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귀귀환-13화 (13/316)

눈에는 눈

황극린이 들은 단서는 입술 아래에 흉터가 있다는 30대 초반의 사내라는 사실이다. 야비하게 생겼다고 했지만, 그렇게 생긴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니 흉터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당연히 황극린이 남창 중심가를 뒤져가며 그놈을 찾는 것은 아니다.

인원수가 많다면 모를까 혼자선 그들을 찾을 수 없었다. 황극린은 최적의 길을 택하기로 한다. 가장 쉽게 그놈을 찾아내는 방법은 대가리를 조지는 것이었다. 대가리를 찾는 법은 쉬웠다. 뒷골목을 거닐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파를 찾으면 되니까.

그렇게 위험천만한 뒷골목을 홀로 거닐던 황극린.

그는 칠성방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칠성방.’

남창의 북쪽 뒷골목을 주름잡은 흑도 방파.

여기서 소매치기를 하든, 행인의 돈을 빼앗든 간에 그들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 소위 세력 싸움이라고 한다. 자신의 구역에서 처음 보는 이들이 ‘장사’를 하고 있다면, 당연히 칠성방이 나선다.

생생 약방이 있는 장소는 북쪽 거리였다.

만약 이곳에서 비 노인의 돈을 훔치려 했다면, 범인은 칠성방에 속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칠성방 소속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칠성방은 범인을 찾아줄 것이다.

죽기 싫으면 말이다.

흑도의 생리는 황극린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파인들이 가지는 연대의식이나 책임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 흑살문에서 살수 생활을 하며 그들과 수없이 부딪쳤다. 대부분 황극린의 학살로 끝이 났지만 말이다.

‘저기군.’

확실히 남창의 북쪽 거리를 잡고 있어서 꽤 규모가 있는 건물이다.

황극린은 망설이지 않고, 건물의 어둠에 녹아들었다.

* * *

“방주님, 한유걸 이 새끼 일도 안 하고 계집질이나 하고 있던 뎁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덩치 하나가 칠성방주에게 고자질하듯 말한다. 자긴 종일 거리를 돌며 일하고 왔는데, 이제 막 간부가 된 한유걸이 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옆에 여자를 끼고 노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아, 괜찮다. 오늘 그놈 한 달 치 상납금을 다 내고 갔거든.”

“한 달 치? 금자 한 냥을 내고 갔다굽쇼?”

“어어, 아침에 호구 하나 잡은 모양이야.”

“쓰벌, 나는 아침부터 나와서 성실하게 돈 벌어도 은자 한 냥을 벌까 말까인데··· 운이 좋은 놈은 가만히 있어도 복이 굴러오네? 쓰읍.”

“열심히 하는 게 능사가 아니야. 효율적으로 움직여야지. 너처럼 무식하게 일하면 많이 못 벌어.”

턱수염 사내의 어깨가 축 늘어진다.

요즘 보면 눈썰미가 좋은 이들은, 돈을 많이 가질 것 같은 놈들을 잘 물어온다. 그에 반해 자신은 열심히 두들겨 패놓았더니 동전 몇 푼 건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야, 우냐? 궁상 그만 떨고 일어나. 우리도 오랜만에 회식이나 하자.”

“회식이요? 정말입니까?”

회식이라는 말에 구석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칠성방원들이 벌떡 일어선다.

술과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게 흑도인들이었다. 안 그래도 한유걸이 부러웠는데, 칠성방주는 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다. 저들의 환심을 사는 게 흑도 방파 방주의 역할 중 하나였다.

“그래, 가자.”

“아자, 아자! 방주 형님 최고십니다요! 최고오오오!”

“우아아아아!”

피식.

아랫것들을 달래는 데 술만 한 것이 없었다.

가끔 이렇게 술이나 여자를 끼워 놀게 해주면 저들은 충성을 바친다. 물론, 매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칠성방 전체가 회식을 가려고 할 때.

덜컥!

“씨벌, 무슨 일···!”

턱이 툭 튀어나온 사내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는 칠성방원들을 보고 어안이 벙벙한지 말을 잇지 못했다.

“충아, 왜 그래?”

방원 중 한 명이 묻는다.

그러자 충이라 불린 사내가 얼떨떨하게 답한다.

“저··· 아래에 영후가 쓰러져 있던 데유? 형님들이 때리신 거유?”

“영후가 쓰러져?”

“뭐?”

당연히 난리가 났다.

칠성방도 무림 방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저녁 시간 칠성방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였다. 그가 쓰러져 있다는 건 누군가 칠성방에 던지기를 했다는 말이었다.

“당장 튀어나가!”

“예, 방주님!”

오랜만의 회식으로 기분이 좋았던 칠성방도들. 그들이 우르르 몰려 밖으로 튀어나간다. 여기서 회식을 타령하는 눈치 없는 방원들은 없었다. 칠성방주의 굳은 얼굴을 보고 그딴 소리나 하면 때려달라고 발악하는 짓이었다.

방원들이 모두 방을 빠져나가고, 칠성방주 강백언이 창 아래로 바깥을 살핀다.

‘독존파(獨尊派) 놈들인가?’

남쪽 거리를 꽉 잡은 독존파. 그들은 예전부터 칠성방과 냉전 상태였다. 언제든 치고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리라 생각하진 못했다. 두 문파 모두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공격해온 것이라면, 넋 놓고 당하고 있을 순 없었다.

당했다는 소문이 남창 일대에 퍼지면 칠성방은 더 이상 북쪽 거리의 주인이라 말할 수 없으리라. 전력이 깎여나가더라도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뒷골목에 공포를 심어줄 수 있었다.

‘근데 독존파 놈들이 보이진 않는데···.’

의아함에 이 층에서 거리를 살피고 있는 강백언.

누군가가 그의 뒤로 접근한다.

강백언이 접근을 눈치채기도 전, 이미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등을 찌르고 있었다.

“너··· 누구냐···!”

“움직이면 폐를 찌를 거다. 숨이 쉬어지지 않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을 거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조금 어린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몸을 돌릴 수 없었기에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죽음의 공포에 칠성방주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간다.

‘고수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고 한들, 기척을 내지 않고 등에 칼을 들이밀고 있었다. 칠성파는 흑도 문파였기에 무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그 또한 무림에서 고수들을 상대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의 상식으로는 통용되지 않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독존파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런 고수가 있었다면, 이미 북쪽은 독존파가 장악했으리라.

“사람을 찾고 있다. 입술에 흉터가 있는 사내. 뱀 같이 야비하게 생긴 얼굴이 특징이다. 나이는 30대 초반.”

“···!”

그의 머릿속에 뇌전이 몰아친다.

오늘 아침, 호구를 물었다며 한 달 치 금자를 상납한 한유걸.

‘좆 됐다! 오늘 왠지 운수가 좋다고 했더니···.’

여기서 그놈이 칠성방원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등을 찌르고 있는 칼이 폐를 쑤시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뒤를 점한 사내, 황극린은 그 반응으로 칠성방주가 입술 밑에 흉터가 있는 사내를 알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칠성방원 중 하나이리라.

“뒤를 보지 말고 움직여라. 옆으로, 돌아라, 앞으로, 거기서 멈춰.”

“···!”

“열어라.”

여기엔 칠성방주 강백언이 평생 모은 돈이 들어 있었다.

“그, 그놈의 이름은 한유걸입니다! 한유걸! 그놈은 지금 정월루에 가서 술을 퍼마시고 있을 겁니다!”

“한유걸?”

“예! 그렇습니다!”

금고를 열라고 하니 곧이곧대로 모든 것을 실토하는 강백언이었다.

“만약 거짓이라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예!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좋아.”

이제 넘어가는 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안 열고 뭐하고 있지?”

“예···?”

이게 무슨 소린가?

문을 열라니? 금고를 열라는 말인가?

쿡.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등을 더 찌르고 들어왔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칼날이 살을 파고 들어와 폐를 찔러버릴 것이다.

“이, 이건 안 됩니다··· 이건 안 돼요···!”

“내 돈을 훔쳐갈 때, 그렇게 하지 그랬나? 그럼 내가 찾아오는 일이 없었을 텐데.”

제기랄!

강백언은 이제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유걸이 호구를 물었다고 한 노인은 이 고수의 수하였으며, 눈치 없는 한유걸이 무림 고수의 돈을 훔친 것이다. 흑도들은 추잡한 짓을 하고 살지만, 철저히 약자들의 돈을 갈취한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약자들을 말이다.

“셋을 주겠다. 셋, 둘···.”

하나가 되면 망설임 없이 그의 폐를 찌를 게 분명하다.

강백언이 황급히 금고를 열었다. 아무리 돈이 귀해도 목숨보다는 아니었다. 금자와 서류 그리고···.

“묵철(墨鐵)?”

큰일 났다!

무림인 중에서도 묵철을 알아보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뒤의 고수는 단번에 그걸 알아보았다. 이건 칠성방주가 값이 오르면 팔기 위해 자산의 팔 할이나 주고 매입한 것이다.

“묵철 하나만 가져가도록 하지.”

황극린으로선 부가적인 소득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처음엔 칠성방 전체를 털어먹을까도 생각했었지만, 그렇게 되면 귀찮은 일이 벌어지리라. 그래도 적당한(?) 묵철 하나 정도면 이번 일의 대가로는 충분했다. 장검을 만들진 못하겠지만, 비수 하나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양이다.

그리고 황극린은 비수를 애용하는 편이었다.

지금 손에 쥔 과도에서 졸업할 때가 온 것이다.

“대, 대협··· 부탁드립니다. 제발···.”

쿠욱.

“으악!”

들어왔다. 분명히 칼날이 살점에 파고들었다. 강백언은 본능적으로 묵철을 꺼내 황극린에게 건네주었다. 황극린은 그것을 받아 들고는 말한다.

“뒤돌아보지 마라.”

“예··· 예에엡!”

전혀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고수가 어디까지 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혹여나 싶어 강백언이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강백언.”

“허업! 아, 아직 안 가셨군요, 하, 하하하···. 마, 말씀하십시오.”

“내가 누군지 알려 하지 마라.”

“예엡! 다, 당연합니다요. 절대 파고들지 않겠습니다.”

“한유걸을 찾아가려거든 내일 아침에 가도록.”

“예, 예엡! 알겠습니다!”

기묘한 침묵이 지나간다.

강백언으로선 괴한이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기에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잠시 뒤.

“형님! 중심가까지 갔는데도 독존파 놈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서 계십니까?”

칠성방주가 힘없이 몸을 돌린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오늘 낮에만 하더라도 주루를 하나 차릴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빌어먹을 한유걸 한 놈 때문에.

“아침까지 애들 불러모아라.”

“예, 독존파 애들과 전쟁하는 겁니까?”

“아니.”

분명히 의문의 고수는 한유걸을 내일 아침에 찾으라고 했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칠성방은 10년도 넘게 남창의 뒷골목을 지배하고 있었다. 칠성방을 이끄는 강백언은 고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눈치챘다.

“한유걸, 이 개새끼···.”

“유걸이요? 방주님 무슨 일이···.”

“됐고. 준비하고 있어!”

강백언의 눈가에 살기가 깃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유걸은 칠성방의 한 식구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그는 칠성방의 채무자가 될 것이다. 평생을 칠성방에 시달려야 하는 채무자.

* * *

한유걸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변소에 가서 소변을 누고 있는데, 다짜고짜 누군가 나타나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더니 행낭에 든 돈을 모두 가져갔다. 술에 취해 정신이 없어 누군지도 제대로 못 봤다. 기억나는 건···.

“체구가 작았던 것 같은데, 하···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그냥, 으윽!”

어떻게 때렸는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변소에 오는 이들 또한 없었다. 냄새나는 변소에 처박혀 있으니 오물 냄새가 몸에 뱄다.

“독존파 놈들인가? 방주님한테 얼른 보고를···.”

술이 깨고 정신이 든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끙끙대며 겨우 변소를 벗어나는 순간.

“어? 방주님!”

한유걸이 반갑게 소리쳤다.

그의 앞에는 그를 구원해줄 구세주들이 몰려와 있었다. 칠성방의 간부가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게 분명하다.

“어제 어떤 놈이 기습했습니다! 씨벌! 이거 분명히 독존파 놈들의 짓이 분명합니다! 얼른 가서 그놈들을 족쳐야 합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시선뿐이다.

한유걸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이, 유걸아. 우리 사이에 계산해야 할 게 생겨버렸거든?”

“예, 계산이요? 어제 한 달 치를 상납··· 커억!”

다짜고짜 발로 그의 머리통을 후려갈기는 칠성방주.

그의 눈빛엔 독기가 가득했다. 한유걸의 모든 것을 쥐어 짜내서라도 돈을 되찾겠다는 의지. 흑도 바닥에 오래 굴러먹은 한유걸은 방주의 눈빛에 기겁했다.

“데리고 와라.”

“충아, 왜 그러는 거야, 응? 무슨 일인지 알아야지 해결을 할 거 아니냐.”

친한 아우였던 유충.

그가 이런 눈빛을 하는 것은 처음 본다.

“한 형, 어제 사람 잘못건드렸슈.”

“뭐? 무슨 사람을 건드려?”

“한 형이 어제 퍽치기한 노인 말이유.”

그게 무슨 소린가?

노인? 한유걸의 머릿속에 그 돈은 안 된다며 절규하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잠시만 설마···?

피식.

“형님, 좆 된거유.”

싸늘한 미소.

강호에서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추잡한 곳이 흑도 바닥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조직에 피해를 끼쳤다면, 평생을 거쳐 갚아야 했다. 아니, 몸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

“으, 으아악! 놔! 놓으라고!”

끌려가면 무조건 죽는다. 아니,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 생각은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해 넝마가 된 한유걸은 그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주루의 지붕 위에서 그걸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무표정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황극린.

흑도에게 가장 큰 벌을 내려줄 수 있는 건, 똑같은 흑도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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