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56화 (56/316)

56화 마부석에 타라

광견살검.

그는 무시무시한 별호와는 달리 의외로 곤륜파의 무맥을 이었다. 과거 혈마교에 멸망한 곤륜파였지만, 그들의 무맥은 아직 무림에 이어지고 있었다. 일인전승의 형태로 말이다.

구자광은 우연히 다 죽어 가는 도사를 구해 주고, 그에게 무공을 배웠다.

곤륜파는 과거 구파일련이 아닌 구파일방으로 불렸던 시절, 일좌를 차지했던 거대 문파였다. 그들의 불행이라면 혈마교와 지리적 거리가 가장 가까운 대문파였다는 것일 뿐이다.

아무튼, 구자광은 태청기공과 태청검이라는 무공을 배우고 무려 산에서 20년이나 수행한 다음 강호에 내려왔다. 그의 나이 30살. 10살 때부터 산에 올라 무공을 익혔다. 당연히 산에서 수련만 하던 순박한 무인이 강호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처음 만난 인연에게 된통 사기를 당하기도 했고, 미인계에 속아 죽어 버릴 뻔한 적도 있었다. 강호는 순박했던 구자광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옥에서 버틸 방법은… 야차(夜叉)가 되는 것이었다.

상대가 사기를 칠 것 같으면, 먼저 주먹을 뻗는다.

만약 자신에게 검을 겨눈다면 절대 살려 두지 않는다.

이러한 대원칙을 세워 구자광은 무림의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굳이 먼저 치진 않지만, 자신을 건든다면 두 배, 세 배로 돌려준다. 20년의 수련에 상당한 실력을 쌓았던 구자광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도 그에게 광견살검이라는 별호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를 건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최근에는 그나마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기에 왜인지 무림이 따분해지기 시작했다. 야차가 되겠다는 강렬한 의지는 시들었고, 그도 남들처럼 평범한 무림 생활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그가 목격한 사이좋은 사부와 제자의 모습.

사부는 제자를 훈육하고, 제자는 사부를 하늘처럼 떠받든다. 객잔에서 식사하며 그들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구자광은 결심했다.

제자를 구하기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몇몇 마음에 드는 놈들을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사랑이 듬뿍 담긴 매질을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놈은 없었다. 처음부터 매를 들면 안 되는 건가? 그런 생각도 했지만, 사부는 제자가 잘못하면 폭력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약 자신의 방법이 맞다면… 문제는 제자의 자질이다.

구파일련에서 제자를 가려서 뽑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명문거파에 입문할 자질을 갖춰야지만 입문할 수 있다. 그렇기에 구자광은 자신에게 맞는 제자를 찾아 떠나는 강호행을 시작했다.

자신의 매질도 버틸 수 있으면서, 사부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자신의 무공인 태청검과 태청기공을 완벽히 익힐 수 있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

하나, 그건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괜찮은 놈들은 사부가 있었고, 사부가 없는 놈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러 번의 좌절을 겪은 구자광은 결국 평이 좋기로 유명한 흑사회의 노예 시장까지 찾아갔으며, 그 이후엔 황극린이라는 이미 무공을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놈을 따랐다.

사부가 있으면 뭐?

오히려 사부가 있으니 더 좋은 것 아닌가? 이미 사부를 모셔 본 경험이 있었으니 자신을 더 깍듯하게 모실 것이 아닌가?

곤륜파의 도사에게서 제대로 된 사제지간이 어떠한 것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광견살검이다. 죽어 가던 사부는 1년 만에 죽어 버렸고, 그는 사부가 남겨 준 무공서로 수련만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사제지간에 대한 환상이 존재했다.

그리고 지금 광견살검은 제자를 받아야겠다는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그만! 그만해! 이 미친 새끼야……!”

왜 황극린을 쫓아왔을까?

하필이면 왜 이런 놈을 골랐을까?

황극린은 미친놈이었다.

광견살검이라 불리는 자신보다 더.

“허억… 허억……!”

광견살검은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그는 무림에서 이토록 처절하게 전투를 벌인 적이 없었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황극린은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해 갔으며, 빈틈이 보이면 바로 주먹을 찔러 넣었다. 그냥 주먹으로 맞아도 아픈데 뇌전까지 담겨 있었으니 맞을 때마다 충격이 중첩되었다. 지금도 뇌전의 기운이 몸에 남아 있는지 움직일 때마다 몸이 저릿저릿하다.

거기다 더 큰 문제는…….

‘이놈은 지치지도 않나?’

황극린은 분명히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내공. 그것이 그가 가진 유일한 약점이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기의 운용을 최소화하고, 적절할 때만 내공을 방출한다.

황극린은 내공의 부족함을 육체의 단련으로 메꾸었다.

그는 지독히도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광견살검과 맞서 싸웠다. 거기다 어찌나 감각이 뛰어난지 광견살검의 회심의 검초를 모두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크게 몸을 비틀어 피하는 것보다 작은 차이로 공세를 피하는 것이 더 어렵다.

광견살검은 전투가 시작된 지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깨달을 수 있었다.

황극린 이놈은…….

‘이놈은 나보다 더 강하다.’

약한 이가 강한 이의 사부가 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광견살검이 그를 제자로 삼으려 한 것부터 문제였다. 비수를 던져 댈 때부터 예상이야 했건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 보았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 이제 그만……! 제발… 제발 그만 싸우자고!”

천하의 광견살검이 그만 싸우자는 말을 한다.

당연히 아직 황극린은 만족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긴장이 되는 상대.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황극린으로선 무림에서 처음 만난 제대로 된 상대였다. 역시 강호백대고수라는 것은 허울뿐인 것이 아니었다.

“아쉽군.”

“뭐가! 뭐가 아쉽다고! 허어억……!”

“너는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뭐? 내가…….”

황극린이 보기에 광견살검은 제대로 곤륜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아마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내공심법의 경지는 높아 보였지만, 검법은 완전 제멋대로 해석해서 많은 변형이 이루어졌다. 곤륜파의 태청검을 본 적은 없었지만, 저리 얄팍하진 않을 테니까.

물론,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학살하는 데에는 지금처럼 싸우는 것이 좋을지는 몰라도, 같은 경지나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을 상대할 때는 독이 된다.

광견살검은 더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발전하면 황극린의 수련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만 싸우고 싶나?”

“그,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다! 제자가 돼라라는 말은 취소다! 취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하지.”

그러면서 황극린이 다시 품을 파고든다.

거리가 벌어진 상태라면 검이 무조건 유리하다. 하지만 지척에 도달하는 순간 검은 약점이 된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보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 무공에서 거리 싸움은 상당히 중요했다.

쉬익!

“컥!”

옆구리를 파고든 황극린의 주먹.

지칠 대로 지친 광견살검은 온전히 그의 주먹에 노출되었다. 다행인 점은 주먹에 뇌전이 깃들지는 않았다는 점일까?

‘대, 대체… 체력이 얼마나 좋은 거지?’

황극린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보통 사람은 비무를 일다경만 해도 호흡이 가빠지고, 심할 경우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놈은 무려 반 시진이나 싸웠음에도 처음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제발, 그만!”

그는 이미 구자광을 죽이려 마음만 먹었다면 몇 번이고 죽였다.

지칠 대로 지친 구자광은 제대로 그의 공세를 피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급소만 제대로 가격해도 구자광은 죽고 말리라.

“내가 뭘 하면 살려 줄 거냐……?”

구자광이 묻는다.

그는 분명히 원하는 게 있었다.

“수하가 되어라.”

“뭐……?”

“네게 큰 것을 바라진 않는다. 오늘처럼 비무만 해 주면 된다.”

“뭐……!”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지옥 같은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고?

“너도 네가 뭐가 부족한지 느끼고 있을 테지.”

“그건…….”

광견살검은 느끼고 있었다.

황극린과의 싸움은 다른 무인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어떤 공격을 해도 피해 내고, 빈틈을 찾아내 주먹을 찔러 온다. 다른 백대고수와의 싸움에선 느껴 보지 못한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과 비무를 한다?

당연히… 자신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하기 싫다면 그냥 보내 주마.”

“뭐라고?”

“위험부담이 있는 놈을 억지로 데리고 가긴 싫거든.”

아니, 수하가 돼라라고 했다가 갑자기 그냥 보내 준다니?

갑자기 억울해진다. 이때까지 이렇게 싸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위험부담? 다짜고짜 비수를 날려 대는 놈이 그렇게 말한다고?

기가 차서 말을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구자광이었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만약 황극린이 계속 수하가 되라고 설득했으면, 반발심으로 구자광은 제안을 거절했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위험부담이 크다는 건 뭔 헛소리냐!”

“광견살검이라는 별호만 들어도 알 수 있지.”

“그건 날 모함하려는 약해 빠진 놈들이 붙인 별호다. 난 착실하게 무림을 살아왔다.”

“…….”

황극린이 대답하지 않고 있으니 구자광이 황급히 말을 이어 간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난 조용히 지낸다. 애초에 무림에서 먼저 건드려 놓고 무사하길 바라는 놈들이 문제 아닌가? 난 그런 놈들을 교육해 줬을 뿐이다! 그러니 난 전혀 위험부담이 없다.”

말을 하다 보니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분명히 제안을 한 쪽은 황극린이다. 그리고 구자광은 그것을 거절하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오히려 그가 황극린에게 매달리는 꼴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러니 날 데려가도 위험부담은 없을 거다. 그건 장담한다.”

“수하가 되겠다는 말인가?”

“그건…….”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그에게 이런 제안을 한 놈들은 수두룩했다. 누군가의 휘하로 들어갔다면 광견살검이라는 별호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비무를 하는 것이라면…….”

“네게 그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사고를 쳐서 우리 일행에게 피해를 준다면 난 널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둬라.”

죽일 수도 있다.

황극린의 무심한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악을 지르며 하는 협박보다 저리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고, 고맙다!”

황극린이 마차로 떠나간다.

‘어쩌지? 정말 따라가야 하나?’

구자광의 고민도 잠시.

그는 일단 황극린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와 전투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왜인지 그 감각이 남아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와 싸우다 보면…….

“같이 가자!”

“잠시.”

마차 안에 들어오려던 구자광이 황극린에 의해 제지당한다.

“넌 마부석에 타라.”

“으응? 무슨…….”

“날 노리고 쫓아온 놈을 바로 믿을 수는 없지.”

황극린의 말에 구자광이 발끈한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망나니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광견살검은 강호에서 약해 빠진 놈들이 붙인 별호다!”

“그런 것치고는 자랑스레 자신의 별호를 말하더군.”

분명히 구자광은 자신을 소개할 때, 광견살검이라는 별호를 먼저 언급했다.

황극린에게 자신이 누군지 똑똑히 알려 주겠다는 심보였지만, 그게 독으로 작용했다.

“신뢰를 얻고 싶다면 스스로 증명해라.”

쿵.

삼두마차의 문이 닫힌다.

가만히 마차를 지켜보고 있으니, 마부석에 앉은 중년인이 땀을 삐죽삐죽 흘린다. 항주에서 임시로 고용한 마부였다. 그 또한 광견살검이 무림에서 떨치는 악명을 잘 알고 있었다.

“어이.”

“예, 예엡!”

“좁으니 옆으로 가라.”

“옙!”

천하백대고수 중 하나.

제자를 찾으러 황극린을 뒤쫓았던 그가 마부석에 처량하게 앉았다. 분명히 스스로 판단하여 황극린을 따라 마차에 왔건만 왜 패배감이 사무칠까?

‘일단 가 보자. 정 아니면 도망치면 되는 거고…….’

그러다 문득 의문이 생긴다.

황극린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근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나, 남창으로 가고 있습니다요…….”

“남창?”

과거에 몇 번 들러 본 기억이 있었지만, 그곳에 뭐가 있었는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단 출발해.”

“예엡!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촤악!히이이이잉-!

그렇게 마차가 출발했다.

광견살검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자신보다 더한 악명을 떨친 대마두(大魔頭)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흑사회 본부.

검은 뱀이 양각된 커다란 의자에 앉은 중년인이 살기를 내뿜는다. 적어도 수백 명의 생을 앗아 간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살의가 방 전체를 뒤덮었다.

“동려대협이라는 놈이 누군지 알아냈나?”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끼이이이익.

손톱으로 철로 된 의자를 긁는 중년인. 모두가 당장이라도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아니 된다. 흑사회주의 분노가 자신을 향할 수도 있었으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찾아내라. 감히… 흑사회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줘야 한다. 복수하지 않으면… 흑사회는 흑도 세계에서 군림할 수 없다.”

흑도에서 녹림과 비슷한 규모의 세력을 가진 흑사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겁도 없이 흑사회의 지부를 건드린 동려대협은 흑사회주에게 갈기갈기 찢겨 처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살려 달라고 빌 때까지 고문해 주마. 동려대협… 얼마나 오래 걸리든 네놈은 꼭 찾아내서 죽인다.’

그렇게 흑사회에서 동려대협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니, 오히려 동려대협의 별호가 절강성을 넘어 중원 전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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