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했던 제안
금황상가는 남창뿐 아니라 강서성으로 따져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규모의 상가였다. 취급하는 물건도 수십 가지가 넘었으며, 금고에 쌓아놓은 황금이 사람의 키를 넘었다고 할 정도로 보유한 자산이 많았다.
근 30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으로, 강서성 최고의 상가 자리를 노리고 있는 금황상가.
그런 그들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그들의 고민은 대부분 상회나 상가 그리고 전장 등이 하는 것과 동일했다.
중원에서 사업을 하는 이들은 무조건 고민할 수 없는 사실. 무림인의 존재였다.
무림(武林)이란 무엇인가?
강호(江湖)란 무엇인가?
혹자는 이곳을 이렇게 말한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세계라고.
먹고 먹히는 세상.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세상이다.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돈’도 무림에선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돈이라면 자신의 힘을 빌려주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과거 207호가 몸담았던 흑살문도 그러한 문파였다.
하지만 고려해보아야 할 점이 있었다.
돈으로 무인을 고용할 수 있는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에 움직이는 세력이라면, 적들도 그들을 돈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낭인들은 그 정도가 심했는데 싸우는 도중에 돈으로 회유하면 넘어가는 경우도 빈번했다.
상회가 규모가 작다면 주변 문파나 무관(武館)에 보호비를 내고 충분히 감당할 수도 있다. 규모가 작은 만큼 경쟁자가 그만큼 적었으니까.
허나, 상회의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자체적인 무력이 필요해진다. 워낙 주변에 적이 널려 있으니 즉각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무력이 필요하게 된다.
사업을 확장하여 폭발적으로 성장한 금황상가는 현재 그러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상인은 ‘병기’를 들면 안 된다는 조부의 유언을 무시하고, 당대의 금황상가주 황천옹은 모든 방면에서 재능이 뛰어난 첫째 아들을 무당파로 보냈다.
당연히 정식 제자가 된 것은 아니다.
정식 제자가 된다면 평생 무당산에서 무공을 익혀야 한다. 금황상가가 원한 것은 무당파의 명성과 무공이었다. 그것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속가제자(俗家弟子)는 무당파의 절기를 배우진 못하지만, 무당파 출신의 도사들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금황상가의 첫째 아들 황보휘는 4년 동안 무당에서 무공을 배우고 왔다.
이제는 어엿한 청년처럼 보이는 황보휘.
그는 금황상가를 더 위대하게 만들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보휘, 여기가 네 집이야? 정말 크다.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하하, 크긴 뭘. 일단 아버지께 인사부터 드리러 가자.”
“응, 그래야지.”
무당파에서 만난 인연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생각에, 호북성과 절강성에서 내로라하는 가문들의 자제들과 인연을 맺었다는 걸 자랑할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었다.
거지꼴을 한 소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직도 살아있었군.’
기분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입가에 미소는 지우지 않는다. 잠시 소년을 응시하던 황보휘와 친우들이 상가주의 전각으로 향한다.
그들이 자리를 떠나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장원의 마당을 쓸고 있던 황극린이 고개를 들었다.
* * *
“장하다.”
무당파의 속자제자는 돈만 준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강호 무림에는 돈 많은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하더라도 어중이떠중이들을 모두 받는 것은 구파일련(九派一聯)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황씨가문의 첫째는 무공에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당파의 수련을 모두 마치고 고향으로 귀환한 것이다.
차후 시간이 흘러 든든한 인맥이 될 친우들과 함께 말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이들은 호북성에서 새로이 사귄 친우들입니다.
“인사드립니다. 황 상가주님. 무한 광성문(光聖門)의 소문주 강철진이라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천회(帝天會)의 고강복입니다.”
광성문, 제천회.
둘 다 중소문파로서는 꽤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물론, 강호 무림의 중심부인 정주(鄭州)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테지만, 적어도 하북성과 강서성 일대에는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황씨가문의 가주 황천옹이 흐뭇한 미소로 인사를 받는다.
참으로 좋은 친우들을 두었지 않은가?
황천옹의 시선이 이중 유일한 여인에게로 향한다.
“선배님을 뵈어요! 전 서문세가의 서문취아라고 해요.”
서문세가!
황천옹은 내심 깜짝 놀랐지만, 그것을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단지, 아들과 아주 잠깐 눈빛을 교환했을 뿐이다. 평소의 아들이었다면, 친우를 데려오기 전 그들의 신상을 서신으로 전해주었을 터인데, 전해주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이놈이 아비를 놀라게 하려고 작정했구나.’
허나,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다.
서문세가가 어떤 가문인가? 무림 육대세가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전 무림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무가(武家)였다. 까놓고 말해서 황씨가문과는 급이 다르다. 황씨가문이 금황상가를 키워 돈을 많이 쌓아놓았다곤 하나··· 서문세가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 그래. 모두 잘 와주었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다 가거라. 포양호에 본가에서 운영하는 주루가 있으니 통으로 써도 좋다.”
“와아···.”
광성문의 소문주 강철진이 입을 벌린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 먼 길 왔을 텐데 피곤할 터인데 이만 나가보거라. 이야기는 가볍게 식사라도 하면서 하자꾸나.”
황보위의 친우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사실 친우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은 불편한 것이 사실이니까. 동시에 그들이 황씨가문에 가지는 호감도가 더욱 올라갔다. 눈치 없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무가의 어른들과는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예, 저는 친우들의 방을 안내해준 다음 잠깐 들리겠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래, 알겠다.”
아들의 친우들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떠나갔다.
역시 아직은 어린애들이다.
그렇기에 더욱 좋다. 어른이 되어 맺은 인연은 알게 모르게 거리가 생기는 법이니까. 지금부터 우정을 쌓는다면, 아들이 장성했을 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홍 총관.”
“예, 가주님.”
“서문취아에 대해 알아오게나. 열 냥까지 써도 좋네.”
당연히 금자였다.
명문가 자제의 정보는 상당히 비싼 값에 속한다.
“예, 알겠습니다.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씨익.
총관이 나가자 황씨가문의 가주 황천옹이 이를 훤히 드러낸 채로 웃는다.
“역시 내 아들··· 너는 계획이 다 있는 모양이로구나.”
* * *
그날 저녁.
누군가 황극린의 보금자리를 방문했다.
“그, 극린아!”
몹시 당황한 모습의 비 노인. 과거 그가 이렇게 찾아온 기억은 없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된 걸까? 황극린은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든 과도를 뽑을 준비를 한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 대박이다!”
“예?”
“네가 만든 환단의 효과가 대박이로구나!”
“···.”
과거 음지의 세계에선 ‘영약’으로 불리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만능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와중에 약효가 잘 받는 사람도 있으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비 노인은 약효를 톡톡히 본 모양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근 15년 만이었다! 그렇게 팔팔한 것은 말이다! 으응? 그리고 변소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말이다!”
황극린이 잽싸게 고개를 젓는다.
비위가 좋은 그라고 해도 딱히 자세히 듣고 싶진 않았다.
“약효가 좋았던 모양이군요.”
황극린의 말에 비 노인도 정신을 차렸다. 황극린은 오늘 종일 시종장에게 끌려다니며 막노동을 했다. 당장 약효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다른 이들의 눈치도 있으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꾹 참고 있었다. 참아왔던 것이 방금 터진 거다.
“큼큼···, 그렇더구나. 약재를 검수하며 여러 탕약을 먹어보았지만, 이토록 약효가 빨리 도는 것은 처음 보았다. 어찌 이런 제조법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란다.”
“약효가 잘 받는 사람도 있으면, 딱히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약방에 납품할 땐, 그걸 잘 설명해주셔야 할 겁니다.”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말아라. 그래도 이 할애비가 약재와 관련해서는 꽤 오랫동안 일을 했단다. 허나, 걱정되는 점은···.”
황극린은 그가 무엇을 우려하는지 알고 있었다.
환단의 제조법과 재료.
언제가 될지 모르겠으나 환단의 약효가 널리 알려진다면, 그 비밀을 파헤치려는 세력이 등장할 것이다. 어쩌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뺏으려 할 수도 있었다. 뭐, 그런 것에 당할 황극린이 아니긴 했지만··· 비 노인은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황극린은 명확하게 말해주었다.
“만약 환단으로 인해 위험한 일이 생길 경우엔 재료를 알려주시고, 제가 만들었다는 걸 말해주십시오. 아니면 지금 비 노야께 제조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뭐···?”
“굳이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제조법 자체를 경매에 부칠 수도 있겠지요. 그게 오히려 더 안전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렇다.
이건 언젠가는 알려질 제조법이다. 이걸로 강호 최대의 거부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애초에 이걸로는 불가능하기도 했다.
“너는 참으로 욕심이 없구나···.”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는 취사선택을 명확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황극린이 문 쪽을 바라보더니 비 노인에게 말한다.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볏짚 뒤로 숨으십시오. 최대한 숨소리를 낮추셔야 합니다.”
황극린이 소 우리 안을 가리켰다.
비 노인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황극린의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일단 그의 말대로 쌓아놓은 볏짚 뒤에 숨었다.
그리고 얼마 뒤.
뚜벅뚜벅.
사람의 발소리가 들린다.
끼이이익.
낡은 문이 열리고, 누렁이가 뭔가 기분이 나쁜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당연히 그런 소의 울음 따위, 황극린을 제외하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말 오랜만이구나. 극린아.”
“예, 첫째 도련님.”
황극린이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황보휘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슴없이 황극린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둘째인 황일문은 더럽다며 절대 손을 대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았다.
황극린은 순간 그의 손길을 피할까 생각했지만, 살의가 느껴지지 않아 가만히 있었다. 애초에 과거에도 이러했던 같기도 하다. 황극린이라고 모든 상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이곳에서 제안했던 걸 기억할 뿐.
“고생이 많구나. 둘째가 많이 괴롭혔지? 제대로 씻지도 못했구나.”
“아닙니다.”
황보휘는 절대 대놓고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모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행동이다. 허나, 눈치 빠른 몇몇 이들은 알고 있었다. 황보휘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특히 어릴 때는 미숙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허나, 무당에서 수련을 마치고 온 황보휘는 더 노련해졌다.
지금 우사에는 보는 시선이 없음에도 그는 황극린을 위하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다.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말이다. 어쩌면 그만의 유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예전보다 밥은 잘 먹고 있나 보구나? 그땐, 제대로 먹지도 않더니. 보기 좋다.”
미소.
허나, 황극린은 그의 눈동자에서 혐오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감정은 표정에서 드러난다고 하지만, 가장 숨길 수 없는 부분이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었다.
물론, 눈동자에 깃든 감정마저 연기할 수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황보휘가 그 정도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극린은 그저 고마움을 나타난 채 고개를 숙였다.
그가 원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 그래. 난 너를 볼 때마다 참으로 슬펐단다. 네 아비가 죄를 지은 것인데 너까지 벌을 받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 생각했었지.”
황보휘가 부드러운 손길로 황극린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단다.”
드디어.
황극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마주한다.
“너도 황씨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는데, 이런 노비나 할 법한 생활을 계속할 순 없지 않겠느냐? 네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깨끗하게 살 수 있도록 방을 내어주도록 하마.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내가 밀어붙일 것이다. 그러니···.”
황보휘가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 미소는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
“무공을 배우지 않겠느냐?”
황극린은 감이 좋았다.
과거에도 아마 황보휘의 저 제안 속에 음흉함이 깃들어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애초에 황씨가문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제안을 거절했었다.
“그래, 갑작스러운 제안인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본가에서는 사람이 필요하단다. 요즘 강호는 참으로 흉흉하다. 그렇기에 무림 문파가 아닌 상가나 상회도 무인들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지. 아마 네가 아는 시종들도 이와 같은 제안을···.”
“하겠습니다.”
“받을 것이니 너무 부담을···, 응?”
황보휘가 아는 황극린은 고양이와 비슷했다.
워낙 예민하고 감이 좋아서 오래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가 사람 살 곳은 아니지. 냄새가 진짜 역겹구나.’
황보휘가 더럽고 추잡한 우사를 보며 납득한다.
자신이라도 이 제안에 응했을 것이다. 오히려 응하지 않는 게 정신이 나간 거다.
“정말 잘 생각했다.”
황극린도 그의 말에 동감하는 바였다.
‘그래, 잘 생각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