찌 이렇게 빨리 세맥에 퍼졌단…….’

황급히 황극린의 맥에서 손을 뗀다.

진맥을 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대로 두면 화상을 입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공으로 손을 보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진맥을 하지 못하게 된다.

“뭐야? 왜 이렇게 더워졌어?”

두야랑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훌렁 겉옷을 벗어 던졌고.

성수신의의 이마에서도 땀이 주르륵 흐른다.

‘대체 이 열기는 뭐지? 그리고 황 소협의 몸에서 대체 뭐가 일어나는 거지……?’

믿을 수 없게도.

막대한 열기를 뿜어내는 황극린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정녕… 사실이었단 말인가…….’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던 황극린의 육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방을 가득 채웠던 열기가 모조리 사라졌다. 그리고 성수신의는 열기가 어디로 빨려 들어갔는지 알고 있었다.

‘열기 그 자체를 흡수했다.’

번쩍.

동시에 황극린이 눈이 뜨였다. 밝은 낮이었지만 황극린의 눈동자엔 붉은 광채가 번뜩이고 있었다. 그것과 마주한 성수신의는 치명적인 살기(殺氣)에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괜찮군.”

황극린이 입을 떼자 살기 또한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 * *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화령단을 취한 후 황 소협의 몸에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열기가 가득 찼습니다. 인간의 몸은 일정 한계로 뜨거워지거나 차가워지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염공 계열의 무공을 활용하는 이들이 무서운 점이 그 때문이지요. 차츰차츰 상대의 체온을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황 소협의 몸은 끓인 물처럼 뜨거워졌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죽지 않아 놀랍다는 말이군.”

“…예.”

“말했지 않소? 난 영약의 특성을 흡수하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오.”

“대체 어떻게?”

“나도 모르오.”

“그게…….”

그 자신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았지만, 의원은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알고 있다. 난 괜찮아, 난 병에 걸릴 리 없어, 자부하는 이들은 어느 순간 불치병에 걸리곤 했다. 그때서야 의원을 찾아와 목숨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비밀을 모두 풀 수 있었다면, 성수신의는 체질을 개선하는 것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혹시 인형혈삼(人形血蔘)에 대해 아시오?”

“인형혈삼 말입니까?”

성수신의가 고개를 갸웃한다.

그 또한 처음 들어 보는 영약이었다. 인형설삼(人形雪蔘)이라는 건 과거에 들어 본 적이 있긴 한데, 그것도 전설상의 영약으로 치부되고 있었기에 당연히 본 적이 없었다.

“인형설삼은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인형혈삼은…….”

“그렇군.”

“혹시 인형혈삼이라는 영약을 취하고 그런 체질을 가지게 된 겁니까?”

“확실하지 않소.”

이런 체질을 가지게 된 것도 놀랍긴 하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역시나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점이다. 대체 어떤 힘이 작용하여 과거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단지, 마지막에 취했던 인형혈삼이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을 뿐이다.

어차피 아무리 고민해도 이유는 알 수 없었기에 황극린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자는 기조로 삶의 방향성을 정한 상태였다.

“진맥을 해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오.”

황극린의 맥을 살피는 성수신의.

그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기 시작한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맥의 기운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양교맥(陽蹺脈)과 양유맥(陽維脈)의 변화가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황 소협의 몸에선 양기가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이건… 이건…….”

“부족하오.”

“예?”

황극린은 분명히 화령단의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십년하수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변화다. 하지만 그것을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했을 때의 변화와 비교하자면…….

몹시도 부족했다.

“양기가 더 필요하오. 그리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음기도 채워야 하겠지.”

“……!”

성수신의가 황극린의 진단에 이마를 친다.

그의 말이 맞았다. 분명히 그의 몸에는 양기가 충만해졌지만, 음기는 그대로다. 균형이 흐트러져 있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하나, 음기를 채우면 더 완벽한 육신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한 육신을 만들 수 있어?’

성수신의가 체질을 바꾸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근력이 부족한 이들에겐 근육을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한다. 안력이 부족한 이들은 눈에 힘을 키울 수 있도록 한다. 병이 잘 걸리기 쉬운 약한 몸은 양기와 음기를 적절히 조화한 탕약으로 체질을 바꾼다.

그는 완벽한 사람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세월의 연구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하지만 황 소협은 가능하다.’

이런 체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수신의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쾅!

성수신의가 거칠게 무릎을 꿇는다.

“황 대협, 제가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황 대협께서 천하제일의 육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성수신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황극린과 함께라면 포기했던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으리라.

황극린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좋소.”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이오.”

“예!”

“당신이 진귀한 영약과 영초 그리고 영물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아…….”

성수신의가 탄식을 내뱉는다.

분명히 그는 수많은 영초와 영약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목숨을 걸고 오악(五岳)과 더불어 자연의 기운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었다.

하나, 지금은 영약 대부분이…….

“죄송합니다.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고자… 제가 가지고 있던 영약은 대부분 팔거나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중하급의 영초일 뿐이지요.”

“그렇소?”

아쉽다는 황극린의 말투.

성수신의는 황급히 머리를 굴렸다.

“하나, 영물이나 영초가 있을 만한 곳은 알고 있습니다. 황 대협께 부족한 것을 채워 줄 만한 것을 꼭 찾아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연단하여 내포한 기운이 더 증폭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만족할 만한 대답이었다.

화령단 수준의 영약을 만들 수 있었으니 좋은 재료만 구한다면 더 상등품도 연단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성수신의와 황극린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급격히 낮아진 온도에 다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은 두야랑이 대뜸 말한다.

“만독문에 영물 많아.”

“으응?”

성수신의가 의아함을 담아 두야랑을 바라본다.

“인면지주도 있고 금와도 있어. 그리고 아버지의 뒤뜰 연못에는 양기를 품은 잉어도 키우고 있어. 이름이 뭐더라?”

“서, 설마 만년화리 말이더냐?”

“만년까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잉어 놈이 사는 연못은 엄청 후끈후끈했어. 땅에서 불이 올라와서 물이 뜨거워졌다나? 그 잉어는 오랜 세월 열기를 받아먹으면서 컸다고 했었어.”

“허어……!”

성수신의가 또 탄식을 내뱉는다.

만독문에 영물이 있으면 뭐 하는가? 그것을 취할 수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었다. 만독문주가 그것을 쉬이 내줄 리가 있겠는가?

“내가 슬쩍해 줄 수 있어.”

“뭐라고?”

“대신 조건이 있어.”

두야랑이 눈을 빛낸다.

“나도 너처럼 되고 싶어!”

“황 대협처럼 되고 싶다는 말이더냐?”

“난 만독지체를 만드는 게 꿈이야. 네가 어떤 체질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려 주면 내가 만독문의 영물을 다 훔쳐 줄게.”

그 말에 성수신의가 대답한다.

“황 대협께서도 자신이 왜 그런 체질을 가지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더냐? 이건 황 대협만이 할 수 있는 방식…….”

황극린이 성수신의의 말을 끊었다.

“만독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독 내성을 기를 방법은 알고 있소.”

“예?”

정확히 말하면 흑살문의 수련법이다.

살수는 기관진식이 가득한 곳에 침입하여 표적을 죽여야 할 때도 많았다. 보통 그러한 기관진식에 발려 있는 것은 극독이다. 독마다 다른 해독제가 필요하니 포용적인 독에 대한 내성이 필요했다.

물론, 흑살문의 모두가 그런 독의 내성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선택받은 이들만이 가능했다. 최소한 최상급에 오른 살수. 그중에서도 특급에 오를 자들만이 독의 내성을 가질 수 있다.

“천기피독신주(天機避毒神珠).”

과거엔 황제가 소지하고 다녔다는 절세의 보패(寶貝)이자 신병이기(神兵利器).

그것을 지니고 5년 동안 특정한 구결을 외면 독의 내성을 기를 수 있다. 물론, 체질의 따른 차이도 있으나… 두야랑의 재능으로 보건대 천기피독신주가 있다면 빠르게 독 내성을 기를 수 있으리라.

“그게 정말 존재하는 물건입니까?”

“네가 천기피독신주를 가지고 있었어!? 우리 아빠가 찾으려고 혈안이 됐던 물건인데!”

“아니, 지금은 없다.”

“그게 뭐야!”

두야랑이 콧김을 내뿜으며 성질을 냈다.

하지만 황극린은 지금 그것이 누구에게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그놈이 임무를 받아 중원에 나타나리라는 것도 말이다.

사실 천기피독신주는 황극린에게 딱히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통해 이미 독의 내성은 확실히 생겼다.

‘만년화리로 추정되는 잉어라…….’

황극린은 몸의 변화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적어도 지금은 더위를 느끼지 않는 몸이 되었다. 초감각을 통해 그 변화를 감지해 냈다.

그것을 취하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독에 내성이 생긴 것처럼…….’

화염에도 내성이 생길 수 있다. 화상을 입지 않는 피부가 있다면 내력을 소모하지 않고도 염공(炎功)을 익힌 자들을 상대할 수 있으리라.

“영물을 주면 천기피독신주를 줄 거야?”

“아니.”

“왜!”

두야랑이 열불을 냈지만, 어쩔 수 없다.

천기피독신주는 가치로 따지면 만독문의 영물들과 비교할 수 없었다.

“네가 독에 내성이 생길 때까지 빌려주도록 하지.”

빌려준다…….

두야랑은 사실 만년화리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독 내성만 완벽하게 갖춘다면 만독문주의 독문무공을 전수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만독문이 자신의 것이 될 터인데 뭐가 문제일까?

“만년화리?”

“그리고 인면지주 한 마리.”

“인면지주는 또 왜?”

“독의 내성도 더 기를 수 있는지 확인해야겠다.”

“…너도 만독지체를 노리는 거야?”

황극린은 대답 없이 두야랑을 빤히 바라본다.

그녀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래해.”

“그런데 몰래 만년화리를 훔쳐 올 수 있나?”

“당연하지. 아빠는 날 예뻐하니까 연못에도 그냥 들어갈 수 있어. 어차피 누가 그걸 훔쳐 가리라고 생각하겠어?”

“그러다가 들키면?”

“들키면 네 이름은 말하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사내대장부는 의리가 있어야지!”

“…….”

사내인 척 두야랑이 팔의 근육을 자랑한다.

황극린이 이미 그녀의 성별을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좋아. 만년화리는 그렇게 거래하는 것으로 하고.”

황극린이 성수신의를 바라본다.

“당신은 영초를 모으고, 만뇌문으로 가서 영약을 연단해 주시오. 그리고 영물이 있을 장소를 모두 말해 주시오.”

“예, 황 대협.”

성수신의가 영물이 살고 있을 법한 장소를 종이에 적는다.

당장 모든 장소를 탐색할 것은 아니다.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상(上)으로 적어 놓겠습니다.”

“그러시오.”

상에 이름을 올린 장소는 총 네 곳이었다.

보타산(普陀山).

화산(華山).

천산(天山).

그리고 북해(北海).

보타산과 화산은 그렇다고 쳐도 천산과 북해는 너무 멀고 위험하다. 그곳에 터를 잡은 두 문파는 사흑련 중에서도 가장 강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다. 지금의 황극린의 수준으로는 위험하다.

그걸 빤히 지켜보던 두여랑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묻는다.

“근데 나도 잉어를 들고 만뇌문에 가야 해? 죽는 것 아니야? 잉어는 물 밖에서 못 살잖아.”

“아니. 넌 운남성에서 기다려라. 반년 후에 찾아가도록 하지.”

먼저 천기피독신주를 얻는다.

동시에.

‘흑살문의 차기 특급 살수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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