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32)

나 화산의 백준이야!

***

호충은 저녁 무렵 전대 장문인 청진을 만나 인사할 수 있었다.

“호충이 인사 올립니다.”

“허허. 화산의 은인이신 명예 장문인을 뵙습니다.”

“···여긴 또 소식 빠르네요.”

“화산 대회합에서 결정된 일이잖습니까.”

“편히 말씀하셔요. 안 그래도 현검 태사조님과 현진, 현인 도장께서 충분히 놀리셨습니다.”

“허허허. 그리하겠소.”

그렇다고 완전히 말을 놓지는 않았다. 하오체로 서로 대등한 관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화산은 태상원로원까지 개방한 모양입니다?”

“···사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었지만, 황궁이 절정 무공을 허락한터라 화산 내에서만 움직이기로 했소. 어차피 매화검법을 가르치자면 화산의 고수들이 필요했기에 결정한 것이오.”

황궁이 화산파에 허락한 것은 화산이 보유한 상승 무공과 이를 익히는 것, 그로인해 생겨날 절정 고수들에 관한 것까지였다. 상당히 포괄적인 허락이었지만, 원로원을 어찌하라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원로원의 고수들이 매화검법을 익히면 그게 그거지. 황궁이 여기까지 무슨 수로 따지겠어?’

“음···. 어차피 화산은 깊은 산중에 있으니 황궁의 힘이 미치지도 못하겠지요.”

진가장은 근방에 관가가 있기도 했고, 절정 무공을 허락받지 못했기에 원로원을 개방하지 못했던 것이다.

“남궁가와 제갈가도 원로원에 전대의 고수들이 있을 것이나, 그들의 무위는 그리 대단치 못할 것이오.”

“······.”

세가의 경우 전대의 인물들이라 해도 혼인을 했으니 부인이 있었고, 무림에서 떨어져 나와 원로원에 들어도 가족과 함께 여생을 보낸다. 즉, 현실의 일로 무공에 심취할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화산의 경우는 약간 달랐다. 도인은 혼인을 하지 않으니, 남은 것은 자신의 무공에 대한 열망이었다. 어차피 무림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남은 시간 동안 황궁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로지 무공에 파고드는 것이다. 덕분에 현검은 태상원로원에 들어 현경에 오를 수 있었고, 다른 태상원로원의 인물들 중에도 화경에 오른 고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당파를 비롯한 도가 계열은 화산파와 비슷하겠군요.”

“정확한 예측이오. 그래서 장문인은 황궁의 다음 상승 무공 허락 문파에 불가와 도가를 포함시키려 노력 중이라오.”

마교를 상대하기 위함일 것이다.

“무림맹주는 뭐라고 합니까?”

“···그건 화산의 현 장문인께 물어야 하지 않겠소?”

“아차.”

청진은 전대 장문인이지 현 장문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맹주는 그대의 형이 아니오? 화산파 장문인에게 묻기보다 직접 확인하시면 더 빠를 것 같소만?”

“아차차.”

본인이 무림맹주를 직접 만나고 오지 않았겠는가.

“제가 물어볼 생각을 못했네요.”

“···진가장의 일을 마무리하느라 거기까지 신경 쓰지 못했겠지요.”

그보다는 아버지의 일로 역천을 준비하느라 무림의 일을 등한시한 이유가 컸다.

“헤헤.”

“삼대제자의 맏이가 진 공자를 보려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가보시오.”

“백준 대사형 말입니까?”

“허허허. 명예 장문인에게 대사형은 없습니다. 모두가 화산의 제자일 뿐.”

“···그렇겠네요. 그럼 명예 장문인은 백준이 놈을 보러가지요.”

“지금 시간이면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니 식당으로 가보시오.”

“옙.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부디···. 화산과 계속 연을 이어주시오.”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호충과 청진은 서로 포권지례로 답하고 있었다.

***

호충은 화산파의 삼대제자들이 저녁을 먹는 식당으로 향했고, 바글바글한 삼대제자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흠.”

“······.”

“······.”

“······.”

“······.”

“······.”

호충의 등장에 삼대제자들의 눈이 쏠렸다.

“인사 안 박냐? 화산파 명예 장문인이 행차하셨는데?”

“···뭐래?”

아직 명예 장문인이 뭔지도 헷갈리는 삼대제자들이다.

“크흐흐. 이래야 정상이지. 내가 돌아왔다아아!!”

호충은 자신이 명예 장문인이라며 인사하지 않는 삼대제자들이 오히려 반가웠다.

“저 새끼 저러려고 이리로 온 거야.”

“조용히 와서 밥이나 처먹을 것이지.”

“저 새끼가 괜히 또 시연을 하는 바람에···.”

“우리만 더 고달팠지.”

“옷만 뻔지르르하게 입고 와서는···.”

“···그래도 매화검법이 쫌 멋있었지.”

“우리도 그 정도는 금방 익힐 수 있거든!”

화산파 입구에서 호충을 만난 동소진과 임관수도 그 사이에서 호충을 씹고 있었다.

“조용!”

““······합.””

백준이 일어나 소리치자 삼대제자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삼대제자는 잘 모르지만, 백준은 대사형으로 화산 대회합의 일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명예 장문인이 되신 진 공자께서는 장문인과 같은 배분이다! 삼대제자들은 예를 갖춰라!”

그리고 백준이 먼저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명예 장문인을 뵈옵니다.”

그러자 삼대제자들도 얼른 식사하던 젓가락을 놓고 부랴부랴 포권했다.

““명예 장문인을 뵈옵니다.””

호충은 백준에게 다가가 타박했다.

“에라이. 네 놈이 좋은 분위기 다 흐렸다.”

백준은 포권하며 숙인 자세에서 머리만 삐딱하게 들고 조용히 속삭였다.

“···인사 받으셔야지. 앙? 대사형이 계속 허리를 숙이고 있어야 되겠냐?”

“큭. 백준은 이런 상콤한 맛이 있단 말이지.”

호충도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포권으로 답했다.

“화산파 명예 장문인 진호충! 인사 잘 받았다. 삼대제자는 식사를 재개하라!”

“옙!”

다시 식사가 시작되었고, 호충은 남은 자리에 털썩 앉으며 백준을 불렀다.

“이리로.”

검지로 까딱거리며 불렀기에 백준의 표정은 썩어 있었다.

“······.”

‘부르니 안 갈 수도 없고···.’

백준이 다가오자 호충은 다른 방향으로 다시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 가서 내 식사 가져오셔야지?”

“···대사형을 부려먹어?”

“명예 장문인이 시키는데 안 해? 가서 무환 장문인에게 따져볼까?”

“크흐흐. 안 그래도 가져다주려고 했다.”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오랜만의 해후를 즐기고 있었다. 낯간지럽게 인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호충은 백준을 앞에 앉히고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같이 식사를 들었다.

“잘 있었냐?”

“···너는?”

“X 빠지게 바빴지.”

“어허···. 호충이 세상에 물들어 버렸어.”

“큭. 원래 이랬거든?”

“나도 이제 매화검법 익힌다. 너만 익히지 않았어.”

“들었다. 누가 가르쳐 주냐?”

“···현검 태사조님과 태상원로원 조사님들께 돌아가며 배운다.”

이대제자 대부분이 현자배로부터 매화검법을 배우지만, 일부 자질이 뛰어난 이들은 태상원로원으로부터 직접 매화검법을 사사받고 있었다. 백준도 그 중 하나였다.

“얼씨구. 그 영감님이 가르쳐?”

“너도 아까 만났지? 그런데···. 영감님은 좀 너무하지 않냐? 그래도 화산파의 가장 어르신인데.”

“······.”

‘현경의 경지에 오른 태사조를 비롯한 고수들이 말단 삼대제자들까지 가르치니 화산의 미래가 밝구나.’

황궁이 상승 무공을 억제한 것이 원인이다. 그간 태상원로원의 고수들이 제자들을 맞이하지 못했기에 화산의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심득을 가르치고 싶어 야단이었고, 규제가 풀리자마자 맺힌 한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익히긴 했고?”

“···어렵다. 미치도록 어려운데···. 너는 거기다 장작을 더 넣었어.”

“내가 뭘?”

“아까 매화검법 보여준 건 잊었냐?”

“그랬지?”

“사숙들이 보시고 난리였다.”

“이대제자들? 걔들이 왜?”

“···에효. 이젠 화자배도 네 아래가 아니구나.”

호충은 백준의 입을 통해 화산의 이대제자들이 절망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가 보여준 매화검법은 너무···.”

“조금 힘을 주긴 했지. 그건 현진 도장이 확실히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내가 일부러 그랬겠냐?”

“어쨌든! 그걸 보고 벽을 느끼지 않을 화산의 제자들이 있을 것 같아? 나만해도 까마득했는데.”

“큭큭. 열심히 하라니까 놀면서 익혔구나?”

“···열심히 했거등?!”

“피똥 싸도록 열심히 했어야지.”

“밥 먹는데 똥 얘기 할래?”

“푸흐흐.”

호충은 편히 밥을 먹고 백준과 함께 식당을 나섰다. 둘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연무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라. 내가 여기로 왜 왔지?”

“이 형님이 한 수 가르쳐 주려고 데려왔단다.”

“뭐라? 외인이 화산의 자제를 가르쳐?”

“이젠 외인이 아니라 명예 장문인 아니냐. 내가 너 가르쳐도 뭐라고 할 사람 없을 걸?”

딴엔 맞는 말이었다. 화산파의 명예 장문인이 삼대제자에게 검술을 지도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

다만 기분의 문제였다. 자신은 여전히 매화검법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호충은 까마득한 경지로 올라서 있는 것을 오늘 확인했기 때문이다.

“···에효. 네 녀석과 같이 무림을 질타하고 싶었는데···.”

“딴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시작해봐.”

“어차피 무공은 시간이 필요해. 지금까지 내가 익힌 매화검법은 그저 기초에 불과하니까.”

“군소리 말고 실시!”

“실시···.”

백준은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차분히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기수식을 시작으로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오.’

확실히 기초가 단단히 잡혀 있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매화검법의 이십사(二十四) 초식은 백준이 그간 놀고 있지 않았음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후우.”

백준은 마지막 초식을 마치고 목검을 수납했고, 호충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

“왜? 어디 이상해?”

“아니. 너무 잘해서 문제야. 내가 지적할 부분이 없잖아.”

“큭. 그럼 다행이네.”

완벽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현재 상태에서 지적할 것이 없었을 뿐이다. 아직 삼(三)성에도 이르지 못한 매화검법에 무슨 지적이란 말인가. 이제 막 새싹을 틔우는 백준에게 꽃을 피우라 할 수는 없었다. 부족한 내공으로 인한 불완전한 검초는 시간이 흐르면 교정될 일이었다.

“화산에서 영단은 누가 먹고 있어?”

“영단? 아직 내 차례가 오려면 멀었지. 무자배 원로님들이 계시고, 현자배 사숙조님들이 가득인 데다가 화자배 사숙님들도 한참이다?”

삼대제자는 아직까지 화산의 막내였다. 아무리 삼대제자의 맏형이고 태상원로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지만, 영단까지 받으려면 까마득했다. 영단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최소한 벽을 넘어서기 직전에 도달해야 했다. 그래야 영단을 취해 다음 벽을 넘어서는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에효. 네가 언제 나와 같이 무림을 질타하겠냐. 한 오십년 기다려줘?”

“······.”

“어차피 나도 매화검법을 익히고 있으니까 이리 앉아봐.”

“어?”

백준이 가부좌를 틀고 앉자 호충이 백준의 장심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지금부터 입 꽉 다물고 내공심법을 운용해.]

이미 장심을 통해 호충의 내기가 진입해 있었기에 입을 열 수 없었다.

“!”

부리부리한 눈으로 호충을 노려봤지만, 호충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러다 너랑 나랑 같이 뒈진다. 네 벗이 피 토하며 죽는 꼴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

백준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감고 내공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고, 호충은 예전 의형제들에게 해줬던 것처럼 백준의 진기를 도인하며 내공을 심어주고 있었다.

‘영산(靈山)의 기운이 충만하니···.’

현경에 올라 굳이 자신의 내공을 전부 쓸 필요가 없다는 점은 좋았다. 외부의 기운 중에서 화산이 가진 영험한 기운을 골라 이를 백준의 내부에 투사하는 방식인 것이다.

톡.

다만 외부의 기운을 정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 호충의 이마에서 시작된 땀이 턱으로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호충과 백준은 늦은 밤까지 연무장에서 심법을 운용했고, 멀리 현검과 현인, 현진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주변은.”

“접근을 막고 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다행이지요.”

“백준이 큰 기연을 만났구나.”

“······.”

“······.”

셋이 이들의 호법을 서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녀석은 이미 우리가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겠지요.”

현경에 오른 무인이 외부의 기척을 몰랐을 리가 없었다.

“끝나면 조용히 자리를 피하자.”

“예. 태사조님.”

깊은 밤이 되어서야 호충은 백준의 장심에서 손을 떼고 물러섰다.

잠시 후에 백준도 심법 운용을 멈추고 눈을 떴다.

“······.”

늦은 밤이었음에도 시야가 환해진 기분이었다. 실제로 빛 하나 없는 화산 경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정심한 내공으로 안력이 증가한 것이다.

“고수에 가까워진 기분은 어때?”

“···죽으려고 작정했어?! 미쳤냐고!”

호충은 욕이 튀어나오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영단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그보단 이게 나을 것 같았다. 영단 많이 먹어봐야 진짜 내공은 아니잖아.”

“하!”

“지금은 일 갑자에 조금 못 미치지만, 조만간 돌파할 수 있을 거야.”

“······.”

일 갑자. 무림에서 고수를 구분하는 기준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네 내공은 얼마나 줄었어?”

“설마 내 내공을 헐어서 널 주겠냐? 착각도 유분수지.”

“···너 땀 흘리는데? 네 옷까지 온통 젖었잖아?”

“조금 힘들긴 했지만, 내 내공은 아니야. 화산의 영험한 기운을 모았다.”

반만 진실이었다. 화산의 영험한 기운을 모으긴 했지만, 잠시 모은 기운이 어찌 일 갑자에 이를 수 있겠는가.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내공을 더해 일 갑자에 가깝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이 형님은 가능하지.”

“···제길.”

백준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당장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었기에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알 수 없었다. 무려 일 갑자에 육박하는 기운이 단전에서 용틀임하고 있었다.

“빨리 고수가 되어서 화산파 장문인에 오르는 거다? 그래야 나랑 동급이 되지.”

“······고맙다.”

“큭. 우리끼리 낯간지럽게 무슨 인사냐.”

“······.”

“나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했을 뿐이야. 네가 가진 뛰어난 자질을 보고 훗날 매화검법을 대성하면 얼마나 대단한 매화검수가 될지 궁금했다. 그게 전부다.”

호충은 무위가 오르고 난 다음부터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고, 행동 또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백준의 내공을 키워준 것도 그런 행동 변화의 일부였다.

“그래도 생각 없이 해준 건 아니다? 알지?”

본래 사중환을 비롯한 하오문의 인물들에게만 해줬던 일이다. 화산에서 받은 마음이 많았기에 백준에게 베풀 수 있었다.

“···알아.”

백준은 전부터 호충이 정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호법도 없는데 너무 위험했어! 모르는 이가 우릴 건드리기라도 했으면 진짜 위험했다고!”

“······.”

호충의 고개가 연무장 너머로 향했다. 세 사람은 이쪽의 일이 끝났음을 알고 조용히 자리를 피하고 있었다.

“현검 태사조께서 호법을 서주셨어.”

“!!”

“집법당주님과 연무각주님도 같이.”

“저, 정말이야?”

백준은 얼른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방금 가셨다.”

“······.”

“내공은 키웠지만, 영단은 준다고 해도 아직 먹지 마. 네가 지금 상태를 완전히 소화하고 절정의 벽을 만났을 때 먹는 편이 좋을 거야.”

“여기서 영단까지 욕심내면 사람이냐?”

일 갑자에 육박하는 내공을 순식간에 얻었고, 화산의 태사조와 사숙조님들이 호법을 서주는 호사까지 누렸다. 여기서 영단까지 욕심을 낼 수는 없었다.

“욕심을 부리니 사람이다. 너도 대사형의 의무와 책임감에만 얽매이지 말고 조금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 그 자유로움이 네 매화검법에도 반영될 거야. 위에서 영단을 내려준다면 잘 챙겨놨다가 먹으면 된다.”

“······.”

백준은 호충의 말을 들으며 사숙들이 나누던 대화를 떠올릴 수 있었다.

‘깨달음의 영역이 다르다 했었지···.’

하룻강아지와 용의 차이라 했었고 시냇물과 바다의 간극이 있다고 했던 화정 사숙의 말이 백준의 뇌리를 감돌았다.

“···호충. 어디까지 올라갔어?”

“무슨 소리야?”

“네 무위, 네가 이룬 경지를 묻는 거야.”

“아···.”

호충은 현경에 오른 자신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손에 잡힐 정도는 되어야···.’

목표가 너무 높으면 포기하기 쉬웠다. 닿을 수 있을만한 목표를 가졌을 때 힘을 낼 수 있는 법이었다.

“절정의 끝을 넘어 화경 중반에 이르렀다.”

“!”

분명 놀랄만한 경지였지만, 닿지 못할 곳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의 내공이 곧 절정에 근접해 있지 않겠는가.

“화경···. 그래 화경이었구나.”

이해할 수 없는 경지도 아니었다. 개화검결과 매화검법을 단숨에 익혀 선보일 정도의 자질을 가졌던 벗이 아니던가.

‘잠깐 사이 대단하네.’

“열심히 따라와라. 그렇다고 내가 기다려주진 않겠지만 말이다.”

“너를 따라잡고 말겠다. 나 화산의 백준이야!”

“하하하.”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