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32)

북선기루

***

“진가장의 전대가주 진원우는 문주님의 친부가 아니오. 진가장은 그저 문주께서 잠시 머물다 오신 장소일 뿐이지요.”

이미 몇몇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

“······.”

하지만 몰랐다하더라도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하오문의 문주인 호충이 진가장 사람이면 어떻게 아니면 또 어떻겠는가.

“문제는 문주님의 진짜 혈육이오.”

“······.”

“······.”

“······.”

문주 호충의 친혈육에 관한 일은 오직 송동석만 알고 있었다. 오늘 회의는 이것을 전하기 위해 소집한 것이다.

“유 단주. 지금까지 그대가 알아낸 것과 하고 있던 일, 문주님께 들은 정보를 말해주게.”

“예. 어르신.”

유도영은 지금까지의 일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저는 남경에서 움직인 일련의 인물들에 관해 조사했으며, 이를 문주님께 전달했습니다. 현 황제의 동생인 진 왕야께서 오랜 칩거 끝에 다시 등장하여 세력을 모으고 있으며, 문주님은 이 일에 깊이 관여하려 마음먹고 계십니다.”

“······.”

“······.”

“······.”

이것도 대부분 아는 정보였다. 민감하기 그지없는 역천에 관한 일이지만, 이미 발을 담근 다음이라 되돌릴 방법도 없었다.

“또한 저는 진가장 전대가주 진원우의 부고에 진가장으로 가서 조문하였으며, 진가장의 현 가주들과 금전 계약을 맺었습니다. 향후 진가장을 복속시키기 위한 일입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문주 호충이 진가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진가장 별채에 머물게 되었는데, 거기서 문주님의 필체를 보고 진가장의 막내와 문주님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나름 능력은 있군.”

“감사합니다. 패방주님. 이어서 말씀드리지요.”

유도영은 문주와 만나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꺼냈다.

“진가장에서 돌아와 문주님께 일의 경과를 보고 드리던 와중에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저는 어르신을 뵈러 갔고 아직까지 답을 듣지 못한 상황입니다. 문주님께서는 제가 역천에 들러리가 아닌 주도권을 갖기를 원한다는 뜻을 아시고···.”

“주도권?”

“문주님을 관직에라도 앉히고 싶은 거야?”

“우리가 하오문이라는 걸 잊었나? 밑바닥 인생에게 관직이라니···.”

“···관직은 좀 그렇지요. 그저 하오문이 황궁과 관부로부터 핍박받지 않는 정도가 족하지 않을지···.”

다들 주도권이라는 말이 관직을 받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반대의사를 표했지만, 유도영은 표정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겨우 황제가 내려주는 관직이나 받으라고 주도권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문주님께서 직접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 요청 드렸습니다.”

주도권의 뜻이 달랐다. 나라의 황제가 되어달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

“!!”

“!!”

“······.”

다들 놀란 와중에 송동석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문주님께 크게 혼날 각오로 드린 말씀이었는데, 저는 믿기 힘든 답을 들었지요.”

[네 자리에서 가만히 기다려라. 네가 원하는 일은 언젠가 이뤄질 것이다.]

“자, 잠깐 문주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가가는 자리에 연연하는 분이 아니신데···.”

“오히려 귀찮아하실 분이 아니던가.”

“···다 뜻이 있으셨겠지.”

“뭐든···. 문주님의 뜻대로.”

“저는 문주께서 이 말씀을 하신 연유를 어르신만 알고 계신다하여 찾아갔습니다.”

유도영이 송동석을 돌아보자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문제로 인해 내가 하오문의 중추를 소집한 것이오. 이제 모두가 알아야할 때가 되었소.”

송동석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며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황제의 동생이며 지금 세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진휘평 왕야. 그 분이 바로 문주님의 친부이시오.”

유도영이 가진 모든 의문이 단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 그래서!!!”

나머지 방주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럼 문주님이 황실의 직계···.”

“어쩐지 문주님을 뵈면 절로 고개가 숙여지더라니···.”

“가가께서···. 황실의···.”

“문주님을 주군으로 모실 이유가 또 늘었습니다.”

“···전부터 귀티가 철철 흐르셨지요.”

송동석의 입에서 과거에 벌어졌던 일련의 일들이 상세하게 풀려나왔다.

“현 황제는 진 왕야의 양보로 황위에 올랐으면서도 동생인 진 왕야를 죽이려 했고, 그 일로 인해 도주하던 진 왕야는 마님과 헤어지게 되었소. 이후 마님께서는 황군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겨야 했고, 이미 태중에는 왕야의 손이 자라고 있는 와중이었소. 바로 문주님이시오. 나는 마마를 모시고 진가장에 들어갔고, 이후의 일은 그대들도 알 것이오. 마마께서는 왕야의 아드님이신 우리 문주님이 본래의 성을 버리지 않기를 원하셨기에 그 개차반 같은 인성의 인물들이 가득한 진가장으로 가신 것이오. 그리고 결국···. 그곳에서 숨을 거두셨지요.”

“······.”

“······.”

“······.”

“······.”

“······.”

“대계가 성공한다면 진 왕야는 황제의 위에 오를 것이고, 문주님은 태자가 되시오. 본래의 자리로 가시는 셈이지요.”

송동석의 입에서 전해진 문주의 진실한 정체에 다들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한사람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후우.”

“······.”

송동석은 루방의 화진이 어째서 한숨을 내쉬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문주님과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요.’

“앞으로 일을 진행하자면 더 알아야 할 일이 있소.”

지금까지 하오문에 모인 모든 정보와 문주 호충이 전해준 정보를 취합하며 나온 결과물이었다.

“진 왕야께서 지금까지 칩거하신 것은 자의가 아니셨소. 황제의 핍박도 핍박이지만, 진실은 조금 다르오. 지난 황궁 혈사에서 몸을 빼내시던 왕야께서는 마교의 손에 붙잡혀 최근까지 감금상태에 있었소. 괜히 우리 하오문이 마교를 적대하는 것이 아니오.”

“!”

“문주께서 서안에 모습을 드러낸 진 왕야와 우연히 마주치는 바람에 모든 것이 드러났소. 문주께서는 마교도가 아무리 잠룡진으로 내공을 감춰도 알아 볼 수 있는 분이시라 마교도를 알아보고 뒤를 쫓았소. 그날 문주께서는 친부를 만나셨고, 이후 마교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는지 파악하셨소.”

지금 진휘평이 진행 중인 역천에 마교가 함께하고 있다는 정보가 이어졌고, 앞으로 하오문이 해야할 일에 관해서도 설명했다. 방주들은 함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송동석의 말에 집중했다.

“···아직 하오문이 마교를 상대하긴 버거운 것이 현실이지만, 대계가 실행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소. 하여 하오문은 무림의 비급을 각 방파에 돌려주고 영단까지 공개하며 실력을 키우길 바란 것이오. 이들을 통해 마교를 상대하며 시선을 분산시키고, 우리 하오문은 진 왕야 곁을 감시하는 마교도를 정리할 것이오. 그러자면 흑림방과 패방의 무력, 루방과 개방 그리고 정보단의 연계가 필수적일 것이오. 흑림방과 패방은 휘하 문도를 늘리며 동시에 마교를 상대할 정도로 실력을 향상시켜야 할 것이고, 루방과 개방은 중원 전역의 정보를 모아 분석하고 정세를 파악해야 할 것이오. 나머지는 문주님의 지시에 따르면 될 것이니, 여기까지만 하겠소.”

“···안 그래도 문주님께서 흑림방의 인원을 삼천까지 늘리라 하셨지요.”

“정보단도 루방과 개방에 협조하라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워낙에 영민하신 분이니···. 문주님이 다스리실 이 나라가 기대되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오.”

“······.”

“······.”

“······.”

“······.”

“······.”

“그러자면 지금까지 전달한 모든 정보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야 할 것이오.”

“어르신. 여기에 입 가벼운 놈은 하나도 없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하오문의 중추가 아니던가. 모두가 문주를 하늘처럼 받드는 이들만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내가 어찌 모르겠소. 이 늙은이의 지나친 걱정이겠지요.”

모든 비밀을 털어놓기 때문인지 송동석의 얼굴은 후련해보였다.

“이제 문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우리 자리에서 충실히 임무를 이행해야 할 것이오. 모두 돌아가서 직분에 충실 합시다.”

모두가 송동석에게 인사하고 나서는 중에 처연한 표정으로 일어서는 화진을 불러 세웠다.

“루방주께서는 잠시 저를 보시지요.”

“···예. 어르신.”

.

.

.

손수 차를 끓여 내온 송동석이 화진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내려놓았다.

“심란하시지요?”

“···예.”

“문주께서 루방주께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가가께서 진가장의 핏줄을 잇지 않았다는 말에 오히려 저는 기뻤어요. 가가와 저의 인연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화진은 언제나 자신이 기루의 여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번엔 황실이라니요. 제가 어찌 심란하지 않겠습니까.”

곧 태자와 맺어진다는 모용가의 여식도 황궁 대신들의 반대가 있었다고 들었다. 향후 국모가 될 여인의 가문이 문이 아닌 무를 숭상하는 무림방파라는 이유였다. 하물며 그마저도 없는 자신은 무슨 수로 태자의 부인이 될 수 있겠는가.

“진가장도 너무나 높은 벽으로 느껴진 접니다. 제게 황실은 아무리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질 않는 만장단애랍니다.”

연인이 먼 길을 떠난다는 말에 얼른 뒤따르고자 하오문 본단으로 달려왔는데,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을 줄은 몰랐다.

“···이제 저는 어쩐답니까. 흐흑.”

“문주님은 루방주를 지켜주실 분입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저를 위해 진가장을 뛰쳐나온 분이지요.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황실. 그것도 향후 황제의 위에 오르실 분께 저는 존재해서도 안 될 사람입니다.”

“제가 아무리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군요.”

“······흐흑.”

“루방주. 문주님을 찾아가세요. 가서 직접 확인하세요.”

“제가···. 그이 곁으로 가도 될까요?”

“문주님은 루방주가 아닌 누구도 곁에 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문주님을 믿고 함께하세요.”

“······.”

송동석은 여전히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하는 화진에게 한 가지 방책을 던졌다.

“따지고 보면···. 문주의 부친인 진 왕야는 아직 황위를 되찾고자하는 역적에 불과합니다. 황제에게 쫓기는 도망자 신세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럴 때 점수를 따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문주님과 함께 가서 루방주의 능력을 보여드리세요. 어려울 때부터 함께한 며느리를 내칠 시아버지는 없습니다.”

“당장 출발하겠어요!!”

작은 희망이 보이고 있었다.

“허허. 문주께서 어디까지 가셨는지부터 확인하셔야지요. 워낙에 발이 빠른 분이라···.”

“가가와의 연락은 기루를 통해 계속 유지하기로 했어요. 목적지도 확실히 파악하고 있으니, 가가와 만나지 못할 일은 없답니다.”

“하오문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서찰을 보내주세요.”

“말씀 고마워요. 어르신. 덕분에 힘이 났어요.”

“별말씀을···. 하오문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겠습니다.”

“아! 남은 고급 영단이 있다면 챙겨가도 되겠죠?”

방주급에 주었던 고급 영단은 오직 하나밖에 남지 않았지만, 누가 먹을 영단일지 뻔했기에 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마침 하나 남아있는데, 제 주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헷. 다행이다.”

“문주님께서 이 늙은이가 입이 가볍다며 탓하실 일만 남았습니다 그려.”

“아니어요. 잘 하셨어요. 우리 방주들이 모르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죠. 그간 혼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을지 저는 짐작도 못하겠어요.”

“이 늙은이는 문주님의 뜻을 관철시키려 노력할 뿐입니다.”

“어르신이 혼나지 않게 제가 잘 말씀 올릴게요.”

“그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물론이죠.”

서안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사 두 마차 여럿이 서안을 빠져나갔고, 그 중간에 위치한 마차에는 곱게 차려입은 화진이 타고 있었다.

‘가가. 제가 갑니다.’

***

“신투 덕분에 고생을 덜었군.”

호충은 호북에서 하남을 지나 하북의 목적지까지 도착하는데 불과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존의 경공으론 최소 십일 이상 소요되었을 일이었다. 가끔 마을에 들른다지만, 대부분은 산을 타고 산중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고생을 덜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어디보자.”

번화한 성읍에서 호충이 찾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기루였다.

“전에 왔을 때 접수한 기루가···.”

이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하북의 흑패를 접수하며 화진과 함께 하기도 했었던 곳이다.

“옳지. 저기였구나.”

하북 승장에서 가장 큰 기루였다.

호충은 한적한 기루에 들어가 점원을 불렀다.

“게 있느냐.”

점원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개시 전이오. 유시(酉時) 이후에 다시 오시오.”

“기루 주인이나 불러라.”

그제야 고개를 돌려 호충의 얼굴을 확인하는 녀석이다.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양반···.”

“너였어? 오늘 북선기루 당번은 네가 맡았느냐?”

“······.”

점원이라 생각했던 인물은 승장흑패의 조직원 중 하나였는데, 호충이 승장흑패를 정리하며 얼굴을 익힌 적이 있었다. 각 지역의 흑패는 기루를 보호하려고 몇몇이 돌아가며 번을 섰는데, 오늘은 이 녀석 차례인 모양이었다.

“네 이름이 담종이라고 했었지?”

“컥!”

담종은 부르르 몸을 떨다가 얼른 바닥에 엎드렸다.

***

대면

***

담종은 부르르 몸을 떨다가 얼른 바닥에 엎드려 인사했다.

“무, 문주님을 뵈옵니다.”

담종은 승장흑패 전원이 하늘로 솟구쳐 나가떨어지던 그날이 다시 떠올랐다. 지독하게 운이 나쁜 날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천하에 없을 기회를 잡은 날이라 기억하는 날이다. 그날부터 승장흑패는 하오문에 속하게 되었고, 승승장구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무신(武神)께서 다시 행차하시다니!’

이후 승장흑패에 계속 남을 수 있었던 조직원들 사이에서 하오문주를 칭하는 말이었다.

무신(武神).

무공 수위가 신(神)에 이른다는 의미의 별호였다.

“누가 본다. 일어섯!”

“옙!”

“저기 앉아.”

“옙!”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담종을 앉히고 호충도 자리에 앉았다.

바짝 긴장한 담종은 두 주먹을 무릎에 올리고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수련관은 다녀왔고?”

“이십기(二十期)를 수료했습니다! 문주님!”

담종이 문주를 마주하고 앉은 것은 이등병이 합참의장을 마주한 것과 같았다.

“내가 한창 바쁠 때 다녀갔네. 옥 관주가 잘 해줬지?”

“옙! 관주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덕분에 제가 이십기(二十期) 우수 수료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랬어? 이야. 이제 좀 치나보다? 응?”

“아직 멀었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흐흐. 너희가 하오문의 보물이야. 몸 아끼고 열심히 수련해.”

“옙!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기루 주인은 어디 갔어?”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문주님.”

“그럼 나 여기서 기다린다.”

“옙!”

담종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 기루 내실로 들어갔고, 대표기녀의 방으로 향했다.

“지금 어딜 들어가욧!”

대표기녀의 방을 막아선 기녀가 있었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비켜!”

“꺄윽!”

드르륵.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직 단장을 끝내지 않은 대표기녀가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다.

“···무례라는 걸 아는 사람이 왜 이러셨을까? 갑자기 육욕이라도 동하셨소?”

노회한 루주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나이가 들어 누구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으니, 젊은 사내의 방문이 반가웠던 까닭이다.

“무신께서 오셨습니다. 당장 가셔야 합니다.”

“무신? 무림에서 그렇게 거창한 별호를 쓰는 무림인이 있었나요?”

“···아.”

승장흑패 조직원들에게나 통용되는 별호라 기녀들에겐 생소한 탓이다.

“아무리 무림인라도 그렇지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문주님이 행차하셨습니다. 당장 내려갑시다.”

“···무, 문주님이?”

“빨리 안 내려가 갑니까! 문주님이 기다린다고 하셨단 말입니다!”

“아, 알았어요. 지금 가죠.”

***

“문주님을 뵈옵니다. 북선기루의 루주인 임소란이라 하옵니다.”

“······.”

호충은 아직 화장도 끝내지 못한 대표기녀의 몰골에 담종을 돌아봤다.

“너는 사람이 융통성이 없냐. 루주가 아직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조금 늦게 온다고 하면 될 것을···.”

“죄송합니다. 문주님.”

“아, 아니옵니다. 어찌 제가 문주님의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겠사옵니까.”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여유가 있으니 그대는 가서 천천히 단장하고 나오시게. 느긋하게 준비해도 된다는 뜻이네.”

“그럼 술상을 먼저 들이겠습니다.”

“어휴. 난 기루에서 술 먹으면 큰일 나는 사람이라···. 먹었다고 치세.”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아직 루방주한테 얘기 못 들었나?”

임소란은 북선기루에 다녀간 루방주 황화진의 서슬 퍼런 경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문주님께 꼬리치는 년은···. 발가벗겨서 거리로 내보낸다. 여기에 예외는 없어.]

루방주는 당시 그 말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었던 단검을 구겨버렸었다. 말로만 거리로 내보낸다고 했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문주님께 꼬리치면 분명 방주님 손에 죽을 거야.’

문주에게 꼬리칠 마음은 애초에 갖은 적도 없었다.

“저희가 문주님께 어찌 삿된 마음을 품겠습니까. 그저 뭐라도 대접을 하고 싶은 마음이지요.”

“그럼 간단하게 먹자고. 백주 하나랑 간단한 요리 하나만 가져와.”

“예. 문주님.”

호충은 가장 저렴한 백주를 홀짝 거리며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 새끼는 또 뭐 하러 패주까지 부른다고···.”

같이 한잔 할까 싶었던 담종이 패주에게 알려야 한다며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일문의 문주가 왔으니, 패주는 당연히 와서 인사를 해야할 일이었고, 이곳의 패주는 사사로이 담종의 백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에잉.”

호충이 홀로 자작하던 중 담종이 돌아왔다.

“문주님. 잠시 밖으로···.”

“무슨 일이라도 있어?”

“패주께 문주님의 방문을 알렸사온데, 다른 승장흑패의 조직원들까지 모두 문주님을 뵙고자 밖에 몰려드는 바람에···.”

“······.”

담종에게 이곳에 비밀스럽게 왔다고 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에효.”

호충은 북선기루 밖으로 나가며 별일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승장흑패의 조직원들이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 않았고, 이후 늘었어도 모두 북선기루로 들이면 될 일이었다.

““우아아아! 무신(武神)께서 오셨다아!””

“!!”

둥둥둥.

큰 착각이었다. 저마다 꽃을 머리위로 들고 흔들었고, 어디서 구해왔는지 커다란 북까지 치고 있었다.

‘내가 위대한 수령님이라도 되냐?’

둥둥둥.

““우아아아! 무신(武神)! 무신(武神)! 무신(武神)!””

“담조오옹!! 대체 이게 다 뭐야?”

담종은 문주의 물음에 자랑스럽게 답했다.

“승장흑패와 연이 닿은 이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모두 문주님을 무신으로 추앙하고···.”

“다, 당장 멈춰야···”.

소란이 얼마나 컸는지 자신의 말이 담종에게 닿지 않을 정도였다.

둥둥둥. 둥둥둥.

““무신(武神)! 무신(武神)! 무신(武神)!””

“그마아안!!!!!”

““······.””

호충이 내력을 실어 크게 소리치고 나서야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문주님. 승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승장흑패 담주환이 인사 올립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문도들은 문주님의 방문에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문주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한 승장흑패의 패주 담주환이 환히 웃으며 나서서 환영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제길. 동네방네 다 알리게 생겼네. 야. 너는 대체···.”

“호, 혹시 제가 실수라도···.”

“······.”

거무죽죽하게 죽은 승장의 패주의 얼굴을 보니 차마 일을 그르쳤다고 할 수 없었다. 사람을 끌어 모아 환영 인사를 계획한 것은 오로지 그의 충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됐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다들 들어오라고 해. 기루는 오늘 영업하지 말고 이들을 배불리 먹여.”

화장을 마치고 내려온 임소란은 모두를 대접할 생각에 까마득했다.

“문주님. 저희 기루에 저들을 감당할 숙수도 없거니와 식재료비도 만만치 않사옵니다.”

“이걸로 충당하도록. 남으면 개방도들 먹이는데 쓰고.”

호충은 산채에서 챙긴 쌈짓돈의 반절을 풀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근방 객잔의 숙수를 모조리 끌고 오겠습니다. 문주님.”

“그보다···. 루주는 루방주에게 서찰이나 전하도록.”

본래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호충은 오는 길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서찰을 건넸다.

“아! 예. 문주님. 지급으로 전하겠습니다.”

호충은 안으로 들어서는 승장흑패의 조직원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소란 떨지 말고 빨리 들어와. 너는 얼른 애들 챙겨라.”

“옙! 문주님!”

호충은 이왕 이렇게 됐으니, 즐기자는 마음이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진휘평은 마교도와 함께 변방의 대장군을 만나는 중이라고 했으니, 조금 늦어도 얼마든지 끼어들 여지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오문을 위하여!”

““위하여!””

“어서들 마셔! 하하하.”

***

호충이 마음 놓고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화진은 호충이 있는 곳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고, 진휘평은 이미 대장군을 포섭하고 승장에 들어온 다음이었다.

변방의 대장군을 포섭하는 일이 생각보다 더 일찍 마무리된 탓이다.

“조금 소란스럽군.”

북소리와 사람들의 환호가 멀리서 들리는 장소였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대인.”

“됐네. 지금 그런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질 않은가. 서천량 대장군이 곧 서찰을 보낼 것이니 조용히 기다리기로 하세.”

사실 서천량 대장군을 완벽하게 포섭한 것은 아니었다. 과거 서천량과 진휘평의 인연이 깊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뿐이다. 대계에 얼마나 깊이 관여할지에 관해서는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방금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공을 깊이 익힌 장문소가 소란 속에서도 선명히 들리는 한 단어를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거슬리는 소리?”

“사람들이 북을 치며 무신(武神)을 연호하고 있습니다.”

“무신(武神)? 가진 무예가 신에 이르렀다는 뜻인가? 허허. 하여튼 과장하고는···.”

“검왕(劍王)이라는 칭호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무림에 무신(武神)이라는 광오한 별호를 쓰는 이는 없습니다. 사전에 파악해야 합니다.”

장문소에게 무신은 오로지 교주 하나였다. 어중이떠중이가 사용할 별호가 아니라 생각한 것이다.

“백성들이 무얼 알아서 그리 말했겠나. 그저 뒷골목에서 조금 강한 녀석이겠지.”

“······.”

장문소는 진휘평에게 허락을 구할 수 없자 곁에 있던 마화평 장로에게 허락을 구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고, 마화평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장문소는 진휘평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몸을 날렸다.

“······.”

여전히 자신의 신병이 이들에게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서천량 대장군에게 내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었는데···.’

자신은 여전히 마교의 손아귀에 놓여있었고, 대계는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이러다 진정 마교의 손에 나라를 넘겨줄지도···.’

진휘평의 근심이 더해지는 동안 호충은 승장흑패의 하오문 문도들과 술잔을 기울이다가 작은 기척을 잡아낼 수 있었다. 소란한 가운데 작은 살기가 느껴진 것이다.

‘···누구지?’

호충은 문도들 사이를 자연스럽게 돌며 곁눈질로 살기가 날아온 부근을 살폈다. 부산한 사람들 틈에 불청객이 끼어 기루 내부까지 들어온 것이다.

‘저놈은!’

한눈에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홍동에서 놓친 장문소!’

장문소는 마교의 무력단을 직접 지휘하던 고위급 마교도였고,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곧 아버지 진휘평이 여기 있다는 뜻과 같았다.

‘제길! 일이 다 틀어지는 군.’

장문소는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을 테지만, 아버지와 함께하는 마교의 장로 마화평은 송재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차 무역을 한다던 자신이 하오문의 문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

호충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장문소가 자신을 살피고 돌아가는 때까지 허허 웃으며 사람들 사이를 오가던 호충이다.

우뚝.

호충은 장문소가 몰래 자리를 뜨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을 굳히고 승장흑패의 패주를 불렀다.

“담 패주.”

“예. 문주님.”

“잠시 급한 볼일이 생겼다. 너는 나를 대신해 승장의 문도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어라.”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따로 설명할 것이다.”

“예. 문주님.”

기루에서 나온 호충은 장문소의 희미한 흔적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곧장 축골공과 역용술을 쓰려던 호충은 기운을 풀어버렸다.

“······.”

‘이미 내 얼굴을 녀석이 봤다. 어차피 하오문은 마교의 적이 되었으니, 달라질 것은 없다.’

타앗.

호충의 신형이 대기에 녹아들듯 사라졌다.

***

“다녀왔습니다.”

장문소가 허리를 숙인 대상은 진휘평이 아니라 마화평이었다.

“···누가 감히 무신(武神)이라는 별호를 쓰던가.”

“하오문의 문주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무신(武神)이라는 별호를 쓰고 있었습니다.”

“!”

“!!”

마화평이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 더 놀란 이가 진휘평이었다.

‘아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날 보러 왔구나!’

진휘평은 아들 호충이 하오문의 송재호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지금 상인(常人)께서는 녀석이 서안에 있다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저희에게 공을 세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상인(常人)은 마교도가 교주를 외부에서 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였다.

“묵혈단을 모두 소집하라.”

“예!”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가 대체 누구라고 이러신단 말이오.”

“···대인께서는 알 것 없습니다. 그저 무림의 일입니다. 대인을 지켜라. 나도 묵혈단과 함께 갈 것이다.”

마교도 둘이 진휘평 곁으로 바짝 나가갔고, 진휘평은 속이 타들어갔다.

‘대체 너는 여길 왜 온 것이냐! 내가 알아서 한다질 않았더냐!’

그때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여~ 왕형 아니시오?”

“!”

호충이 능글맞은 얼굴로 마화평과 진휘평을 보며 손을 들었다.

“진형도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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