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2화 (222/232)

오환검(五煥劍)의 위용

***

여덟 마리의 말이 마차에 묶여 있었고, 그 뒤로 황실의 깃발을 달고 있는 마차가 서 있었다.

내부에 침상이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거대한 마차 안에는 두 연인이 함께하고 있었고, 호충은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말했다.

“진짜 싸움이 시작될 모양이군.”

마차의 창밖으로 마교와 무림맹이 서로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턱.

화진의 손이 호충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호충이 기껏 입었던 옷을 다시 벗기려 했다.

“태자 전하께서 나설 필요도 없으신데, 왜 옷은 입고 그러신담? 이리오세요.”

“···또?”

“아직 저 회임 안 했거든요?”

“···너무 자주하면 공주님이 태어난다고 하더라.”

옷을 풀던 화진의 손이 멈칫했다.

“!!”

“가끔씩 해야 왕자님이 생긴다고 했어.”

호충이 예전에 흘려들었던 정보였다.

‘물론 확실하진 않지만···.’

“그, 그런 얘긴 미리미리 하셨어야죠!”

“나도 이제야 생각이 났다고.”

“···그럼 내일?”

“날마다는 자주가 아닌가?”

호충은 화진의 옷을 들어 어깨에 걸쳐주며 말했다.

“때가 되면 내가 먼저 말할게. 그러니 오늘부턴 할 일을 좀 하자.”

“교주를 잡으시려고요?”

“부문주가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교주는 마주치지 못했다고 했어. 이미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크지만 노력을 해봐야지.”

“···교주를 어디서 잡죠?”

“그리고 이미 얘기했지만, 우린 교주가 우선이 아니야. 지금은 선황제의 아들을 찾는 게 먼저야.”

“···모래알 속에서 바늘 찾기잖아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그 가능성을 높여봐야지. 저들이 대치하기 전에 마교도의 가족들을 빼돌려 두었으니, 회유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야.”

“마교도를 살려두시려고요?”

“마교도는 나라의 백성이 아닌가? 어차피 같은 사람이야.”

“···저도 돕겠어요.”

“태자비가 도와주면 더 쉽지.”

화진의 미모는 무림에서 힘을 발휘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호충은 화진이 할 일을 일러주었다.

“사중환 부문주가 신강 하오문도들을 통해 마교도의 가족들을 빼돌렸을 거야. 화진은 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내가 지시하면 사로잡은 마교도들 앞으로 지나가게 해줘.”

“지나가게만 하면 된다고요?”

“본래 가족은 얼굴만 봐도 울컥하는 법이야.”

“······.”

영문을 모르겠다는 화진의 표정에도 호충은 얼른 마차를 나섰다.

“흑림방을 통해서 연락할 테니 기다려.”

호충이 마차 문을 열고 나오자 대기하던 흑림방 호위대가 멀리서 경공으로 달려왔다. 남경에서 일을 마친 왕호도 흑림방 호위대와 함께하고 있었다.

“문주님! 마교와의 전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알아. 우린 내부로 들어간다. 우선 교주 놈이 있을 법한 곳부터 가보자.”

“예!”

호충이 먼저 경공을 발휘해 쏘아져나갔고, 흑림방 호위대가 뒤를 이었다.

파앙. 파밧. 팟!

마교와 무림맹이 충돌하는 곳에서 신강까지 하루 거리였지만, 흑림방도들에게 하루거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몇 년간 중원 전역을 안방처럼 쏘다니며 경공술이 일취월장했기 때문이다.

***

호충이 호위대를 이끌고 온 곳은 예전 신강에 왔을 때 들어가지 못했던 검은 전각이었다.

‘확실히 인원이 빠져나갔어.’

마교는 정파 무림의 토벌대를 맞이해 싸우기 위해 마공을 익힌 마인들을 대부분 끌고 나간 것이다.

“문주님. 전각을 지키는 이들이 별로 없습니다.”

“나도 보인다. 마교의 교주가 없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이었다. 마교 교주가 전각에 머물고 있다면 누가 들어가도 위험했다.

“빠르게 진입할 것이다. 나를 따르되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면 셋이 남아서 하나를 상대해라.”

호충은 교주가 머무는 전각의 내부 구조를 대강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예!”

호충과 왕호가 앞장서서 전각으로 진입했다.

“누구냐!”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지만, 아예 비운 것은 아니었다. 호충은 막아선 마인의 무공 수준을 파악하고 지시했다.

“황혼단부터 남는다! 나머지는 속도 줄이지 말고 계속 간다!”

호충의 명에 황혼단의 일부가 남아 마인을 상대했고, 호충과 왕호를 비롯한 남은 인원들은 전각을 빠르게 이동했다.

“멈춰라!!”

“너는 우리 몫이다!”

호충의 발은 거침없이 전각을 누볐다. 그 사이 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 남은 흑림방의 인원이 상당했기에 남은 인원은 자신과 왕호를 더해 열 명에 불과했다.

“여기도 아니고···. 다른 곳으로 가자!”

호충은 넓은 장원의 전각들을 옮겨 다녔고 곧 아버지가 말했던 전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이 아버지가 머물던 전각이다!’

호충의 고개가 옆으로 이동했다.

‘그럼 저기가 교주의 전각이다. 드디어 찾았군.’

호충은 조금 더 큰 전각을 볼 수 있었다.

“저기다!”

파앙.

호충은 전각으로 쏘아져나가다가 후다닥 멈추고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멈춰! 뒤로 물러서라!”

왕호를 비롯한 흑림방 인원은 영문도 모르고 호충의 명에 따라 뒤로 물러섰다.

“······.”

호충의 시선이 주변을 향했다.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하는 곳이었다.

“여긴 아무도 없어.”

“···예. 없습니다.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왜 멈추었냐는 의문어린 말이었다.

“지금까지 마주친 놈들이 상당하긴 하지만 그들은 여길 경계하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게 무슨 문제인지···.”

“문제야. 그것도 상당한 문제.”

호충의 머리는 지금까지 마주한 마인들의 위치와 전각의 위치를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다. 남은 마교도들은 지금 자신이 들어가려던 전각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처럼···.’

“마교는 정파 무림맹의 집결과 토벌대가 신강으로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부교주의 수급을 받았으니, 황궁의 일이 실패했음도 알고 있었겠지.”

“······.”

왕호는 문주의 머리에 든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용을 썼지만,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런 마교에서 교주의 전각을 그대로 두고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었다.”

“교주가 도주했다면 이렇게 될 수도···.”

왕호는 위험에 관해 무공만을 생각했고 호충은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는 알고 있었을 거야. 누군가 교주전에 들어오리라는 것을 말이야. 그것도 중요한 인물이었겠지.”

“아···. 교주의 거처라면 맹주 혹은 황궁의 중요인물이 먼저 들어가겠지요.”

왕호도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런데 마교도들은 교주의 전각을 지키지 않고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는 듯이 멀리 떨어져 있잖아.”

휙.

왕호도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마주쳤던 마교도들의 위치를 떠올렸다.

“···맞습니다. 이곳에서 상당히 먼 거리입니다. 왜 이곳을 지키지 않는지···.”

“······.”

호충은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야할 만큼 위험한 물건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기관장치 그리고 화약이 의심된다. 아마 누군가 들어가면 폭발하는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야.”

“!!”

무공만 생각하는 왕호와 호충이 다른 점은 이것이었다.

“녀석들은 최후까지 수를 써놨어. 나라에서 금하는 화약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

화약일지 아니면 전각이 무너지도록 기관장치를 설치했을지 모르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우선 교주의 전각은 누구도 접근을 불허한다. 무림맹에서 접근해도 황제폐하의 어명으로 막아라.”

“옙!”

“나는 서천량 대장군에게 가보겠다. 흑림방주는 마인들을 잡아둬.”

“살려야 합니까?”

“최대한 살리되 너희가 위험하면 죽여. 부문주와 태자비가 함께 있을 것이니, 살린 놈들은 잘 챙겨서 넘겨줘.”

“히히. 예! 문주님! 여명단주와 황혼단주는 나를 따라라.”

““예!””

호충은 신강에서 조금 멀리 주둔하고 있는 서천량 대장군의 대군이 집결한 장소로 향했다.

***

“충!”

“···군례는 어색합니다. 대장군.”

이번 토벌군의 상장은 태자인 호충이라 서천량 대장군이 군례를 보인 것이다.

“저희는 폐하의 명으로 역적의 무리를 잡으러 왔나이다!”

“······에효.”

이는 호충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군 지휘부 천막의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작전회의부터 진행합시다.”

“예! 태자 전하.”

“현재 마교는 이곳에서 무림맹을 맞아 싸우고 있습니다.”

호충은 펼쳐진 지도를 짚으며 세력들의 위치를 확실히 했다.

“또한 신강의 마교 전각에 다녀왔으나, 교주의 위치는 오리무중입니다.”

“주변을 경계하고 있으니 잡힐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저만 같아도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신강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주의 무위가 그 정도입니까?”

“최소한 현경으로 추측되는 놈입니다.”

“!”

“교주 놈은 자신이 머물던 전각에 화약을 설치한 것으로 의심됩니다. 기관장치 전문가를 먼저 들여보내야 하니 군은 마교의 전각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화약?!”

“확실치는 않으나 십중팔구 화약으로 의심됩니다.”

“일개 종교단체가 어떻게 화약을 입수했단 말입니까?”

“기술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제조할 수 있지요.”

“···허!”

“또한 대부분의 마교인들은 교주가 진행한 역모에 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합니다. 그저 교세를 확장하려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파악하고 있지요.”

“그렇다 해도 역모에 가담한 죄가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단체이며 역모에 가담한 이상 죄를 물어야 합니다.”

황제의 명령이 우선이긴 했지만, 역모의 죄를 물을 대상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다.

“그렇다면 하나의 단체가 아니면 되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교에 깊이 빠지지 않은 이들을 마교에서 벗어나도록 만들겠습니다. 혹세무민을 일삼는 사악한 종교를 버리고 다시 순박한 양민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태자 전하.”

“이들까지 다 잡아 죽이면 신강에 남아날 백성이 없습니다. 역모가 중죄이긴 하나 깊이 가담하지 않은 이들까지 본보기로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폐하께서는 아직 선조들께 예를 올리기 전이라 즉위식도 치르지 못한 상태이지요. 곧 폐하의 즉위식 있을 것이니 백성들의 많은 피를 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

“거기다 서천량 대장군의 대군은 빠른 시간 내에 다시 변방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외세의 침략을 대비해야 하는 대군이 언제까지 신강에 머물며 역모 가담자를 가려내겠습니까? 이들을 내가 따로 구분해 둘 것이니, 서 대장군께서 따라주십시오.”

“···이미 폐하께서 태자 전하께 전권을 맡기셨나이다. 따르겠습니다. 충!”

“고맙습니다. 대장군. 그럼 세부적인 작전을 세워볼까요? 이번 군의 작전은 번개같이 빠르게 진행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신강에 오래 머물러봐야 군량만 축날 뿐입니다.”

이후 호충은 간략하게 대군이 진행할 작전을 하달했고, 서천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전에 동의했다.

“작전은 간단할수록 좋지요. 어렵지 않겠습니다.”

“그저 본보기를 보이는 수준이니까요. 겸사겸사 나라에 새로운 황제께서 등장하셨다는 것도 알리고요.”

“태자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희생을 최소화하려면 지금 군을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무림의 인물들도 허무하게 스러지지 않겠지요.”

“역시 대장군께서는 척하면 척이네요.”

“마교와 무림맹의 격돌이 일어나는 곳과 멀지 않으니, 먼저 기병을 출발시키지요.”

“그리고 병력을 나눠 신강의 관아를 확보하세요. 서천량 대장군은 신강으로 저는 마교의 무리에게로 가지요.”

“충!”

곧 변방의 기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호충은 그 뒤를 따라 이동했다.

두두두두.

***

무림맹 토벌대의 선두에 섰던 맹주 진호현은 마교의 대형 앞에서 자신의 내공을 일으켰다.

“받아라!!”

오환검의 화려한 초식이 허공을 수놓았다.

[적산오호(赤山五虎)]

다섯 줄기로 갈라진 검기가 날아갔고, 마교의 고수는 신중하게 오환검의 초식을 상대했다.

“으흣!”

따다다당. 땅.

정신없이 검기를 쳐냈지만, 뜨거운 열기는 막을 수 없었고, 검을 든 팔 또한 떨려오고 있었다.

‘역시 맹주는 맹주로군.’

부르르르.

‘하지만 신교의 장로님에 비하면 한참 아래다.’

마교도가 눈을 빛내는 동안 맹주가 다시 검을 들었고, 그 옆으로 진씨 세가의 무인들이 포진했다.

“네 놈을 죽여 정파 무림의 힘을 보일 것이다!”

막 오환검의 초식을 다시 펼치려던 호현은 주르륵 늘어선 세가의 무인들을 보며 검을 멈췄다.

‘이 놈들이 왜 지금···.’

호현의 의문은 그들이 동시에 펼치는 초식과 함께 배가되었다.

“오환검(五煥劍) 적산오호(赤山五虎)!”

““하앗!””

슈아아악.

“!!!!”

진씨 세가의 무인들이 동시에 펼치는 적산오호(赤山五虎)의 초식이 전면으로 쏘아지며 방금 맹주가 보였던 화려함을 압도하고 있었다.

“끄아아악!”

“고수다! 모두 맹주와 같은 검을 익혔어!”

“피해라!”

적산오호를 펼친 일(一)진이 뒤로 물러섰고, 바로 뒤를 이은 이(二)진이 나서서 오환검을 펼쳤다.

“오환검(五煥劍) 유적삼환(汎赤三幻)!”

““하압!””

붉은 강과 같이 흐르는 세 줄기 검기는 환의 묘리가 가미되어 있었다.

“아아악!”

“!!!!”

진씨 세가의 무인들 전부가 오환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놈들이 오환검(五煥劍)을 익혔단 말인가!’

자신이 익힌 오환검을 몰라 볼 수가 없었다.

비척비척 뒤로 물러서는 호현의 곁에 옥비연이 다가왔다.

“맹주. 가문의 무인들이 자랑스럽지 않으십니까?”

“···수, 숙부.”

“둘째 조카가 좋은 선물을 남겨두고 갔기에 가문의 무사들에게 주었답니다.”

“······.”

“오환검은 가문의 무인들이 익히기에 적당한 수준입니다. 절정을 넘어서긴 쉽지 않지만, 절정 무인을 기르기엔 그만이지요.”

“···아.”

‘내가 저들 중의 하나가 되었구나. 무림인들도 분명 그리 볼 것이다.’

맹주로 보여줄 위용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옥비연은 이(二)진이 초식을 펼치고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고 크게 소리쳐 지시했다.

“삼(三), 사(四), 오(五)진이 동시에 나서라!”

진씨 세가의 화려한 오환검이 마교도들을 향해 쏟아졌다.

“오환검(五煥劍) 대적일검(大赤一劒)!”

““하앗!””

슈악! 샤악!

오환검의 첫 초식이지만, 많은 숫자가 보여 동시에 펼치니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화려한 불꽃의 검기가 마교도를 덮치고 있었다.

““우아아아아!””

맹주의 뒤에서 대기하던 무림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옥비연은 창백한 얼굴의 호현에게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맹주의 가문이 공을 세웠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오.”

호현은 옥비연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성장한 진씨 세가라면 맹주의 뒤를 받쳐줄 수도 있음이야.’

“···숙부. 나를 도와주시오.”

“이미 돕고 있지 않소?”

“토벌이 끝난 다음···.”

“하하. 그건 토벌이 성공한 다음에 다시 얘기합시다.”

“좋습니다!”

옥비연은 호현에게 돌아서서 눈을 빛냈다.

‘무림인들에 맹주까지 진씨 세가의 입지를 올려준다면 화산파 장문인을 맹주 자리에 앉히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마침 화산파와 남궁가, 제갈가의 무인들이 진씨 세가의 무인들이 빠진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나도 나서야겠군.’

비연은 마교와 무림맹의 혼전 속에 고수를 찾아 나섰다. 마침 마교도들 사이에서 비도를 던지며 착실히 정파 무림인의 숫자를 줄여가던 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놈이 마교의 장로로구나!’

파앗.

비연은 빠르게 달려 나가 넓은 태도를 들었고, 곧장 횡으로 그어버렸다.

부아앙.

황룡살도의 거대한 도기가 퍼져나가며 마교도들의 허리를 양단했다.

“끄아아악!”

타닥.

그 사이로 경공을 펼친 비연은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마교의 장로를 마주칠 수 있었다.

“네 이노옴!!”

“······.”

비연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내 답은 이것이다.’

부아앙.

황룡살도의 살기어린 초식이 연달아 펼쳐졌다.

꽈광. 쾅.

“으윽!”

장로는 쉴 틈이 없었다. 최후 초식과 같은 파괴력을 가진 강맹한 도기가 연달아 자신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비연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 황룡살도의 모든 것을 쏟아 붇고 있었다.

“치잇!”

마교의 장로는 훌쩍 뒤로 물러서며 세검(細劍)을 뽑아들었다.

옥비연의 커다란 태도(太刀)와 대비되어 더욱 얇고 작게 느껴지는 검이었다.

부아앙.

퉁.

작은 세검은 강맹하게 날아드는 태도를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지만, 언제든 상대의 목을 물어뜯으려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놈! 작은 빈틈이라도 생기면 네 놈을···.’

그 기회는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부아앙.

옥비연이 커다란 초식을 허공에 흩뿌리며 옆구리에 빈틈을 드러낸 것이다.

샤악.

마교 장로의 세검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슈각.

“!”

비연은 장로의 세검이 날아드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상대의 검이 너무 빠르고 가까웠던 탓이다.

***

경혼무흔(驚魂無痕) 태산검(太山劍)

***

“!”

비연은 장로의 세검이 날아드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막을 방법이 없었다. 상대의 검이 너무 빠르고 가까웠던 탓이다.

부아앙.

세검이 옥비연의 옆구리를 파고들려던 차에 태도와 비슷한 크기의 커다란 검이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쿠앙!

세검과 함께 땅에 박혀든 중검의 손잡이는 창궁천검대의 대주인 남궁한천의 손에 잡혀 있었다.

“하하. 내가 매제 살렸으니 소선에게 할 말이 생겼구나.”

“···썩을.”

‘한천이 놈에게 구함을 받다니···.’

너무 기분을 낸 탓이었다. 조금 더 신중했다면 위기를 겪을 일이 없었다.

“어쭈? 형님한테 썩을?”

“···감사합니다. 형님.”

“크흐흐. 평생 써먹을 은혜로다. 두고두고 갚아라. 앙?”

“···에효.”

옥비연은 세검을 잃고 뒤로 물러서는 마교의 장로를 향해 화풀이했다.

“다 네 놈 때문이다!”

부아앙.

“흐힉!”

장로는 짧은 단검으로 태도를 막으려 했지만, 옥비연의 분노가 가득 섞인 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쨍! 촤악!

장로의 한쪽 팔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

서천량 대장군이 보낸 기병이 도착한 때는 사종의 구성원인 화산파와 남궁가, 제갈가가 뒤로 빠지고 다른 방파들이 나서서 마교를 상대할 때였다.

두두두두. 두두두.

““우아아아아!””

“모두 멈춰라!!”

갑옷을 입은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갖가지 무기로 서로를 향해 살수를 날리던 두 무리가 거짓말처럼 갈라섰다. 그 사이로 기병들이 계속 추가되며 둘 사이를 더 벌려놓았다.

기병을 이끌던 장수가 마교도들이 밀집한 방향으로 말 머리를 틀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

“역적 무리는 오라를 받아라!”

“!!!”

두두두두. 두두두두.

이후에 계속 추가된 기병들과 병사들이 마교를 둘러싸고 있었다.

““우아아아아!””

긴 창과 커다란 방패로 무장한 병졸들이 마교의 후면을 포위했다.

쿵. 쿵. 쿵.

““투항하라!””

쿵. 쿵. 쿵.

““투항하라!””

군의 등장에 맞춰 옥비연이 나섰다.

“무림 동도들이여 마교는 역적의 무리입니다!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매화검수는 좌측에서 마교도를 막아서라!”

“창궁천검대는 우측을 맡아라!”

“제갈 군사는 포위진을 보강하고 무림인들을 통솔하라!”

화산파 장문인과 남궁가의 가주, 제갈가의 가주까지 합세하자 맹주의 명령 없이도 빠르게 정렬하기 시작했다.

“······.”

“······.”

“······.”

무림맹과의 결전에 참여했던 마교의 장로들은 군부의 등장에 팔을 늘어뜨리고 축 늘어졌다.

“···교주님은 왜 아니 오시는가.”

“분명 중요한 때에 나서서 전장을 반전시키겠다고 하시었는데···.”

장로들은 교주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군이 오는 순간까지도 모습을 보이지 않음에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이다.

“역모를 꾸미던 마교의 교주는 이미 도주하였다! 너희를 속인 교주가 너희를 버리고 도망쳤으니, 투항하라!”

““투항하라!!””

장로들에 이어 마교의 마인들도 기병 장수의 말을 듣고 기운이 훅 빠져버렸다.

땡그렁. 툭. 투두둑.

“살고 싶으면 무기를 버려라!”

“투항하라!”

몇몇은 무기를 버렸지만, 일부는 여전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교주의 도주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 교주의 무위로 이겨내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분명 우리를 사로잡으려는 수작일 것이다.’

그들의 모습에 다시 옥비연이 나서려 했는데, 말을 탄 무리가 기병 장수의 근처로 다가왔다.

두두두. 두두두.

“추웅!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수고.”

호충이 인사를 받는 동안 무림인들 사이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태, 태자 전하께서 친정에 나섰단 말인가.”

“이번에야말로 마교가 끝장나겠군.”

호현은 멀리 태자의 뒷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태자.”

‘잘하면 숙부가 아니라도 맹주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겠구나.’

호현은 얼른 태자가 도착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지만 단단하게 방진을 구성한 기병의 제지를 받아야 했다.

“멈춰라! 네 놈이 올 곳이 아니다!”

“무림의 맹주 진호현이 태자 전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맹주?”

호충은 진호현이 아직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했음을 알고 허락했다.

“맹주를 들여보내라.”

“예! 전하.”

호현은 후다닥 태자의 말 뒤로 가서 몸을 숙였다.

“천세천세천천세. 모용가의 외손 진호현이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흐읍.”

호충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겨우 참으며 말 머리를 돌려세웠다.

“맹주는 고개를 들어도 좋다.”

“태자 전하·········.”

고개를 들어 태자와 얼굴을 마주한 진호현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했다.

‘태자 전하의 용모가 왜···.’

본래 가문의 막내인 호충과 닮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닮아 보인 탓이다.

“맹주는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는가.”

“···다, 다름이 아니오라···.”

진호현의 고개가 갸웃 했다.

‘이건 태자 전하의 목소리가 아니라···.’

“···호충?”

호현 근처에 있던 장수들이 검을 빼들어 호현의 목에 가져갔다.

챙! 챙! 챙!

“감히 태자 전하께!!”

“!”

“전하! 예의를 모르는 맹주를 벌하소서!”

“놔둬라. 아직 황실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전하의 넓은 아량에 하늘도 감복하나이다.”

“······.”

군의 장수들이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섰지만, 호현은 여전히 호충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왜? 내가 태자가 되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나?”

“···허.”

자신이 알던 호충이라는 인정이었다.

‘어째서 호충이 놈이 태자 행사를 한단 말인가!’

“너도 내 친부께서 따로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을 터.”

“······.”

물론 듣기는 했다. 하지만 진씨 세가의 전대 가주셨던 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까지였다. 친부가 누구이든 알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중요했다.

‘그, 그럼 호충이 놈의 아버지가···.’

“선황제께서 승하하시기 전, 폐하의 친동생이신 아버지께 황위를 이양하시어 아버지께서 황위에 오르셨다. 그 와중에 마교가 역모를 획책하였으나, 아버지께서 마교의 책략을 모조리 분쇄하시고 황실의 안정을 가져오셨다. 이는 곧 나라의 안정과 같다.”

“화, 황제 폐하께서···.”

“전에 네가 태자로 알고 있던 진패는 폐위되어 별궁에 유폐되었으니 그리 알고 있어라. 아! 모용희도 태자비에서 폐비가 되었지.”

“!!”

“네가 궁금증을 갖기도 전에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했구나. 자. 왜 나를 보자 하였느냐?”

“···아. ···저, 저는···.”

호충의 차가운 눈이 호현을 직시하고 있었다.

“할 말이 없으면 저리로 가서 찌그러져 있어라. 맹주.”

“······.”

호현은 과거 호충이 집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모조리 떠올랐다. 가주를 비롯한 세 부인에게 모진 대우를 받았고, 형제들에겐 무수히 많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던가. 진가장의 직계임에도 가문의 무사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온 호충이었다.

‘···나는 끝장이다. 맹주고 뭐고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야.’

호현이 허리를 숙이고 뒷걸음질로 물러서는데, 호충의 말이 들려왔다.

“내 어미를 살해하는데 네 모친과 서문희가 관여했음을 아느냐?”

“!!!”

“도주는 꿈도 꾸지 말아라. 모용가와 서문가는 황제 폐하의 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끄윽.”

진가장 대신 모용가와 서문가를 바쳐 아버지의 한을 풀어줄 생각이었다.

털썩.

물러선 호현의 무릎이 다시 땅으로 향했다. 또한 그의 머리도 땅으로 향했다.

쿵.

땅에 박은 머리가 들렸다가 다시 땅으로 향했다.

쿵!

호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땅으로 머리를 박았다.

쿵!!

이마가 깨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자 전하 부디 자비를···.”

“자비는 저승에 가서 염라대왕께 구하여라.”

황실의 인물에 상해를 입힌 죄는 삼대를 멸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진호현은 모용소군의 아들이니 삼대 안에 무조건 들어가는 것이다.

“크흑. 부디 과거의 연을 생각하시어···.”

“삼대로는 부족했느냐? 과거를 떠올리니 한참 부족해 보이는 구나.”

“커허헝. 전하···. 자비를···. 부디 자비를···.”

호현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

호충도 마음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형제로 지내온 세월이 있지 않겠는가. 악연도 인연은 인연이었고, 형제들을 향한 화풀이는 진즉에 끝낸 상태였다. 또한 아버지는 황위를 차지했고, 자신은 태자의 자리를 얻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일을 들추어 이들의 목을 치는 것도 못할 짓이었다.

“···모용소군과 서문희는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이나, 연좌는 피할 수 있도록 폐하께 주청을 드리마.”

“흐허허엉.”

“맹주를 끌어내라. 이제 역적의 무리를 정리할 것이다.”

“예! 전하!”

호충은 끌려 나가는 호현에게서 눈을 돌려 군사들과 무림인들에게 둘러싸인 마교의 인물들을 돌아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너희 중에 마교의 역모에 가담한 이가 있다면 나서라!”

“?”

마교도들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방금까지 역적의 무리라고 했으면서 이제와 역모에 가담한 이를 찾고 있지 않겠는가.

“마교의 교주 놈은 과거 황손을 바꿔치기 해 역모를 꾸몄노라! 이에 관여한 자가 나선다면 너희 모두를 살려주겠다!”

“!!”

“!!”

“!!”

황손을 바꿔치기했다는 정보를 처음 듣는 마교도가 대부분이었다.

“······.”

호충은 마교도 중에서 마공이 높은 이들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었다.

‘놀라는 놈이 대다수다. 전혀 모르고 있어.’

“역모에 가담한 이 또한 죄의 경중에 따라 사면을 검토하겠노라! 그러니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나서라!”

호충은 웅성거리는 마교도들 사이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는 한 늙은 마교도를 찾아낼 수 있었다. 늙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다른 마교도들과 비교해 높은 내공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

‘저 놈이 뭔가를 알고 있구나.’

호충은 말에서 내려 마교도들 가까이 다가갔다. 녀석이 나서지 않을 것 같아 직접 마주보고 대화할 생각이었다.

“전하! 위험하옵니다!”

“그대들이 지키고 있는데 염려할 것이 무언가. 가자.”

“예! 전하!”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 군사들을 대동한 호충이 마교도 근방으로 가자 주르륵 길이 생겨났다.

저벅.

호충의 걸음이 앞으로 향할 때마다 길은 더욱 넓어졌다.

곧 호충의 걸음이 늙은 마교도 앞에 다다랐다.

“너는 오래 살았으니,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겠구나.”

“······.”

“입을 다물고 싶으냐?”

“···그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할 뿐이옵니다.”

“바라는 것이 있느냐?”

“없사옵니다.”

“······.”

호충은 늙은 마교도를 유심히 보다가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마교도에 생각이 미쳤다.

“이 주변에 네 자식들이 있지는 않느냐?”

“······.”

늙은 마교도는 주변을 잠시 훑어보고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자식들은 장성하여 오래전에 떠났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 마교의 고위급이 분명한 네 놈은 신강에서 식솔들과 함께했을 것이다.’

“멀리 떠났다? 마교의 고위급 인물이 제 자식들만 먼저 빼돌렸구나.”

“!”

“네 놈도 마교의 교주 놈과 다르지 않았어. 교도들이 신강에서 몰살당하건 말건, 제 가족만 중요했던 게지. 이기적인 놈. 그러니 마교도를 전부 살려준다고 하는데도 스스로 나서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비를 보이는 내 앞에서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는 것이지.”

주변 마교도들의 시선이 모두 늙은 마교도에게 집중 되었다.

‘···제기랄.’

황군과 정파의 무림인들은 모르지만, 마교도들은 늙은 마교도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충의 예상대로 그는 마교의 고위급 인물이었고, 부교주가 죽고 없는 마교에서 교주 다음으로 높은 직위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래봤자 소용없다. 마교의 누구도 신강을 빠져 나가지 못한다. 이미 며칠 전부터 신강 주변에 천라지망을 펼쳐두었다.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방비하였으니, 너희 교주조차 어딘가에서 숨어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

“그러니 너희 식솔들을 몰래 빼돌렸다 해도 모두 황군의 손에 잡혀 있을 것이다.”

“······믿을 수 없소.”

“믿고 안 믿고는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이미 마교의 식솔들을 빼내려던 녀석들을 전부 잡아들여 가둬두었거든. 나름의 인질이지.”

“···여기도 인질이 생긴다면?”

늙은 마교도의 말에 기회를 노리던 마교 고수들의 움직임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날 잡으려고?”

“너무 깊이 들어오지 않으셨나 싶소만.”

“큭큭. 너희 교주가 이 자리에 있어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교주님이 아니다.”

“내 무위가 그보다 더 높으니 하는 말이다.”

“헛소리! 태자를 잡아라!”

파박. 슈슉.

마교도들 사이에서 눈을 빛내던 고수들이 호충을 잡으려 나섰다.

“태상장로께서 명하셨다!”

“태자를 잡아야 우리에게 살 길이 있을 것이다!”

적은 수가 아니었다.

‘본보기가 알아서 튀어나와주는 군.’

호충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호충을 지키던 장수와 병사들은 잔뜩 긴장해서 검을 꺼내들었다.

촤앙! 창!

“태자 전하를 보호하라!”

““추웅!!””

‘너희는 너희나 잘 지켜라.’

호충의 몸에서 자색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오르더니 품에서 열두 자루의 비도가 솟구쳤다.

슈슈슈슉.

자색기운을 가득 머금은 비도는 마치 생명을 가진 듯이 호충과 일행의 주변을 선회하고 있었다.

“어, 어찌···.”

“비도가 스스로···.”

황군의 놀라움이 가시기 전에 호충의 입이 열렸다.

“가라.”

비도는 저마다 호충의 손가락이 가리는 방향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피잇. 핏!

한 비도는 날아오르던 마교도의 심장을 통과했고,

푸억.

남은 비도는 마교도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버렸다.

샤각.

휘잉. 윙.

“!!”

문제는 공격을 마친 비도가 다시 호충과 황군의 주변으로 돌아와 선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비를 거절했다는 것은 적당한 벌을 받고 싶다는 말이렸다.”

호충의 주먹을 들어 올리고 활짝 펴자 주변을 돌던 비도들이 저마다 활동을 시작했다.

파라라락.

자색 비도가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모습은 장관이었지만, 그 결과로 끔찍한 피의 비를 불러왔다.

후두두둑.

휘잉. 윙.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비도는 여전히 호충의 곁을 맴돌고 있었다.

“···자비를 거절할 놈은 더 나서라.”

이미 주변엔 호충을 잡겠다고 나섰던 마교도들의 주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마교의 교리에 깊이 빠진 마인들은 두려움을 모르고 덤벼들었다.

“죽어라!”

“너를 죽여 천마신교를 부흥시킬 것이다!”

“교주님이 돌아오시면 모든 것이 해결 된다!”

호충은 다시 비도를 날려 병사들을 보호하며 장수가 들고 있는 검을 빼앗아 들었다.

‘이들이 믿는 교주보다 강한 힘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들의 대를 꺾을 수 있어!’

호충은 처음으로 본신의 힘을 드러냈다.

[태산검(太山劍)]

파진후(破陣厚) 스승님의 경혼무흔(驚魂無痕)에 기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검식이었다. 파진후 스승은 태산검으로 산의 봉우리를 반듯하게 잘라낸 적이 있었고, 현경에 오른 호충도 태산검을 능숙하게 펼칠 수 있었다.

우우웅.

호충이 들고 있던 검은 점점 크기를 불려나갔다. 검은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고 커지고 있었다.

후우웅.

멀리 황군을 지켜보던 무인들도 마교도가 집결한 사이에서 나타난 태산과 같은 검을 볼 수 있었다. 검첨이 구름을 뚫고 높이 솟아 있으니, 이들이 볼 수 있는 것은 검의 중간 부분에 불과했다.

“!!”

“!!”

“!!”

멀리서 태산검의 위용을 본 정파의 무림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가까이에서 지켜본 마교인들은 더했다.

“······.”

“······.”

“······.”

그저 높이 솟아오른 검을 올려다보며 입만 벌리고 있었다. 호충을 죽이려 움직이던 마인들도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춰 태산과 같은 크기의 검을 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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