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37화 (37/316)

사냥

융중산은 호북성의 서북단에 위치해 있으며, 그리 웅장하고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제갈세가의 와룡(臥龍)이 이곳에서 학문을 갈고닦았다고 알려져 중원인들이 종종 찾곤 한다.

융중산의 중턱. 허름한 초가집 앞에 나무를 깎아 만든 의자에 앉아 한 청년이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를 뚫고 사이사이 들어오는 햇볕, 산속이었지만 그의 백의에는 전혀 때가 타지 않아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것도 그 사내의 독서와 사색을 방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으음?”

그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허엇, 뭐, 뭐야! 이게!”

멧돼지만 한 크기의 거미. 거기다 수십 개의 눈알이 달린 얼굴의 중앙에는 인간의 얼굴 형상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마치 인간의 얼굴을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는 기괴함에 사내의 등골에 절로 소름이 돋아났다.

청년이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거미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대체 뭐지? 사내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간다. 그 또한 다양한 책을 읽고, 학문을 갈고닦았다. 그가 읽은 서책 중에선 신기한 동물 따위를 서술한 책도 있었다.

소위 영물이라는 놈들이다.

세상에는 본디 인간보다 강하게 태어나는 짐승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무기를 들고, 무공을 익힌 인간들에겐 사냥감이 되곤 한다.

하지만 짐승들도 ‘무공’을 익힌다면?

영물들은 인간이 단전을 만드는 것처럼 내단을 만들어냈다. 당연히 평범한 짐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 커다란 몸통과 길쭉한 다리가 그것을 증명한다.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진득한 녹색 침이 흐르고 있었다.

‘크, 큰일···.’

영물이 인간에게 발견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인간보다 훨씬 감각이 뛰어나다. 인간이 영물을 발견했다면, 영물은 이미 인간을 발견하고 사냥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 여기서 사내를 살려 보내면 또 다른 인간들을 불러올 것이 뻔했기에 영물은 인간을 사냥한다.

그렇기에 영물이라 불리며, 괴물이라고도 불리는 인면지주는 청년을 사냥할 생각이었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거미줄에 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미 청년의 주위로는 보이지 않는 길쭉한 선들이 늘어져 있었다.

거미줄에 갇혀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칼로도 잘 베이지 않는다는 인면지주의 거미줄에 말이다. 당연히 청년에겐 무기 따위는 없었다.

‘제기랄, 부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청년은 사실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흔히 무인들이 익힌다는 검법이나 도법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부채를 활용한 무공을 익혔지만, 오늘은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뭐, 사실 그것을 가지고 나왔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부채의 끝부분이 아무리 날카롭게 제작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검보다는 예리하지 못하다. 인면지주의 실은 내력이 담기지 않으면 끊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이놈! 네 따위의 괴물이 융중산에 터를 잡고 있다 소문은 듣긴 들었거늘··· 진짜 있었구나! 썩 물러가지 못할까!”

공포에 떨면서도 할 말은 한다.

당연히 인면지주는 침을 뚝뚝 흘리며 사냥감을 지켜볼 뿐이다.

‘똑똑한 영물이라면, 사람을 노릴 리가 없는데··· 내가 맛있어 보이는 건가?’

아니다.

영물이 사람을 노릴 리가 없다는 것도 어찌 보면 편견에 불과했다. 청년이 영물은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책으로 알려진 영물에 관한 사실 중 진실이 얼마나 될까? 결국 저놈들도 사냥감이 보이면 사냥하는 맹수에 불과하다.

단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는 게 문제였다.

‘제기랄··· 이렇게 죽고 싶진 않았는데···.’

죽음을 앞두었기 때문일까? 여러 생각이 난다.

사내의 이름을 제갈수. 그는 제갈세가 가주의 직계였지만,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아니, 차별이라는 말은 핑계였다. 장남과 날을 세우기 싫었기에 그리 열심히 살지도 않았으며 여유롭게 생을 즐겼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했던 삶이었느냐?

조금 전까지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죽을 위기가 다가오니 후회로 점철된다.

욕심을 조금만 더 부렸다면···.

차라리 무공이라도 열심히 익혔다면, 인면지주를 죽이고 기연을 쟁취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사내는 죽기 살기로 싸울 각오를 했다.

왠지 인면지주의 저 튀어나온 사람의 얼굴이 약점일 것 같다.

자신을 먹으려고 할 때, 저길 가격하면 놀라서 도망가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꿀꺽 침을 삼키고 있을 때.

인면지주가 움직였다.

“어···?”

그리고 인면지주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어어···?”

어느샌가 제갈수는 인면지주의 거미줄에 묶여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인면지주의 배려인지 뭔지 얼굴을 감싸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 할까? 아니, 이거 정말 다행 맞아?

소름 끼치게 징그러운 인면지주의 안면이 가까이 다가온다.

일단 머리부터 뜯을 생각인가 보다.

“아아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오히려 제갈수의 외침이 인면지주를 자극했던 것일까? 커다란 입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진득한 녹색의 액이 뚝뚝 떨어진다.

산 채로 머리가 뜯긴다는 공포감에 실성할 때쯤.

왜인지 생각했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니 인면지주가 입을 벌린 채로 머리를 삼키지 않고 있었다.

‘머, 먹지 않으려는 건가···?’

인면지주가 움직임을 멈춘 이유가 있었다.

녀석의 수십 개의 눈알이 뒤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길게 앞머리를 늘여뜨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사내가 온갖 선들이 그려진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이걸 입고 있으면 알아서 찾아온다더니··· 반나절이나 찾아다녔군.”

“누, 누구십니까? 절 살려주러 오신···.”

“와라.”

“누, 누구한테 오라고 하시는···.”

- 끼에에에엑!

거미가 소리를 낼 수 있나?

아니, 거미는 울음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인면지주는 가능하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괴이한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인면지주가 황극린에게 돌진한다.

제갈수는 보았다.

인면지주의 다리 관절마다 꽂혀있는 비수를 말이다.

‘언제 암기를 저렇게 다리에 꽂아 넣은 거지?’

더 웃긴 상황은 다음부터였다.

인면지주의 거미줄이 가득한 그곳에서 황극린은 예리함을 가진 병기를 꺼내지 않고, 두 주먹을 꺼내 들었다.

‘인면지주를 주먹으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저놈의 가죽은 곰보다도 더 튼튼할 텐데···.’

조언하고 싶었지만, 얼굴에 잔뜩 묻은 녹액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한쪽 눈으로 전투를 관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독액으로 흐릿해진 시야 대신, 제갈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제대로 분간하기 힘은 속도로 움직이는 괴물과 황극린. 두 형체가 부딪칠 때마다 북 터지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진다.

처음 인면지주의 괴성은 사냥감을 찢어 죽이겠다는 흉포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날수록···.

- 끼, 끼익!

- 끼이이이이···?

- 끼! 끼이이이···!

- 끽!

구슬픈 울음소리로 전락하고 있었다.

‘뭐야? 대체 어떻게 된 거···.’

일 각 정도나 지났을까?

도망치려던 인면지주의 다리가 꺾여 쓰러지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사내는 품 속에서 작은 비수를 뽑아 인면지주의 머리통을 찍어버렸다. 그 후, 인면지주는 마치 감전된 듯이 몸 파르르 떤다. 길쭉한 다리로 황극린을 찌르려 했지만, 이미 힘이 빠진 다리로는 황극린에게 피해를 줄 순 없었다.

- 끼··· 끼이이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 인면지주의 움직임이 결국 멈추었다.

사내가 결국 저 영물을 사냥한 것이다.

‘지독히 효율적이다.’

인면지주의 다리의 모든 관절마다 비수가 박혀 있다. 저리 정확하게 비수를 던지는 게 가능한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면지주는 거미가 아닌가? 관절이 있나? 꺾인 부분을 보니 그런 같기도 하고··· 저 육중한 몸을 지탱하려면 당연히 관절이 있어야 할···.

제갈세가 출신답게 여러 의문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저, 저기요! 어, 어딜 가시는 겁니까! 절 구해주시려고 오신 게 아닙니까?”

죽은 인면지주를 등에 메더니 그냥 떠나버리려는 사내.

제갈수는 어이가 없어서 외쳤다. 설령 인면지주를 사냥하러 왔더라도, 거미줄 정도는 치워줄 수 있는 노릇 아닌가? 저 사내는 사람의 정이 없나? 그냥 인면지주를 사냥하러 온 것인가?

“······.”

하지만 황극린은 제갈수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융중산의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산에선 제갈수의 외침이 들린다.

“저, 저기요? 이봐요! 형님!? 형니이임!”

애절한 제갈수의 외침이 들렸지만, 이제 형님이 되어버린 황극린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꽤 힘들었군.’

황극린의 몸 곳곳에 상처가 남았다. 인면지주의 관절에 정확히 비수를 꽂아 넣었지만, 움직이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거기다 주변에 뿌려둔 거미줄에 움직임이 제약되기도 했다.

뒤에서 먼저 비수를 꽂아 넣지 않았다면, 이것보다 더 어려운 싸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황극린이 익힌 무공 혈풍뇌전신공은 인면지주와의 싸움에서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다. 도검으로 쉬이 잘리지도 않는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혈풍뇌전신공으로 쌓아 올린 뇌전의 기운에 무척이나 약했다.

내력을 방출하여 거미줄을 끊어낼 때마다 인면지주의 몸이 찔끔찔끔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뇌전의 기운이 거미줄을 타고 인면지주의 본체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황극린은 그때부터 내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거미줄을 통한 약간의 뇌전으로도 저리 떠는데, 직접 본체에 꽂아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짜릿한 통증을 제대로 맛본 인면지주는 마지막에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때가 기회였다. 이미 뇌전의 기운에 당하고, 관절 마디마디마다 박혀 있는 비수가 힘을 발휘했다.

인면지주는 다리가 꺾여 재빨리 도망치지 못했고, 황극린은 전력을 쏟아부어 인면지주의 몸에 올라탄 후 묵철 비수를 놈의 얼굴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 남은 내력을 모두 쥐어 짜내서 뇌전을 놈의 머리에 흘려보냈다.

마지막 순간 인면지주의 얼굴에 떠오른 인간의 형상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했었다. 당연히 황극린은 아무렇지 않게 내력을 더 쏟아부어 인면지주를 목숨을 끊어버렸다.

이번 싸움의 여파로 내력을 모두 소진했다.

확실히 내력의 부족이 느껴진다. 하지만 체력은 꽤 남아 있었기에 다행이라고 할까? 황극린은 인면지주의 사체를 짊어지고 쉴새 없이 산을 올랐다. 그가 찾는 곳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여기면 적당하겠군.’

황극린이 인면지주의 사체를 옆에 둔다.

그리고 봇짐에서 준비해온 것들을 죄다 꺼낸다.

소가죽으로 만든 장갑과 작은 약병 수십 개였다. 약병에 든 것은 모두 독의 해독제다. 인면지주의 독이 어떤 종류일지 몰랐기에 최대한 범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해독제만 엄선해왔다. 그가 직접 제조한 것도 있었으며, 제조할 수 없는 건 큰 약방에 들러 구매했다.

영약을 취하면 그 성질을 몸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인면지주의 독에 중독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겨우 인면지주를 잡아 내단을 취한 다음 죽어버리면 어떻겠는가? 미연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황극린은 바로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지 않았다.

만약 해독제로 해독할 수 없다고 해도, 내공으로 밀어내는 방법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인면지주와의 싸움에서 내력을 모두 소진했다. 주변에 쳐진 거미줄만 아니었다면 내력을 모두 소모하는 일은 없었을 테지만, 뭐 인면지주가 사냥을 하고 있었기 덕분에 전투가 시작되기 전 비수를 관절 마디마디마다 박아넣을 수 있었다.

일단 소모한 내력을 다시 채워 넣어야 했다.

“후우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은 이유가 이것이다.

인면지주의 내단이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 확신하지 못하니 만전의 상태로 취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반나절쯤 지났을 때, 소모했던 내력이 모두 채워질 수 있었다.

“으음.”

긴장되진 않는다.

이미 내력도 충분하고, 수십 가지의 해독제도 준비했다.

단지··· 과연 자신의 의도했던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정제되지 않은 순수한 내단과 정제된 영약은 다르다. 확실히 다른 경우였기에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시도해보고 판단하자.’

해보지 않고서는 알게 되는 것이 없다.

어차피 취해야 할 것이라면, 빨리 취한 다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으리라.

황극린이 묵철 비수로 인면지주의 배를 가른다. 놈의 피에는 독이 섞여 있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내단을 뽑아내야 한다. 놈의 뱃가죽에 손을 대보니 희미한 기운이 손끝으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여기.’

소가죽 장갑을 낀 채로 순식간에 내단을 뽑아낸다.

이미 거무죽죽하게 변한 장갑. 그의 피부에도 인면지주의 피가 묻어 있었기에 매우 따갑다. 준비해온 수통으로 피를 닦아낸 다음, 내단을 입으로 가져간다.

동시에 단전에서 뇌전의 기운을 끌어올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꿀꺽.

녹색 빛의 내단이 황극린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그는 그것을 삼켰다. 빠르게 가부좌를 틀고 인면지주의 내단에 담긴 기운을 제어하려 한다.

“······!”

황극린의 뱃속이··· 아니, 몸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동시에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살려주세요오오오오···.”

이미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스며든 융중산.

워낙 오랫동안 소리쳤더니 목소리가 쉰 제갈수였다.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어찌나 질긴지 전혀 끊어질 생각이 없었다. 과연 자신을 구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까? 애초에 그는 가문을 나서면 칠주야 동안 들어가지 않은 적도 있으니 적어도 그때까진 자신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매달려 있다가 굶어 죽을 수도 있지만, 융중산에는 맹수들도 산다.

대롱대롱 매달린 맛있는 먹잇감을 놓칠 짐승들은 없었다.

- 아우우우우-!

늑대의 울음소리에 겨우 참아냈던 눈물이 폭발하려는 순간.

쉭.

“커억!”

매달려 있던 제갈수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무리 해도 끊기지 않던 거미줄이 끊긴 것이다.

“다, 당신은!”

분명 인면지주를 사냥했던 사내가 분명했다.

역시 구하러 와줬구나!

‘응? 방금 뭐였지?’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사내의 안광이 붉게 번쩍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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