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화 (146/232)

수련관의 후개

***

“수련관! 십기(十期) 곽건! 육기(六期) 선배님을 뵙습니다!!!”

곽건은 수련관에 있던 당시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실제로도 같은 상황이었다.

“십기(十期) 곽건. 오늘 관주님께 무례를 범했다고 방금 들었는데 말이야···.”

“···끕.”

하오문의 한참 꼭대기의 관주보다 선배가 더 두려웠다. 수련관은 군문의 병영과 다름없이 운영되고 있었고, 보통 이삼 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기수가 들어왔다. 한 기수 혹운 두 기수 먼저 들어온 선배들과 지냈던 날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 최고참 기수가···.’

곽건이 수련관에 입관할 당시 최고참 기수가 칠기(七期)였으니, 육기(六期)는 까마득히 높은 선배였다.

“아까 나도 관주님과 함께 배에 올랐다면 좋았을 걸. 그래야···.”

꿀꺽.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고, 십기(十期)의 기강을 제대로 잡지 못한 네 선배 기수를 족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시정하겠습니다!”

조저우는 비연을 향해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관주님. 십기(十期) 수료생이 관주님께 어떤 무례를 범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남궁가의 대공자에게 욕을 하려 하기에 막았더니, 뭔데 나서느냐고 했었더랬지?”

딱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이후엔 비연을 알아보고 선상에 머리를 박았으니까.

“···십기(十期) 곽건. 박아.”

쿵.

곽건은 뱃전에서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머리를 박고 뒷짐을 졌다.

“이 새끼를 어떻게 족쳐야 예쁜 소문이 날까?”

“······.”

“어떻게 족쳐야 십기(十期)의 일화가 수련관 대대로 전해질까? 앙?”

“······.”

머리를 박은 관건의 안색은 조저우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자꾸만 창백해졌다.

“조저우. 이곳은 황산일세. 곽건의 안방인 이곳에서 그를 저리 두는 것은 옳지 못해.”

곽건은 비연의 목소리가 천상에서 들려온 신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예. 관주님. 곽건 기상.”

“기상!”

“조만간 연통하지. 수련관 수료생들이 모일 날이 있을 것이야.”

“···옙!”

까마득한 수련관의 선배들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이번에 수련관에 입관한 이들이 삼십기(三十期)라고 들었으니, 네 뒤로 한참이나 많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오문에 귀속된 흑패가 빠르게 늘어나며 생긴 일이었다. 보통 한두 달에 한 번씩 입관식이 있었는데, 근래에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입관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수련관에 입관하는 이들의 숫자도 상당히 늘어서 후배들이 정말 많겠군.”

수련관을 통과한 패주들과 주요인물들이 흑패의 조직원들을 수련관으로 밀어 넣고 있어서 수련관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꼭! 참석하겠습니다. 선배님!”

곽건도 고참급에 속하는 수련관 수료생이었다.

비연은 대화가 끝나는 때에 맞춰서 나섰다.

“이제 편히 하지. 서로 인사나 하라고 했더니 괜히 분위기만 삭막해졌어. 패주는 자리에 앉게.”

“육기(六期) 선배님이 서 있는데 제가 어찌···.”

‘하여튼 수련관 기강은 어지간해.’

비연은 고개를 저으며 조저우를 자리에 앉혔다.

“그대도 서 있지 말고 앉아. 잠깐 대화만 하고 갈 생각이야.”

“예. 관주님.”

조저우가 앉자 그제야 곽건도 살포시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앞으로 황산에 자주 오게 될 예정이라 미리 알려주려고 들렀네.”

앞으로 남궁가와 거래를 위해 황산을 계속 오가야 했는데, 그때마다 불편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딱히 내게 아는 척할 필요는 없지만, 이미 남궁가의 대공자 앞에서 나를 안다고 했으니, 마주치면 적당히 인사나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일부러 나를 찾지 말라는 뜻이야.”

“···예. 관주님.”

“그리고 나는 수련관에서 완전히 손을 뗐어. 앞으론 삼도상단의 상단주가 되어 상방을 이끌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관주가 아니라 방주라 칭해라. 밖에서도 당연히 상단주라 칭해야겠지?”

“아! 다시 방주자리를 찾으셨군요! 감축 드립니다. 방주님!”

“감축 드립니다. 방주님!”

둘은 축하 인사를 건네며 방주라 칭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서 비연은 영원히 관주였다.

“그래도 저희 수련관 수료생이 모일 때는 관주로 참석해주십시오.”

“맞습니다. 관주님이 안 계시면 저희가 모여 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허. 우리 십기(十期)가 생각은 제대로 박혔군.”

“감사합니다! 선배님!”

같은 수련관에서 함께했던 탓인지 비연은 이들이 친숙했다.

“그래. 수료생들이 모이는 날에 너무 바쁘지 않으면 되도록 참석하지.”

그냥 인사만 나누고 가기가 아쉬웠다.

“간단하게 한잔하고 가지. 요리는 빼고 술병과 잔만 챙겨오게.”

“옙. 관주···. 방주님!”

비연은 술자리를 통해 황산에서 남궁세가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황산만이 아니라 안휘성 전역이 남궁가의 세력권입니다. 안휘성에서 장사하는 상회치고 남궁가와 연을 맺지 않은 상회는 찾아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그나마 남궁가에서 관심이 없는 기루와 도박장 등을 제외하면 흑패가 진출할 분야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이러한 남궁가의 세력권에 하오문이 비집고 들어가려면 삼도상단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조만간 삼도상단 황산지점이 들어서고 물류의 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안휘성 각 지역의 흑패주에게 물류의 호송을 맡길 것이니, 되도록 외부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하오문도에게 호송을 맡겨라.”

“그럼 저희가 표국(鏢局)에도 진출할 수 있겠습니다!”

“이미 다른 지역은 진출했어. 안휘 진출이 늦는 바람에 너희까지 늦은 것뿐이다.”

“이런! 서두르겠습니다.”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최소한의 무공을 갖추려면 네 휘하의 문도들도 수련관을 수료해야 할 것이야.”

“그래서 하오문 수료생이 많아졌군요! 저도 얼른 보내서 황산흑패를 단단하게 만들겠습니다.”

하오문 수련관에 입관하는 이들이 많아진 이유 중 하나이기는 했다.

‘따로 입관비를 받지 않고 있으니···.’

무림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을 고절한 무공을 가르쳐주면서도 입관비를 받지 않는 하오문 수련관이다. 물론 하오문에 대단한 충성심이 있어야 하고 이미 하오문 수련관을 수료한 이의 추천도 필요했기에 어중이떠중이는 모두 걸러진다. 그렇게 걸러진 핵심 인원만 수련관에 입관하는데도 매월 두 배 이상의 증가를 보이고 있었다.

“요즘 하오문에 새로이 자리 잡은 개방에서 특히 많은 인원이 들어온다. 아마도 초기 루방에서 이들을 관리해서 착각하는 놈이 많은 모양이야.”

“···큭. 개방 놈들은 수련관에서 놀고먹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중원 각 지역에서 연명하는 거지들이 자주 가는 장소가 바로 객잔과 기루였다. 객잔에서 남은 음식을 얻어먹거나, 기루에서 남은 요리와 술을 얻어먹으려는 이유였다. 그런 이유로 루방 산하의 기루에서 거지들을 조금 더 챙겼고, 이 중에 싹수가 보이는 이들을 찾아 하오문에 입문시킨 것이다.

거지들이 기루에서 만나는 이는 당연히 기루의 기녀들이었고, 매번 밥을 얻어먹고, 예쁜 얼굴을 마주하다보니 하오문 수련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지리라 착각했다.

“그보단 기녀들이 수련관에 머무른다고 생각했다더라.”

“풉!”

하오문에서 고된 수련을 마치면 아리따운 기녀들이 때마다 음식을 준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래도 제때 밥을 주고 잠자리도 제공하니, 녀석들이 불만을 보일 일은 없지.”

“개방의 방주는 아직 문주님이 고르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임시로 패방주께서 수고하고 계신다.”

“아. 사 관주님이···.”

예전 사중환이 바쁘다고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주로부터 새로운 무공을 받아 수련관에서 이를 전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중환이 호충에게 전수 받은 새로운 무공은 바로 옥화타구봉법과 강룡십팔장이었다.

“문주님께서 패방주에게 개방의 방주까지 맡으라 하진 않으셔서 다행이지.”

“그럼 앞으로 개방은 누가 맡습니까? 인원도 너무 많고···.”

기존 하오문 문도수의 몇 배에 이르는 개방 인원을 생각하면, 능력 있는 이가 개방을 맡아야 할 터였다. 하지만 패방의 방주인 사중환은 패방을 맡고 있었고, 옥비연은 앞으로 상방을 맡기로 했으며, 흑림방의 방주는 왕호가 맡았다. 남은 인원이 없는 것이다.

“문주님이 후개를 하나 키우는 중이지.”

“후개가 있었습니까?”

예전 개방의 용두방주는 개방의 우두머리를 칭하는 말이었고, 방주가 키우는 제자가 후개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향후 개방의 용두방주가 될 인물이 바로 후개였다.

“너도 봤을 텐데? 수련관에 어린 녀석이 하나 있지 않았나? 일기(一期) 수련생들과 함께 입관했지만, 계속 남아서 수련을 이어가는 녀석 말이야.”

“어···. 그 아이는···. 말똥이 말씀이십니까?”

예전 자장에서 옥비연의 배수패에 속했던 말동이 개방의 후개로 낙점되었다.

“그래. 말똥이. 문주께서 녀석을 크게 키우고 싶다는 뜻을 보이셔서 계속 수련관에서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

“저는 말똥이가 관주님을 따라 움직여서 관주님의 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녀석이 더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해 와서 그런 것뿐이다. 본래 내가 챙기려고 데리고 다녔는데, 생각보다 무공에 대한 자질이 훌륭하더군.”

“그런데 일기(一期) 수련생이면···.”

까마득한 선배인 육기(六期) 조저우는 물론이고, 십기(十期)인 곽건 자신도 감히 비벼보지 못할 기수였다.

“···말똥이 녀석이 처음 문주님을 내게로 안내했지. 나뿐 아니라 패방주보다 먼저 문주님을 만났다. 하오문에서 송 어르신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문주님과 마주한 녀석이야.”

“······.”

“······.”

말동은 수련관의 기수로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의 최고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말동은 하오문의 최고수로 성장할 것이다. 문주께서 녀석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후아.”

“저희는 미리부터 잘 보여야겠습니다.”

“너희가 잘 보이면 나쁠 일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개방은 중원 전역의 정보를 하오문 각 지부에서 받아 루방에 넘겨줄 것이니···. 정보는 곧 돈이고 힘이다.”

“······.”

“······.”

“내가 수련관을 그만두기 전에 일부 개방도로 배정된 하오문의 수련생들이 녀석에게 실수를 범한 일도 있었다. 자신들의 윗선이 될 것을 짐작하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마냥 어리게만 보였으니, 그들도 말동을 옥 관주의 시동으로 본 것이다.

.

.

.

“야! 넌 가서 관주님이 언제 오시는지 미리 말해라. 알았어?”

“······.”

이들은 거지로 살아오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수련관에서도 눈치를 봐가며 쉬려한 것이다. 자율 수련을 맡긴 시간이긴 했으나, 쉬는 시간이 아니라 그간 배운 것을 복습하라며 내준 시간이었다.

“사람이 말 하는데 대꾸가 없네?”

“······.”

“너까지 우리가 거지꼴을 했다고 무시 하냐?”

“······.”

“잘 들어라. 우린 하오문의 개방을 맡는다! 바로 우리가 하오문 개방의 첫 방도들이라 이거야!”

“······아.”

“이제 우리가 달리 보이냐? 하하하.”

“···개방. 너희가 개방도가 된다 이거지?”

“그러니까 너는 관주님이 오시거든 우리에게 바로 와서···.”

“내가 개방의 후개로 낙점되었으니···. 너희가 내 첫 방도들이라 이거네?”

“···뭐, 뭐?”

“내가 개방의 후개라 하였다.”

“후개?”

“개방에 용두방주가 없다고 후개도 없을 것 같았나?”

“······.”

“······.”

“······.”

배우지 못한 이들이지만, 후개가 개방에서 어떤 위치인지는 알고 있었다.

“사 관주님께 타구봉법을 배우면 내가 너희 성과를 따로 시험할 것이다. 수련관을 수료한 다음부터 너희는 내 관할이야. 그러니······. 요령피울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해라.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수련관보다 더한 나날이 너희를 기다릴 것이다.”

부웅. 붕. 탁!

말동의 손에 들린 봉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돌았다. 지금 이들이 막 배우기 시작한 개방의 일반적인 타구봉법보다 더욱 화려함을 자랑하는 옥화타구봉법의 흐름이었다.

“···잘해라. 두 관주님이 지켜보지 않는 동안에는 내가 너희를 지켜볼 것이다.”

“······.”

“······.”

“······.”

개방도를 자처하던 녀석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

.

.

옥비연의 말에 조저우와 곽건은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하하. 녀석들 제대로 걸렸네요.”

“감히 후개를 상대로 개방도임을 자랑하다니요. 하하하.”

“말동이도 이젠 마냥 어린 녀석이 아니거든. 게다가 수년이나 수련관에서 지내며 누구보다 오랜 시간 수련했고, 문주님께 직접 사사받았다. 녀석은 무공의 깊이가 남달라.”

말동도 사중환과 옥비연, 왕호가 호충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은 것과 같은 선상에 있었다. 호충이 서안에 머무르며 사중환에게 개방의 무공을 전수할 때 말동도 불러 무공을 전수했기 때문이다.

“그, 그럼 그 아이가···.”

“문주님의 직전제자···.”

“틀린 말은 아니지. 문주님께서 우리에게 무공을 전수해 줄 때와 달리 마음을 많이 쓰셨거든.”

호충은 항상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을 가르쳐야 했는데, 말동만 나이가 어렸다. 덕분에 호충은 자신의 제자가 생긴 것처럼 말동에게 무공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다 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는지 방주급에나 허락할 고급 영단을 내리기까지 했다.

“지난번에 녀석과 잠시 대련할 일이 있었는데, 이젠 나도 녀석을 경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나면 따라잡혀도 할 말이 없겠더군.”

“······.”

“······.”

조저우와 곽건의 뇌리에 말동이 확실히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절대로 그 분께 무례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수료생들이 모이면 확실히 알려야겠군.’

“어쨌든! 곽 패주는 황산 흑패에서 인원을 차출해서 얼른 수련관으로 보내도록. 표국(鏢局) 사업을 하자면 무공을 익힌 표두와 표사들이 많이 필요할 것이야.”

“옙! 방주님.”

.

.

.

한참 환담을 나눈 비연은 황산흑패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객잔으로 돌아갔고, 이후 곽건은 부랴부랴 인원을 차출하느라 바빴다.

“너! 그리고 너! 너도 짐 챙겨.”

“패주. 갑자기 왜 짐을···.”

“당장 하오문 본단으로 갈 것이다. 하오문 수련관에 입관해야 해!”

“이 밤에 갑자기 말입니까?”

“너희 기수가 늦어지면 앞으로 계속 막내 노릇이나 하겠지! 너는 나중에 나한테 고맙다고 절을 할 것이다.”

“······.”

아직 수련관에 들지 못한 이들은 기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수련관에 들면 어린 아이가 하나 보일 것이다.”

“······.”

“너희는 그분께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분은 문주님의 직전제자이자 수련관의 일기(一期) 수료생이다.”

“!”

“이는 다른 이들이 모르는 일이니, 누구에게도 발설치 말고 너희만 알고 있어라.”

황산흑패 인원들은 이 조언 덕분에 수련관에서 말동에게 무례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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