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필요하오
장남 제갈현이 둘째인 제갈수를 싫어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쌓여온 감정이었다.
장남은 형제자매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하지만 제갈수는 육대세가 출신인 어머니의 배경으로 장남 권력 집중화에 동참하지 않았다. 제갈세가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제도를 무시하고 유유자적 즐기면서 살았다.
다른 형제자매들은 다르다.
가문 내에서 압박도 있었기에 자신이 싫더라도 장남을 밀어주려 한다. 하지만 제갈수를 보라. 보란 듯이 장남의 앞에서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참으로 건방진 동생이었다.
오랜 기간 살아오며 두 사람 사이에는 꽤 많은 마찰이 있었다.
어릴 적 제갈현은 제갈수에게 턱을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저놈은 언제라도 기회가 생기면 위로 솟아날 놈이었다. 두 사람 사이엔 형제애 따위는 없었다. 다른 어머니의 밑에서 자라 완전히 다른 교육을 받았기에, 장남과 차남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 왜요? 무슨 일입니까?”
제갈수의 버릇없는 대답에 제갈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저 말하는 버릇을 보아라. 감히 장남에게 저따위 말을 내뱉는다. 다른 동생들이었으면, 찾아줘서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으리라.
이쯤 되면 제갈소희가 한마디 할 때가 되었다.
제갈수는 오히려 장남인 제갈현보다 셋째인 제갈소희를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왜인지 제갈소희가 아무런 말도 내뱉지 않는다.
왜인지 싶어 고개를 돌리니 제갈소희이 입이 살짝 벌어져 있다.
‘얘가 놀랐다고?’
제갈소희의 시선은 제갈수가 데려온 황극린이라는 놈을 향하고 있었다. 제갈현이 황극린을 바라보았지만, 별 다른 건 없었다. 뭘 보고 저렇게 놀란 거지?
제갈소희가 장남의 시선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바람이 멈추었다.
“둘째 오라버니, 오랜만에 뵈어요.”
“그, 그래. 소희야.”
제갈수는 제갈소희에게 약하다.
그 이유는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
“손님 이 계신 앞인데 첫째 오라버니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 우려스럽네요.”
“으음···.”
제갈수도 황극린을 바라본다.
제갈현을 만나는 순간 황극린이 옆에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계신 데 무슨 실례를 범한 것인가?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이라는 말에 제갈소희의 시선이 다시 황극린에게로 향한다.
나이는 잘 모르겠다. 젊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 눈빛을 볼 때··· 결코 어리지 않았다. 제갈소희는 상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의중을 파악하곤 한다. 동공의 떨림, 동공의 확장 모든 것이 감정을 대변해준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마주친 황극린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무언가 있긴 했던 거 같지만···.
‘잘 모르겠어.’
제갈소희는 모르고 있었지만,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제갈현은 제갈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황극린을 바라본다. 이 사내는 누구일까? 둘째 어머니를 가문에 오자마자 만난 것을 보니 무언가 있긴 하다. 만약 제갈수의 인연이라면 자신이 뺏어오면 된다.
제갈세가와 연을 맺으려면 제갈수보단 자신이 훨신 나을 테니까.
“안녕하십니까? 전 제갈현이라 합니다. 제갈세가의 장남이지요.”
“황극린이오.”
황극린의 설명은 그게 끝이었다.
출신 가문이나 어디서 무공을 익혔는지 말해줄 줄 알았던 제갈현의 심기가 불편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장남을 무시하는 건··· 그래도 여기서 악의를 드러낼 만큼 세상을 모르진 않았다.
“참, 인면지주를 포획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영물에 관해서는 참으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만···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말입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후에 황 소협과 같이 사체를 확인하고 싶은데,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그럴 일 없습니다.”
그 대답은 제갈수가 한다.
안 그래도 피곤하신 은인의 앞에서 사체를 같이 확인하자고? 거기다 장남은 인면지주를 해체하며 얻는 콩고물을 얻으려 하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아는 제갈현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건 황 공자님의 의견을 여쭤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갈소희가 한마디 거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황극린에게 쏠린다. 중원에 대해 잘 아는 자라면 당연히 여기서 제갈수보다는 제갈현의 말을 따를 것이다. 그편이 제갈세가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 제갈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황극린을 바라보고 있었고, 제갈현은 당연히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는 여유를 가지고 황극린을 바라본다.
당연히 황극린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싫소.”
“······?”
아니, 지금 잘못 들은 건가?
그렇게 길게 말한 것도 아니었으니 정확히 들은 게 맞을 것이다.
그냥 싫다고?
황극린의 단호한 대답에 세 사람의 표정이 극명하게 갈린다.
제갈현은 눈을 가늘게 떴으며, 제갈수는 해맑은 미소를 피워올렸다.
그리고 제갈소희의 표정은 더없이 진중해졌다.
“쉬고 싶군.”
“형님,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인면지주는 은인의 것이니 건들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제갈수가 뭘 잘못 먹었나? 왜인지 모르게 성격이 확 달라진 것 같았다. 고작 칠주야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공격적인 말투로 말하진 않았다.
사실 제갈수는 어릴 때부터 참으며 살아왔다.
장남에게 모든 것을 밀어줘야 한다는 가풍에 어른들의 압박에 시달렸다. 어머니께서 힘을 써주신 덕에 그나마 여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했다.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면지주에게 죽을 뻔한 뒤,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사람의 인생은 한 번뿐이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었다. 장남에게 반항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제갈수, 너···.”
당연히 장남의 위신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제갈현이 불같이 화를 내려 했다. 한 번 위계질서가 틀어지면 그것을 되찾는데 참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지금 기회에 확실히 누가 위인지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제갈소희가 그것을 막았다.
“오라버니, 손님도 계시니 나중에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갈소희는 전적으로 장남을 밀어주고 있었다.
당연한 선택이었고, 그녀의 능력은 출중했다. 제갈현은 그녀의 말을 들어서 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넌 나중에 보자.”
“그러시던지. 가시지요, 형님!”
쫄랑쫄랑 앞서나가며 황극린의 길 안내를 자처하는 제갈수.
황극린은 무심하게 그를 따라 이동한다.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며 제갈현이 말한다.
“오만방자하군.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가? 설마 단목세가를 믿는 건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별 것 아닌 놈이라면 오늘의 무례는 확실히 갚아주리라. 무림은 은원관계가 확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모욕을 당하고도 하하호호 웃고만 있다면, 호구가 될 뿐이다.
“가자. 대충 어떤 성격인진 알 것 같군.”
“네, 오라버니.”
두 사람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만 날은 아니었다.
* * *
“죄송합니다. 형님.”
“괜찮소.”
황극린은 무림의 생태에 잘 알고 있다. 대충 제갈세가의 일도 파악하고 있기도 했다. 제갈현은 분명 제갈세가의 소가주가 되고, 언젠간 가주가 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둘째인 제갈수가 비철각이라는 별호를 떨치게 된 것도 장남 제갈현이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난 뒤다.
지금은 혹시 모르니 제갈현이 견제하는 것이고, 확실한 권력을 잡으면 제갈수에 대한 견제는 사라지리라. 뭐, 오늘 보아하니 그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것도 같았지만··· 아무래도 황극린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제갈세가와의 연?
당연히 있으면 좋았지만, 제갈현과 같은 성향은 자신과 맞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서로 좋게좋게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거기다 이미 제갈수와 인연을 맺었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
“인면지주의 사체는 직접 해체할 것이오.”
“괜찮으시겠··· 예,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인면지주의 몸 곳곳에 독이 풀어져 있을 것이다. 해체 중 중독될 가능성도 있었기에 말리려던 제갈수였지만, 그러고 보니 인면지주를 잡은 건 황극린이 아닌가? 오히려 한 번도 인면지주를 보지 못한 각 분야의 장인들보단 황극린이 더 해체를 잘 할 것 같았다.
“더 필요하신 건 없습니까?”
“있소.”
“예, 뭐든 말씀해주십시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제갈수.
그는 오랫동안 용돈을 모아놓았다. 한량처럼 살아갔지만, 망나니처럼 살진 않았다. 또래의 사내들인 기루에 들려 돈을 탕진하곤 했지만 그런 성격도 아니었으며, 만약 그랬다간 어머니 단목화에 의해 죽사발이 될 것이 분명했다.
“독이 필요하오. 간단한 독부터 최상급의 독까지 말이오. 돈은 드리겠소.”
“당연히 구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예? 독이요?”
뭐든 구해주겠다고 했지만, 독은 의외였다.
“확인해볼 것이 있어서. 가능하오?”
“예, 당연합니다. 사천당문 수준은 아닐지 몰라도 본가에도 수많은 종류의 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인께 돈을 받을 순 없지요!”
“고맙소.”
“고맙긴요! 참, 편하게 말을 놓으셔도 됩니다. 저보다 형님이시니···.”
설명에 귀찮음을 느낀 황극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
황극린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낀 제갈수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럼 쉬십시오. 독채에는 전담 시비가 한 명씩 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 불러주시면 됩니다.”
사실 황극린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황극린은 인면지주를 사냥했다.
당연히 피곤할 터이니 휴식을 취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
“그럼 가보겠습니다!”
꾸벅!
동생에게 극진히 예를 표한 제갈수가 떠나간다. 만약 황극린의 진짜 나이를 듣게 되면 어떻게 될까? 뭐, 황극린에겐 크게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사실은···.
뚜벅뚜벅.
이미 제갈수와 꽤 거리가 멀어졌음에도 그의 발소리가 귓가에 선명히 들려온다. 믿을 수 없는 청력. 또한, 바닥을 울리는 아주 미세한 진동이 황극린에게 전해져 왔다.
감각 자체가 달라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황극린이 207호로 불렸던 시절보다 더 감각이 예민해졌다. 거미들은 거미줄에 걸린 미세한 진동으로 먹이가 덫에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황극린에게 적용됐다.
물론, 무공의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육신의 감각보다는 기(氣)를 활용한 감지가 더 많이 쓰인다고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굳이 내공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매복한 적 따위는 금방 알아챌 수 있으리라.
그리고 미치도록 예민한 이 감각과 내공을 조화한다면?
과연 황극린이 찾아내지 못할 적이 누가 있을까? 감각의 한계가 어디 까진지,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것인지는 계속 알아봐야 하겠지만··· 지금 상태로도 황극린은 경악 수준으로 놀랐다.
마치 절대 고수들이 경험한다는 환골탈태(換骨奪胎)를 겪은 것 같았다.
환골탈태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중원에서도 한 손에 꼽을 수준만 그것을 겪었다. 새로운 육체를 얻으며, 늙은 육체를 버린다. 무공의 극의에 달한 이들만이 도달할 일종의 경지였다.
당연하게도 아무리 혈풍뇌전신공의 5성에 오른 황극린은 그러한 경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지 미지수였다. 천하제일인 중 하나라 평가받던 뇌불 또한 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비동에서 면벽 수련을 하게 된 이유도 환골탈태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목 아래로 근육이 굳어져 버린 것도, 환골탈태에 실패해서가 아닐까?
그런데 황극린은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했는데, 일종의 환골탈태를 겪었다.
뇌불이 주었던 영약을 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눈 한 번 깜빡일 수준이었다. 하지만 인면지주의 내단을 흡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두 시진 정도였다.
과연 이것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부작용은 없는 건가?
아직 고찰하고 연구해봐야 할 부분은 많았지만···.
‘지금 당장해야 할 것은 인면지주의 내단으로 얻은 게 어디까진지 확인해야 한다.’
독을 가져오라고 한 이유도 그것이다.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한 뒤, 놈의 사체를 뒤적거렸다. 본래라면 독에 팔이 마비되거나 했어야 할 터인데 그런 것은 아예 없었다. 적어도 인면지주가 가진 독에 대해선 내성이 생긴 것이다.
더 알아보아야 한다.
다른 독에도 내성이 생겼는지를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말 재밌군.’
성장이라는 게 이렇게 즐거웠던가?
황극린의 머릿속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할 것인지로 가득 찼다.
* * *
“오라버니, 황 공자님의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그래, 어디 보자.”
제갈소희가 제갈현에게 여러 장의 종이를 건네준다.
“천하광명대회? 광성문이라면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데···.”
“무한에 터를 잡은 작은 문파랍니다.”
중소 문파가 개최한 비무 대회치고는 비무 대회 이름이 너무 거창하다. 거기에 참가한 이들의 면면을 보는데,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놈들이다. 거기서 황극린이 우승을 차지했단다.
그리고 쭈욱 황극린에 관한 정보를 살펴보던 제갈현.
“황씨가문?”
“예, 강서성에서 금황상가라는 상가를 운영하는 가문으로··· 강서성에선 세 손가락 안에 꼽힙니다.”
성급에서 세 번째 규모라니 대단한 규모다.
제갈현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진다.
광명비무대회에 우승한 이력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제갈수, 이놈이 돈줄을 쥐려 하는군.’
이건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