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232)

진시황릉(秦始皇陵)

***

역사에 관심이 없던 호충이지만, 진시황릉(秦始皇陵)의 병마용갱(兵馬俑坑)을 모르진 않았다. 뉴스에도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이다. 또한 삼합회 지부에서 똑같이 복제한 것을 보기도 했었다. 작은 눈과 튀어나온 광대는 그때 봤던 토병(土兵)과 같은 얼굴이었다.

“저, 저것만 나왔어?”

“토기로 제작된 말도 있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도록 묻어두었습니다.”

“하아. 확실하군.”

호충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문주님은 저 유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알지···. 알다마다.”

호충은 이러다 자신이 중원 황실의 유산을 다 털어먹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분명 고대 왕조의 유물이겠지요?”

“정답.”

“제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송 영감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도 아십니까?”

“···중원의 첫 황제국 진(秦).”

“!”

“!”

“!”

모두가 놀랐지만 아직까지는 나라 이름만 나왔을 뿐이다.

“여기가 시(始)황제의 무덤 근처인 것 같다.”

“끄헙!”

“시(始)황제의 황릉(皇陵)이란 말입니까!!”

오래 전부터 진 황제가 묻힌 무덤에 보물이 가득 들어있다는 말이 돌았다. 중원의 수많은 도굴꾼들이 시황제의 황릉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도 찾지 못했다. 당시 도굴을 막으려 황릉 건설에 투입된 모든 인부들을 죽여 입막음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황릉의 건축 기록은 남았지만, 위치는 남기지 않았다.

그런 황릉이 바로 이곳에 있다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황릉(皇陵)은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을 본 따서 지어진 거야. 진짜 황릉은 여기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고, 저와 같은 토병(土兵)이 수천 구는 더 있을 거야. 황제가 죽은 뒤에도 군사를 거느리길 바라고 만든 것이지.”

“후우.”

“지상의 황궁을 그대로 옮겨놨을 거라고 하지. 수은이 흐르는 오천여 개의 강, 수십 개의 망루, 도성과 같이 꾸며진 황릉 내부는 온갖 보물과 병사로 꾸며두었다고 했는데···.”

꿀꺽.

호충은 침을 삼키는 왕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훗. 탐나?”

“고대 황제의 보물이 들어 있다는데 누가 욕심나지 않겠습니까.”

“······.”

호충은 생각에 잠겼다.

‘이걸 파? 말어?’

호충이 알기로 진시황릉은 당시에도 함부로 발굴하지 못할 정도로 귀하게 여겼음을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훼손도 허용할 수 없다며 기술이 더 발전할 때까지 발굴을 막을 정도였다.

‘그런 놈들이 과거엔 고대의 유산을 전부 부수고 불태웠지?’

호충의 기억 어딘가에 박혀 있던 홍위병의 문화대혁명까지 되살아난 것이다. 홍위병이 지워버린 중원 고대의 유산을 나열하자면 책으로 써도 부족했다.

‘그런 놈들에게 과거의 유물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지금 황릉을 발굴해서 보물을 꺼내도 결국은 다 부수고 태워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호충의 간단하게 결론 내렸다.

‘자격 없음.’

현 중원은 진시황의 유물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 유물을 미래까지 온전히 보존하려면 발굴은 불가였다.

“패방주.”

“예. 문주님.”

“이거 도로 그 자리에 묻어.”

“!”

“우린 아무것도 못 본 거다.”

호충의 말은 끝이 아니었다.

“유물은 남기고 대신 보물을 챙긴다.”

“!!”

“!!”

“!!”

유물은 유물로서 가치가 있으니 놔두지만, 보물은 아니었다. 어차피 나중에 발굴해도 권력자들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 뻔했다.

“병마가 묻힌 곳은 놔두고 황릉의 보물만 노릴 것이다. 하오문의 전문 도굴꾼을 전부 모아.”

“옙!!!”

“아. 흠양신 놈도 한 몫 하겠지?”

“큭. 그 녀석은 좋아서 날뛸 겁니다.”

그리고 호충은 보물을 가져가는 대가를 지불할 생각이었다.

“중원 전역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유물을 남기자. 고대 건물은 도면까지 전부 기록으로 남기고,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묘지라면 화공을 불러서 그림으로 남겨. 시(詩), 서(書), 화(畵), 서간, 고서적, 도자기, 조각품을 많이 모아서 여러 곳에 나눠 봉인해. 나중에 후대에서 유실해도 언젠가는 원본을 찾을 수 있도록.”

중원에 돌아다니는 많은 고대의 유물을 일부라도 모아서 세월을 건너뛸 수 있도록 만드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중환과 왕호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문주님. 그건 나라에서 할 일이 아닐지···.”

“나중에 황위에 오르시거든 신하들 시키십쇼.”

하오문에 시킬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아차차. 그러면 되겠구나.”

대계가 성공한다는 가정이 붙긴 하지만 실패하면 죽은 목숨이니 미리부터 이런 일을 실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장은 대계만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지금 유물을 확보하는 것은 인력 낭비에 불과했다.

“그래도 미리부터 좀 모아놓자. 나중에 일이 잘 풀리면 나라에서 비싼 값에 사들일 테니까.”

“오오. 그건 나쁘지 않지요.”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모으지 마라. 시간 지나면 적당히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도 자연의 섭리다.”

“큭. 사라진다고 하시니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사중환이 흠양신과 있었던 일을 떠올린 것이다.

“전에 흠양신 녀석의 안가에 비급을 찾으러 갔는데 말입니다.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았겠습니까? 도둑놈이 도둑을 맞은 게지요. 푸흐하하. 녀석이 범인을 찾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아······.”

그 비급은 호충의 품에 들어 있었다.

“이거 찾었어?”

“······.”

흠양신이 그토록 찾던 비급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오다가 챙겨갔지. 내가 말하고 가져간다는 걸 깜빡했어.”

“찾아서 다행이긴 한데···.”

“흑림방 애들도 신투의 은형술을 익히는 모양이던데, 녀석도 비급은 다 외우고 있지 않았어? 그러니 가르칠 수 있었겠지.”

“···후반부는 너무 난해해서 나중에 익히려고 했답니다. 물론 외우지도 못했고요.”

“별로 어렵지도 않던데···.”

“문주님은 벌써 다 익히셨습니까?”

“익히긴 익혔지. 나한테 안 맞아서 좀 고치긴 했지만···. 은형술과 경공을 조합하기도 했고, 대도신투의 경공도 효율을 끌어올렸지.”

물고 뜯고 씹어서 소화시켰고, 변으로 나와 그 거름을 준 땅이 꽃을 피우기까지 한 다음이었다.

“이러다 대도신투의 이름은 문주님이 이어받으셔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뭐하러 대도신투의 이름을···..”

하지만 생각해보니 자기보다 대도신투에 어울리는 인물은 없었다.

‘우선 전대 황실의 비고를 털어먹었지.’

전대 황실 비고를 털며 비급을 익히기 시작한 자신이다. 시작부터 도둑질이었다.

‘걸핏하면 패주들 주머니를 털었지···.’

패주들뿐이겠는가. 산채도 몇 번이나 털어먹었고, 가출할 때는 집도 털어먹었다.

‘이번엔···.’

진시황의 무덤을 털어먹으려고 준비 중이었다. 전대 황실의 보물만 두 번이라 할 수 있었고, 자잘한 도둑질을 더하니 신투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다고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신투의 이름을 이어받은 흠양신의 안가까지 털어먹었으니, 이미 신투를 넘어선 것은 확실할 것이다.

“뭐···. 따지고 보면 도둑으로서의 명성은 내가 더 높겠다.”

“푸흐흐. 무공의 전인으로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녀석은 자신이 대도신투의 무공을 온전히 익혀 신투가 아닌 대도신투가 되겠다고 했었습니다.”

“되라고 해. 누가 말린다니?”

“하지만 아무래도 문주님은 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미 대도신투의 무공을 대성하고 그를 넘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셨으니 따라잡을 방법이 없지요.”

“제깟 놈이 나를 무슨 수로 넘어?”

“하하. 제 말이 그 말입니다.”

“비급은 흠양신에게 도로 갖다 주고···.”

호충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어 중요한 말을 뱉어냈다.

“하오문에 문주가 없으면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잖아. 방주들이 언제까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사중환은 패방주 겸해서 부문주로 올라서.”

“!!”

“송 영감은 태상방주로 직함으로 일하자. 어차피 지금 맡고 있는 방도 없잖아.”

“태상방주라···. 어감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허허.”

“나 없으면 둘이 의논해서 결정하고 밑으로 지시를 내려. 송 영감은 생각이 깊고 그릇된 판단을 잘 하지 않으니 부문주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래.”

“···문주님.”

사중환은 갑작스러운 호충의 말을 듣고 크게 감격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흑림방에 밀리는 것은 아닐까 마음을 졸인 적도 있지 않았겠는가. 지금은 자리 욕심을 내려놓은 상태였지만, 부문주라는 직함은 다시 사중환의 가슴을 세차게 뛰게 만들었다.

“부문주. 지금 울면 왕호 놈이 평생 놀려먹을 걸?”

“···제, 제가 언제 울었다고 그러십니까!”

“진짜 울었소? 어디 봅시다.”

“아니야!”

“큭. 어쨌든! 시황제의 무덤은 패방주···. 아니 부문주가 태상 방주와 함께 발굴하도록. 기관장치가 무수히 많을 것이니, 죽고 싶지 않으면 조심하라고 해.”

“······.”

“아. 그리고 수은(水銀)을 특히 조심하고.”

이들은 모르지만, 호충은 수은의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황릉 내부에 오천 개의 수은 강이 흐른다는 말을 전부 믿을 수는 없지만, 시황제의 무덤으로 예측되는 곳에서 수은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황릉에 수은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추측되는 이상 조심해야 했다.

“수은은 약재로 쓰이는 귀한 물건이 아닙니까.”

“······.”

수은 강이 있기라도 하면 뛰어들어 수은을 뒤집어쓸지도 몰랐다.

“···수은이 예쁘긴 하지만, 약재로 쓸 건 아니지. 내가 영단 만들 때 수은 넣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를 했잖아. 기억 안나?”

영단을 만드는 재료 중에도 수은이 있었다. 서적에 적힌 대로 만들었다면 분명 수은이 함유된 영단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하지만 호충이 절대불가를 외치는 바람에 수은을 빼고 영단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시황제도 수은이 불노불사를 가능케 하는 약제라며 귀하게 여겼는데···.”

“그래서 시황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어?”

“······.”

“······.”

“······.”

죽어서 무덤을 남겨두었고, 바로 근처에 시황제의 무덤이 있었다.

“손으로 만져도 몸에 흡수되진 않아서 괜찮지만, 만약 상처를 통해서 몸 안으로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지옥이야. 수은은 그 자체로 독이거든. 한번 몸 안으로 들어가면 빼낼 수도 없어. 아마 시황제도 수은 중독으로 죽었을 걸? 수은을 약으로 만들어서 수시로 먹었으니까. 불노불사의 약이라고 믿었던 수은의 통렬한 배신이라고 할 수 있지.”

“!”

“!”

“!”

“일정 이상의 수은이 몸에 들어오면 온 몸이 마비되고, 피부가 썩어 들어가. 조금만 들어가도 다르지 않아 어느 순간 발작을 일으키고,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지. 수은으로 파생되는 모든 질병은 불치병(不治病)이야. 모두를 평등하게 죽음으로 내몰아.”

“조, 조심하겠습니다.”

“만지지만 않으면 되겠지요?”

“만져도 된다니까?”

“······.”

“그런데 수은의 강이 흘렀을 황릉 내부는 어떻겠어? 천 년이 넘도록 수은의 강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대기 중에 유독한 연기가 가득 고여 있을 거야. 이게 가장 위험한 거야.”

“그럼 유독한 연기를 빼내야···.”

“맞아. 황릉을 열었다고 바로 들어가면 끝장이야. 달포 이상 유독한 연기를 빼내고 나서 작은 동물을 끈에 묶어서 독성 연기가 남았는지 확인하고 들어가야 해. 최소한 일주일은 넣었다 뺐다 해야 할 거야.”

“후우. 흠양신 놈은 뒤도 안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갔을 겁니다.”

“그 새끼는 객사하기 딱 좋다니까.”

호충은 수은 말고 또 위험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전에 황궁 비고에서 봤던 물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황릉에 위험한 물건이 또 있어.”

“아직 황릉을 열지도 않았는데······.”

“어찌 다 아신단 말입니까?”

“설마 미리 다녀오신 것은 아니시죠?”

열어서 보지 않아도 훤히 예상되는 걸 어쩌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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