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만 맞자
거창하게 말하면 비무.
적절한 단어는 싸움.
시운량 교관은 관도들의 욕구를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승자전 방식으로 서로 싸우도록 했다. 물론, 규칙은 존재한다. 상대가 항복하면 무조건 공격을 멈춰야 한다. 또한, 무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위험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 교관이 나서서 제지할 수 있었다.
의지를 고취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어느 한쪽이 크게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비무는 상희륭과 주서웅이었다.
가장 기대되는 대결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다. 주서웅은 또래 중에서 타고난 덩치로 대장이라 불렸던 소년이다. 그리고 상희륭은 노력이라면 관도 중에서 으뜸이었으며, 자신의 강점을 이용해서 싸우는 법을 안다.
이미 1조원들은 서로 모여서 모의 비무까지 해본 상태였다.
시운량 교관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싱거운 대결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승자전 방식의 비무가 시작되었다.
“야, 뭐해! 때리라고! 뭐 하는 거야!”
“으윽! 나도! 때리려고!”
붕-! 붕-!
묵직한 주먹이 공간을 가른다. 주서웅은 평소 하던 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소년들의 주먹 싸움은 대개 덩치로 한다. 애초에 상대가 피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하지 못한다. 맞는 대로 상대는 픽픽 쓰러졌었으니, 주서웅은 자신이 싸움을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상희륭과의 싸움이 시작되자 처음부터 단단히 꼬였다.
상희륭은 함부로 주서웅에게 접근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주서웅이 흥분하여 앞으로 달려나가면 작은 움직임으로 그걸 피하고 발길질을 하여 주서웅의 중심을 흩어지게 했다.
“컥!”
짜증과 분노를 담아 휘두른 주먹.
당연히 그것은 상희륭의 몸에 닿지 못했으며, 그는 자세를 낮춰 돌진하여 주서웅의 옆구리에 주먹을 찔러넣었다.
그놈을 잡아 바닥에 패대기치려고 했지만, 어찌나 재빠른지 상희륭은 이미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상대가 안 된다.
주서웅은 싸움을 잘했던 게 아니다. 단지, 덩치로 위압감을 조성하여 상대를 위축시켜 폭력을 행사했을 뿐이었다. 그 한계가 진짜 싸움에서 드러난다.
“져, 졌다! 내가 졌어!”
주서웅의 선언에 상희륭이 싱긋 미소 짓는다.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지만, 완전히 지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저 보법은···.’
그 싸움을 지켜보던 황극린은 상희륭의 보법에서 무언갈 찾아냈다.
순간순간 보여준 그의 보법은 확실히 체계가 잡혀 있었다. 본능적으로 펼친 보법이 아니었다.
‘교관이 알려준 건가?’
슬쩍 교관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무심하게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뭐, 상관없지.’
황극린은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패배한 주서웅이 돌아오자 황일남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안 그래도 패배하여 기분이 나빴지만, 황씨가문의 둘째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 뭐해! 완전히 발리고 왔잖아! 엉?”
“그게··· 죄송합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패배할 일은 없을 겁니다.”
“대체 뭘 믿고 그딴 개소리를 하는 거야? 만약 우리 조가 지면 가만히 안 둔다.”
“헤헤, 옙!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서웅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황극린이다. 방금 맞붙은 상희륭이 싸움을 꽤 하긴 했지만, 저 미친놈을 이길 수는 없었다. 황극린은 괴물이었다.
“다음은 황극린, 네 차례다.”
묘한 눈길로 황극린을 바라보는 시운량 교관.
황극린은 태연하게 간이로 만들어진 비무장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이번엔 확실히 널 평가할 수 있겠지.’
교관이 신호를 주자 싸움이 시작된다. 상희륭은 상대를 얕잡아보지 않는다. 살짝 거리를 벌린 채, 황극린의 주위를 돌고 있을 뿐이다.
‘빈틈.’
어정쩡하게 자세를 잡은 황극린.
그 틈을 상희륭이 파고 들어온다. 짧께 끊어진 날카로운 주먹이 그의 턱을 가격한다. 상희륭은 확실히 어디를 때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보법뿐만이 아니었다.
‘흔들렸다.’
턱을 맞으면 사람은 중심을 잃게 된다.
상희륭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쉬익, 쉭.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주먹과 발길질. 복부와 허벅지를 때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게 한다. 황극린은 금방 균형이 무너져 비틀거린다.
“뭐, 뭐야!”
주서웅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일남이 비꼬듯 조롱했다.
“황극린을 믿어? 저놈 약골이잖아.”
달리기할 때도, 체력 훈련을 할 때도.
그는 가장 먼저 포기했었다. 2조에서 그에 대한 인식은 천성이 타고난 약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졌다.”
바닥에 쓰러진 황극린의 가슴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꽂으려던 상희륭.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난다. 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만. 일어서라.”
상희륭이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교관이 제지한다. 그제야 상희륭이 일어섰다.
“황극린 패배.”
황극린은 상희륭에게 패배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당연한 결과였지만, 오직 주서웅 만이 그 결과에 분개하고 있었다.
‘대체 뭐야? 진짜 약골이었던 건가? 내가 저런 약골한테 당했단 말이야?’
주서웅의 날카로운 눈빛.
황극린은 바닥에 누워 있으면서도 그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교관의 얼굴도 살핀다. 그도 황극린이 공격을 모두 흘려버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진 못한 모양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눈치챈 건, 날 직접 때린 상희륭인가?’
감이 좋은 소년이었다.
허나, 그 또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뿐이다.
* * *
으드득.
한 시진 동안 ‘벌’을 받은 2조원들. 특히, 주서웅의 얼굴은 볼만했다. 한쪽 뺨이 빨갛게 부어 있었는데, 황씨가문의 둘째인 황일남에게 제대로 얻어맞았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감히 날 속여!’
벌을 받는 것도 모자라서 둘째 도련님한테 뺨까지 맞았으니 분노하는 건 당연했다.
거기다 황극린이 사악한 편법으로 자신을 농락했다고 생각이 드니 속에서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오른다. 당장 이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다.
당연히 목표는 정해져 있다.
그는 황극린이 머무는 작은 방으로 달려갔다.
“너, 오늘 죽었···!”
문을 열자마자 소리치는 주서웅.
그리고 황극린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멱살을 잡고 안으로 잡아당겼다.
* * *
“죄, 죄송합니다아···. 흐그윽···!”
주서웅이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오줌을 지리지 않았다. 다시 마주한 사신의 눈빛. 주서웅은 단 일격에 황극린에게 제압당했다. 오늘 싸움에서 그나마 상희륭은 닿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황극린은 코앞에 있어도 자신이 때릴 수 있다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압도적인 벽.
그 무서운 시운량 교관보다 지금의 눈앞의 황극린이 더 섬뜩하고 살벌했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됐고. 너한테 할 말이 있다. 똑바로 앉아.”
“네, 네엣!”
주서웅이 웃어른을 대할 때처럼 공손한 자세로 황극린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오늘부터 매일 백 대만 맞자.”
“네? 그게 무슨···? 자,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그냥 맞으라는 게 아니다.”
“그냥 맞으라는 게 아니라 하시면···.”
황극린은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승자전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무공도 배우지 않은 1조 아이들은 황극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단지···.
“네가 1조 아이들을 다 이길 수 있게 해주마. 그게 나한테 편할 것 같더군.”
시운량 교관이 준 벌.
패배한 조는 매일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벌을 받는다. 거기다 저녁도 제때 먹지 못하게 한다. 기껏 규칙적인 생활로 몸을 키우고 있는데, 벌을 받게 되면 계획에 어긋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되는 방법.
아주 편한 방법이 있다.
“다 이길 수 있게요···?”
“싸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이야기다.”
“···!”
근데 그거랑 맞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주서웅은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가 무서운 것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황극린의 말은 모두 이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다. 황극린은 헛소리를 내뱉는 사람이 아니다.
이런 실력을 가지고도 상희륭에게 일부러 패배한 것을 보면 무언가 계획있다.
그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주서웅은 똑똑하지 않았지만, 굳이 묻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하겠나?”
당연히 주서웅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네엣! 열심히 하겠습니다!”
* * *
“그래, 오늘은 어땠습니까? 비무를 했다던데요.”
황룡무관의 관주 황보휘가 교관실을 찾아왔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무언가 통쾌하다는 표정. 교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희륭에게 무공을 알려주셨습니까?”
“뭐, 거창하게 무공이랄 것도 없습니다. 싸우는 법을 알려줬을 뿐이지요. 제가 눈여겨본 아이라서 말입니다. 재능이 있지 않습니까?”
황보휘의 말이 맞았다.
상희륭은 확실히 재능이 있었다. 특히, 노력에 관해서라면 10명의 아이 중 최상급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왜 그에게 특혜를 주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분명 상대 조에 황보휘의 동생인 황일남과 사촌 동생인 황극린이 있었다.
그들이 패배하게끔 의도한 것일까?
“그럴 이유가 있어서 말입니다.”
“누굽니까? 황일남입니까? 아니면···.”
황보휘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잘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도록 하지요.”
그가 떠나가고, 시운량 교관이 자리에 앉는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그가 종이를 든다.
아직 황극린의 종이에는 적힌 것은 없었다.
단지···.
“그간 괴롭힘을 받았기에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더냐?”
씁쓸한 표정의 시운량 교관.
그는 붓을 들어 빈칸을 채워 나가려다 이내 손을 놓아버렸다.
* * *
“어이쿠, 비 노인!”
생생 약방.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약재의 종류가 많았기에 손님이 많은 약방이다. 원래 황씨가문은 생생 약방에 물건을 공급하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일부러 비 노인은 이곳을 찾았다.
생생 약방주 초광생과 비 노인은 30년 지기로 끈끈한 연을 유지하고 있었다.
황극린이 만든 환약을 판매하기에 적당한 약방이라 할 수 있었다.
보름 전, 비 노인은 황극린이 만든 환약을 100알을 들고 찾아왔었고 10알은 무료로 제공해주었었다.
‘과연 얼마나 팔렸으려나···?’
확실히 비 노인은 약효를 제대로 경험했었다.
다만, 다른 이들에게도 그것이 먹혔을지는 미지수다.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비 노인이 환약이 얼마나 팔렸는지 물어보려는 찰나.
“비 노인! 내 난생 그런 진귀한 환약은 처음 보았소이다! 정말 보약이요! 아니, 영약이요!”
“반응이 좋은 게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견본을 가져간 손님이 다음 날 찾아와서 남은 환약을 싸그리 가져갔지 뭡니까? 다른 손님들은 언제 다음 약이 들어오냐고 매일 와서 채근하는데···, 비 노인께서 황씨가문으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하셔서 어찌나 곤욕이었는지 모릅니다.”
환약을 판매하는 것은 황씨가문이 알아서는 안 된다.
언젠간 눈치챌 수도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제조법 자체를 판매한다고 했으니···.
“그리고 가격을 더 올려도 될 것 같소이다! 이런 상등품을 은자 한 냥에 파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오. 적어도···.”
“은자 석 냥?”
“역시 비 노인! 내 마음을 잘 아시는구려! 껄껄!”
약방에 오기 전, 비 노인은 황극린과 대화를 하고 왔다.
황극린은 만약 약재의 반응이 좋으면 가격을 올려야 할 수도 있고 말했었다. 정확히 은자 석 냥을 말했었다.
“그래서 이번엔 얼마나 가져오셨소이까? 100알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천 개는 있어야 좋겠소!”
돈을 벌 생각에 잔뜩 들뜬 약방주였지만, 비 노인은 미안하다는 듯한 미소를 짓는다.
“이번에도 백 알이오.”
“허, 그렇소?”
“미안하오. 워낙 진귀한 상품이다 보니 생산이 어렵소이다.”
약방주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등품의 환약을 쉽게 만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아주 복잡하고 섬세한 제조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 다른 약방엔 절대 공급하지 않는 게지요?”
“당연하오. 우리 인연이 몇 년인데 다른 약방에 이걸 주겠소? 다만, 황씨가문의 물건은 아니니 비밀은 꼭 지켜주셔야 하오.”
“핫핫! 비밀을 지키는 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누구요? 신의 하나로 30년 동안 약방을 운영해왔소이다!”
“고맙소.”
환약을 건네주고, 은자가 든 행낭을 받는다.
그런데 왜인지 지나치게 가볍다. 비 노인의 표정을 본 약방주가 싱긋 웃는다.
“금자 두 냥을 넣었소. 생각해보니 계약금도 주지 않았고, 독점 계약을 하게 해주었으니 이 정도는 보답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오.”
금자 두 냥은 자그마치 은자 40냥이었다.
본래 9냥을 받았어야 했으나 근 네 배에 달하는 돈을 넣어 준 것이다.
“아니, 그래도···.”
“넣어두시오. 내 성의요, 성의. 이런 특상품에 이윤을 일 할이나 남겨 먹고 있으니 이 정도는 정말 작은 성의에 불과하오. 그리고 계속 우리 약방과 거래해주는 것이 아니오?”
“그건 그렇소만···.”
“그러니 넣어두시오.”
“고맙게 받겠소.”
비 노인이 행낭을 소매 속에 집어넣는다.
‘극린이가 정말 좋아하겠구나.’
한번은 비 노인이 돈이 생기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황극린은 대장간에 가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이 정도면 원하는 물건을 사고도 남으리라.
‘얼른 극린이에게 가야겠구먼!’
희희낙락하여 약방을 떠난 비 노인.
그늘이 어둡게 깔린 음침한 골목 속에서 누군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