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
호충이 능글맞은 얼굴로 마화평과 진휘평을 보며 손을 들었다.
“진형도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아버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속 모른다고 하시면 됩니다.]
호충의 듬직한 전음에 진휘평도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녀석···.’
호충이 다가오자 장문소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이 자가 바로 하오문의 문주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뭐라!”
‘그럼 그때!’
마화평의 고개가 진휘평을 향해 휙 돌아갔다.
“저자가 하오문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걸 내가 어찌 알았겠소?”
진휘평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발뺌했지만, 이미 묵혈단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호충은 마교의 무력단이 자신을 에워싸는 와중에도 평온하게 입을 열었다.
“왕형. 왜 이러시는 거요?”
“···계획적으로 접근했더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름만 같은 줄 알았더니···.”
이미 마화평은 마공을 끌어올리며 하오문주를 향해 출수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형님들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했더니···. 환영이 과하오?”
“순순히 내 손에 잡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지 말고 전처럼 술이나 한잔 합시다. 예?”
호충은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은 것처럼 일행을 향해 다가섰고, 그 순간 장문소와 마화평이 출수했다.
쑤앙. 사악.
검은 기운이 두 갈래로 날아드는 와중에도 호충은 웃으며 걷고 있었다.
“참 별스러운 일입니다.”
호충의 걸음은 여전했지만, 신형은 잠시 흐릿하게 흔들렸다. 검은 기운은 호충의 신형을 통과해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근래 유행하는 새로운 인사법이오?”
“!!”
“!!”
“내가 하오문주라는 걸 알았으면, 또 무신(武神)이라 불리는 것을 들었으면, 이렇게 가볍게 인사를 해서야 쓰겠소?”
호충의 손엔 어느 틈에 유엽비도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아! 두 분께 인사를 받았으니, 나도 두 자루로 화답해 드려야 옳겠군.”
다른 손에 유엽비도 하나를 더 잡은 호충은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출수했다.
쐐에엑.
묵혈단 마인들의 무공 수위가 얕지 않았지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두 자루의 유엽비도는 주변을 둘러싼 마교도를 둥글게 돌며 위용을 자랑했다.
츄아악. 촤악!
그들의 목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을 마주한 것이다.
“안 돼에!!!”
“네 이노옴!”
부하들의 죽음을 보고 분노에 가득해 호충에게 달려들던 둘은 후다닥 걸음을 멈춰야 했다.
“!”
“!”
멈춘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뒤로 빠르게 물러서기까지 했다.
“물러서라! 방비하라!”
달랑달랑.
호충의 두 손에 비도가 또 들려 있었던 탓이다. 두 자루의 비도는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왕형. 더 없소? 인사할 부하들이 있다면 더 부르시구려. 아직 내 비도는 충분하다오.”
“네, 네 놈이 감히 우리의 행사에···.”
“누가 들으면 왕형이 뭐라도 되는 줄 알겠소? 나야 하오문의 문주라는 거창한 직함이라도 있다지만, 왕형은 상인이라 하지 않으셨소?”
호충의 말에 장문소가 울분을 삼키며 말했다.
“으득. 네 놈이 지금 적으로 삼은 곳을 안다면···.”
자신이 적은 삼은 곳도 모르고 어찌 살수를 날렸겠는가. 호충은 이미 마음을 먹은 참이라 숨김없이 입을 열었다.
“마교가 언제부터 그리 대단했다고?”
“!!”
“!!”
“왕형. 나 하오문주라니까? 내가 중원 무림에서 모르는 일이 있겠소?”
“네 이놈! 너는 신교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호충은 자신의 출신을 인정하는 마화평의 말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는 봐준 줄 알겠네? 큭큭.”
마화평은 금제했던 마공을 모조리 풀어내며 말했다.
후웅.
“···지금부터는 봐주지 않는다.”
“음. 왕형은 그렇다 치고, 너는 노냐 새끼야? 빨리 준비 안 해?”
호충은 마화평이 힘을 끌어올리는 중에도 장문소를 향해 타박할 여유가 있었다.
타앗!
마화평은 호충이 입이 더 열리지 않도록 빠르게 쇄도했다. 마화평의 손바닥이 검은 기운을 풀풀 풍기며 날아들었다.
“이크.”
호충은 두렵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며 뒤로 빠지는 듯했다.
‘잡았···.’
하지만 마화평은 자신의 손바닥이 몸에 닿을 찰나에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환영을 느낄 수 있었다.
“!”
사라진 상대의 목소리는 뒤쪽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너는 왜 노냐고 새끼야. 형이 물으면 곧장 대답을 해야지.”
“!”
호충은 어느새 장문소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화평의 장법이 닿는 순간에 오히려 앞으로 뛰쳐나가며 신형을 교차한 것이다.
장문소의 검이 뽑히고 다시 그어지기까지 찰나에 불과했지만, 호충이 신형을 빼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슈각.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 않나? 자. 형이 다시 알려줄 테니까 다시 출수해볼까?”
호충의 손은 장문소의 한쪽 어깨와 검을 잡은 손에 닿아 있었다. 마치 스승이 검을 지도하는 모양새였다.
‘이익!’
장문소의 꼭지가 돌게 만들기에 충분한 비아냥이었다.
“!”
‘내, 내 몸이!’
문제는 자신의 신형이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었다. 바로 옆에 적이 있는데 자신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전에 신투 흠양신에게 사용했던 수법과 동일한 내가기공의 운용이었다. 호충의 손을 통해 전해진 웅혼한 기운이 장문소의 내부에 침투해 육체의 자유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네 이놈!”
자신의 장법이 무위로 돌아가 크게 분노한 마화평이 다시 호충에게 쇄도했고, 장문소는 호충의 착실한(?) 지도에 충실히(?) 따르기 시작했다.
“웃차. 왕형 조심하기요.”
슈악!
갑자기 아래에서 올려친 장문소의 검이 마화평을 대경하게 만들었고, 호충과 장문소는 보법까지 밟아가며 검을 날리기 시작했다. 마치 둘이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검을 날리고.”
샤샥.
“으헛!”
“뒤로 물러섰다 싶으면 조금 깊은 공격을 날려서 다시 선기를 잡아야···.”
슈욱.
“으흑. 어서 빠져 나와라! 왜 녀석과 함께 움직이느냐!”
‘나도 원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마화평을 향해 검을 날리는 장문소도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날 죽여주시오!’
그의 마음을 읽었을까. 마화평이 호충의 손에 잡힌 장문소를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둘을 모두 범위에 두고 있는 악독한 장법이었다.
[명왕장!]
“오호.”
호충에겐 너무나 익숙한 장법이었다. 스승들에게 얼마나 많이 당해본 수법인지 모른다.
“너 저거 막아볼래? 너와 같은 일행이니 어렵지 않겠지?”
“······.”
호충은 장문소의 답도 듣지 않고 날아오는 명왕장을 향해 녀석을 던져버렸다.
퍼엉.
“꺼억!”
막힌 혈이 바로 풀리지 않았기에 장문소는 명왕장의 공격을 정면으로 맞고 말았다.
장문소라는 방패가 없어지자 호충은 얼른 다른 상대를 찾았다.
“진형도 마교에서 한 가락 하시오?”
“!”
쐐애액.
“으앗!”
진휘평은 자신에게 날아드는 비도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눈을 감고 손을 들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대경한 마화평은 앞뒤를 따질 시간도 없이 진휘평에게 몸을 날렸다. 앞으로 대계를 실행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슈욱. 푸욱.
호충의 비도가 마화평의 복부 깊이 파고들었다.
“어이쿠. 마교에서 진형이 윗선이었나? 그럼 내가 가만있을 수 있겠소?”
호충이 품에서 다른 비도를 꺼내들고 있었다.
“끅. 그, 그만! 대인에겐 손대지 마라!”
자신이 멀쩡하다면 어떻게든 상대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비도를 맞았고, 그 와중에 진휘평까지 지켜내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었다.
“거참. 왕형. 내가 시작하지 않았소만?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왕형이 먼저 부하들을 보내고 날 향해 출수하지 않았소? 이 동생의 진심을 몰라주시다니···.”
“···이제 그만하자. 우린 이대로 물러서겠다.”
“그렇다고 왕형이 끝내라는 소리는 아니었소. 큭큭.”
“······.”
마화평은 비도를 맞았으면서도 흘러나오는 피를 지혈하며 진휘평의 앞을 굳게 지키고 있었고, 호충은 비도를 위로 던졌다가 받으며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여유로 보이고 있었다.
휘리릭. 턱.
“왕형. 마교가 그리 좋소?”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모르니 물어보지 않겠소? 그가 누구라고 목숨까지 바칩니까?”
호충은 비도로 진휘평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자가 마교의 교주라도 됩니까?”
호충은 여전히 진휘평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야 아버지를 지킬 수 있어.’
자신이 처음부터 진휘평을 확보하고 지키려 했다면 낭패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나, 오히려 공격함으로써 마교가 아버지를 지키게 만든 것이다.
“함부로 교주님을 부르지 마라. 네 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분이다.”
“주변에 듣는 놈이 많아서 그런가? 말씀을 안 하시네.”
호충은 남아 있는 마교의 마인들을 향해 가볍게 출수했다. 비도를 연달아서 출수하는 모습은 마치 손이 여럿 달린 천수관음불처럼 보였다.
“아, 안 돼에!!”
슈아앙!
비도는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움직이며 마교도의 목숨을 거두고 있었다.
촤자작. 촤악!
몸으로 비도를 맞고 진휘평의 앞을 지켜야하는 마화평은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교의 묵혈단이···.”
“묵혈단이라. 좋은 이름이오. 이제 그 이름처럼 피를 토하고 과묵해졌군.”
남은 것은 마화평과 진휘평. 그리고 진휘평 곁을 지키는 둘이었다.
“남은 것은···.”
우득.
“어이쿠. 이 녀석이 여기 있었네?”
마화평의 명왕장에 맞아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장문소는 방금 호충의 발에 목이 부러졌다. 실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방금까지 다섯이었는데, 이제 왕형까지 넷입니다.”
“으득. 신교는 네 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언제는 용서할 생각이었소? 아까부터 자꾸 내가 마교를 모른다고 생각하시는데···.”
호충은 처음으로 살기를 드러냈다.
“처음부터 날 살려둘 생각도 없으셨잖아?”
“······.”
“나의 살아 남기위한 발버둥이 조금 강할 뿐. 내가 약했다면 땅바닥에 몸을 누인 것은 저들이 아니라 나였겠지.”
“저 놈은 내가 맡는다. 너희는 대인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예!””
타앗.
눈이 붉게 충혈된 마지막 묵혈단원 둘이 진휘평을 데리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호충은 진휘평을 쫓을 생각도 없었는지 느긋하게 인사를 건넸다. 잔뜩 일어났던 살기도 어느새 사라진 다음이었다.
“진형 잘 가시오. 나중에 또 만납시다.”
“······.”
이제 남은 사람은 마화평과 호충 단 둘이었다.
“휴우. 이제야 조금 편해졌네. 왕형. 괜찮소?”
“가증스러운 녀석.”
“에헤이. 마교에서 중요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냥 놔줬잖소. 이 얼마나 자비로운 처사요?”
“내가 끝일 것 같으냐? 신교는 너를 잡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왕형은 나 말고 지금 진행 중인 역천에나 신경 쓰시지?”
“!!”
“큭큭. 내가 마교를 아는데, 진 왕야와 대계를 모를 건 또 뭐요? 변방의 장군들은 잘 만나고 오셨소?”
“네, 네 놈은 일부러 왕야에게 비도를···.”
“왕형이 막아설 줄은 나도 몰랐지. 덕분에 마교의 장로를 손쉽게 잡겠소?”
“내가 장로라는 것까지 안단 말인가···.”
“···왕형 이름이 마화평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이제 마형이라고 불러드리리까?”
“!!”
‘대체 이 녀석이 모르는 것이 무엇이냐!’
자신이 신교의 장로라는 것은 마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이름은 교에 깊이 관여한 교도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 없었다.
“누구냐! 누가 신교를 배신한 것이냐!”
호충은 마화평을 놀릴 생각에 입을 열었다.
“아마도 산서(山西) 신강(新絳)의 검은 전각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시커먼 놈이겠지요.”
산서성 신강에 위치한 검은 전각은 곧 교주가 기거하는 장소였다.
“!!”
‘신교의 교단이 위치한 곳까지···.’
호충은 품에서 회칼을 꺼내들었다. 마지막 때가 다가온 것이다.
“···네 놈은 신교가 가장 경계해야할 적이었구나.”
“서안에서 마형을 만난 것은 우연일 뿐이었소. 마형 덕분에 많은 것을 알아냈지. 얼마나 연기가 어설프던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소.”
“!”
“나를 신교의 본부까지 안내한 사람은 바로 마형이오. 교도들의 인사까지 받으면서 교주를 보러 가는 마형의 뒷모습이 참으로 흥미로웠소.”
“···그럼 나 때문에.”
“이제 모든 의문이 풀리셨을 것이니 이승에 미련 남기지 말고 편히 가시오.”
호충이 결착을 보기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혼자 가진 않을 것이다.’
마화평은 지혈하던 자신의 복부에 꼽혀 있던 비도를 잡았다.
츅!
마화평은 곧장 비도를 뽑아 출수했고, 이어 다른 손에서 미세한 기운을 날렸다. 은밀한 기운이라 정파 무림의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자신하는 수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