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232)

탄로 나다

***

“주변 민가는?”

“피해가 없도록 다른 곳으로 내보냈습니다.”

무림의 행사로 객잔 근방의 민가에 피해가 없도록 미리 조치를 취한 다음이었다.

“별채에 계신 문주님이 편안하게 쉬실 수 있도록 조용히 정리해야 할 것이다.”

“···녀석들은 완벽하게 제압된 다음에나 객잔에 들어올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 놈들을 얼른 잡고 우리도 객잔으로 가지.”

무림맹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위지승은 종남파를 맞이하고 있음에도 느긋했다.

“하오문은 정말 아랫것들 천지로구나! 감히 점소이 따위가 무림의 행사에 끼어드느냐!”

“······.”

“저 녀석이!”

황혼단원은 단주를 점소이 취급하는 종남파의 말에 발끈했지만, 오히려 점소이 취급을 받은 위지승은 화를 내지 않았다.

“우리가 하오문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하오문은 점소이를 대표할 수도 있음이다.”

“···죄송합니다. 단주님.”

“마음을 가라앉혀라. 혹여 급한 마음에 나섰다가 실수라도 하면 왕 방주님이 가만 계시겠느냐.”

단원들에게 다치지 말라 명했지만, 위지승 자신도 다치지 말아야 했다.

“···아.”

지금은 다치지 않고 저들을 제압하는 것이 목표였다. 애초에 패배는 존재하지 않을 싸움이었다.

“그럼 합공을 부탁드립니다. 단주님.”

“큭. 그야 당연하지.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가자.”

십여 명의 무림인들을 상대로 단 둘이 나서고 있었다. 이들의 걸음에는 아무런 긴장감도 느낄 수 없었다. 하오문의 훈련관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연습처럼···.”

둘은 종남파의 제자들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진검이 아닌 몽둥이를 들었다.

“난 왼쪽.”

“그럼 저는 오른쪽을 맡지요.”

종남파의 앞에 서있던 이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둘은 들리지 않는 듯이 앞으로 쇄도했다.

“이 놈들을 빨리 정리하고 나머지를 처리해야한다.”

“옙! 서두르겠습니다!”

타앗!

둘은 종남파 제자들의 진검을 앞에 두고 능숙하게 초식을 펼쳤다.

‘파산도법 일식. 섬전도.’

따다당.

단 일식에 세 번의 몽둥이가 작렬했다.

검을 든 종남의 제자는 자신의 검에 들어오는 묵직한 충격에 호구가 찢어지며 검을 놓치고 말았고, 비어있는 자신의 머리로 날아오는 몽둥이를 볼 수 있었다.

뻑.

“꺽!”

무림에서 이름 높았던 종남의 제자를 단 일 초식으로 이긴 것에 희열을 느낄 순간은 없었다.

“힘 조절 안 하냐!”

“···죄송합니다.”

타박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저, 저것들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나···.”

종남의 장문인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는 자신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드는 둘에게 크게 기분이 상해버렸다.

“살(殺)! 자비를 보이지 마라!”

“예! 장문인!”

본격적인 충돌이었다.

종남파의 무인들은 하오문의 무인들에게 살기 가득한 검초를 날렸지만, 정면에서 받아주는 일이 없었다.

따당. 뻐억!

“끄아아!”

힘을 주어 공격하면 물러서서 허술한 쪽을 쳤고, 잠시 마음을 놓을라치면 어느새 돌아와 몽둥이찜질을 해댔다.

“뒤에서 쳐라! 방진을 만들어 가둬라!”

종남의 장문인은 제자들이 당하는 것을 보고 부랴부랴 전열을 정비하려 했지만, 이미 두 명의 적은 깊숙하게 들어 휘젓고 있었다.

빠박. 딱.

몽둥이가 휘둘러 질 때마다 속절없이 제자들이 흙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더 많이 데려왔어야 하는데···.’

종무의 상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둘은 종남의 제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자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이 놈들! 무림맹이 두렵지 않으냐!”

“하오문도 무림맹에 소속되어 있는데? 종남파만 무림맹이냐?”

“······.”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무림맹은 정파에 속한 모든 문파의 무림맹이지 종남파만의 무림맹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점소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빨리 객잔으로 가서 청소해야 하니까 힘 빼지 말고 빨리 끝내자.”

챙!

종무는 오랜만에 검을 꺼냈다.

‘···제길.’

하도 오랜만에 검을 잡아서 검병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어색했다. 하지만 적을 앞에 두고 공격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몸이 기억하는 대로 종남의 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앗! 종남의 천하십이검이니라! 받아라!”

위지승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종남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장문인이니 얼마나 고강한 무공을 갖췄을 것인가.

휘익.

“?”

휘익. 휙.

“??”

위지승은 종무의 검이 기이하게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림에 의아했다. 방금까지 종남의 제자들에게 날아들던 검에 비해서 한참 부족한 검이었다.

‘종남의 자랑인 중검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위지승과 함께 있던 황혼단 단원도 이를 알아 볼 정도였다.

“···단주님. 저 새끼 왜 춤을 추고 난리랍니까? 혹시 단주님을 방심하게 하려는 걸까요?”

“팽팽 놀았겠지. 일파의 장문인이라는 놈이 오히려 제자들보다 못하다니···. 부끄러울 일이야.”

그간 장문인의 자리에 만족하고 수련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종남엔 더 익힐 무공도 없었고, 장문인이 된 것만으로 그 이상을 바랄 일이 없었다. 무엇을 위해 고생하며 무공을 더 익힌단 말인가. 특별한 목적도 없고 무인으로서의 열망도 부족한 종무는 이후 수련에서 손을 놓았다. 장문인이라는 간판만 있으면 모두가 고개를 숙이니 딱히 필요성을 느낄 수도 없었다.

“허억···. 허억···.”

“······.”

위지승은 잠깐의 공격으로 숨을 몰아쉬는 종남의 장문인을 보자니 괜한 시간낭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저 새끼는 네가 잡아라. 나는 먼저 객잔으로 돌아가마.”

“예. 단주님.”

“거기 서랏!”

탓!

종무의 말에도 위지승은 경공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몽둥이를 든 황혼단원이 다가왔다.

“이제 좀 맞자.”

“겨우 너 같은 놈이 날···.”

“닥치고 그냥 맞아라.”

‘파산도법 육식. 풍도!’

휘리리릭.

바람처럼 나부끼는 몽둥이가 검을 피해 종무의 몸에 작렬했다.

빠바바박.

“······.”

쨍그랑.

기이하게 몸을 뒤튼 종무가 검을 놓치며 그 자리에 모로 쓰러지고 있었다.

“제길. 뒈지진 않았겠지?”

자신의 공격이 종남의 장문인을 죽인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약발이 왜 이렇게 잘 받냐. 흐흐흐.”

방주들이 먹는 영단에 비할 바는 아니나, 무력을 담당하는 이들에게도 상당한 수준의 영단이 지급되었던 탓이다. 덕분에 부족했던 내공까지 급성장한 황혼단과 여명단은 무리 없이 무림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

“······.”

“거참. 빨리 좀 올 것이지···.”

진호현은 객잔 앞에서 하오문주 곁을 지키던 호위무사를 마주했다. 왕호였다.

“우리 문도들이 그대들을 기다리느라 얼마나 똥줄이 탔는지 아는가?”

“으아악!”

“막아라!”

“방진! 합공하라!”

느긋하게 말을 거는 왕호 주변에선 하오문과 무림맹의 충돌이 이미 진행 중이었다. 특히 황혼단주인 위지승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뛰고 있었다.

“대가리는 나와 여명단주가 잡는다! 너희는 잔챙이 정리해!”

“옙!”

‘하오문은 모두가 일당백이다.’

가주와 문주들의 최정예를 뽑아왔음에도 숫자가 적은 하오문에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것밖에 안 왔소? 조금 기다릴 걸 그랬소? 뒤에 더 오는가 보오?”

“······.”

더 이상 남은 무사들이 없었다. 있어봤자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는 이들보다 강한 무인이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의 왕호와 달리 진호현은 강한 위기감에 머리를 총동원하고 있었다.

“오해는 무슨 오해? 방금 소림 방장이 비급을 내 놓으라고 소리쳤잖은가.”

“······.”

처음부터 목적을 전부 드러내고 공격을 감행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하오문이 먼저 무림맹을 적대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가주 당신도 내게 물었잖소. 비급을 어디에 숨겨두었느냐고 말이오.”

“······.”

자신까지 같은 말을 뱉었기 때문에 할 말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여긴 너희와 우리뿐이로군.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이 말을 맞춰놓으면···.’

오늘의 행사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후의 일을 계획하는 것이다.

“잔머리 굴리지 말고 덤비시오. 적이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소.”

“···감히-”

“제발 그 딴 헛소리는 하지 마시오. 대충 짐작하고 있겠으나, 우리가 그대들보다 훨씬 강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 말을 해야겠지요.”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해 예의를 차리던 왕호가 잠시 예의를 벗어버렸다.

“감히 하오문의 물건을 탈취하려 들어? 감히!!!”

왕호는 진호현과 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챙.

진호현도 상대가 곧 달려들 것 같아 보이자 얼른 검을 빼들었다.

‘화산파가 이번에 동참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군.’

다른 이들이 이쪽을 주시하지 않으니 진강이십사검을 간간히 쓰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

탓.

왕호는 문주와 대련할 때처럼 기합도 내지 않고 뛰어들었다.

“흣!”

호현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맞이해 진강이십사검 즉, 매화검법의 검초를 뿌렸다.

광운쾌검(光雲快劍)의 발현이었다.

채앵!

그때 왕호의 손목에 있던 흑주(黑紬)가 빛을 발했다.

‘···이거 물건이야.’

얼마나 단단한 철로 만들어졌는지 날카로운 검식에도 작은 흠집이 전부였다.

호현도 마찬가지였다. 검에 팔을 들이미는 모습에 검이 상대의 손목을 자르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단한 이질감과 불똥만 보았을 뿐이다.

“제길···. 방어구가 있었군.”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 문주님은 어찌나 철저하신지···.”

왕호는 다시금 호충에게 충성을 다짐하며 주먹을 들었다.

“이 왕호가 부끄럽지 않게 만들어주시는군.”

흑림방의 단원들이 다치지 않았는데 방주가 다치면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진가주. 그대는 아직도 하오문의 비급을 탐내는 가?”

“비급은 너희 하오문의 것이 아니다! 모조리 토해내야 할 것이야!”

왕호는 이유 없이 다시 묻지 않았다. 이 답을 들어야할 이들이 있었다.

“···실력이 있다면 가져가 보시오. 날 이기면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터. 들어오시구려.”

진호현의 단호한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하압!”

진호현은 왕호를 상대로 검을 날리며 간간히 진강십이검을 사용했고, 왕호는 무리 없이 검을 흘려내며 대결에 임했다.

“······.”

“······.”

“······.”

그리고 이들의 충돌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설마 했거늘···.”

“정파 무림의 기둥이라는 자들이 이런 행태를 보일 줄이야···.”

“게다가 진가주는 이번 무림맹의 맹주로 가장 유력하다는 이가 아니오.”

“좌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림의 홍복이라 여겼거늘···.”

오래전 잃었던 비급이 다시 무림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한 중원의 상단주들과 전장의 장주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오늘 급하게 자신을 초청한 연유를 알지 못해 의아했으나, 무림맹의 행사를 보고서야 왜 자신들을 불러 모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증인이 되어달라는 뜻일 것이오.”

“···하오문의 행사를 보아하니 실로 거대한 저력을 가진 문파라는 판단이 듭니다.”

“무림맹은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군.”

하오문은 무림의 주요 문파를 상대로 엄청난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숫자가 한참이나 부족함에도 밀리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제압하는 모양새였다. 누가 향후 중원을 휘어잡을 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은 확실한 실력행사였다.

“때가 되면 나서야 할 것이오.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우리도 하오문과 척을 지는 것이오.”

“당연한 일. 상단을 운영하며 그 정도 판단력도 없겠소.”

“하오문에 호의를 보이면 우리에게 떨어질 것도 더 많겠군.”

“저들의 비급을 우리가 낙찰 받아 더 비싸게 팔아도 될 것이오.”

“크흐흐. 그거 좋은 생각이오.”

“애초에 이것이 하오문주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이들이라고 무림맹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겠는가. 하오문의 힘이 부족하다는 확신이 들면 무사들을 고용해서라도 비급을 탈취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하오문의 힘을 보니 경거망동하지 않기를 천만다행이었다.

“진가주가 파탄을 드러내고 있구려. 이제 거의 끝난 것 같소.”

“헌데···. 진가주의 무공이 기이하군. 마치 화산파의 검공과 비슷하지 않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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