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만뇌문의 장로
양평중은 심기가 불편했다.
형산파의 제자는 어디서든 무시당하면 안 된다. 구파일련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형산파는 오악 중 하나인 형산에 터를 둔 대문파였다. 그랬기에 별호도 없는 무인에게 사제가 당했다는 것에 분노했다.
거기다 기습이라 했다.
자고로 무인이란 정정당당히 비무를 통해 실력을 겨루어야 한다. 실력에 자신이 없는 놈들이나 기습을 하는 것이다. 형산파의 권역인 형동현에서 형산의 제자를 건드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해 줘야 한다.
“가자.”
“예, 사형.”
백색 무복을 입은 형산의 제자들이 빳빳이 고개를 들고 적송객잔으로 향했다.
형산파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가자 점소이가 황급히 튀어나온다. 무인끼리의 싸움에서 매번 피해를 보는 건 힘없는 백성들일 뿐이다. 만약 객잔 내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객잔주는 점소이를 탓할 게 분명하다.
뭐, 그래도 형산파는 대문파니 객잔이 상하면 보상은 해 주겠지만…….
그래도 아예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는가?
“아이고, 나으리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점소이는 형산의 제자들이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단 시치미를 뗐다.
“황극린이라는 놈이 적송객잔에 있다고 들었소이다.”
점소이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말한다.
“예이, 특실에 머물고 계신 손님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얼른 가서 모셔 오겠습니다!”
“그러시오.”
양평중도 굳이 객잔 안에서 싸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안에서 머리를 길러 눈을 가린 한 사내가 나타난다.
“저자입니다.”
곽시우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한다.
사실 기습을 당하기는 했지만, 순간적으로 보여 줬던 그의 움직임은 곽시우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대비하고 있었어도 피해 낼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여기엔 사형제들이 있으니 저놈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도 있었지만… 불안함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당신이 황극린이오?”
“그렇소만.”
황극린이 형산파의 제자들을 흘끔 바라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소?”
황극린이 곽시우를 바라보며 말한다.
그의 시선에 움찔했지만, 옆에는 사형제들이 있다. 곽시우가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당신은 나와 하후 소저에게 무례를 범한 것도 모자라 기습까지 했었소. 그에 대한 책임을 물으러 왔소.”
“날 죽이기라도 할 텐가?”
왜인지 등골이 오싹해진 곽시우였다.
“그건…….”
“당연히 아니오. 우리는 대(大)형산파의 영예로운 제자들이오. 함부로 살생하지 않소.”
“그럼 어떻게 해결하러 왔소?”
“당연한 것 아니겠소?”
양평중이 거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선다.
“비무를 신청하오.”
당연히 황극린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좋소.”
* * *
비무로 잘잘못을 따진다.
강호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무공이 곧 인성이고 실력인 장소가 바로 강호다. 혹자는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서 비무를 신청하곤 한다. 굳이 따지자면 양평중은 형산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황극린에게 비무를 신청했다.
아제 객잔 내에서 사제가 패배했던 것을 본 이들은 대략 열 명이 된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번 비무에서 관람객은 적어도 백 명이 되어야 했다. 적송객잔의 뒤편 공터에서 비무를 하기로 했으며, 백성들이 비무를 관전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당연히 군중이 몰리기 시작한다.
형산파 제자의 비무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황극린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었다.
비무에서 승리한다면 형산파와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걸 걱정했다면 어제 곽시우와 원만히 해결을 봤을 것이다. 무림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발톱을 감추고 힘을 숨겨야 한다는 격언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힘을 써야 할 땐 써야 한다.
그래야지 귀찮게 하는 놈들이 달려들지 않을 것이다.
“비무의 결과에 따라 결과에 승복하고, 패자가 어제 있었던 일에 사과하는 것이오. 인정하시오?”
되레 황극린이 할 말을 해 주는 양평중이다.
“좋소.”
“난 형산파의 18대 제자인 양평중이오.”
“황극린. 만뇌문의 장로요.”
어차피 이름을 밝혔으니 만뇌문 출신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때문에 황극린도 문파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주변이 술렁인다.
“만뇌문? 무슨 문파지?”
“장로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강서성 남창에서 개파한 문파라더군. 듣자 하니 개파하자마자 흑도 놈들을 싸그리 정리했다던데…….”
“근데 저리 젊은 나이에 장로라면 문파의 수준도 알 만한 것 아닌가?”
백성들은 무공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무림은 잘 알고 있다.
무림의 세력 구도는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무림에서 누가 강하고, 어떤 문파가 세력을 떨치고 있는지는 몹시 흥미로운 주제였다. 강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백성들이 저마다 의견을 낸다.
대부분 형산파의 양평중이 승리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오시오.”
검을 뽑아 든 양평중.
그는 자만심에 차 있었지만, 그래도 방심하진 않았다. 상대를 얕잡아 보다가 실수라도 하면 망신만 당할 뿐. 철저하게 승리만 생각해야 했다. 완벽한 승리가 무너진 형산의 자존심을 되살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양평중의 검에서 은은한 검의 기운이 일렁인다.
검기상인(劒氣傷人)의 경지에 오른 양평중. 20대 초반의 나이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었다. 형산파 대제자에겐 미치지 못했지만, 그 또한 형산의 미래라 할 수 있었다. 미래엔 형산파 장로의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으리라.
“오오, 저게 검기인가?”
“완전한 검기는 아니로군!”
“양 소협의 주위로 바람이 일렁이는 듯하군!”
기대 만발의 눈빛.
군중의 술렁임이 양평중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무공을 익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그는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수련해 왔다. 세속적인 이유라고 해도 그에게는 확실한 동기였다.
유심히 양평중의 검을 바라보던 황극린이 몸을 움직인다.
그는 급히 뛰어오지도 않고, 그렇게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양평중에게 다가온다.
“그런데 황극린이라는 자는 권법을 쓰는 건가?”
“그런 것 같은데?”
“맨 주먹으로 검기가 깃든 검을 어떻게 막으려고?”
그렇게 지척까지 다가온 황극린.
양평중은 황극린이 무엇을 하려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눈 한번 깜빡이는 순간.
마치 황극린의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듯하더니 이미 양평중의 코앞에 다가왔다.
“……!”
화들짝 놀란 양평중이 저도 모르게 검기가 깃든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우웅!
양평중의 검기가 깃든 검과 황극린의 주먹이 부딪쳤다.
아니, 주먹이 아니다.
“……!”
손가락 두 개로 양평중의 검을 잡고 있다.
“저, 저건 뭐야? 검기가 깃든 검을 맨손으로 잡아?”
“권기를 두른 건가!”
“역시 보통내기는…….”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양평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한 번의 부딪침으로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풍뢰검법의 검기는 사납고 포악하여 상대의 살점을 톱날처럼 찢어 버린다.
하나, 황극린의 손에는 작은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끄읏!”
두 손으로 검을 쥐고 빼내려 했지만, 고작 손가락 두 개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힘이다. 어떻게 사람의 힘이 이렇게 강하단 말인가? 고작해야 손가락이 아니던가? 이마에 핏줄이 서고, 팔이 부들부들 떨려 온다.
“으아아아압!”
기합을 내지르며 내력을 더 방출한다.
힘으로 안 된다면 내공으로……! 완전하지 않은 검기가 더욱 강렬한 기세를 뿜어낸다. 바람의 기운이 담긴 검기가 길게 쭉 뻗어 나가려 할 때.
‘힘을 뺐다!’
황극린이 검을 쥔 손가락에서 힘을 뺐다.
이제 당장 풍뢰검법을 펼치며 상대를 압박해야 한다. 다시는 검이 놈의 손가락에 잡히지 않도록 해야 했다.
“하아앗!”
풍뢰검법 제3초.
풍호설무(風號雪舞)!
사정없이 상대를 몰아쳐 단숨에 기세를 끌어와야 한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
양평중은 왠지 손이 허전함을 느꼈다.
그리고 뒤늦게 전해져 오는 고통. 손바닥이 화끈거리고 저릿했다.
타앙.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까지 양평중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지하지 못했다.
“뭐야? 방금 봤어?”
“잘 모르겠군. 손가락으로 검면을 친 건가?”
검면을 쳤다고?
손가락으로?
양평중이 고개를 떨궈 손을 내려다본다.
이미 그의 손에는 검이 없었다. 손가락을 튕겨 검면을 쳤다는 말인가? 자신은 검이 들려 있지도 않은데 풍호설무를 펼치려 했고?
오싹!
황극린의 신형이 움직였다. 순간적으로 드러난 그의 눈동자에는 붉은 광채가 번뜩이고 있었다.
따악!
황극린이 손가락을 튕겨 양평중의 이마를 타격했다. 검을 놓쳐 버릴 정도로 빠르고 강렬한 일격. 그것이 이마에 닿자 양평중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주변의 소음도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위이이잉-!
이명이 귀를 강타하고, 양평중은 눈을 깜빡였다.
“사형!”
“정신 차리십시오!”
사제 두 명이 양평중을 부축하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
“황극린이 사술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사술… 이라고……?”
어지럽다.
아직도 손바닥이 후끈거리고, 머리가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양평중은 확실히 깨달았다. 황극린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그건 사술 따위가 아니었다. 단지…….
‘어찌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형산파의 대제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촉망받는 후기지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형산의 대제자라 할지라도 양평중을 이리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이렇게 쉽게 자신을 제압했던 자는 한 번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바로 자신의 사부인 천리순풍(千里順風) 위도량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사부님께선 저 사내를 막을 수 있을까?’
오싹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속에 든 실력은 명문거파의 장로급이다? 대체 만뇌문은 어디란 말인가? 저놈의 재능은 ‘그놈’들과 비교해도 능히…….
“……?”
양평중이 흐릿한 시선으로 황극린이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곳에선 형산의 제자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당연히 황극린의 자세에는 여유가 넘치고 있었다.
“뭐, 뭣들 하는 것이냐…….”
“사술을 썼기에 사제들이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안 돼! 모두 물러서라 전해라! 얼른!”
양평중이 화들짝 놀라 소리친다.
사실 비무를 관전했던 군중이 없었다면 숫자로 그를 압박하려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만약 여럿이서 황극린을 제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형산의 명예는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만약.
형산의 제자가 모두 덤볐다가 패배하는 날에는…….
동시에 들려오는 묵직한 타격음.
형산의 제자들이 거품을 문 채로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다. 눈 몇 번 깜빡이는 동안, 황극린과 대치했던 제자들은 모두 쓰러진 상태였다.
먼저 공격을 한 쪽은 형산의 제자무리였으며, 황극린은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했을 뿐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군중 또한 말을 잃었다. 무공이 어쩌니 했던 이들도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황극린이 양평중의 앞으로 다가왔다.
“비무는 내가 이긴 것 같소만.”
* * *
‘와, 대박이야!’
반짝반짝!
두야랑이 황극린이 싸우는 모습을 군중 틈에 섞여 지켜보고 있었다.
‘가벼움은 고양이와 같았지만, 기세는 호랑이와 같아. 거기다 순간순간 보여 줬던 속도는… 나보다 더 빠를 수도 있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법.
두야랑은 소위 말하는 천재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황극린의 존재가 어떠한지 명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진짜다.
‘나는 저자를 이길 수 있을까?’
심장이 뛴다.
만독문에서 쌓아 올린 야수의 본능이 몸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손톱이 검게 물들고, 그곳에서 독기(毒氣)가 차오른다.
싸우고 싶다.
이기고 싶다.
죽이고 싶다.
맹수의 사냥 본능이 두야랑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 성수신의와 함께 오지 않았나?
“……!”
순간 두야랑의 몸이 굳는다.
그녀는 수많은 군중에 섞여 있었다. 거기다 기척을 감추고 몰래 황극린의 비무를 관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지?
설마… 황극린도 살(殺)을 느낄 수 있는 건가?
- 내가 먼저 왔어. 성수신의는 뭘 가져온다고…….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 두야랑이 대답한다.
뭘 가져와?
황극린의 눈동자는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두야랑은 뭔가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 화(火)의 기운을 담은 영약을 가져온다고… 체질이 바뀌는지 확인을 해 보겠다고 했어…….
그 말에 황극린이 입꼬리를 올린다.
성수신의를 영입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속성을 가진 영약은 과연 어떤 효과를 낼 것인가.’
황극린이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