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려대협
이 사내는 대체 누군가?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리도 악독하게 군단 말인가? 사공두는 난생처음으로 세상을 저주하고 있었다. 이제껏 그는 강자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살아왔었다. 약자의 입장에서 꿈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경우 인간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만둬···.’
하지만 목 밑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내뱉지 못했다.
사신(死神)과도 같은 사내는 죽고 싶다는 말을 기다리며 끝없는 고통을 가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는 말을 내뱉으면 어떻게 될까? 사내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목을 벨 것이다.
당연히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이제껏 그가 모아놓은 막대한 재화가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걸 놔두고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으려고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 아니다.
용비문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대사형을 죽였던 날.
그는 쾌감을 느꼈으며,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만···.’
하지만 그러한 추악한 탐욕도.
점점 심해지는 고통 앞에서는 흐려지고 있다.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고문을 당할수록 오히려 정신을 더 또렷해진다. 가끔 몸에 타고 흐르는 뇌전이 고통을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으어어어···! 으어어···!”
사공두의 그의 비명엔 울음이 섞여 있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이 천천히 사라지는 중이다.
그에게 돈을 빌렸던 채무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약자는 극한의 고통과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앞에서 결국 무너지게 되니까.
* * *
제발 죽여줘.
그 말이 나오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반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황극린은 무심하면서도 느긋하게 사공두를 고문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사공두는 결국 자신의 생을 포기하게 됐다. 끝없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 그는 비로소 해방되었다. 과연 죽을 때, 과거를 후회하고 반성했을까? 뭐, 황극린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사공두가 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준 것이었다.
황극린은 누군가가 고통받는 걸 즐기는 가학적인 성격도 아니다. 단지 그의 입장에선 해야 할 일이었을 뿐.
사공두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는 아직 용비문에서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끼이익.
작은 창고에서 빠져나간 황극린은 다시금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혈귀(血鬼)가 강호에 다시금 무림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과거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 * *
“장 형, 그 소식 들었는가?”
“뭔 소문?”
“용비문이···.”
용비문이라는 말에 장 형이라 불린 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동려현에서 누가 있겠는가? 하룻밤 사이 용비문의 문주를 포함하여 간부들이 죄다 죽은 채로 발견됐다. 거기다 채무각서들도 모두 불에 타버렸다는 말이 있었다. 용비문에 살인적인 이자에 허덕이던 채무자들은 자유의 몸이 된 것이다.
“당연히 알지 이 사람아! 그걸 모르겠나?”
“누가 용비문을 멸문시켰을까?”
“당연히 정파의 협의지사가 아니겠는가?”
“응? 협의지사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그러자 장 형이라 불린 중년인이 발끈한다.
동려현에서 용비문 놈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인생이 망가진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을 많이 죽였다고?
“예끼! 이 사람아! 그놈들은 사람도 아니야! 자네 오 영감 소식 못 들었나? 빚을 갚지 못하고 자결했는데, 그 자식들이 채무를 물려받아 용비문 놈들이 싹 다 몰려가서 자식들 또한 자결하게 만들었지 않나? 그게 사람 새끼가 할 짓인가? 아무리 돈이 귀해도 그렇지 그건 아니지. 정말 아니야.”
“그건 그렇긴 한데···.”
“분명 강호의 마두를 족치는 정의의 협의지사가 나선 것이 분명하네.”
협의지사.
협객.
과거의 황극린은 당연히 그러한 평을 받지 못했다. 그의 검이 향하는 곳은 죽어야 마땅한 마두가 아니었다. 흑살문에 들어오는 의뢰 중에서는 분명히 강호에 악명이 자자한 마두를 죽여달라는 것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파의 명숙을 죽여달라는 의뢰도 있다.
애초에 흑살문의 살수가 협의지사라는 게 말이 되는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었다.
하지만 황극린이 무림에서 벌인 첫 학살은 오히려 협의지사의 의로운 행동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걸 노린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동려현에서는 그의 별호마저 생겨났다.
동려대협(桐廬大俠).
별호에 지명이 붙은 별호는 보통 급이 높다고 할 순 없었지만, 동려대협은 그런 별호와는 궤를 달리했다. 별호에 대협이 붙었으니 무공이 고강한 것과는 관계없이 명예로운 별호라 할 수 있다.
이제껏 동려의 백성들은 용비문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관아와도 끈끈한 연줄이 있었기에 그들은 해결하기는커녕 방관만 했다. 참으로 역겨운 현실이었다. 백성들은 그저 참고 또 참으며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용비문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동려현의 백성들에게 동려대협의 등장은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고 살아가기 힘들다고 해도, 정의는 존재한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까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실현은 동려현의 백성들에게 너무도 달콤한 환상일 뿐이었다.
그리고 환상은 현실이 되었다.
“만약 그분이 사람을 많이 죽여 학살자니 잔인하다니 뭐니 할 거면 자네랑 다시 대화할 일 없을 거네.”
장 형의 말에 마른 체구의 중년인이 깜짝 놀란다.
“아니, 내가 무슨 소리를 했다고 그리 말하는가. 섭섭하구만.”
“아까는 협의지사가 아니라고 했지 않나?”
“내, 내가 언제 그리 말했나? 그냥 사람을 많이 죽여서 조금 그렇다고···.”
“또 사람이라고 하네? 용비문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아옹다옹하는 두 중년인이 아니더라도, 객잔 내에서는 동려대협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모두가 용비문의 멸문과 동려대협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의방에서 치료를 받고 나온 백온후가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빛내고 있다. 백온후의 앞에는 황극린이 마주 앉아 있었다.
으쓱! 으쓱!
백온후가 마치 자신이 칭찬받는 것처럼 순수하고 맑은 웃음을 흘리고 있다.
‘대협님은 너무너무 멋있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시선을 쏘아대고 있으니, 백건악이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말한다.
“후야, 은공을 그렇게 빤히 바라보면 안 돼. 예의 없는 행동이다.”
“으응···.”
백온후가 고개를 숙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턱만 아래쪽으로 빼고 눈동자를 위로 올려 황극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존경을 가득 담은 채로 말이다.
“백온후.”
백건악이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말하니 백온후가 푹 고개를 떨군다.
그래도 형아가 말하면 말을 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쁜 아이가 되는 거니까.
“괜찮다.”
황극린의 말에 전광석화처럼 백온후가 벌떡 고개를 쳐들었다.
그걸 보며 백건악이 한숨을 내쉰다.
“죄송합니다. 은공.”
사과하는 백건악에게 황극린이 묻는다.
“생각해봤나?”
황극린은 홀로 용비문을 멸문시키고 백건악에게 물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겠느냐고.
사실 그를 만나기 전부터 대략적인 계획은 있었지만, 백건악의 의지도 중요했으니까. 그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한다.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 자신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은공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내 주제에 과연 황극린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앞선다. 말로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백건악은 그런 성격이었다.
황극린은 백건악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하지만 우선은 온후의 병부터 치료해야겠지.”
동려현의 의방을 몇 군데 방문했지만, 그리 신통한 의원은 없었다. 용비문이라는 악질적인 사파가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으니 의원들도 이곳에 오지 않으려 했던 탓이 크다. 더 큰 현으로 가야 했다.
“그건 그렇지만···.”
백건악이 아랫입술을 깨문다.
그에겐 명의라 불리는 이들에게 치료받을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황극린에게 받는 것도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자신 때문에 손에 피를 묻혔는데, 돈까지 내놓으라는 것은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내게 손을 벌리는 것이 미안해서 온후의 병을 치료하지 않을 건가?”
“그건···.”
황극린은 백건악을 너무 몰아붙이진 않았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들를 데가 있다.”
“예, 은공···.”
식사를 마친 후 황극린이 향한 곳은 낙양전장(落陽錢莊)이었다.
낙양전장은 이름 그대도 낙양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전장이었지만, 지금은 중원 대부분 장소에 지부를 설립해 있다. 중원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전장이었다. 그 넓은 중원에서 세 손가락이니 신뢰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지부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황극린이 내민 것을 본 사내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부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낙양전장 동려지부장입니다. 동려대협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지부장은 황극린이 동려대협이라 확신했다.
그가 가지고 온 전표는 분명히 용비문의 것이었다. 지부장 정도 되면 대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용비문을 그렇게 풍비박산을 냈는지 궁금했지만, 전장을 찾는 고객 중에선 신분을 밝히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황극린이 지부장에게 대뜸 말한다.
“절반을 내놓겠소.”
“예? 절반이라 하시면···.”
“여기 용비문이 보관하고 있던 채무각서요. 채무자들의 납부한 이자까지 모두 나눠주시오. 수수료는 1할이오.”
“······.”
용비문의 자산은 전표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들의 자산은 일반 백성들은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많다. 오랜 기간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번 돈이다. 그밖에도 주루나 기루 따위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기도 했다. 황극린은 그와 관련된 모든 사업체와 관련된 서류와 전표를 가지고 왔다.
물론, 그 외에도 용비문 장원 내부에는 값비싼 것들이 꽤 있었지만···.
그것까지 처분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어차피 그에게 돈이란 수단에 불과했다. 주인을 잃은 용비문의 자산이 아니더라도 돈을 벌 방법은 무수히 많았다.
“저희를 믿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낙양전장이니까.”
“······!”
물론, 허튼수작을 부린다면 황극린도 대응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낙양전장을 믿고 있다. 그들은 돈을 다루지만, 돈에 휘둘리진 않는다. 흑살문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비밀 전장이 있었지만, 때때로 낙양전장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뢰를 보장할 수 있다. 사흑련 중 하나인 흑살문이 믿고 돈을 맡길 정도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하겠소?”
동려지부장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수수료는 1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의외군.”
낙양전장을 믿기도 했지만, 황극린이 수수료를 1할이나 제시한 것은 채무자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막대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것이다.
“중원에서 정의로운 명성만큼이나 값어치 있는 일은 없겠지요. 거기다 동려대협께서 부탁하신 일이니 들어줘야겠지요.”
“그 과정에서 용비문과 관련된 이리 떼들이 몰려들 텐데 괜찮겠소?”
황극린의 물음에 동려지부장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낙양전장이니까요.”
“그렇군.”
낙양전장의 이름은 중원에선 신뢰의 상징이었다.
고객이 맡긴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용비문의 사공두가 돈에 미쳐있는 놈이었다고 해도 낙양전장을 건드리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나마 사공두는 머리를 굴려 누울 자리를 알아보고 눕는 편이었지만, 하필이면 황극린에게 걸린 게 문제였다.
동려지부장이 직접 나서니 용비문의 자산을 반절로 나누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새로이 발행한 전표를 황극린에게 내주었다.
“여깄습니다. 발행처를 낙양 본점으로 했기에 돈을 찾으실 때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겁니다.”
낙양전장이 대놓고 그를 찾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지부장이 직접 말했으니 낙양전장에선 동려대협를 추적하지 않을 것이다.
“고맙군. 언젠간 기회가 되면 또 들리겠소.”
황극린은 무심하게 전표를 받아들고 낙양전장을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점원 중 하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지부장에게 묻는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자세히 따지고 들면 이건 분명 훔친 돈···.”
“훔쳐?”
지부장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점원들은 자주 볼 수 없었던 지부장의 얼굴 중 하나였다.
“강호란 저런 협의지사가 있기에 유지되는 곳이다. 용비문은 언젠간 임자를 만날 운명이었을 뿐이다. 동려대협은 온당한 대가를 가져간 것이다.”
점원은 감히 반박하지 못했지만, 부지부장은 지부장의 말에 약간의 토는 달 수 있을 직위였다. 가만히 현 상황을 생각하던 부지부장이 조심스레 운을 뗀다.
“낙양에서 이번 일로 트집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동려대협의 전표에 표식은 남겨 뒀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지부장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한 지부의 우두머리는 점원들을 낙양전장의 일원으로 확실하게 교육할 책임이 있었다.
“그다음은?”
“예?”
“동려대협을 추적할 텐가? 왜 용비문을 멸문시켰다고 따질 텐가? 훔친 돈이라며 내놓으라 할 텐가?”
“······.”
“훔친 돈을 빼앗게 되면 그 돈은 소유권은 빼앗은 자에게 있나? 자네가 흘린 은자를 누군가 줍는다면 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만약 자네가 은자를 주운 이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 관련도 없는 은자에 욕심을 내고 자신이 은자의 주인이라고 나선다면? 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애초에 돈의 주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겠는가?”
지부장의 말에 부지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부장의 가정은 현실에서 있을 법했지만, 상황이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난 용비문의 악행을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네. 하지만 동려대협은 직접 행동하여 그들을 엄벌했지. 저잣거리에선 천지신명께서 벌을 내렸다고들 하더군. 난 그러한 동려대협의 선한 의지에 동참하고 싶군.”
부지부장은 배우려는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언젠간 그도 성장하여 어느 지부의 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부지부장을 보며 지부장은 굳은 얼굴을 풀고, 평소의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생각이고··· 실질적으로 동려지부에서도 얻을 게 많지. 일단 동려현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지부장이 말을 이어나간다.
“더 나아가서는 중원 전체에··· 특히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파일련과 거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겠지.”
부지부장은 지부장의 가르침에 탄복했다.
그는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본다. 부지부장과 지부장의 직위 차이는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 하나가 몹시도 크다.
“지부장님의 가르침, 뼈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부지부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네. 이번 일은 후에 다시 또 이야기하지. 그때까지 자네의 생각을 확실히 정립해보게.”
“예, 지부장님.”
지부장이 고개를 돌려 황극린이 떠나간 자리를 바라본다.
그가 부지부장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가 말하는 실질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하나 필요하다.
동려대협의 명성에 금이 가면 안 된다.
명성을 쌓는 것은 20년이라는 세월도 부족하지만, 잃는 것은 일 각이면 충분하다.
지금 동려현에서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지만, 언제고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특출난 이는 견제받기 마련. 동려대협의 협행(俠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부장은 느끼고 있다.
동려대협은 어중이떠중이들의 농간에 당할 사람이 아니다. 동려대협과의 만남은 그리 길진 않았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그는 피해자들을 위해 막대한 재화의 반절을 포기할 정도로 사려가 깊었고, 낙양전장에 그 일을 맡길 정도로 과감했으며, 1할의 수수료를 제시하였으니 낙천적으로만 세상을 보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동려대협은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협객이었다.
그렇기에 지부장은 동려대협의 명성에 발을 얹었다.
어쩌면··· 현급의 지부장이 아니라 더 높은 위치에서 그와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으리라.
‘동려대협,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현재 황극린은 항주로 향하는 중이었다.
백온후를 치료할 의원도 그곳에 있을 것이며, 사람을 사고파는 흑사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