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 대 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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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검문의 비기가 아닌 마교의 비기였지만 그딴 것은 상관없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황궁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겠지.”
“그렇습니다.”
“나는 화산파의 매화검법을 쓰겠네. 그대는 월하검문의 검법을 쓰겠는가?”
현검은 검을 뽑아 매화검법의 기수식을 보였다.
“저도 매화검법을 사용하지요.”
호충은 현인을 쳐다봤고, 현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검을 내밀었다.
호충이 검을 들어 같은 기수식을 취하자 현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대가 현경의 고수라도 나보다 오래 매화검법을 익히진 못했을 터. 그대에게 불리하군.”
“······.”
‘제가 더 오래 익혔습니다만···.’
그에 대비한 변명이 존재해 다행이었다.
“무림맹주인 형을 통해 듣자하니, 진가장 직계가 익히던 진강십이검이 매화검법에서 파생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가주와 소가주가 익히던 진강이십사검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다른 이름이었지요.”
“아···. 그대가 맹주의 동생이었지.”
진가장이 화산의 매화검법을 노렸음은 장문인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깊이 익히진 못했으나, 덕분에 매화검법을 익히기 수월했지요.”
“그렇다면 나와 그리 다르지 않겠어.”
“하지만···. 많이 다를 것입니다.”
이제 와서 자신의 무위가 약하다 할 일도 아니었다.
“그대도 무인이었구려. 헐헐.”
“서로 양보는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같은 경지의 무인이 양보라니···. 어불성설일세.”
“······.”
둘의 서로를 노려보는 동안 현인과 현진은 멀찍이 뒤로 물러섰다.
‘아직 호충이 현경이라는 것도 믿기 힘든데···.’
‘곧장 현검 태사조와 대련이라니···.’
둘의 시야에 서로를 향해 쏘아지는 신형이 들어왔다.
팟! 팟!
챙!
문제는 그들 본 것이 초반부가 전부라는 데 있었다.
단 일합을 주고받았는데 서로의 자리가 뒤바뀌어 있었고, 그 사이 검을 나누는 모습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전혀 보지 못한 것이다.
“!”
“!”
둘은 오랜만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놓쳤다!’
‘놓쳤다!’
호충은 불만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중간에 불만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이다.
“양보는 없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래도 내가 연장자 아닌가. 일초 양보는 미덕이라 치세.”
현인과 현진이 알아보지 못한 사이 현검이 미세하게 검초를 양보한 것이다. 둘의 경지에서나 알 수 있는 양보였다.
“하마터면 다리를 자를 뻔 했습니다.”
“······.”
“다시 양보하시면 그땐 팔이 날아가실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른 공경을 몰라.”
“화산의 어르신이라 다리를 안 자른 겁니다.”
“···이젠 양보 없이 가겠네.”
곧 둘은 작은 여유도 없이 검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분명 둘은 매화검법을 사용한다했지만, 기본 검식만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채챙챙챙! 챙챙!
서로 비슷한 경지의 고수에게 화려한 검초를 사용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진동처럼 빠른 검명이 공터를 채웠다.
‘제길! 볼 수도 없단 말인가!’
‘······.’
현진도 현인과 마찬가지였지만, 최대한 안력을 돋워 둘의 검식을 보려 노력 중이었다.
검과 검이 내는 소리는 곧 멎었지만, 둘의 신형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팍! 파앗! 파앙!
가끔 일어나는 흙먼지만 그들이 여전히 대련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줬다.
“······.”
“······.”
호충은 심상 수련이 아닌 현실에서 처음으로 현경의 고수를 맞이한 참이라 흥이 올랐다.
‘좋구나!’
호충은 자신이 지금까지 심상에서 익힌 것을 풀어내며 다시 체득하고 있었고, 현검은···.
‘···제기랄! 마치 어렸을 적 스승님을 마주한 것 같구나!’
커다란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자신의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았고, 상대의 검은 날카롭게 자신의 신형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로의 검이 마주하지 않았지만, 살벌한 공격이 서로를 향해 연이어 날아들고 있었고 또한 피해내고 있었다. 장군과 멍군이 이어지는 것이다.
“?!”
현검은 어느 순간 상대가 보여주던 검의 수준이 확 뛰어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피잇!
호충의 검에 옷자락이 걸려 잘려나갔고, 등 뒤로 주르륵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호충의 검이 어떤 깨달음을 내포하는지 알아 볼 수 있었다. 그저 알아볼 수만 있었을 뿐이다.
‘불문의 정중동(靜中動)! 매화검법에 정중동을 더했는가!’
샤악.
호충의 신형이 멈칫하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허상! 이쪽이다!’
현검의 검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점하며 막고 있었고, 그리로 갑자기 호충의 신형과 검이 나타났다. 오랜 삶의 경험과 매화검법의 초식이 가는 길을 통해 정중동의 변화를 짐작한 것이다.
째앵!
치이익.
뒤로 주르륵 밀리던 현검은 입을 앙다물고 다시 앞으로 뛰쳐나갔다.
‘···얻어 걸린 것에 불과해! 이러다 진짜 팔이 잘린다.’
막기는 막았지만, 순전히 운으로 막은 것이었다. 다시 저 공격을 허용하면 필패였기에 공격에 나서야 했다.
“하앗!”
[매화명천(梅花明天)]
현검은 매화검법의 절초를 무리 없이 펼치고 있었다.
‘이것이 막히면 그 이후가 없어!’
호충은 허공에 피어난 선명한 매화 한 송이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매화명천. 드디어 화산의 검이 매화를 피우고 있구나!’
현검의 손에서 피어난 매화는 꽃잎을 하나씩 떨구기 시작했고, 곧 무수히 많은 꽃잎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당.
호충의 손에 들린 검이 신들린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모든 강기의 꽃잎을 같은 강기로 쳐내는 것이다.
“허!”
“이, 이것이 태사조님의 매화검법.”
둘은 현검의 손에서 펼쳐진 매화검법의 절초에 감격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을 감격시킨 현검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어찌 다 막는단 말이냐! 어찌!’
자신은 내공의 밑바닥까지 쭉쭉 뽑아내며 강기로 공격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사분지일밖에 살지 않은 어린 호충은 대수롭지 않게 맞받아치며 강기를 분해하고 있었다.
따다다다다당.
현검의 눈에 평온한 호충의 얼굴이 얼핏 들어왔다.
“!”
‘그 와중에 여유까지 있다고? 내공이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인가!’
현검은 자신이 상대하는 호충이 정말 스물이 맞는지 다시 의문이 들었다.
‘이백 살 먹은 노고수라도 이와 같지 않을 것인데···.’
따다당.
계속 붉은 꽃잎의 강기를 쳐내던 호충이 빈틈을 파고들었고, 꽃잎이 계속 흘러나오는 본채를 향해 검을 날렸다.
[광운쾌검(光雲快劍)]
빛살 같은 강기가 매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꽝!
폭발음과 함께 둘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고, 둘은 공터의 끝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
“······.”
멀쩡한 둘과 달리 둘의 대련을 구경하던 현인과 현진은 뿌연 흙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쿨럭.”
“푸후.”
“···더 하시겠습니까?”
“아직 결착이···.”
“이러다 화산의 명예 장문인이 화산의 태사조를 해치게 생겼습니다만? 제가 기사멸조의 죄라도 지으라는 말씀이십니까? 화산과 제가 원수가 되길 원하진 않으시죠?”
“······.”
아까와 같은 광오한 말이었지만, 이젠 광오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만하지.”
‘상위 검초인 매화명천을 하위 검초인 광운쾌검으로 분해한 상대를 무슨 수로 이기나···.’
현검이 검을 내리자 호충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을 내렸다.
“후.”
“다만 한 가지 청은 들어주시게.”
“···또 있으십니까?”
“매화검법은 보았으니, 월하검문의 검도 견식 시켜줘야 하지 않겠나. 무공을 교류하기 위해 매화검법을 내렸다 했으니, 우리도 월하검문의 검을 봐야지.”
“······.”
이미 무환 장문인과 화산의 제자들 일부가 월하답보를 보았으나, 현검은 아니었다. 현검은 월하검문의 검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할 수 없어 무척 궁금했다.
‘대체 월하검문은 어떤 검을 쓸까.’
“보여드리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현경의 고수이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호충은 검을 들었다가 다시 내렸고 월하답보의 마지막 초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월하귀천(月下歸天)]
이들이 서로 대련하던 공터 바닥이 빛을 머금고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둥근 만월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
“!!”
“!!”
초식 명부터가 달빛 아래에서 하늘로 돌아간다는 의미였다.
강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달은 피할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땅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강기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투웅. 슈악!
게다가 그 강기는 빠른 속도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공중으로 피해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
“······.”
“······.”
셋의 시선은 하늘로 쏘아진 강기의 달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빛의 꼬리를 달고 있는 달이 하늘을 향해 쏘아져 나가고 있었다. 마치 달이 있떤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던 셋은 호충의 말에 얼른 고개를 내렸다.
“다시 떨어지게 할까요?”
“···그것도 가능한가?”
“몇 번 정도는 방향을 틀 수 있겠죠? 아예 밑에서 몇 개 더 올려 보낼 수도 있고요.”
“······.”
천상제(天上梯)를 익혀 공중에서 회피해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허공에서 쫓아오는 강기를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현경의 고수가 몇이나 더 있어도 이 초식은 대적불가다.’
“스승님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
현검은 그제야 호충이 일문의 문주가 아닌 후계자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진 공자의 스승이 있다 했었지.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호충을 상대해보니 그 위는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후인이 이 정도라면 문주는 대체···.’
월하검문의 둘이 중원 무림인 전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설 정도였다. 아직 송 영감의 무위가 호충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현검이 어찌 알겠는가.
“···후우. 괜히 잡생각만 많아지는 군.”
호충은 흙먼지를 쓴 현인에게 가서 검을 돌려줬다.
“잘 썼습니다. 도장.”
“······.”
현인은 어색하게 검을 받았다. 호충이 딴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저는 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호충입니다.”
“···허.”
현진은 옆에서 현인의 옆구리를 치며 호충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우리 호충이 다른 사람은 아니지 이 친구야.”
“······그야 그렇지만.”
“헤헤. 예쁘게 봐주십시오. 도장.”
“우리 호충이는···. 예나 지금이나 호충이지. 크흐흐.”
“······.”
현검은 자신의 배분 한참 아래인 현인과 현진 앞에서 웃고 있는 호충을 보고 지금까지의 의심이 부질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정말 젊은 아이였구나.’
환골탈태한 노고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명예 장문인께 인사가 늦었습니다. 현검이 명예 장문인께 인사드리오.”
“···거참. 태사조께서도 이러실 겁니까?”
“아무리 배분이 높아도 화산파에선 장문인이 우선이지요.”
“확 도망칠까보다.”
“크흐흐. 태사조님 앞에선 그러지 마십시오.”
“명예 장문인께선 체통을 지키시지요.”
“또 시작이다! 나 집에 간다고요!”
“푸흐흐.”
“크하하.”
넷은 온 길을 되짚어 다시 화산파 경내로 향했다.
현경의 고수 둘이 대련한 공터엔 남겨진 흔적이 모여 커다란 매화를 그리고 있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