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고민하다
성수신의는 이 사내는 또 어떤 미친놈일까 생각했었다.
뜬금없이 뒤를 따라오지 않나. 갑자기 독이 묻은 단검을 자신의 팔에 찌르질 않나.
하지만 황극린은 독에 중독되지 않은 것처럼 행동했다. 독이 체내에 침범하여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 분명한데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고통을 참고 있는 건가?
“그건 홍무독(紅霧毒)이오! 만약 고통을 모른 체하고 참는 거라면… 미련한 선택입니다!”
혹시 모르는 상황이다.
성수신의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에 몹시도 민감하다. 물론 무림에서 그가 모든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지척에 있는 사람이 죽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성수신의가 황극린의 맥을 짚으려 들자 황극린은 몸을 피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진맥을 하던 성수신의는 이상한 것을 감지해 냈다.
황극린의 맥박은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뛰고 있다. 한 번 맥이 뛸 때마다 마치 용이 포효하는 것처럼 거칠게 뛰었지만, 그게 불안정하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더군다나…….
‘맥이 이렇게 튼튼하다고?’
중독된 것을 확인하고자 맥을 짚다 보니 황극린의 혈맥과 세맥에 감탄하게 되었다. 사람의 육신이 어찌 이렇게 완벽하게 가다듬어졌다는 말인가? 성수신의는 오랜 의원 생활로 수많은 무인들의 맥을 짚어 보았다.
어떤 무공을 익혔느냐, 어떤 지방에서 살아왔느냐에 따라서 인간의 맥은 달라지곤 한다. 황극린은 그가 진맥해 본 이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특별한 맥박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 맥을 짚어 보고 가장 놀란 상대를 말하라면 당연히 만독문의 두야랑이었는데… 황극린은 그보다 더 놀랍다. 아니,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내력이 왜 이렇게 적지? 이상하다. 이런 세맥을 가지고 있는데, 내력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는데?’
심각한 얼굴로 진맥하는 모습을 본 두야랑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연다.
“중독된 거야? 아니면 뭐야?”
“응? 중독된 거냐니까? 나 해독제 있어.”
“대답해! 영감!”
두야랑이 계속 말을 걸자 성수신의가 한숨을 쉬며 대답해 준다.
“중독된 것 같진 않다.”
“뭐? 홍무독은 몰아내기 어려운 독인데… 내공이 무척 많나 봐?”
“아니.”
성수신의가 황극린을 보며 묻는다.
“귀하께서는 내공으로 홍무독을 몰아내신 것이 아니오. 아예 중독 자체가 되지 않았지. 설마 홍무독에 내성이 있었던 것이오?”
“그렇소.”
“응? 홍무독의 내성은 나도 최근에 겨우 만든 건데?”
“넌 좀 가만히 있거라.”
황극린이 말한다.
“난 어느 순간 독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소.”
“독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다고요? 어느 순간?”
성수신의의 이마에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설마? 아니겠지.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독에 내성을 지닌 동물이나 영물도 아니고, 그런 체질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독에 내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만독문처럼 어릴 때부터 독과 함께 지내며 중독되고 치료하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리고 독공을 익혀 독의 기운이 내력으로 흡수될 수 있게끔 수련해야 한다.
결코 어느 순간 가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소.”
“대체 어떻게……?”
“그럼 이것도 확인해 보자! 홍무독보다 더 센 거야! 이건 나도 내성이 없어.”
두야랑의 말에 처음으로 성수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극린은 독의 냄새를 맡았다. 초감각은 본능적으로 발휘된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인지 아닌지는 ‘냄새’로 판단할 수 있다. 이건 황극린이 뇌불과 수련하다 발견한 능력이었다. 사실 그는 냄새로 상대의 내력이 도가의 것인지 사파의 것인지 구별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좀 더 발전시키면 냄새로 위험성을 판단할 수도 있다.
많은 기운이 모인 것일수록 더욱 진한 냄새가 난다.
두야랑이 내민 독의 냄새는 홍무독보다 훨씬 진하고 무거웠다.
“좋소.”
그러자 성수신의가 은근한 표정으로 두야랑에게 물었다.
“…해독제는 있겠지?”
“이건 없는데? 사람을 죽이려고 만든 독에 해독제를 가지고 다니면 안 되지!”
맞는 말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긴 한데… 짜증이 치솟는다.
“그래도 해독제는 들고 다녀야 애먼 사람이 피해를 안 보지!”
“이건 그냥 내가 문파에서 슬쩍한 거야! 해독제를 가져올 생각도 안 했다고!”
두 사람이 말싸움을 시작하려 하자 황극린이 끼어들었다.
“괜찮소. 그건 괜찮은 것 같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너, 죽을 수도 있어. 그건 진짜 위험한데.”
황극린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군.”
그러자 두야랑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독에 대해서라면 그녀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만독문은 중원 제일의 독을 다루는 문파다. 정파에 사천당문이 있다지만… 사실 만독문은 그들을 신경도 안 쓴다.
“후회하지 마.”
두야랑이 독을 꺼내 황극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성수신의가 말리기도 전에 독이 발린 침을 황극린의 팔에 꽂아 넣었다.
“아프지!”
기대 만발한 두야랑의 얼굴.
황극린의 대답은 그녀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 버린다.
“화끈하긴 하군.”
화끈해? 그냥 독도 아니고 사혼초(死魂草)다.
사혼초는 만독문에서도 상급 독으로 분류되며, 한 방울만으로 인간을 일각 안에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황극린은 지금 고통에 빠져 바닥에 쓰러졌어야 한다. 겨우 화끈하다는 말로 끝날 게 아니었다.
“너 대체 뭐야? 어떻게 사혼초의 내성을 가지고 있어? 이건 나도 못 가진 건데.”
“말했지 않나? ‘체질’이라고.”
황극린의 그 말에 성수신의의 몸이 전율하며 파르르 떨렸다.
“대체 어떻게… 그런 체질을 얻게 되신 겁니까?”
그러자 황극린이 두야랑을 바라본다.
“응? 난 왜?”
“넌 잠시 나가 있어라.”
두야랑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이 커진다.
* * *
방 안에는 두야랑과 성수신의가 같이 있었다.
두야랑은 자신도 듣겠다며 떼를 쓰며 남아 있었고, 성수신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난 만독문의 두야랑이야! 만독문주의 둘째 딸이고 익힌 무공은 만청독수(萬靑毒手)! 그리고 잘하는 건 살을 읽는 거야. 이건 내공과는 관계가 없어. 살을 읽는 건 나만의 능력이거든!”
황극린이 자신의 앞에서 비밀을 모두 말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하자 두야랑이 거침없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것을 듣고 있던 성수신의가 이마를 짚고 있었다.
“너는 정말… 후우.”
“나도 같이 듣고 싶다고! 나 못 믿어? 비밀은 꼭 지킨단 말이야!”
“…….”
두야랑이 아직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긴 했다.
하지만 황극린은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비밀이 새어 나간다면 넌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
지독한 살을 마주한 두야랑.
그녀는 장난기를 지우고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영약을 취하면 그 특성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소.”
“뭐라고요?”
“응? 특성?”
“말 그대로의 의미요. 난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한 후, 독에 내성을 가지게 되었소.”
인면지주라면 인간의 탈을 얼굴에 쓴 거미 영물을 말하는 것인가?
성수신의도 과거에 한번 인면지주를 본 적이 있다. 당연히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의 주인이 너무도 무서운 사람이었기에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헐!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면 그런 효과도 있었어? 우리 집에서 인면지주도 키우고 있는데! 아직 크기가 좀 작긴 한데…….”
“뭐라!”
두야랑의 말에 성수신의가 또 한 번 놀랐다.
그러자 두야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집에 영물 하나씩 키우지 않아? 인면지주 말고도… 금구나 금와도 있어. 집에 가서 그것들 내단을 그냥 씹어 먹어야 하나? 아, 그러면 아빠한테 맞아 죽겠지? 헤헤.”
“…당연히 그런 영물의 내단은 그냥 취할 수 없다. 독기를 제어하고 연단하여 환단의 형태로 취해야 한다. 너도 그런 기본적인 지식은 있지 않느냐?”
“근데 저 사내는 그냥 먹어서 독의 내성을 가지게 됐다고 했잖아.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니, 넌 불가능하다.”
성수신의가 단호하게 말하자 조금 토라진 두야랑이었다.
약간의 기대가 담긴 표정으로 황극린을 바라본다.
“너만 가능한 거야?”
“아마도.”
성수신의도 황극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절 알고 찾아오신 겁니까?”
“당신도 잘 아는 누군가에게 들었소.”
“저도 잘 아는 사람이라 하면…….”
고민하던 성수신의였지만 뇌불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황극린이 슬쩍 전음을 보낸다. 영약으로 체질이 바뀐다는 것은 황극린이 영약과 내단만 사냥하다 보면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며 새어 나갈 수도 있었다.
하나, 뇌불에 대해서는 아직 절대로 유출되면 안 된다.
현재의 두야랑은 아직 만독문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 괜찮겠지만, 굳이 뇌불의 존재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 뇌불에게 들었소.
“……!”
“뭐야? 전음 보냈지? 나한테만 숨기고!”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른 두야랑을 철저히 무시하며 황극린이 계속 전음을 보낸다.
- 당신이 영약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영물의 위치도 알고 있을 거라고 했소.
“…….”
성수신의가 생각에 잠긴다.
이 사내를 믿어도 될까? 사실 독에 내성을 가졌다는 것으로는 황극린이 영약의 특성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걸 믿을 수는 없었다. 아직 증명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지 않은가? 뇌불의 이름을 파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그는 분명히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황극린은 조금 의외였다.
성수신의라면 다짜고짜 자신의 몸을 연구하고 싶다고 난리를 피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과거의 성수신의였다면 분명히 황극린의 예상대로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림에서 그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연구로 인해 폐인이 되거나, 심할 경우 죽은 이들도 무수히 많았다. 그들의 죽음으로 성수신의는 조금씩 깨달았다. 자신이 주장했던 체질 변화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솔직히 당장이라도 자신이 가진 영약과 영초들을 이용해서 황극린의 몸에 실험해 보고 싶었다.
그런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황극린이 죽으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도 차오른다.
황극린은 그런 성수신의를 보며 말했다.
“칠 주야의 시간을 주겠소.”
“예?”
“나와 같이 갈 생각이 있다면… 말하시오.”
황극린이 몸을 돌려 민가를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 앞에는 두야랑이 서 있었다. 마치 자신에게도 물어 줄 것이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황극린은 두야랑이 필요가 없었다.
휙.
그가 그냥 민가를 떠나가자 두야강이 큼지막한 두 눈을 끔뻑였다.
“뭐야? 왜 나한텐 아무것도 안 물어봐? 영감! 어떡해?”
“…모르겠구나.”
“당연히 가야지. 영감의 숙원이 인간의 체질을 바꾸는 법을 알아내는 거라며?”
두야랑.
평소에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니더니 자신을 이렇게 걱정해 주는 건가…….
“그럼 나도 만독지체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아냐! 그러니까 당장 따라가자! 그리고 뭔가 저 사내를 따라가면 재밌을 것 같아!”
두야랑의 대책 없는 말에 성수신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솔직히 황극린을 따라가는 것에 마음이 기울었지만… 고민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싶지 않았다.
“하루만… 하루만 더 고민해 보자꾸나.”
* * *
형동현.
형산파의 18대 제자 곽시우는 처음 보는 사내에게 복부를 얻어맞고 먹은 것을 게워 냈다. 소문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이 빠르게 퍼진다. 객잔 내에서 그 장면을 목격한 사람만 열 명은 족히 넘었다. 형산파의 제자가 이름도 없는 놈에게 얻어터졌다는 말은 곽시우의 사형 양평중의 귀에도 들어갔다.
“처음 보는 놈에게 맞았다?”
“죄송합니다.”
곽시우는 죄인이었다.
그렇기에 사형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들 수 없었다.
“어디 문파의 출신이지?”
“그것까지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하나… 하후 소저의 앞에서 할 말이 있으면 그 객잔으로 찾아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습을 당했다고 했지?”
그 말에 곽시우가 고개를 들었다.
“예, 말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먹을 뻗어 왔습니다. 권법을 익힌 것 같았습니다.”
“가자.”
양평중과 그의 사형제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함부로 대들지 못한다.”
철저하게 밟아 준다.
형산파의 18대 제자 무리가 황극린을 잡기 위해서 객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