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25화 (25/316)

혼자서 뚝딱

혈풍뇌전신공.

까다로운 무공이었다. 황극린은 첫 장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보통의 내공심법은 운기행공을 통하여 단전에 내력을 쌓는다는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비슷했다. 하지만 혈풍뇌전신공은 다르다.

무공의 이름은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고 했던가?

혈(血)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혈풍뇌전신공은 내공뿐 아니라 몸에 흐르는 피까지 이용하는 무공이었다. 인간의 심장은 생명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심장에서 공급되는 피는 발끝과 손끝 그리고 머리끝까지 미치며 인간을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왜 심장을 ‘단전’으로 활용하지 못하는가?

혈풍뇌전신공은 그런 의문에서 시작된 무공이었다.

사실 이런 관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위 하복부에 위치한 단전을 하단전(下丹田) 심장을 중단전(中丹田). 머리를 상단전(上丹田)이라 칭할 만큼 무림에서 종종 언급되는 개념이었다.

다만, 실제로 중단전이나 상단전을 만들어 무공에 활용하는 경우는 전무했다.

황극린이 모든 중원의 무공을 섭렵한 것은 아니긴 했지만, 심장에 단전을 만들었다는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

사실 혈풍뇌전신공도 완전한 중단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운기행공을 할 때, 세맥뿐 아니라 혈맥으로도 기가 순환하게 하며 심장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린다. 자연스럽게 기(氣)가 쌓이면, 심장에서 피가 분출되어 온몸으로 퍼져나갈 때 하단전을 활용하지 않고도 심장에 쌓인 내공 또한 같이 움직인다는 게 혈풍뇌전신공의 기초적인 발상이었다.

즉, 의도하지 않더라도 내공이 항시 몸을 순환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장점만 있는 것 같지만···.’

세맥만 활용하는 무공의 경우도 대성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어떤 무공이라 하더라도, 그 무공을 창안한 고수의 심득이 담겨 있었다. 단순히 내공을 많이 쌓는다고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내공을 무한대로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 내공을 활용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세맥뿐 아니라 혈맥까지 사용하는 무공.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두 배··· 아니 몇 배로 늘어날 것이며 대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더 재밌구나.’

과거엔 강제로 무공을 익혔다.

물론, 황극린은 어릴 때부터 무림인을 보며 동경하기도 했지만··· 심장에 혈고독을 심어놓고 매번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흑살문에서 무공을 익힌 것은 흥미나 재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재미를 느낄 틈이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든 결정은 황극린 스스로가 내리고 있다. 그 자유로움이 황극린의 흥분하게 했다. 무공서를 탐독하고 분석하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거기다 왜인지 혈풍뇌전신공은 유령의 무영심결과 조합이 잘 맞는 듯하다.

무영심결은 세맥뿐 아니라 혈맥의 불순물까지 씻어냈으며, 심장 자체를 강화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별다른 체력훈련도 하지 않았음에도 황극린의 체력은 또래보다 훨씬 뛰어났었다.

‘조건은 충족했다.’

황극린은 몇 번이나 혈풍뇌전신공을 탐독했다.

당연하게도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니다. 대성하면 천하제일은 논할 수 있다는 절세의 무공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과정은 필수였다. 황극린은 구결만 읽어도 무공의 모든 부분을 이해하고 꿰뚫어 볼 수준의 천재는 아니었다.

가부좌를 틀었다.

환상진 내부의 비동은 자연의 기운이 충만하다.

단전을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즈으으으.

자연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내부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보통 내공심법을 익히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는 자연에 떠도는 기(氣)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황극린은 황씨가문 우사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기를 느끼고 있었다. 단지 더욱 높게 올라가기 위해 몸을 준비하고 있었을 뿐.

무영심결의 효과로 세맥의 불순물은 완전히 씻어낸 지금.

단전을 만들 시간이었다.

호흡으로 들어온 자연의 기운. 분해되고 재조립되며 간질간질한 느낌으로 세맥을 자극하고 있었다. 세맥을 돌아다니며 호흡으로 들어왔던 날 것의 기운은 뇌(雷)의 성질로 점차 변화했다.

뇌전의 기운이 모이는 곳은 단전이었다.

처음엔 구심점이 없었기에 기운을 한곳에 모으는 게 중요하다. 애초에 양이 그렇게 많진 않아 다루기가 어렵진 않았다. 아니···, 너무 쉬웠다.

‘단전을 만드는 게 이렇게 쉬웠던가?’

예상보다 훨씬 대주천 속도가 빨랐으며, 일정 수준의 뇌전이 모이자 순식간에 서로 응집하여 기다렸다는 듯 단전을 만들고 있었다. 하복부가 점차 뜨거워진다.

고통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한 고양감이 벅차오른다.

파밧-!

그렇게 얼마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황극린은 눈을 번쩍 떴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조금 더 예리해지고 세밀해진 오감.

어두컴컴했던 비동의 음영이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렇기에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자칭 뇌불의 기괴한 표정도 볼 수 있었다.

“···뭐냐.”

“뭐가 말이오?”

“지금 설마 1성을 깨우친 거냐? 고작 반 시진도 안 되어서?”

뇌불이 말하는 1성은 뇌전의 기운을 단전에 심는다는 것을 뜻했다. 즉, 단전을 만드는 게 1성이었다. 혈풍뇌전신공은 본디 단전을 만드는 것부터가 매우 까다로운 무공이다. 사전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자연에 흩어진 기운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단전을 만드는 데 최소 하루 이상은 걸린다.

최소로 잡아도 그 정도다.

고작 한 시진 만에 만들 수준이 아니었다.

‘다섯 살 때부터 초고수의 도움을 받아 벌모세수(伐毛洗髓)를 받지 않고서야··· 아니, 벌모세수로도 무리다. 뇌전은 준비과정도 없이 함부로 담을 기운이 아닐 진데···.’

뇌불은 보았다.

황극린이 눈을 뜨는 순간 뇌광이 스며들었던 것을 말이다. 1성을 완성했다는 분명한 증거였다.

“반 시진이나 지났소?”

“···이나?”

사실 황극린의 입장에선 눈을 감고 잠시 명상했더니 단전이 생겨있는 것과 같았다. 아마 다른 무공을 익혔어도 단전을 만드는 것 자체는 빨랐을 것이다. 무영심결의 효과는 확실히 대단했다.

‘다만, 이제부터가 문제겠지.’

단전을 만드는 거야 쉬웠다고 치자.

하지만 내력을 쌓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운기행공을 하며 내공의 한계를 늘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혈맥에서도 내력을 융통해야 한다. 평범한 내공심법을 익히는 이들보다 내력이 쌓이는 속도가 두 배는 느릴 것이다.

운기행공을 통해 다루는 기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더 느려지리라.

“꼬마야, 정말 단전을 만들었느냐? 응?”

“그렇소만.”

“대체 네놈의 정체가 뭐지? 구파일련에서 보낸 것이냐? 아니면 사흑련 중 하나더냐?”

“아쉽지만 둘 다 아니오.”

“그럼 대체 어떻게 한 것이더냐? 설마 단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게냐? 아니면 진짜 천···.”

천재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 내뱉지 못한다.

뇌불 또한 천재였다. 하지만 그 또한 혈풍뇌전신공의 밑바탕이 된 대반야금강공을 익힐 때 퍽 고생했었다. 자연의 기운을 느끼는 데에만 한 달이 걸렸으며, 단전을 만드는 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단전은 필요하다고 뚝딱 만들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천하의 뇌불 어르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라고?’

심기가 뒤틀린다.

그러니 꼬였던 근골이 더 꼬이는 듯하다.

“끄윽···.”

황극린은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자신이 천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재능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노력파에 가까웠다. 흑살문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밤잠을 줄여가며 생존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런 황극린이 과거로 돌아왔다.

단전을 빨리 만들었다고 하여 천재라 불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으스대며 자존감을 높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인의 의지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무공을 익힌다는 게 재밌었다.

“끄으윽.”

황극린은 왜인지 심사가 뒤틀린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자칭 뇌불을 놔두고, 다시금 가부좌를 틀어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단전을 만들었으니 내공을 쌓아갈 차례였다.

* * *

“······.”

달달달.

노인의 아래턱이 떨린다.

황극린은 뇌불에게 어떠한 것도 묻지 않았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여기서 뇌불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년은 도움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심장에 검을 박아넣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놈이다. 뇌불은 소년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부분만은 확실할 수 있었다. 세부적인 면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비슷한 인간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 아이야···?”

“혹, 궁금한 건 없더냐? 막히는 부분이라던가···.”

“엣헴, 너무 오랫동안 명상하는 게 아니더냐?”

“자고로 무공이란 휴식도 있어야···.”

황극린이 눈을 번쩍 뜬다.

그가 눈을 뜰 때마다 뇌광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었다. 소년의 경지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도 뇌불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으로선 딱히 물어볼 게 없군.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서 말이오.”

“아, 아니. 그래도 말이다···.”

혈풍뇌전신공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는 무공을 익히며 감을 잡아가고 있었다. 운기행공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도 존재했다. 뇌전의 기운을 세맥에 담는다는 것은 상당히 고난도의 기술이었으며, 세맥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운기한다면··· 세맥이 찢어질 수도 있었다. 상당히 세심한 과정이 필요하다.

‘운기행공을 할 때보다 더 큰 문제가 있지.’

바로 단전에 쌓인 내공을 사용할 때였다.

운기토납으로 자연에 흩뿌려진 자연의 기운을 호흡으로 담는다. 그리고 세맥을 통해 대주천하며 뇌전의 기운만이 응집되어 단전으로 향한다. 종국엔 완전한 뇌전이 되어 단전에 쌓이게 되는데··· 그 기운을 반대로 외부로 방출할 때가 문제였다.

아직 쥐꼬리만 한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내공심법만 익히고 있을 시간이 없겠구나.’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사실 황극린은 혈풍뇌전신공을 익히는 게 재밌어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운기행공에만 집중할 순 없었다. 단전에 내공이 쌓이더라도 한 번 검기(劍氣)를 내뿜으면 세맥이 찢어진다면 뭔 소용이랴?

황극린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뇌불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외친다.

“미, 미안하다! 절대 방해하지 않으마! 난 걱정이 되어 말한 것이다! 으응?”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 뇌불이 사정한다.

솔직히 지금은 크게 도움이 되고 있진 않았지만, 굳이 당장 죽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게 받을 수 있는 건 무공의 조언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당장 죽이진 않을 거요.”

“후우우, 그렇구나. 당장 죽이진···? 그, 그럼 언젠 죽일 것이란 말이더냐?”

“시끄럽게만 굴지 않으면.”

그 말에 뇌불이 보란 듯이 입술을 쫑긋 모으고 입을 다문다.

“······.”

이런 촐싹대는 인물이 강호를 뒤흔들었다는 대마두 뇌불이 맞을까?

주화입마에 걸려 성격이 이상해진 것인가?

뭐, 사지의 근골이 뒤틀려 움직일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말밖에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됐고. 기억이나 떠올려보시오.”

“무슨 기억 말이더냐?”

“환상진과 장보도에 관한 것.”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해야 할 것이오. 아니면 죽을 테니까.”

황극린이 원하는 것은 정보였다. 이 정도 수준의 환상진을 만드는 지식과 인면지주의 실을 이용하여 장보도를 만든 세력이나 방법 따위도 알고 싶었다. 단순히 무공만 고강하다고 무림에선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모아야 한다.

만약 뇌불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굳이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사지가 마비되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이었다. 황극린이 평생 수발을 들 것도 아니니 오히려 깔끔하게 죽여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황극린의 시선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뇌불의 머리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감 하나는 참으로 좋은 양반이었다.

황극린이 비동을 나선다.

그러자 노인이 황급히 그를 불러세웠다.

“어, 어딜 가느냐? 설마 날 버리고 비동을 떠나는 건···.”

“바로 앞에 가는 것이오.”

바로 앞이라고?

대체 어딜···.

황극린이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비동을 떠나간다.

노인은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황극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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