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
“······.”
“······.”
“······.”
세 사람은 마지막 검식의 경천동지할 위력을 보고 입을 열 수 없었다. 어찌 감히 입을 열 수 있겠는가. 마치 고대 무림의 절대자가 다시 현신해서 펼친 것 같은 거대한 위력의 검식이었다.
“어허. 저도 모르게 기분이 동해 과하게 힘을 쓴 모양입니다. 부서진 연무장은 삼도상단에서 틀림없이 복구해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송 영감이 입을 연 덕분에 깊은 경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절대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검공을 견식하고 어찌 감히 연무장을 물어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월하검문은 정말 대단한 검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고 지금까지 고대의 무공을 보존하다니···.”
“······.”
고대의 무공이라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송 영감도 반박할 말이 없었다.
“매화검법을 대성해도 넘어설 수 있을지···.”
송 영감은 화산파 장문인의 말에 얼른 답했다.
“화산파의 매화검법은 환과 쾌가 조화를 이룬 상승무공이라고 들었습니다. 대성하면 월하답보에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호충이 훌륭한 사문을 찾아 다행입니다.”
.
.
.
이후 셋의 태도는 송 영감의 무공을 보기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송 영감의 무위가 현 무림의 최고수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송 문주님. 한 잔 받으시지요.”
공손히 술잔을 들어 바치는 제갈진이다. 남궁곤은 제갈진에 선수를 빼앗겨 아쉬워하며 입을 열었다.
“일문의 제자가 하나라면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손주께도 전하시면 좋을 터인데···.”
사위로 들이고자하는 옥비연에게도 월하답보가 전해졌으면 한 것이다.
“허허. 녀석이 익힌 황룡살도(黃龍殺刀)는 월하답보와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을 대단한 도법입니다. 아직 녀석의 배움이 부족할 뿐이지요.”
“그렇습니까? 황룡살도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여···.”
믿을 수 없어하는 남궁곤에게 송 영감은 준비된 말을 했다.
“저희 삼도상단이 두 가문의 비급을 찾아 드렸지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겠습니까?”
“!!”
“!!”
또 다른 비급을 찾았다는 말이었다. 남궁곤과 제갈진도 이미 자신들 가문의 실전된 비급을 되찾아준 삼도상단이 다른 비급을 얻지 못했으리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게다가 불과 얼마 전에 하오문이 찾은 대량의 비급이 중원 무림에 풀리기까지 했다. 하오문이 찾았다면 다른 상단에서도 몇 개 정도는 찾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오래전 일부 상단에서 실전된 비급을 동굴에서 찾은 일도 있었다. 산 속에서 비를 피하려 동굴을 찾았다가 숨겨진 비급을 찾은 것이다.
“고대 무림에는 실로 절대라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무공이 여럿 존재했고, 비연의 황룡살도 또한 여기에 해당하는 무공이었습니다. 딱히 비급의 주인이 없는 터라 비연이 이를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절대의 무공이라니!’
‘옥 공자의 황룡살도가 가문의 무공보다 더욱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정파 무림의 것이라 확신하긴 어렵지만, 무공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비연에게 전해졌으니 올바르게 쓰이고 또 전해지겠지요.”
“물론이지요!”
“옥 공자의 심성이 얼마나 바릅니까. 분명 정파 무림의 큰 인물이 될 것입니다.”
무환은 두 가문의 가주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황룡살도를 보지 못해 알 수 없으나···.”
황룡살도가 절대적인 무공이라는 말에만 집중할 일이 아니었다.
“황룡살도와 같이 고대의 무공임이 확실한 월하답보입니다. 그러니 이를 대성한 송 문주의 고된 지난날을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송 문주님. 제 잔도 받으시지요. 저는 엄청난 고련으로 오늘의 이르신 송 문주께 경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존경합니다. 송 문주님.”
무환의 혀가 이토록 부드럽게 굴러간 일이 있었던가.
“······.”
“······.”
제갈진과 남궁곤이 할 말을 잃을 정도로 화려한 칭찬이었다.
“늙은이의 낯을 부끄럽게 만드십니다. 우리 다 같이 드십시다. 허허허.”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송 영감이었다.
***
“······.”
“······.”
눈싸움을 이어가는 두 여인이 있었다. 소선은 예의를 따질 생각도 없었기에 편히 말했다.
“그쪽은 옥 공자와 안면이 있었나 보던데···.”
“한 해 전 옥 공자께서는 가문에 중요한 물건을 들고 오셨더랬지. 어찌나 헌앙하시던지···.”
“옥 공자님이 기억도 못 하실 정도라면 그리 대단한 인연도 아니었을 터.”
“칫.”
제갈미는 앞에서 보았던 일이 있기에 반박을 시작했다.
“그쪽도 그리 다르진 않은 모양이던데? 오늘 내 앞에서 옥 공자와 처음 인사를 나눠놓고 어쩌자는 거지?”
“······.”
소선은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홀로 마음을 주고 또 홀로 그리워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도 부친인 가주를 믿고 있었다.
“가주님께서 나와 옥 공자를 이어주실 것인데, 그쪽이 괜한 수고를 할까 싶어서 한 말이야.”
“호호호. 내가 할 말이야. 제갈가는 이미 일 년 전부터 옥 공자를 찾고 있었지. 그것도 가주님의 명이었어.”
“지금 해보자는 건가?”
“내가 물러설 것 같아?”
둘의 대화는 남궁가에서 온 무인으로 인해 멈춰야 했다.
“소선 아씨. 가주님께서···”
“잠깐만요. 지금 중요한 대화중이라고요!”
“···가주님께서 당장 한천 공자님과 동행하시라 하셨습니다만.”
“!!”
이깟 대화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디로 가면 되죠?”
“제가 안내하지요.”
제갈미는 마음이 급했다.
“나, 나도 갈 거얏!”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은 별채에서 머무르시는 편이 좋지 않을지? 저쪽이 별채랍니다. 손님?”
소선은 얄밉게 별채를 가리키며 거절했지만, 제갈가의 무인이 곧 다가와서 제갈미 옆에 섰다.
“가주께서 대공자 일행에 합류하라 하십니다. 이미 안에서 얘기가 됐으니 가셔도 됩니다.”
“흥! 네가 뭔데 날 막아?!”
제갈미는 무인을 따라 얼른 나섰고, 소선도 남궁가의 무인을 독촉했다.
“어서 안 가고 뭐해요! 이러다가 우리가 늦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두 여인은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경쟁하기 시작했다.
***
송 영감이 연회장의 주인공이 되었듯이 커다란 객잔 삼층에 앉아 있는 옥비연도 주인공이었다. 다만 무협 소설의 주인공인 송 영감과 달리 연애 소설의 주인공이라는 점이 달랐다.
‘여인들을 어쩌자고 이리로 보내셨단 말입니까···.’
거기다 남자 주인공이 하나인데 여자 주인공은 둘이나 있었다. 두 여인이 서로를 쳐다볼 때는 눈에서 불이 날 것 같았고, 비연을 바라볼 때는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
물론 조연도 있었다.
“소선아.”
“······.”
“소선아. 오라비가 아까부터 부르는데 왜 답이 없느냐.”
“···그냥 말씀하시어요.”
소선은 한천의 부름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오직 비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승부였다. 제갈미 보다 자신이 더 오래 비연을 봐야 했다.
‘내가 늦게 도착했는데 이것까지 질 수는 없지!’
“하아. 네가 있으니까 내가 벗과 대화를 할 수가 없잖아. 너희는 따로 만나는 편이···.”
“가주님 명이신데요? 한천 오라버니와 같이 어울리라고요. 나이대가 비슷하잖아요.”
“아버지가?”
“저쪽···. 그러니까 제갈 가주님도 그리 명령하신 모양이고요.”
“에효. 비연. 이거 어쩔 수 없겠는데?”
“난 상관없어.”
“오오. 역시 비연은 눈이 높아서 이런 평범한 면상은···.”
찌릿.
한천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이 닿았다.
찌리릿.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눈빛이다. 소선과 미의 칼날 같은 눈빛에 식겁한 한천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싸늘한 분위기에 입을 연 것은 비연이었다.
“오오. 안공(眼空)을 익히셨습니까? 잘하면 눈빛으로 사람도 죽이겠습니다?”
비연의 말에 두 여인은 얼른 고개를 숙여버렸다.
“설마 한천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평범하다 했겠습니까. 대놓고 칭찬할 수 없으니 돌려 말한 게지요. 본래 아름다운 여인들에겐 함부로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평범하다고 하거나 못생겼다고 말해야 하는 법이지요. 방금도 그 결과를 보셨습니다. 한천 녀석은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두 분의 눈길을 온 몸으로 받지 않았습니까?”
둘은 아름답다는 비연의 말이 반복되자 사르르 마음이 녹아버렸다.
“히힛.”
“큼큼.”
‘에효. 어린 것들···.’
비연은 어려서부터 기루에서 살았고, 수시로 기녀들의 유혹을 받아왔다. 그렇다고 기녀들만 상대했겠는가. 기루에서 기녀들을 꼬여내는 한량들의 고급스러운 말과 기술을 모조리 통달한 이가 바로 비연이었다. 거기다 누구에게든 통할 잘생긴 외모까지 갖추었으니 여인을 꼬여내자면 얼마든지 가능했다.
“한천. 뭐라고 말 좀 해봐.”
“어, 어. 그렇지. 제갈가의 따님도 계신데 내가 어찌 말을 함부로 할까.”
“자아.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가주님의 명을 이행해야겠군.”
“···뭘 어쩌려고?”
“즐겁게 잘 놀아야겠지?”
“엉?”
“우리 음침한 객잔 말고 조금 더 환한 곳으로 갑시다.”
‘본래 이런 건 옛날에나 써먹던 방식인데···.’
비연은 일행을 이끌고 황산 시전으로 향했다. 시전은 항상 물건을 팔고자하는 상인들로 소란했고, 소란한 가운데 서로에 더욱 집중시켜 줄 수 있는 곳이었다. 보통 남녀가 이런 곳에 오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붙게 되고 서로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 법이었다.
“오늘 재주꾼들이 시전에 온 모양인데? 같이 구경 갈 테냐?”
“저리 안 가?”
비연이 아닌 오라비가 귀에 대고 소리치니 질색해서 밀어내는 소선이다.
“······.”
‘물론 사람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
두 여인은 비연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서로를 견제하느라 그럴 수가 없었다.
‘어딜!’
‘내가 못가면 너도 못가!’
비연은 나와서도 다투는 둘을 보자니 괜히 이리로 왔다 싶었다. 고개를 돌리자 일행을 뒤에서 따르고 있던 삼도상단의 인물들이 보였다. 비연이 손을 들어 그들을 불렀다.
두 여인은 비연이 손을 들어 사람을 부르는 평범한 모습조차 넋 놓고 바라봤다.
‘어쩜 저렇게 한 폭의 그림 같으실까.’
‘천상 귀공자···.’
“예. 공자님. 부르셨습니까.”
“가서 마차를 가져오게. 그리고 준비했던···.”
비연에게 추가 지시를 들은 인물이 얼른 뒤로 물러섰다.
“예. 네 분이 탈 마차와 지시하신 일을 진행합지요.”
삼도상단의 인물이 가고 한천이 물었다.
“어딜 가려고 마차까지 불러?”
“가 보면 안다.”
.
.
.
시전에서 조금 벗어난 일행은 곧 도착한 삼도상단의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차에 앉으니 서로가 더욱 밀착되었다.
“본래 저녁 늦게 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조금 이르게 갑니다.”
“···어디로 가시옵니까?”
“소녀는 무척 궁금하답니다.”
두 여인은 누가 더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내는지 내기라도 하듯이 말했고, 한천은 여동생의 말투에 창문을 열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퍽.
당연히 소선의 응징이 뒤따랐다.
“윽. 비연 얘가 지금···.”
찌릿.
“······.”
소선의 눈빛을 보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우리 소선이는 태어나서부터 꾀꼬리처럼 울었더랬지. 어머니는 어디서 새가 우나 했다잖아. 아버지보고 어서 새를 잡으라고 난리라 아버지는 방을 이 잡듯이 뒤졌고 결국 깜찍하고 귀여운 우리 소선이를 발견했지. 실로 놀라운 발견이었더랬···.”
한천의 엉뚱한 말이 제갈미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풉. 끄윽. 끅.”
웃음은 전염되기 마련이었다.
“푸흐. 한천. 대체 그런 소리는 왜···. 푸흐흐하하.”
“······.”
얼굴을 붉힌 소선은 웃을 수 없었다.
‘저것도 오라비라고···. 에효. 일생에 도움이 안 되네.’
그래도 함께 웃었기 때문인지 분위기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고, 서로 편히 대화를 할 정도로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인들은 궁금한 점을 집요하게 캐묻기 시작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전에···. 연인이 있으셨다고요?”
소선의 물음에 이번엔 제갈미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너무나 궁금했던 일이다.
비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제 나이가 있는데 산속의 도인처럼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평생 인연이겠지 하고 만났지만, 얼마 가지 못했을 뿐이죠.”
“어, 얼마 안 만났던 거야? 난 비연 네가 한 십년은 만난 줄···.”
“십년이라니···. 한 달 쯤 됐든가 그랬지.”
“하! 내가 감쪽같이 속았어!”
당장이라도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연인을 위해 떠날 사람처럼 굴지 않았던가. 그래서 오랜 인연이라고 철석같이 믿었었다.
“속이긴 뭘 속였다고 그래? 묻지 않으니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
“그럼 그 분하고는 왜 헤어진 건데?”
남녀 사이의 일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는 사안이던가. 게다가 소선과 미도 무척이나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와 잠깐 멀어지나 싶었는데, 때마침 인연이 생기더라고.”
“누구? 너한테?”
“······.”
“······.”
비연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나 싶어 두 여인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녀한테···.”
‘다행···.’
‘그럼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뜻!’
“···가만 뒀냐?”
“누굴?”
“그 녀석 말이야. 혼쭐을 내줬어야지!”
한천이 그녀에게 들이대다가 비연에게 얻어맞은 기억이 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내가 못 이겨. 그러니 깔끔하게 포기해야지 어쩌냐. 어차피 서로의 마음이 떠났는데 붙잡는다고 잡힐 사람도 아니고, 잡을 나도 아니고.”
“헐. 네가 진다고? 가주님과 비등하게 겨루던 네가?!!”
한천은 믿기 힘들었다. 또래 중에 비연에게 대적할 이는 자신 밖에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자, 잠깐. 옥 공자님이 아버지와 검을 맞대셨어요?”
소선은 비연의 무공 수위를 처음 듣고 놀라는 중이었으며···.
“일신의 무공조차 가주님과 동급이라니···. 너무 멋있어요.”
제갈미는 반할 구석을 또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