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2/232)

일양(一兩)

***

진씨 세가의 형제를 비롯한 세가의 가주들과 무림의 방파들이 경매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동안 화산파와 남궁 세가, 제갈 세가는 유유자적이었다.

또한 이들은 서로를 알아봤기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제갈 세가의 가주인 제갈진이 이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남궁 가주님. 신수가 훤하십니다.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제갈 가주야 말로 신수가 훤하시오. 허허허.”

화산파의 무환은 본래 협의맹이 아닌 정의맹 소속이었기에 이들과 약간 거리감이 있었다.

“···이미 서로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가감 없이 털어 놓기로 합시다.”

“······.”

“······.”

화산파 무환 장문인의 말에 남궁곤과 제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축하인사를 드리는 것이 순서이겠지요. 화산파의 매화검법은 정말 일절이었소. 화산의 정수를 되찾았으니 앞으로 화산은 크게 부흥하겠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장문인.”

“저 또한 매화검법의 고절한 수법에 크게 탄복하였습니다. 장문인. 축하드리오.”

“흠흠. 두 분 모두 고맙소. 기이한 정보가 들어온 터라 더는 숨길 수 없었소.”

“기이한 정보? 그게 무엇입니까?”

“나 또한 궁금합니다.”

무환 장문인은 두 가주의 말에 조심스럽게 진가주의 일을 입에 올렸다.

“무림맹에서 하오문의 비급을 탈취하려고 시도했던 날, 진가장의 진호현 가주가 매화검법과 유사한 검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작전에 참여하지 못하는 바람에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화산파와 거래하는 상단의 인물이 전해준 정보였다.

“!”

“!”

“화산파에 매년 거액의 향화금을 보내고 화산파의 기본 무공을 사간 것도 결국 매화검법을 자신들의 무공으로 만들기 위해 사전 작업을 진행한 과정이라고 판단했소.”

“허허. 그래서 화산의 제자가 무림 대전에서 매화검법을 선보인 것이로군.”

“진가주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긴 하오. 앞에선 향화금을 내며 뒤로 그런 짓을 하고 있었구려.”

무환 장문인은 화산파의 일이 아닌 두 가문의 일로 주제를 돌렸다.

“화산의 소식은 이만하면 됐고···. 남궁 가와 제갈 가도 이미 실전한 무공을 되찾은 것 같소만?”

“······.”

“···흠. 내가 먼저 말하리다.”

무환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궁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렇소. 남궁가는 불과 얼마 전에 제왕검형과 창궁무애검법을 회수하였소.”

“허허. 무림의 홍복이오.”

“감축 드리오. 가주.”

“제갈 가도 마찬가지일 것 같소만?”

모두가 인정한 터라 제갈진도 어렵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렇소. 제갈가도 오래전 실전했던 가문의 진법인 천궁전도를 회수하였소.”

진법이라고 칭했지만, 천궁전도에는 제갈가의 진법과 진법에 기반한 갖가지 무공을 망라한 보물이었다. 천궁전에는 어느 문파의 상승 무공에 견주어도 밀리지 않을 지고한 무공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감축 드리오. 가주.”

“감축 드리오. 우리 모두가 잃었던 무공을 되찾았군.”

무공을 되찾은 공감대가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헌데 실전한 무공을 찾으려면 하오문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쏟아야 할지 걱정이오.”

자신들이 아니라 남은 다른 세가와 방파의 걱정이었다.

“하오문주는 최소가 삼십만이라 했으니 경매의 열기가 뜨거워지면 두 배까지 예상해야 할 것이오.”

“고작 그 정도에 그치겠소? 이번 하오문와 무림맹의 충돌을 들어보니, 전장과 상단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소. 이들이 나선다면 낙찰조차 쉽지 않을 것이오.”

그래봤자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이미 자신들은 실전 무공을 회수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제갈가에서 새로이 입수한 소식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두 분을 모셨지요.”

제갈가는 무공보다 머리를 더욱 인정해주는 문파였다. 세가 연합체인 협의맹에서도 제갈가는 군사의 역할을 주로 맡아오지 않았겠는가.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무림의 정세를 파악하고 예측하는데 힘을 쏟았고, 따로 정보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제갈가는 이렇게 준비해둔 제갈가의 힘으로 무림맹의 일까지 파악하는 중이었다.

“무림맹에서 각 세가와 방파로부터 수취한 입맹 자금에 관한 일입니다.”

돈에 관한 문제라면 유출 이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아직 맹주가 추대된 것도 아닌데, 그 자금에 무단 유용이 있었소? 꼭 찾아내 엄벌해야겠군.”

“유용이긴 하지요.”

남궁곤은 기껏해야 몇 천 냥을 유용했으리라 여기며 물었다.

“유출된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일부가 아니라···. 거액의 입맹 자금 전부가 사라졌습니다.”

아예 통째로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

“누, 누가 그런 짓을 벌였단 말입니까.”

“범인은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세가와 문파 전부가 합세해서 벌인 일로 예상합니다. 그게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

“!”

제갈진은 왜 이런 결과에 도달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림맹과 하오문의 충돌에 관한 소식과 그 결과는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무림맹의 기둥들이 패배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팔다리가 부러지고 크게 다쳐서 돌아왔으니 어찌 숨길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무림맹의 입맹 자금을 유용한 일은 숨길 수 있었다. 서로가 입만 맞춰두면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본 가문은 황금전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더 자세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알리지 않은 소식이지요.”

황금전장의 황금석은 여러 무림방파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특히 비상한 두뇌를 가진 제갈가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오문은 무림맹의 비급 탈취작전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이들에게 배상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배상금의 규모는···.”

배상 액수는 남궁곤과 무환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었다.

“무려 사백만 냥이라고 합니다.”

“헙!”

“사, 사백만 냥이라니···.”

“이 액수는 무림맹의 향후 활동을 위해 전 무림의 세력이 각출한 금액과 거의 일치하는 금액입니다. 저는 황금전장의 인물에게 이 정보를 확인하고 무림맹의 입맹 자금을 조사했고, 수일 사이에 그 전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귀가 맞아 떨어진 것이지요.”

“그, 그럼···.”

“하오문에 줘야할 각자의 배상금을 맹의 공적 자금을 빼서 충당했다는 뜻이오?”

“그렇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납입했던 입맹 자금까지 모조리 써버렸습니다.”

“우리의 뜻도 묻지 않고···.”

“맹주가 추대되기도 전에···. 이것들이···.”

남궁곤과 무환이 노기를 드러내려하자 제갈진은 얼른 다른 말을 덧붙였다.

“화를 낼 일이 아닙니다. 좋은 기회라고 여기십시오.”

“기회?”

“제갈 가주! 이게 어째서 좋은 기회라는 겁니까? 공적인 맹의 자금을 저들 마음대로 탕진하지 않았습니까!”

“우린 무림의 거대 세력에 커다란 약점을 잡은 것입니다.”

“!”

“!”

“우리는 이미 과거의 상승 무공을 되찾았지요. 이를 황실에 인정받으려면 진가장의 협조는 필수적입니다. 다른 문파와 세가는 진가주에게 잘 보이려고 야단이지만, 우린 이제 진가주에 수그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당당하게 요구할 조건을 저들이 마련해주었지요. 누구도 우리의 요구에 반박할 수 없습니다.”

무림맹의 공적자금을 유용한 약점을 잡았으니, 두 세가와 한 방파가 가장 먼저 상승 무공의 승인을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허허. 역시 제갈가의 비상한 두뇌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우선권이 생겼으니 기회라 말해도 틀리지 않겠소. 허허허.”

하오문을 향한 그릇된 판단이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입맹 자금을 잃었지만, 우린 이후에 그만한 가치를 회수하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자금이 부족한 무림맹은 근근이 꾸려나가야 할 것인데, 이번 하오문의 경매까지 더해지면 주요 문파와 세가의 자금은 바짝 말라버리겠지요. 그렇다면 누가 남겠습니까?”

“허허.”

“제갈가는 거기까지 내다보신단 말이요···.”

자금이 마른 무림의 세력들 사이에서 화산파와 남궁 세가, 제갈 세가는 크나큰 성세를 자랑할 것이다. 꼭 맹주 자리를 차지하지 않아도 무림맹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림맹이 있는 한 협의맹과 정무맹은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무환 장문인께서도 이를 잘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오. 세가와 문파의 구분은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이제야 정파 무림이 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지요.”

제갈진은 더 자세한 미래의 일을 입에 올렸다.

“우리 셋은 앞으로 무림맹의 중추가 될 것이며 무림을 주도적으로 이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훗날 진가주를 맹주 자리에서 내치고 새로운 맹주를 세울 수도 있겠지요.”

“!”

“!”

새로운 맹주를 추대한다면 결국 두 세가와 한 문파에서 결정될 것이다. 이는 맹주 자리를 자신들이 돌아가며 차지할 수 있다는 뜻과 같았다.

“욕심만 가득한 저들보다는 우리가 추대한 맹주가 더욱 정파 무림에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옳소. 제갈 가주의 뜻에 깊이 동감하는 바이오.”

“···화산도 동참하리다. 우리 같이 의(義)로운 무림을 만들어 봅시다.”

“하하. 우리의 뜻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그날 무림맹 내에 새로운 단체가 탄생했다.

“남궁 세가와 제갈 세가 그리고 화산파. 이(二)가와 일(一)파가 모였으니, 일양(一兩)이라 부르는 것이 어떻소?”

“제갈 가주는 작명 또한 일품이오. 허허.”

“일양이라···. 들으면 들을수록 좋군.”

“앞으로 맹주는 우리 일양(一兩) 내에서만 추대될 것이오.”

“물론.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

“허허. 화산파에서도 곧 맹주를 차지할 수 있겠구려.”

‘진 공자. 모두 그대 덕이오.’

‘옥 공자. 남궁가는 그대의 뜻대로 창천을 비상할 것이네.’

‘어서 사람을 풀어 옥 공자를 찾아야겠어. 그가 아니었으면 어찌 제갈가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겠는가.’

무림의 새로운 축이 탄생한 배경에는 호충의 족적이 뚜렷이 새겨져 있었다.

***

무림 맹주를 추대하는 무림 내 주요 세력의 회합이 있기 직전, 제갈 가주와 남궁 가주, 무환 장문인이 진호현을 찾아왔다.

“···세 분은 어쩐 일이십니까?”

진호현은 하오문 행사에서 뒤로 빠진 두 가문을 좋게 보지 않았다. 매화검법을 숨겼던 화산파도 마찬가지였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았습니다. 진가주.”

“나 또한 마찬가지요.”

“얘기가 길어질 것 같소만···.”

“우선 앉으시지요.”

제갈진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진가주. 제갈가에서 납입한 입맹 자금을 빼야겠소.”

“남궁가도 마찬가지요. 입맹 자금을 회수하겠소.”

“화산도 갑자기 자금이 필요한 터라 어쩔 수 없겠소.”

“!!”

“어차피 다른 방파와 세가에서 많은 입맹 자금을 받았을 것이니 상관없지 않습니까?”

제갈진의 말에 호현이 얼른 답했다.

“그럼 오늘 맹주를 추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무림맹에서 축출될 수도 있음입니다.”

“입맹 자금을 뺀 것으로 남궁 가가 맹주를 추대할 수 없다한다면 그도 수용하겠소.”

“자, 잠깐. 왜 갑자기···.”

“우리가 자금을 뺀다 한들 큰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오. 무림맹에서 축출한다? 나쁠 것이 있겠는가.”

“······.”

진호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버렸다.

빼주려고 해도 빼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야. 이건 내 잘 못이 아니라고!’

제갈진은 충분히 진호현 몰아넣었다 여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가주. 이미 다 알고 왔소. 무림맹의 공적 자금을 어찌하셨소.”

“하아······.”

진호현은 힘이 탁 풀려버렸다.

“어찌하셨냐고 물었소!!”

“···다 알고 오셨다 말씀하신 것 같소만. 그렇소. 무림맹에 입맹 자금은 없소. 전부 써버렸소.”

남궁곤과 무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제갈진은 질문을 이어갔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시오?”

“···내 잘못만은 아니오. 어찌 무림맹의 공적인 자금을 나 혼자 결정했겠소.”

“아직 진가주가 맹주에 추대된 것은 아니나, 이미 대부분의 세력이 진가주를 맹주와 같이 대우했소. 진가주가 아니었다면 그런 결정도 하지 않았을 터. 어찌 진가주의 잘못이 가장 크지 않다고 할 수 있겠소?”

“······.”

“하지만 우리는 진가주에 새로운 기회를 주려고 하오.”

진호현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솔직히 진가주가 아니면 누가 초대 맹주의 자격이 있다 할 수 있겠소.”

“하하···.”

진호현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남궁곤은 거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우리가 납입한 입맹 자금이 우리의 뜻에 반하여 사용된 것은 사실이지요.”

진호현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자신을 맹주로 추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제갈진이 진호현의 말을 받았다.

“대화가 빨라서 좋습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물론 진가주께서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황실에 처음으로 상승 무공을 승인 받을 세 문파는 저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