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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귀귀환-17화 (17/316)

알다, 하지만 모르다

주서웅은 분명히 천재가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리 발전할 수 있었을까? 시운량이 훈련 내내 주서웅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지긴 했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주서웅의 발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재능을 판별하고, 가르치는 것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서웅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이 혼란해진다. 그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대체 무엇이 그를 바꿔놓고 있는 걸까?

오후 훈련까지 마친 후.

1조 아이들에게 벌을 빙자한 특별 훈련을 완료한 다음, 그가 향하는 곳은 주서웅의 뒤였다. 주서웅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유쾌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작정하고 시운량이 미행하고 있었으니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여긴 무관 아이들의 숙소.’

개별 훈련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숙소로 간단 말인가?

의아함도 잠시.

“형님! 저 왔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

형님? 주서웅이 형님이라고 불렀던 아이들이 있나? 그나마 주서웅이 극진히 모시는 아이는 황씨가문의 둘째인 황일남이었다. 거기다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방 주인이 누구지?’

당장 방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담는다.

시운량은 교관이었다. 교육생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 있어야 한다. 주서웅이 무슨 훈련을 하지는 궁금해서 뒤를 밟았다는 걸 들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주서웅을 따라왔던 것이다.

‘기다린다. 한 번은 나오겠지.’

변소를 가려면 한 번이라도 나와야 한다.

시운량은 번잡스러운 생각들이 헤엄친다. 어쩌면 저 방 안에는 황씨가문의 식솔로 있는 무인이 있는 게 아닐까? 주서웅의 재능을 알아보고, 몰래 무공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황씨가문이 상가이긴 하나 워낙 많은 부를 축적했기에 꽤 유명한 무림인이 있을 수도 있었다.

온갖 가정을 하며 하염없이 기다리길 반 시진.

땀에 절어버린 주서웅이 나타난다.

그리고 뒤이어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은···.

‘···!’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사람이다.

황극린.

황씨가문의 미움을 받고, 시운량이 불쌍하게 여겼던 소년. 처음엔 그가 재능을 숨기는 게 아닐까 의심했었지만, 상희륭과의 비무에서 확실히 평가했다. 그는 재능이 없다고. 주먹을 피하지도 못하고, 한 방에 흙바닥을 굴렀다. 분명히 그렇게 보였다.

“형님, 감사했습니다!”

“가 봐.”

“예! 내일 뵙겠습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있던 와중.

시운량이 황급히 몸을 숨긴다.

“흡!”

황극린의 시선이 정확히 그가 숨어있는 회화나무로 향했다. 깜짝 놀란 시운량이 내공까지 격발시키며 몸을 움직였다. 적어도 열 장은 넘게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알아챈 거지?

‘아니야. 그냥 고개를 돌린 거겠지. 감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말도 안 된다.

이 먼 거리에서 시선을 느끼고, 정확한 방향을 바라본다? 감이 웬만큼 좋지 않고서야. 아니, 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시운량 교관이 황극린과 주서웅의 만남에 놀라긴 했지만, 거기까지 억측을 하진 않았다.

‘황극린, 넌 대체 뭐냐.’

처음 달리기를 할 때, 황극린이 기묘하다고 여겼었다.

어정쩡한 체력과 어정쩡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좋게 말하면 그냥저냥 적당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평가를 유보했지만, 지금은 하위권 수준으로 평가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관도들 중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 주서웅을 훈련시키는 게 황극린이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가서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이다.

“···.”

시운량 교관이 떠나갈 때.

황극린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 *

“요즘 주서웅이 잘 하고 있다더군요. 상희륭이 완전히 악에 받친 상태더군요.”

“주서웅 말씀입니까···.”

시운량 교관의 집무실로 찾아온 황보휘.

그는 살짝 기분이 나쁜 듯했다. 대놓고 황룡무관주가 상희륭을 키워주고 있는데, 교관이라는 놈은 주서웅을 키우고 있다. 이거 기 싸움을 하자는 거 아닌가? 시운량 교관도 바보는 아니다. 황보휘가 무엇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말할 수가 없었다.

‘주서웅을 가르치고 있는 건 황극린이라고 어떻게···.’

황극린에 대한 평가는 이미 끝마쳤다.

그 보고는 황룡무관주에게도 들어갔다. 그 상태에서 주서웅이 단기간에 급성장한 이유가 황극린이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애초에 어떻게 가르쳐야 무당파의 속가제자보다 잘 가르친단 말인가?

그런 실정이다 보니 시운량 교관은 새로운 가정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두 사람은 그냥 방에 들어가서 같이 놀았던 게 아닐까? 그럴 나이이지 않은가?’

사실 이게 타당한 가정이다.

훈련에서도 그다지 두각을 보이지 않았던 황극린. 그가 갑자기 주서웅을 가르치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애초에 황룡무관의 관주인 황보휘에게 잘 보여서 자리를 약조받는 게 더 효율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관주님, 황극린은···.”

황극린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황보휘가 뱀처럼 그의 말을 확 물어버린다.

“황극린이 왜요? 뭔가 이상이라도 있습니까?”

이글거리는 눈빛.

평소의 황보휘는 황극린의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 모르게 여유로우면서도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황극린의 모든 것을 듣겠다는 듯이··· 왠지 조급해진 눈빛이다. 그것을 본 시운량 교관의 마음이 깊게 가라앉는다.

“···이제 한 달이 넘어가는데 진전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황보휘의 말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왜 그랬을까? 시운량은 황씨가문에서 거금을 받고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황씨세가 내부 사정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황극린이 주서웅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허무맹랑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모르겠다.’

시운량 교관은 적어도 아직은 말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확실하지 않은 일 아닌가? 잘못 판단하고 황룡무관주에게 보고한다면 일이 꼬일 것 같았다.

“후, 그렇군요. 역시 극린이는··· 재능이 없었군요.”

재능이 없다는 것에 좋아할 줄 알았건만, 황보휘는 왠지 아쉬워한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지 않습니까?”

거기다 황극린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달라는 듯이 말한다.

시 교관은 황극린이 훈련에 어떻게 임했는지 고민한다. 사실 그리 열성적이진 않았다. ‘적당히’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소년이 아닐까? 그렇다고 대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할 때는 확실히 한다.

“예, 그래도 체력이 늘어가는 게 보이고 있습니다.”

“오! 그건 다행이로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고작 체력이 늘었다는 게?

“그리고 조만간 만공 무관과 비무를 할 것입니다.”

“예? 타 무관과 비무요?”

이건 예정에도 없었다.

시운량 교관은 관주인 황보휘의 의견에 따라 관도들을 교육하고 있긴 했지만, 그의 교육 철학이 있었다. 솔직히 지금 계속 경쟁을 시키는 것도 그의 의도가 담긴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빠른 성장을 원하는 의뢰주 황보휘의 입맛을 맞춰주었을 뿐.

그런데 타 무관과 비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이들은 비무를 몇 번 경험했다고 하지만,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은 상태였다. 쉽게 말하면 막싸움이다. 싸움에 대한 의지와 경험을 늘리는 교육의 일환이었다.

“만공 무관은 남창에서도 가장 큰 무관이 아닙니까?”

남창은 강서성의 성도다.

수많은 중소 문파들이 포진해 있고, 당연히 무관도 있다. 황씨가문의 자금력? 그것으로는 시간을 이길 수 없었다. 만공 무관에서 무공을 수학한 이들은 최소한 1년 이상은 무공을 수련했다. 황룡무관의 관도들과 달리 초식을 배우고, 심지어는 하급이라도 내공심법을 익힌 사람도 있으리라.

상희륭?

주서웅?

둘 다 재능이 출중하고, 의지 또한 가상하지만.

불가능하다.

이길 수 없다.

완벽하고 처절한 패배는 그들에게 의지를 심어주지 않고, 일어설 수 없는 좌절을 심어줄 수도 있었다.

“안 됩니다.”

의외로 단호하게 나오는 시운량 교관.

황보휘는 그런 강인함을 부러뜨리지 않는다. 살살 열을 가해가며 쉽게 구부려지도록 할 뿐.

“만공 무관과 교류를 늘려갈 겁니다. 당연히 만공 무관에선 무공에 입문한 시간이 짧은 이들은 비무에 내보낼 겁니다. 거기다 실력을 조절하라고 할 것이고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체력 훈련만 하고 있습니다.”

“그럼 기본적인 초식을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시 교관님의 교육방식을 존중합니다. 배움에 길은 각자 다른 것이니까요. 허나, 저는 무당파에 가자마자 초식을 익혔습니다. 초식을 맛보고, 씹고··· 고통까지 받으며 태극의 조예가 무엇인지 가늠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전 그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시운량 교관은 중소 문파 출신이었다.

과거 무림에서 유망했던 후기지수로 꼽혔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용봉지회에서 그에게 처참한 패배를 선사했던 무인의 출신이 바로 무당파였다. 물론, 속가제자는 아니었긴 했지만···.

중소 문파와 무당이라는 하늘과 마주한 느낌은 지금도 피부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무당에서 저렇게 배웠다는데, 시운량 교관이 어떻게 반발할 수 있으랴? 자신의 교육방식이 더 낫다고 말할까? 평소의 침착한 상태였다면, 유하게 반응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안 그래도 황극린의 일로 머릿속이 복잡한데,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 짜증이 났다. 어차피 처음부터 모든 교육방침은 황룡무관주의 마음대로였다. 그 또한 그것을 각오하고 교관으로 들어왔다. 황씨가문으로 온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역시 시 교관님은 대화가 잘 통하시는군요. 그럼 내일부터 후웅권(猴雄拳)과 육합보법(六合步法)을 알려주도록 하십시오.”

후웅권과 육합보법은 강호에 널린 무공이었다.

기본적인 초식을 담은 짜깁기 무공이라 할 수 있었지만, 그 효용성은 여러 무관에서 증명되었다. 하급의 기초 무공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공서인 만큼 황씨세가에서 거금을 주고 무공서를 구매한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비무는 칠주야 후로 하겠습니다.”

황보휘가 떠나갔다.

아득함이 밀려와 시운량 교관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교관이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구나.’

과연 아이들이 만공 무관의 아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황보휘는 왜 예정에도 없는 비무를 잡은 건가?

황극린은···.

“후우우우.”

잠시 한숨을 내쉬던 시운량 교관.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미 내뱉은 말이다. 교관으로서 무관주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하극상을 저지를 생각은 없었다. 그가 할 일은 관도들을 가르치는 것 뿐이다.

‘가르칠 것이라면, 최대한 잘 가르쳐야지.’

내일 어떤 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할지 계획했다.

즉흥적인 수업은 시운량의 방식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성향을 고려한 방식으로 수업을 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황보휘나 황극린의 일은 시운량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 * *

“우와! 우리도 무공을 배운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관도들도 잘 알고 있었다. 매번 체력 훈련만 죽어라 하고 있었고, 교관은 근력도, 체력도 한참 부족하다며 쓴소리를 해댔다. 적어도 몇 달은 지나야 무공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관도들은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시 교관이 권법과 보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아이들이 신이 난 것은 당연했다.

‘무공을 가르친다? 시운량 교관답지 않군.’

시운량이 황극린을 평가했듯.

황극린 또한 그를 평가했다.

황극린은 시운량이 꽤 괜찮은 교관이라 생각했다. 당근과 채찍을 잘 활용하고, 무공이라는 환상을 품은 아이들에게 현실을 알려주면서도 꿈을 심어주었다. 황룡무관에서 절대고수는 탄생하지 못하더라도, 기본기는 충실한 무인들이 배출될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벌써 권법과 보법을 익힌다?

‘그러고 보니 어제의 일을 묻지 않는군.’

주서웅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연무장에서 보여주었던 주서웅의 태도와는 전혀 달랐기에 시 교관이 의구심을 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황극린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때가 된 건가.’

황극린 또한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을 때.

그가 처음으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연무장의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황극린이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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