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장과 하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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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호성을 쳐내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중부전장에 빌린 자금이 워낙에 거대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진가장이 확장일로의 사업을 벌이며 성장한 밑바탕이 전부 중부전장의 자금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산서성에 무관을 설립할 수 있었던 자금력도 중부전장에 있었다.
만약 호중이 호성을 쳐내면 중부전장은 당장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할 것이고, 그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중부전장이 융통해준 자금의 규모가 이백만 냥이 훌쩍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거액을 일시에 상환할 전장은 흔치 않습니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진가장이 빈털터리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사마 총관이 말해주었더냐?”
“예.”
진원우가 원로원으로 간 이후 끈 떨어진 연 신세로 전락한 총관과 부총관은 전과 조금 달라진 참이었다. 진원우가 아닌 호현과 호중을 진실로 따르기 시작한 것이다.
“사마 총관도 이제 진가장의 실세가 누구인지 깨달은 모양이군.”
이제 자신은 무림맹의 맹주지, 진가장의 가주가 아니었다. 사마 총관이 누구를 따르건 상관없었다.
“어딜 찾으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만약 중소전장이라면 중부전장의 수작에 오히려 저희가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오문이다.”
“!”
하오문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다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하오문이 진가장에 악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야. 경매에선 일부러 우리에게 비급을 넘기기까지 했다. 나름의 호의를 보인 것이지.”
“···하오문이 이번에 얻은 이익을 생각하면 이백만 냥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삼도상단과 황금전장도 하오문에게 영단을 판매할 권한을 얻었을 뿐. 진짜 이득은 하오문이 챙길 것이다. 진가장이 상승 무공을 허락 받는 위치에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야 당한 일이지요. 하오문이 다른 상단에 영단의 판매권한을 넘긴다 해도 저들이 어쩌겠습니까.”
“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 좋구나. 그래. 들어보니 황금전장이 삼도상단에 손을 내미는 모양이야. 하오문은 황금전장과 삼도상단을 통해서도 진가장을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두 상단의 자금력은 알고 있겠지?”
호현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 정보는 송 영감의 입을 통해 제갈가에 전해졌고, 다시 무림맹의 군사를 통해 호현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넘치는 자금력을 갖춘 하오문이다. 호충이 진가장의 모든 것을 가로채려고 준비한 일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갈가와 남궁가는 월하검문에 지고한 신뢰를 갖고 있었고, 향후 사종(四宗)이 무림을 경영하는데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진가장을 도모하는 일이 향후 그들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니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자금만 확실하면 당장에라도 호성이 녀석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네 말대로 아버지 상은 끝내고 진행하자.”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이던 호중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호성이 녀석을 내칠 방법이야 많지요. 무림의 어르신들이 가득한 맹에서 헛짓을 했고···. 특히 하오문주에게 무례를 범했으니, 하오문에 진가장의 신뢰를 증명하기에 적합합니다. 진가장의 평판까지 챙길 수 있지요.”
“······.”
호현은 호성을 내치는 일보다 일전에 경매에서 얻은 무공이 궁금했다.
“오환검(五煥劍)은 어디까지 익히고 있느냐.”
호현은 경매장에서 오환검을 얻은 직후 호중과 함께 익히기 시작했다. 무림에서 무공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오환검을 볼수록 형님의 탁월한 선택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실로 엄청난 녀석입니다. 고작 이십만 냥에 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익혔느냐 물었다.”
“며칠이나 익혔다고 성과가 있겠습니까? 비급을 필사하고 고작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비급을 이해하는데만 시간을 쏟고 있습니다.”
“······.”
아직 성과가 없다는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오환검을 얻고 시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호중의 자질이 문제였다. 정작 본인은 제대로 모르고 있지만, 호현 자신보다 뛰어난 것은 분명했다.
‘내가 너무 과민한 탓이겠지.’
녀석의 자질이 마음에 걸렸지만, 자신은 맹주가 되었고 동생은 진가장의 가주일 뿐이었다.
‘어차피 녀석이 날 위협할 일은 없을 테니···.’
“무림에서 무공이 변변치 못하면 고개를 들 수 없는 법이다. 이제 우리 진가장도 외부에 드러낼 수 있는 상승 무공을 갖추었으니, 잠을 줄여서라도 익혀야 할 것이야.”
“명심하지요.”
호중은 호현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방을 빠져나갔다.
‘나를 위해 착착 준비해주는 구나.’
몸을 웅크리고 방을 빠져나가는 호중의 속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무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네 말대로 무공이라는 기반이 필요하겠지만, 무림의 영향력은 무공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호중은 무림의 일을 겪으며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의 첫 움직임이었던 비급 탈취가 하오문의 거대한 힘에 막혔고, 이후 경매를 통해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진가장이 그렇게 자신하고 있었던 매화검법은 화산파의 제자가 무림 대회에서 만천하에 보여주며 날아가 버렸고, 여태 익혔던 매화검법은 누구에게도 자랑하지 못할 무공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고 시기까지 타고나야 무림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지.’
호현이 잡은 것은 오직 모용가의 혈통으로 잡은 황실의 상승 무공 허가 권한 하나였다. 이것 하나로 무림맹의 맹주자리를 꿰찼지만, 강대한 세력이 셋이나 주변에 포진해 있었기에 언제든 맹주자리에서 내쳐질 수 있다고 보고 있었다.
‘네 세상이 영원할 것 같더냐?’
호중은 먼저 진가장을 차지하고 언젠가 호현의 자리를 대체할 마음으로 가득했고, 호현은 조문하러 온 무림인들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키울 생각으로 가득했다.
둘의 마음속에 친부를 잃은 슬픔은 단 한 줌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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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장엔 친족을 잃은 슬픔을 모르는 이가 또 있었다.
“이것들은 제 조부에게 관심도 없어?”
진무검은 본인이 직접 아들의 죽음에 관여했으면서도 그 아들이 낳은 손자들이 자신을 챙기지 않음에 불만이었다.
“두고 봐라 이 새끼들. 원로원이 사라지는 그날! 너희도 내 손에···.”
아들을 죽인 놈이 손자들을 챙겨주겠는가.
“태상가주님. 탕약을 챙겨왔습니다.”
“어서 들어와!”
진무검은 여전히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의원을 원로원으로 들여 밖의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소식은?”
“전대 가주님의 부고로 많은 무림인들이 조문오고 있습니다. 태상가주님의 세 손자는 제 아비의 시신에 관심이 없어서 사인도 다시 파악하지 않았습니다.”
“뭐? 기껏 핑계까지 준비해서 보내놨더니···.”
진원우의 팔을 자른 다음 독으로 죽인 터라 뒷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진원우의 사인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자신의 짓임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원과 상의해 진원우가 독공을 익히려 했었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두었었다. 독공을 위해 독물을 만지다 중독되었고, 몸에 독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팔을 자르고 온 몸에 상처를 냈다는 핑계였다. 그 와중에 자신도 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전갈을 보냈는데, 여전히 서찰 한 통이 없었다. 부친인 진원우의 시신에도 관심이 없다니 애초에 손자 녀석들은 사문의 존장을 향한 일말의 존경심도 갖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개자식은 자식 교육을 대체 어떻게 시킨 거야?”
“······.”
진무검은 아들을 향한 욕이 결국 자신을 욕하는 말인 줄도 모르는 모양이다.
‘진가의 자식들이 누구를 닮았는지 왜 모르신단 말입니까···.’
문노는 진가 핏줄이 가진 독한 심성이 어디로부터 이어졌는지 뻔히 보였다.
“태상가주님. 제가 원로원에 드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만들어 두었다지만, 계속 원로원을 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뭐? 너도 뒈지고 싶다고?”
“···이, 이유가 있습니다. 무림인들이 많이 오기도 했지만, 관부에서도 조문이 오고 있습니다. 만약 관부에서 문제 삼으면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썩을.”
“제가 직접 오는 것은 힘들지만, 밖의 소식을 계속 서찰로 전할 것입니다.”
“원로원을 파한다는 소식은 대체 언제 전해질 건데?”
“······.”
그걸 의원인 문노가 어떻게 알겠는가. 오직 황실에서만 알 것이고, 황실에서 이 문제를 고민이라도 할지 모를 일이다.
“그게 언제냔 말이야!”
문노는 지금까지 들었던 소식을 종합해 최대한 머리를 쥐어짰다.
“···최, 최소한 일부 문파에서 상승 무공을 허락 받은 다음에나 조금씩 일이 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세월에!!”
정확한 일자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당장 나가서 그것부터 확인하고 서찰을 보내!”
문노가 맹주라도 된단 말인가.
“···태상가주님. 그건 제 능력으론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진가장의 의원일 뿐이고, 무림의 일은 그저 진가장의 무사들을 통해 전해 듣는 것이 전부입니다.”
“오냐. 네가 당장 죽고 싶다 이거냐?”
스르릉.
진무검이 칼을 빼들었다. 문노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나는 태상가주가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훗날을 노려야 한다. 어차피 못 나가면 그걸로 끝이지만, 태상가주가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진가장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니···.’
당장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살아남는 것도 중요했다.
“···여기서 저를 죽이셔도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어찌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당장 눈앞에서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오늘 원로원을 나가면 서찰로만 태상가주님을 뵈올 것이니 말입니다.”
“······.”
“태상가주님의 신뢰를 그렇게 저버리는 것도 죄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 하고 못하는 일은 못한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하여간···.”
“부디 이 문노의 충심을 알아주십시오.”
“···배운 것들은 항상 티가 나.”
끓어오르던 화를 가라앉힌 진무검이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스르릉.
“가봐. 가서 다 알아와.”
“예. 태상가주님. 원하시는 일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충심으로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문노는 진무검에게 절하고 얼른 원로원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그를 지켜보는 이가 있음을 알지 못했다.
‘···보고 사항이군.’
진가장의 무사 하나가 원로원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황을 다 살핀 무사는 보고를 위해 이동했다. 무사가 도착한 곳은 진호성의 처소였다.
“가주님. 강여홍입니다.”
“들어와.”
강여홍은 이미 첫째 진호현에 포섭된 다음이지만, 여전히 진호성 곁에 머물고 있었다. 이 또한 진호현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원로원을 감시하는 강 무사가 여기까지 무슨 일이지?”
“원로원을 오가는 의원을 보았습니다.”
“조부께서 몸이 좀 안 좋다하지 않으셨던가?”
“의원이 탕약을 가져갔는데, 도로 들고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밀담이 오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밀담?”
“의원의 표정도 심각해 보였기에···.”
“그깟 일을 뭐 하러 보고하나?”
“예, 예?”
“조부의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노망이 들었을 수도 있잖아. 아니면 병이 다 나아서 그냥 들고 나왔을 수도 있고! 그리고 원로원에 들어 있는 조부가 밀담을 나눠봤자 뭘 할 건데?”
“저는 그저 특이 사항이라 생각하여···.”
“도로 가서 원로원이나 감시해. 쓸데없는 일로 다시 오지 말고!”
“···죄송합니다. 가주님.”
강여홍은 진호성의 방을 나서며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깨달았다.
‘진호성은 진가의 주인이 될 재목이 아니다.’
강여홍의 걸음이 진호현을 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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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현은 갑자기 접견을 요청한 강여홍을 맞아 그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었다.
“······하여 가주님께 보고 드립니다.”
‘조부께서 의원을 만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감시하는 무사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정도라면 뭔가 있다는 소리였다.
“중요한 소식을 전해주어 고맙네.”
“···제 말을 믿어 주십니까?”
“항상 원로원을 지켜봤던 강 무사가 아닌가. 매번 오가는 의원에게 이상한 점을 느꼈다면 강 무사의 판단이 옳을 것이야. 다만 지금 나는 상주로 자리를 비우기 힘드니, 둘째에게 이 일을 맡길 생각이네. 강 무사는 둘째에게 다시 가서 전해주게. 앞으로 둘째 녀석이 가주자리를 차지할 것이니 미리 가서 점수를 따는 편이 좋겠어.”
“···예. 알겠습니다. 앞으로 둘째 호중을 따르지요. 하지만 제가 가주로 생각하는 분은 오직 한 분일 것입니다.”
“···나도 강 무사가 언제나 내 사람이라 여길 것이네.”
“···충.”
호현은 진가장에 작은 끈 하나를 남겨두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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