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황극린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종일 고민하던 성수신의는 다음 날 황극린이 머무는 객잔으로 찾아왔다. 그의 봇짐에는 여러 환약이 들어있었고, 그중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화령단(火靈丹)이었다. 양기를 품은 화령초를 기반으로 여러 약재를 섞고, 오랜 기간 연단하여 만들어 낸 영약. 하지만 무림에서 흔히 말하는 영약과는 조금 다르다.
화령단은 인간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약이다.
성수신의는 영약으로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작은 추위에도 벌벌 떨던 그는 동네 의원이 대충 만들어 준 탕약으로 극복했던 적이 있었다.
칠 주야를 먹으니 추위가 어느 정도 사라졌고, 한 달이 지나자 기침이 멎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서는 완전히 치유되어 정상적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탕약을 마셨을 뿐이다.
그런데 몸의 체질이 개선되고 병이 치료됐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무엇이겠는가? 세상에는 신비한 힘과 효능을 지닌 약재들이 널려 있었고, 그것을 잘 조화한다면… 어쩌면 체질을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유관룡은 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처럼 병든 이들을 치료하고, 약을 만들어 세상의 모든 병을 없앨 것이다. 타고나기를 허약하게 태어나 매 순간 고통을 받는 이들을 치료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범재로 분류되는 이들의 체질을 개선하여 ‘재능’을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그는 의술에 재능이 있었다.
사람의 맥을 짚어 보면 어디가 좋지 않은지 척척 알아냈으며, 금방 치료법을 유추해 냈다. 손재주도 좋아 침도 기가 막히게 잘 놓았다. 그는 점점 명성을 떨쳐 갔으며 결국 성수신의(聖手神醫)라는 별호를 얻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만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몸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는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서 체질을 바꾸고자 했다.
처음엔 효과가 있었다.
근력을 증진시켜 주는 탕약.
뼈를 단단하게 해 주는 탕약.
그가 개발한 탕약들은 모두 효과가 좋았다. 만들면 주위의 문파에서 서로 구매하겠다고 난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금세 찾아왔다.
분명히 초반에는 효과가 좋았으며, 모두가 무림의 고수가 될 것처럼 훨훨 날아다녔지만… 어느 순간 탕약을 먹은 이들이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부작용이다.
성수신의가 제조한 탕약을 마시고 빠르게 근력이 늘어났던 이들은 역절풍(歷節風)을 앓기 시작했다. 역절풍은 팔과 다리의 관절이 심하게 붓는 병으로 호랑이에 물린 듯 지독한 고통을 선사한다.
역절풍뿐만 아니다.
머리가 빠지는 이들도 있었으며, 뼈가 약해져 가벼운 충격에도 골절상을 입는 이들이 늘어났다.
자만했던 성수신의는 그것이 탕약 때문이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부작용이 없는 이들을 앞세우며 자신의 탕약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성수신의는 그때부터 체질을 바꾸는 완벽한 환약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중원을 떠돌며 완벽한 실험 대상을 찾았다. 탕약과 환약을 먹어도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만큼 강인한 신체를 가진 이들을 찾아 나섰다.
그중엔 뇌불도 있었으며, 중원에서 내로라하는 인재들도 있었다.
성수신의는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성장했다.
하나,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았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방식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너무도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다.’
분명 효과를 본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부작용에 시달렸다. 몹시 순수한 기운은 인간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고 했던가? 체질을 바꾸려고 했던 약이 오히려 독이 되어 작용했다.
성수신의는 자신의 탕약을 마시고 폐인이 된 이들을 만나고,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고 중원을 떠돌며 병든 이들을 치료했다.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의술을 펼친다는 게 양심에 찔렸지만… 그대로 주저앉는 것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속죄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후.
성수신의는 두야랑을 만나게 됐다.
그녀는 만독문의 특별한 대법을 통해 독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는 성수신의를 알아보고 자신이 독 내성을 만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해 왔다. 당연히 성수신의는 거절했지만, 미치광이처럼 따라붙는 그녀의 고집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독 내성을 기르도록 도와준다고 약조했다.
체질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크게 위험하진 않으리라.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으면 그만둔다고 선언하고 두야랑과 동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두야랑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고, 그녀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있을 때쯤.
성수신의는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됐다.
영약의 특성을 흡수하여 체질이 변한다는 한 사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무인.
거기다 과거 성수신의의 목숨을 구해 줬던 은인 뇌불과 관련이 있는 사내였다.
하지만 성수신의는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거짓이 분명하다.’
인간의 육신은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치를 넘어 체질을 바꾸려 하면 무조건 부작용이 생긴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해서 독에 내성을 가지게 됐다? 웃기지도 않은 개소리가 아닌가?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 만독불침이 몇이나 되겠는가?
인면지주뿐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영물과 영약이 있다. 그것을 종류별로 취하기만 하면 천하제일의 ‘체질’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인가?
세상이 그리 쉽게만 흘러갈 수는 없었다.
성수신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진리를 깨달았다.
황극린이라는 사내의 말이 모두 거짓은 아닐 것이다.
독에 내성이 있다는 건 확인했다.
하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암, 그럴 수가 없지.’
성수신의는 불신을 품고 황극린을 찾아갔다.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황극린에게 괜한 짓을 하다간 몸이 성치 못할 것이라 알려 주기 위해서 말이다.
끼이이익.
성수신의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너 진짜 사람 맞아? 고양이 같은 건 아니지? 아니, 고양이도 그건 못 피해.”
두야랑이 정색하는 것은 쉬이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황극린을 흘겨보고 있었다. 객잔의 벽면에는 비수가 마구 꽂혀 있었다. 황극린이 그녀의 암기를 모조리 피해 낸 것이다.
“네 암기술이 형편없는 거다.”
“뭐라고? 난… 난… 만독문 제일의 암기술 재능을 갖고 있다고 아빠가 그랬단 말이야!”
“크흠……!”
성수신의가 헛기침을 하자 황극린이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마음은 정하셨소?”
“예.”
성수신의는 확실히 마음을 정했다.
“공자님은 분명히 큰 착각을 하고 계실 겁니다. 그걸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도록 하시오.”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황극린의 모습이 불안하면서도 가슴이 뛰기 시작한 성수신의였다.
* * *
성수신의가 처음으로 꺼낸 것은 내력이 깃든 그나마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영약이었다.
십년하수오. 1년의 공력을 가졌으며 부작용 따위는 없었다.
황극린이 착각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겠다고 한 성수신의였지만, 그래도 위험을 떠안길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 그가 주장한 말이 사실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영약을 취하면 체질이 바뀐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십년하수오는 어떨 것인가?
이걸 취해도 체질이 바뀌려나?
“본래 십년하수오는 무인들만 취하는 영초가 아니지요. 일반인이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고 힘을 북돋아 준다고 알려진 영초입니다. 하나, 황 소협께서 하신 말씀이 있으니 십년하수오를 취하면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제가 직접 맥을 짚어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깐의 침묵.
황극린은 십년하수오 정도를 취해도 이제는 육신의 변화가 크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 분명히 세맥이 튼튼해지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좋소.”
하지만 그 잠시의 침묵을 성수신의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역시 이렇게 확인하는 게 제일이다.’
성수신의가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알려진 후로 중원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재능이 부족하여 세상을 저주하는 이들은 많았다. 그들은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성수신의가 성공시킨 사례만 꼽으며 그에게 체질을 바꿔 달라 요구했었다.
성수신의는 그런 이들에게 많이 속아 넘어갔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절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성수신의가 묻는다.
무인들이 가장 취약할 때는 영약을 취하는 순간이다. 성수신의가 마음만 먹으면 황극린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그 순간에 맥을 짚고 있는다는 건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그럴 것인데 황극린은 태평한 목소리로 답할 뿐이다.
“천년하수오도 아니고 십년하수오를 취하는데, 목숨을 걸 필요는 없소.”
왠지 모르게 비틀린 답변이다.
“그럼 먼저 맥을 짚게 허락해 주십시오. 영약을 취하기 전 몸 상태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좋소.”
“나도 맥을 짚어 봐도 돼?”
“두야랑, 이건 장난이 아니다. 넌 절대 나서지 마라. 이번에도 장난을 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성수신의가 평소에 보여 주지 않던 얼굴로 심각하게 말하자 두야랑이 축 처진 어깨로 물러선다. 그리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황극린과 성수신의를 구경할 뿐이다.
“내가 장난만 치는 줄 아나? 얼마나 진지한 사람인데.”
구시렁대는 두야랑을 철저히 무시하는 두 사람.
성수신의가 황극린의 맥을 짚기 시작한다. 그리고…….
“……?”
뭐지?
황극린의 세맥은 텅텅 비었다.
아니, 무인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어찌 세맥의 넓이가 이렇게 넓단 말인가?’
성수신의는 무인의 맥을 많이 짚어 보았다. 하지만 단연코 말할 수 있었다. 황극린은 이제껏 그가 진맥한 이들 중에서 거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세맥이 넓다. 하지만 세맥이 넓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넓기만 하고 세맥이 튼튼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 진기를 약간만 불어넣어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시오.”
황극린의 몸속에 성수신의의 기운이 들어온다.
그가 익힌 무공은 의술에 기반한 것이다. 상대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료하기 위해서 익힌 것이었으니 상대의 내력이 반발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줄여 준다.
성수신의가 불어넣은 약간의 진기가 그렇게 세맥으로 들어가는 순간.
‘……?’
사라졌다?
성수신의가 당황한다.
다시금 내력을 주입하려 했지만, 황극린의 광활한 세맥 속에서 녹아 사라져 버렸다.
‘애초에 상대의 기운이 녹아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지.’
성수신의는 황극린의 체내에서 내력이 반발하여 튕겨 나갔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더 시도하다간 황극린의 세맥이 다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그는 내력을 주입하는 것을 멈추고, 그의 맥을 살피기 시작했다.
심장은 어떻게 뛰는지.
내력이 어떻게 흐르는지.
그리고 내공은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황극린의 내부를 살펴보던 성수신의가 깜짝 놀란다.
‘어찌하여 내력이 나보다 적단 말인가? 분명히 형산파의 제자와 싸울 때 보여 준 몸놀림은…….’
거기다 두야랑이 작정하고 던진 비수를 피하고 있지 않았던가?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두야랑은 이미 1갑자가 넘는 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황극린이 가진 내력은 그녀에 비해 믿을 수 없이 초라할 뿐이다.
‘내공이 적어도 고수가 될 수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이상…….’
그러다가 문득 기묘한 사실을 발견해 낸다.
황극린의 맥박이 묘하게 거칠다는 것이었다. 하나, 불안정하게 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언가 있긴 하군.’
그렇게 성수신의가 진맥을 마친다.
황극린의 육신은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하나, 그것만으로 그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내력이 몹시 적으시군요.”
“그게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긴 하오. 뭐, 극복할 방도를 계속 찾아내고 있긴 하지만.”
내력의 부족함을 극복할 방도라?
그게 무엇일까? 황극린이 말했던 영약의 특성을 흡수한다는 그것인가?
일단 성수신의가 황극린에게 십년하수오를 건넨다.
“이걸 취해 보십시오.”
“좋소.”
황극린이 십년하수오를 받아 들었다.
성수신의가 조심스럽게 손가락 하나만으로 그의 맥을 짚고 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다.
‘반 시진은 맥을 짚고 있어야 하겠군.’
성수신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 영약을 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상당히 길었다.
그가 황극린의 몸에서 생기는 변화를 확인하려 맥을 짚고 있는 순간이었다.
“확인했소?”
“응?”
분명히 황극린은 십년하수오를 방금 취했지 않은가?
뭘 확인해?
“잠시만… 잠시만요. 지금 십년하수오의 기운을 모조리 흡수했다는 말입니까?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요?”
성수신의는 직접 겪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상황인가?
황급히 내공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해 본다. 본래 가진 내력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 십년하수오를 취했으면 꽤 많은 내력이 늘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황극린의 내력은…….
‘아예 늘지 않았다. 하나…….’
성수신의는 신의라 불릴 정도로 의술에 조예가 깊다.
조금 전 세밀하게 황극린의 몸을 살펴보았기에 이전과 다른 변화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세맥이 무언가… 달라진 것 같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평범한 의원이라면 알아낼 수 없는 차이.
‘말도 안 돼.’
그 짧은 순간에 세맥이 변화했다?
십년하수오를 취해서 말인가?
“그럼 이걸 취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십년하수오보다는 급이 훨씬 높은 영초를 꺼내 든다.
황극린이 그가 가지고 온 봇짐을 흘끔 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기엔 얼마나 많은 영약이 있을 것으며, 그가 숨겨 놓은 영약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화(火)의 기운이 담긴 영약을 취할 수도 있으리라.
“주시오.”
황극린이 성수신의에게서 영약을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