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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40화 (40/316)

만남

“으음.”

다음 날, 제갈수가 수십 종류의 독을 가져왔다. 제갈세가는 전문적으로 독을 다루는 문파는 아니었지만, 기관진식(機關陣式)의 방면에서는 거의 최고라 자부할 수 있었다. 기관진식을 설치할 땐, 간간이 독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기에 여러 종류의 독을 상비하고 있었다.

중원 최고의 살수 집단에 속해 있었던 황극린이었기에 완전히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현재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엔 적당했다.

그는 제갈수가 가져온 독을 이용하여 직접 몸에 실험을 한다.

당연히 독을 마구 퍼붓는 게 아니라 극소량의 독을 피부에 닿게 하거나 약간만 혀에 닿게 하는 식으로 실험한다. 간단한 복통이나 두통을 유발하는 독부터 먼저 실험을 해보았다.

“으음.”

아무렇지 않았다.

어떠한 반응도 나타나지 않는다.

설마 했는데 일단 독에 내성이 생긴 것은 확실하다.

독의 수준을 계속 올려 나갔다.

중독되면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주는 분혼산(焚魂散)부터 복용하는 순간 음욕이 극대화되는 미혼약 극락향(極樂香)까지 직접 몸에 닿게 했다. 당연하다는 듯, 몸에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분혼산과 극락향은 절정 수준의 무인조차 내력으로 몰아내기 힘든 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효과가 없다는 것은 여러 종류에 독에 내성이 생겼다는 말이다.

‘대단하군.’

설마 모든 독에 내성이 생겼을 수도···.

그렇게 생각하며 독의 수준을 더 높여가던 중.

사천당문의 극독 중 하나인 몽령지독(夢靈之毒)을 피부에 닿게 하는 순간,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몽령지독은 한 방울만 닿아도 정신을 잃게 하고, 빨리 독기를 몰아내지 않으면 단기간에 죽음을 유발할 수 있는 극독이었다.

독 중에서는 최상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부턴 반응이 왔다.

몽령지독에 닿은 피부가 후끈거리며 간지러움을 유발했다. 만약 피부가 아닌 체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아마 더 격렬한 반응이 올 것이다.

황극린은 몽령지독의 원액을 바늘로 살짝 찍어 손끝에 찔러넣었다. 확실히 간지러움보단 더 큰 반응이 왔다. 독이 들어온 부위가 살짝 부풀어 올랐으며, 가려움이 더욱 심해졌다.

당연히 그 반응에 황극린은 미소를 머금었다.

“몽령지독이 이 정도 반응밖에 안 된다라···.”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무림의 고수 중에서는 독에 내성을 지닌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 초고수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었다. 그마저도 완전한 내성이 아닌 내공을 활용하여 독이 쉬이 침투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황극린은 내공을 전혀 끌어올리지 않았다. 단순히 내성만으로 독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다.

황극린은 세 시진에 걸쳐 계속 실험을 했다.

몽령지독 수준의 최상급의 독에는 확실히 반응이 왔으니, 그것보다 수준이 낮은 독의 양을 늘려보기도 했으며, 손뿐 아니라 여러 부위에도 실험을 해보았다.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의 내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판별할 수 있었다.

최상급의 독은 한 방울로 사람을 한 시진 내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황극린은 최상급의 독에도 내성이 생겼다. 그마저도 내력으로 몰아내면 금방 독기를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뭐, 사천당문이나 만독문 그리고 흑살문에서 보물 수준으로 취급하는 특급의 극독 수준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실험으로 생각해볼 때, 아마 어느 정도는 버텨낼 수 있으리라.

“괜찮군.”

황극린은 대단히 만족했다.

사실 살수 중에서도 어릴 때부터 극독에 중독되지 않게 내성을 기르게 훈련받는 살수들도 있긴 하지만, 타고난 몇 명 만이 하급 수준의 독에 내성을 가질 수 있었다. 내성을 기르는 훈련은 부작용이 워낙 컸고, 사상자도 많았기에 흑살문에서도 잘 실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는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함으로 독의 내성을 얻었다.

물론, 인면지주로 얻은 내력은 하나도 없었지만··· 독의 내성만으로도 이미 그 가치는 충분히 뛰어넘었다. 거기다 그는 그것만 얻은 것이 아니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

그것을 황극린은 초감각이라 명명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상대가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궤적을 계산하여 피해낼 수도 있으리라. 이것도 무수히 많은 실전 경험을 쌓아가며 쌓아 올려야 할 기예(技藝)라 할 수 있었다.

황극린은 독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제갈수가 찾아왔다.

“형님, 접니다. 해체 작업이 준비 완료됐습니다.”

“들어와. 이건 잘 썼다. 고맙다.”

“다 쓰셨다고요?”

제갈수는 잘 정리된 독병(毒甁)들을 흘끔 바라본다. 독들을 가져올 때만 하더라도 크게 궁금하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미세하게 양이 준 것 같은 독들을 살펴보니 궁금증이 생겨난다.

‘대체 형님을 독으로 뭘 하신 걸까? 설마 몸에 투여하신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개중엔 피부에 닿기만 해도 아주 위험한 극독도 있었다.

“형님, 필요하시면 독은 다 가져가셔도 됩니다. 조금씩만 가져가지 않으셔도···.”

“아니, 이제 필요 없다.”

“······?”

제갈수의 얼굴이 의아함으로 물든다.

대체 어디에 썼길래 필요하지 않다는 걸까? 황극린의 몸 상태는 무림 전역을 뒤져보아도 경우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제갈수라 하더라도 이 방 안에서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예상할 순 없었다. 오히려 그걸 정확히 예상하는 게 비정상이리라.

“예, 그럼 이것도 같이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황극린과 제갈수가 인면지주의 사체를 보관하고 있던 창고로 향했다.

다시 보아도 저 무시무시한 크기와 압도적인 위압감에 제갈수가 몸을 떤다. 그건 제갈세가에서 섭외한 각 분야의 장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정말 무섭군요. 형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딱히.”

황극린이 무신경하게 인면지주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러고선 거무튀튀한 비수를 꺼내더니 인면지주의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혀, 형님! 독이 있어서 특수 장갑을 착용하셔야!”

제갈수가 화들짝 놀라 황극린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엔 거침이 없었다. 어찌나 손놀림이 빠른지 인면지주를 과거에 해체해 본 경험이 있는지 의심될 정도였으니까. 그는 인면지주의 관절 마디마디를 자른 후, 배 뒤쪽을 갈라 실을 뽑아내고, 정확히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포정해우(庖丁解牛), 완벽하구려. 가죽의 상처는 없으며, 정확히 갈라야 할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양양 일대에서 도축업자 중에서는 최고 권위자인 가패가 넋을 놓고 칭찬한다.

그러자 괜히 으쓱해지는 건 제갈수였다.

‘형님은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저런 기술까지 가지고 계신 걸까? 얼마나 경험이 많으면···.’

제갈수는 따로 황극린에 관한 정보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제갈세가에는 자체적인 정보집단도 있었으며, 개방에게 돈을 주고 의뢰를 해도 된다. 어쩌면 단목화는 이미 황극린의 출신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갈수는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언젠간 형님이 말해주실 때까지 기다릴 뿐.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황극린이 인면지주를 해체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렇게 해체하던 황극린이 잠시 멈춘다.

‘이건···.’

인면지주 얼굴 중앙에 툭 튀어나온 인간의 형상. 인면지주의 가죽과는 전혀 재질이 다른 느낌이다. 손으로 만져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인면지주의 가죽이 마치 곰의 가죽과 같이 두껍고 투박한 느낌이라면, 얼굴의 형상은···.

‘진짜 인간 같군. 이걸 활용할 수도 있겠어.’

어찌 보면 대충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굉장히 속도가 빨랐지만, 인간 형상을 분리해내는 작업은 극도로 집중하여 세심함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작업 속도가 타인보단 훨씬 빠르다. 초감각의 영향이 손재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슥슥.

슥. 슥슥. 슥슥.

어느 순간 인간의 피부가 모두 분리되었다.

하얀 피부였지만, 황극린은 알 수 있었다.

‘특등품의 인피면구.’

이걸 재료로 한다면 인피면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황극린은 살수가 아니었기에 활용할 때가 없다고 하더라도··· 무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일. 미리 준비해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황극린이 해체한 인면지주의 이빨과 적정량의 가죽 그리고 남아 있던 실을 모두 챙긴다. 그런데도 인면지주의 부산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내가 필요한 건 다 챙겼소.”

그러자 제갈세가에서 준비한 장인들의 눈빛이 빛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면지주의 해체를 돕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극상의 재료를 얻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개중엔 제갈세가의 독물 제조사도 있었다. 인면지주의 사체를 활용한 실험을 위해서 독각(毒閣)에서 나온 것이다.

제갈수가 슬쩍 그들의 눈치를 보고는 황극린의 곁으로 다가왔다.

“오기 전 말씀 드린 대로 저들에게 판매할지 안 할지는 형님께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활용 방법을 모두 정해놓았다.

“나머지 부산물들은 적당한 가격에 판매하겠소.”

“독각에서 나온 제갈사라고 합니다. 인면지주의 장기를 모두 매입하고 싶습니다! 독각에서 제시하는 가격은 금자 50 냥입니다!”

금자 오십 냥!

그러자 제갈수가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삼촌, 제가 독각의 사정을 잘 아는데··· 돈 좀 더 쓰셔야 할 겁니다. 인면지주 같은 영물의 장기를 중원에 경매를 붙인다면 적어도 그 두 배 이상은 나올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기가 훼손되지 않은 영물도 잘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러자 제갈사의 얼굴이 구겨진다.

같은 가문끼리 이러긴가? 억울함과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제갈수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태평하게 턱을 쓱 내밀 뿐이다.

“배, 백 냥···.”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형님께선 이 귀중한 영물의 장기에 거의 상처를 입히지 않고 잡았다고요. 이런 영물을 구할 기회가···.”

“백 오십!”

“허어! 결국 백 오십을 말씀하실 수 있으시면서 처음에 오십 냥을 부르셨습니까? 저희 형님께서 섭섭해하실 겁니다.”

“······.”

그 이후는 상황이 비슷했다.

장인들은 저마다의 가격을 불렀으며, 제갈수가 더 가격을 올리려고 흥정을 했다. 황극린은 가만히 있었는데 인면지주의 사체 가격은 계속 올라갔다. 황극린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격에 나머지 부산물을 적당한 가격에 정리할 수 있었다.

“형님, 더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없다. 고생했다.”

고생했다는 한마디에 제갈수의 미소가 짙어진다.

그가 그토록 열심히 흥정했던 이유는 그러한 말을 듣기 위함이었다.

“참, 어머니께서 저녁에 식사라도 하자고 하셨습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그렇게 대화하며 나아가던 도중.

황극린이 자리에서 멈추어 장원 구석의 공터를 바라보았다.

“형님?”

“저긴···.”

피부가 따끔하다. 무언가가 황극린의 감각을 자극하고 있었다.

“뭐가 있나?”

“예? 뭐가 말입니까?”

제갈수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갈세가의 장원은 넓었다. 공터 따위야 어디든지 널려 있었다. 대체 뭐가 있다는 말이지? 제갈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공터를 노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진법이 설치되어 있군.’

제갈수가 제갈세가에 설치된 진법을 모두 알지는 못하리라.

손님으로 와서 장원이 진법을 파헤치는 것은 예의도 아니었기에 황극린이 그냥 지나가려는 찰나.

“끌끌, 무언가 느껴지는 것이더냐?”

“허, 헙! 원로원주님을 뵙습니다!”

장남인 제갈현에겐 반항적으로 대하던 제갈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백발 수염을 곧게 기른 노인을 보자 잔뜩 긴장하며 몸을 굳히고 있다. 황극린과 노인의 눈이 마주친다.

원로원주라···.

제갈세가는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가주에게 힘이 집중된 가문이었다. 경쟁을 통해 선발된 가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로원의 힘이 강해졌다. 직계끼리 경쟁을 하지 않고, 장남을 밀어주는 문화는 원로원의 입김이 가문 전체에 닿을 무렵부터였다.

즉, 지금 눈앞의 노인은 제갈세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황극린은 그런 사내의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답한다.

“예.”

“호오?”

원로원주 제갈여람이 눈을 빛낸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고 하나 성향이 몹시 위험하여 가문에서 내쫓은 제갈창해. 그러니까 무림에서는 통비원으로 불리는 그 재능있는 놈도 이곳에 설치된 진법을 완벽히 간파하진 못했었다. 어찌 이리도 어린아이가 진법의 존재를 알아챘다는 말인가?

‘어디··· 둘째 놈이 어떤 인재를 물어왔는지 확인해볼까.’

그는 이미 황극린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원로원은 제갈세가 내에서 일어나는 일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 특히 인면지주와 같은 영물이 가문 내에 들어왔는데 원로원주가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랑 내기하지 않겠느냐?”

“내기, 말씀입니까?”

“그래, 저곳에 설치된 진은 어딘가의 입구로다. 한 걸음만 삐끗해도 영영 들어갈 수 없는 입구지. 만약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도록 하마. 어떠냐?”

제갈수가 당황한다.

원로원주는 이렇게 친절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매번 쌀쌀한 눈빛과 거대한 위엄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제가 실패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노부가 실망하겠지. 껄껄.”

“좋습니다.”

황극린이 앞으로 나아간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황극린은 입구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러지 못하겠지만··· 이 아이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진 확인할 수 있으리라.

미소를 지은 채 황극린의 걸음을 지켜보던 원로원주.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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