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232)

음주무공

***

‘무슨 소식이기에 아비가 자식을 적대할 거라고 자신하시는 거지? 그것도 자식을 죽이거나 병신을 만들어?’

“설마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아들이 아닙니까.”

“조부를 가주위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이 바로 진원우라고 하더라고.”

“그럼!”

“그래. 가주에 오르고 싶어서 관과 내통한 거지. 진원우는 은밀하게 관에 있는 지인과 이를 상의했다더군. 또한 진원우의 지인이었던 관인은 황궁에 알리지 않는 조건으로 조부를 원로원으로 보내며 돈까지 받아먹었다고 했다. 이후 진원우는 원로원에 게신 조부께 서찰 한 번을 쓰지 않았지. 조부의 성정도 진원우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만약 이 사실을 알면 진원우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당시 기루에서 일하던 기녀가 관인이 술김에 하는 소리를 들었고, 이 정보가 하오문 루방의 기녀들을 통해 화진에게 전해진 것이다.

“거참. 짐승도 그렇게는···. 죄송합니다. 대형.”

“마음대로 욕해도 된다. 나는 진원우를 아비로 여기지 않으니까. 형제들도 마찬가지다.”

“에이. 그래도 대형의 부친인데, 어떻게 욕을 합니까.”

“······.”

호충의 진짜 아버지가 따로 있어서 하는 말이었지만, 아직 아비의 신분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이것 말고도 재미난 소식이 또 있지만, 나중을 위해 아껴두지.”

화진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하나가 아니었다. 기녀들이 물어온 정보가 또 있었다.

기루의 기녀들은 술자리를 통해 개인들의 내밀한 정보를 수시로 들었고, 이는 하오문이 거대한 정보의 요람으로 거듭나는데 커다란 이점이었다. 특히 진가장의 전전대 가주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는 향후 진가장의 모든 것을 결정지을 정도로 대단한 정보였다. 화진은 이 정보를 전달하며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세히 설명했었다.

[사실···. 가가의 조부께서 가주로 계실 때 당시에 자장의 일부 기녀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 있었다고 해요. 저는 어려서 듣지 못했는데, 당시의 기녀들을 통해 정보를 취합해보니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여요.]

호충은 그 정보를 들으며 진가장의 자손들이 개차반인 이유가 집안 내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그 피가 어딜 가겠어? 위에서부터 내려왔으니, 물려받은 게지.’

“에이. 뭔가 찜찜합니다. 다 얘기하시죠.”

“큭큭. 이건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 여태 내가 진가장을 지켜보고 있는 것과 연관된 일이다. 그러니 너도 기다려.”

“저 입이 무거운 놈입니다. 대형.”

“안다. 그래서 네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다 하지 않았느냐.”

“···재미난 소식은 숨기셨지 않습니까.”

“에헤이. 이렇게 집요하게 굴면 여인들에게 인기 없는 법이다. 대범하게 잊고 넘어가. 나중엔 다 알게 될 일이야.”

“대형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집안일이라 그런다. 그러니 나중에 밝혀지면 그 때 물고 뜯어.”

“···제가 괜히 물었나 봅니다.”

“앞으로의 일은 대강 설명했으니, 오늘은 편히 먹고 마시자.”

호충은 아직도 아쉬움이 가득한 왕호에게 술을 따라주며 앞으로 진가장이 어찌 될지를 그리고 있었다.

‘진호현, 진호중, 진호성. 너희가 언제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을지 두고 보자.’

지금 진가장에서 공동 가주를 맡고 있는 세 형제다.

‘호현. 너는 무림맹주가 되고 싶으냐?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라.’

태자의 위세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하는 호현의 현재 상황도 알고 있었다.

‘네가 등에 업은 그 놈은···.’

호충은 잔에 남은 술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으며 생각을 마무리했다.

‘내 배다른 동생이라는 소식을 들으면 네가 어찌 반응할까? 크크크.’

“크하. 술 맛이 죽이는 구나. 의제 한 잔 따라주게.”

“예. 대형!”

***

적당히 술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난 호충과 왕호는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본래 왕호에게 시키려던 일을 시작했다. 남경의 잔챙이들을 정리하는 일이다. 둘이 자리를 옮긴 곳은 남경 시전을 넘어서 한참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작은 가옥이었다.

“안 그래도 앉아만 있어서 뻐근했는데, 딱 좋겠습니다.”

“어허. 힘 빼라. 힘 빼. 그러다 애들 잡는다.”

“제가 감숙성에서 패주 놈들 상대하면서 힘 조절하는 건 이골이 났습니다.”

“음주무공은 또 다른 법이다.”

음주운전이나 음주무공이나 뭐가 다르겠는가.

“크하하. 지켜봐주십시오. 대형.”

왕호는 밖에서 가옥을 지키던 두 인물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기 주인이 누구냐? 어르신이 찾아오셨으니 얼른 나와서 인사를 하라고 해라.”

“······.”

“······.”

험악한 얼굴의 두 남자는 서로를 잠시 마주하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풉. 아직도 이런 새끼가 찾아오네.”

“큭. 그러게 말이오. 형님. 주정뱅이 새끼들은 다 정리한 줄 알았더니.”

왕호는 자신의 옷에서 풍기는 진한 주향을 맡으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서 좀 마셨다. 그러니 너희 주인이나 나오라고 해.”

“나오면?”

“귀인을 몰라봤다며 내 앞에 꿇어앉겠지?”

“푸흡!”

“큭큭. 형님 계속 듣고 있으실 참이오?”

“재미있잖아. 요즘 새로운 손님도 없으니 말동무하는 셈 치면 된다.”

“아이고. 그러다가 대형이 밖으로 나오시면 우리만 죽어납니다. 대형 성격 아시면서···.”

“동생 말이 맞다. 이러다 우리만 맞아죽지.”

형님이라 불린 인물은 낌새도 없이 출수했다.

슉.

날카로운 단검이 소매에서 튀어나와 왕호의 턱을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다. 방금까지 실실 웃던 이들이 보일 거라 생각하기 어려운 잔인한 술수였다.

“하아암.”

그 와중에 왕호는 하품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옆으로 들어 단검 끝을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탁.

“이 놈아. 네 단검이 언제 내 몸에 닿는지 숫자를 세다가 지겨워서 잠이올 지경이었다.”

“!!”

“너 이 새끼가···. 그거 안 놔!”

지켜보던 나머지 녀석이 품에서 꺼낸 단검을 들고 앞으로 몸을 던졌다.

“얼씨구?”

왕호는 단검을 놓지 않고 몸을 회전시켰다. 대월천룡권의 천룡출두(天龍出頭)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퍽.

“커억.”

왕호가 회전하며 고(柧)에 맞은 녀석이 멀리 튕겨나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왕호에게 붙들린 놈이 문제였다.

우드득.

“끄아악!”

녀석의 팔은 왕호가 몸을 회전하는 힘에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어져 있었다.

“멍청한 놈. 아프다 싶으면 단검을 놨어야지.”

하지만 왕호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왕호는 천룡출두를 사용하기 직전에 단검을 놓고 녀석을 팔목을 잡아챘다. 일부러 녀석의 팔을 여러 조각으로 부러뜨린 것이다.

“끄악. 으으악!”

비명이 계속 들려오니 안에서 반응이 있었다.

덜컹.

“무슨 일이냐!”

소란에 가옥 안에 있던 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큭큭. 본래 개를 때리면 주인이 나오는 법이지.”

문답이 무용하니 밖을 지키는 녀석들이 비명을 지르도록 유도한 것이다. 인적도 드문 곳이라 비명을 들어도 관인이 오지 않을 터였다.

호충은 왕호의 물 흐르는 듯이 이어진 일련의 행동을 보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오. 생각보다 잘 한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무공을 익힌 왕호에겐 선명하게 들렸다.

“헤헤. 감사합니다. 대형.”

멀리서 지켜보는 호충을 잠시 돌아봤지만, 왕호의 시선은 다시 앞을 향했다.

“여기 주인이 누구냐? 왜 이렇게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

“···귀하는 누구요?”

“나? 지나가는 도박쟁이.”

“······.”

“으으. 형님···.”

“···예사롭지 않은 놈입니다.”

밖을 지키던 동생들이 당한 몰골을 보면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째서 우리 사업장에 오셔서 행패를 부리시는 게요.”

“꼴사나워서?”

“혼자서 우리를 다 상대하실 수 있겠소?”

“조금 모자란 것 같다? 이게 전부냐?”

“허. 이런 식으로 행패를 부리다가 죽은 놈이 어디 한둘 인줄 아는가?”

“······.”

왕호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녀석의 뒤에 있는 녀석을 주시했다. 다른 녀석들은 겨우 삼류에 발을 걸친 정도였으나, 양쪽 소매에 팔을 교차해서 감춘 녀석은 확실히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왕호는 무공을 익힌 놈을 확인하고 오히려 허술한 모습을 드러냈다. 무공을 익힌 흔적을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빈틈을 드러내며 도발한 것이다.

“그냥 순순히 목을 내놔. 그럼 나도 편하고 너희도 편하지 않을까? 엉?”

목을 쭉 빼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에 맨 앞에 있던 놈이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달려 나왔다.

챙.

“죽어라!!”

크게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녀석이지만, 왕호에게 검격이 닿지 않는 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부웅.

‘이 놈은 바람잡이고···.’

녀석이 휘두른 검으로 인해 일어난 검풍이 왕호의 옷자락을 조금 흔들었다. 또한 왕호의 눈에 뒤에서 대기하던 놈의 소매가 번개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곧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날붙이가 날아들었다. 왼쪽과 오른쪽을 파고드는 두 개의 비도는 곧장 왕호의 신형을 꿰뚫을 것처럼 빠르게 쇄도하고 있었다.

.

.

.

호충은 왕호가 상대하는 이들을 지켜보며 품에 손을 넣고 있었다. 품에 넣은 손에는 언제든 출수할 수 있도록 유엽비도의 손잡이가 잡혀 있었다.

‘녀석. 안 본 사이 유연해졌고, 노련해졌구나.’

호충은 두 개의 비도가 왕호에게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도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엽비도의 손잡이는 놓지 않았다.

.

.

.

‘서안에서 어르신의 검을 경험하지 못했으면 상당히 위험했겠구나.’

송 영감의 검에 익숙해진 왕호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비도를 느긋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스윽. 슈슉.

대월천룡권의 보법에 몸을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 두 개의 비도를 흘려보낸 왕호는 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자세를 잡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타악.

대경한 검수가 뒤로 물러서기도 전에 왕호의 팔이 뻗어졌다. 왕호의 주먹은 녀석의 이마까지 도착해 멈췄고, 주먹에서 검지가 튕겨져 나갔다.

따악.

“끄악!”

왕호의 신형이 급하게 앞으로 향했다.

“놈!”

비도를 날렸던 놈이 다시 소매에 손을 넣었기 때문이다.

“죽어라!!”

녀석의 손에는 각기 두 자루의 비도가 들려있었고, 곧장 왕호를 향해 뿌려졌다.

“제길.”

‘너무 느긋하게 움직였어.’

비도를 피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으나, 뒤로 물러서기 시작하면 언제 다시 여기까지 다가올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슈우욱.

그때 왕호의 뒤에서 비도가 날아들었다.

째쟁! 챙! 팅!

네 자루의 비도는 방금 뒤에서 날아든 단 한 자루의 비도에 모두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고절한 비도술이었다.

왕호가 뒤를 돌아보니 호충이 빙긋 웃으며 손을 앞으로 휘젓는 모습이 들어왔다.

“큭. 의제가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왕호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욱 속도를 올려 앞으로 향했다.

“녀석에게 방수가···.”

이들은 왕호의 뒤를 봐주는 이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빠악. 뻑.

“끄헉!” “억!”

순식간에 형님이라 불린 놈과 조무래기를 정리한 왕호는 비도를 날리던 놈의 앞까지 다가갔다.

“하, 항복.”

녀석은 비도 외에 다른 것을 익히지 못했는지 곧장 손을 들고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에라이.”

상황이 정리된 것을 확인한 호충이 곁으로 다가왔다.

“아. 형님.”

“너도 이 녀석이 있는 건 알고 있었잖아.”

“예···.”

“그럼 어찌해야 네가 비도를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

“물론 네가 비도를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숨에 이놈들을 정리하려면? 네게 시간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음···. 잘 모르겠습니다.”

호충은 왕호가 처음에 가볍게 딱 밤을 먹인 녀석의 멱살을 잡아서 끌고 왔다.

“이 녀석을 활용했어야지.”

“아!”

왕호는 호충이 알려준 방법이 무엇인지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을 고기방패로 써야 했습니다.”

호충은 멱살을 잡은 놈을 가볍게 가로로 들며 말했다.

“이렇게 옆으로 잡았다면 이 녀석이 저 새끼가 날린 비도를 머리와 엉덩이로 다 받아냈겠지.”

“그렇지요!”

“혹시 저 새끼가 비도를 조금 더 흩뿌렸다면?”

“회전?”

“정답! 이렇게 휙 돌리면 비도는 다 걸려들지.”

건장한 성인이 호충의 손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우아아아아!”

“다른 녀석이 칼을 휘두르기도 마땅치 않았을 거야. 휘둘러도 상관없겠지. 녀석이 공격을 막아주는 동안 너는 멀쩡하게 나머지를 상대하면 되니까.”

손발을 사용하는 대월천룡권의 가장 큰 약점은 공격의 사정거리가 짧다는데 있었다. 이번처럼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상대가 있을 때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교묘하고 잔인한 수법을 알려주는 호충이다. 방법을 다 일러준 호충은 손에 잡혀 있던 놈을 대충 던져놓았다.

털썩.

“···끄어어어.”

아직 기절하지 않았던 검수는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둘을 보고 있었다. 호충은 흔들리는 녀석의 눈빛을 보며 말했다.

“너는 빨딱 일어나서 애들 모아라.”

“···예. 흡.”

날카롭고 잔인한 눈빛이 자신을 난도질 하고 있었다. 감히 비벼보지도 못할 강자라는 것은 검을 겨누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방금까지 호충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았기에 몇 발짝 가지 못하고 픽픽 쓰러지고 있었다.

“애들이 좀 약하네. 겨우 몇 바퀴 돌았다고 저런다니?”

“부끄럽습니다. 겨우 이런 놈들을 상대로···.”

왕호는 잠시나마 고전한 모습을 보인 것이 부끄러웠다.

“차차 나아지겠지.”

“더욱 완벽하게 수련하고 발전하겠습니다. 대형.”

“흐흐. 내 의제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잠시 후 꿇어앉은 이들은 모두 다섯이었다.

“또 없냐? 이게 전부야?”

“예···. 저희가 전부입니다.”

방수로 세워두었던 둘과 안에서 나온 셋이 끝이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제대로 답하면 아프지 않게 단칼에 죽여주마.”

“···!”

죽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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