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232)

돌아온 보물

***

남궁 가주는 창궁무애검법의 첫 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가본 비급만 몇 권을 보았는지···.’

지난 회합에서 모용 세가의 일을 알고 난 다음부터 실전한 비급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흑점이라고 찾지 않았겠는가. 흑점을 비롯해 남궁 가와 연결된 모든 상단을 통해 실전한 상승 무공을 찾았지만, 지금까지 가본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 상승 무공을 잃고 몇백 년이나 흘렀기 때문이다.

“······.”

부르르.

비급을 살피던 가주의 손길이 갑자기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는 손길이 조심스럽게 변해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창궁무애검법을 모두 살핀 가주가 입을 열었지만, 뒷말은 뱉지 못했다.

“이, 이게···.”

하지만 호충은 여유롭게 말을 건넸다.

“속단하지 마십시오. 검보는 한 권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음 검보도 살펴주시지요.”

창궁무애검법보다 더 중요한 제왕검형이 남아있었다.

휙.

다시 비급으로 고개를 숙인 가주는 처음부터 조심스럽게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필체가 마치 검식을 펼치는 듯하구나. 옥 공자의 말 대로 고수의 필체다! 실로 지고한 수준의 고수가 남긴 검법! 이건 남궁 가의 혼이 서린 진정한 제왕검형이다!’

익히지 않아 펼칠 수는 없지만, 그의 뇌리에 상대를 짓누르는 제왕검형의 웅혼한 검식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절대 고수인 선조가 펼치는 남궁 가의 제왕검형이었다.

“······.”

호충은 눈을 감고 검보를 음미하는 가주를 기다렸다.

‘밥이 다 되었군.’

한천은 초조하게 기다리던 태도를 버리고 굳은 얼굴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진본이 분명하다. 아니면 아버지께서 저런 모습을 보이실 리 없다.’

“후우.”

깊은숨을 내쉬며 눈을 뜬 가주가 아까와 다른 눈으로 호충을 바라봤다.

“···손님을 이리 세워두다니. 총관 어서 가서 가장 귀한 차를 내오게. 옥 공자는 어서 자리에 앉으시게.”

“감사합니다. 가주님.”

호충은 당당하게 허리를 세우고 자리에 앉았고, 가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호충 앞에 마주 앉았다.

한천도 얼른 가주의 곁으로 가서 앉으며 물었다.

“아버지···. 맞습니까? 맞는 거죠?”

“···그래. 네가 큰일을 했다.”

“!!”

“가문의 숙원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호충은 겸양을 떨며 속내를 감췄다.

“가주님. 감축드립니다. 모든 것은 남궁 가에서 많은 덕을 쌓았기 때문에 가져온 결과이지요.”

“허허허. 어허허허허허.”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남궁 가의 전부라고 해도 좋을 제왕검형이 아니던가. 창궁무애검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궁무애검법이 있어야 제왕검형을 제대로 익힐 수 있을 터였다. 오늘 바라고 바라던 두 무공이 한꺼번에 돌아온 것이다.

한천은 검보가 진본이라는 말에 옥비연이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에 기뻐했다.

‘녀석은 그저 가문에 호의를 가진 상인이었구나. 나를 대한 그의 태도는 진심이었어.’

미안한 감정도 이어서 들었다.

’나는 어쩌자고 신의를 품은 친우를 의심했는가.’

그때 친우가 아버지께 전하는 축언이 들려왔다.

“부디 남궁 가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가주님.”

“물론! 실전한 무공을 되찾았으니 앞으로 가문이 크게 부흥할 것이야.”

“감축, 또 감축 립니다.”

호충은 포권하며 연신 허리를 숙였고, 가주의 입에서 돈 얘기가 나오길 기다렸다.

“역시. 그대가 상인은 상인이로군. 아주 노련해.”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노련한 건 그대로군.’

호충은 남궁 가주가 자신의 속내를 들여다봤음을 알았다. 이어서 나온 가주의 말은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옥 공자는 흑점에서 이 비급을 구매하였다고만 말하고 여태 얼마를 주었는지는 숨기고 있지 않은가. 비급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을 내게 미루고자 함인가?”

“······아니옵니다. 가주님.”

하지만 이조차 한천을 만나며 계획한 일의 일부였다.

“아니다?”

“이미 남궁 대공자에게 비급을 얼마에 샀는지 다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비급을 산 가격에서 한 푼도 더 받지 않을 것입니다.”

“허. 이거 내가 크게 한 방 먹었군. 한천. 옥 공자가 얼마에 이 비급을 샀다고 했느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호충의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한천!”

“엉?”

“가문의 정화인 검보를 흥정하여 가격을 낮출 수는 없습니다. 친우는 신의가 있으니,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책정하신 검보의 가치를 그대로 주시지요.”

“어쭈? 너와 벗이 되었다 이거냐?”

“물론 가문의 일이니 말하라 명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친우가 가문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걸음 한 수고를 알아주십시오. 비연은 가문에 큰 호의를 갖고 있습니다.”

“아하하하. 녀석. 이제야 사내다운 모습을 보이는구나.”

가문의 숙원을 이룬 날이다. 게다가 아들이 그 기회를 가져왔으니 뭐든 좋게 보이고 있었다.

“옥 공자. 언제 내 아들을 이렇게 구워삶았소?”

“아, 아니옵니다. 아드님이 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추호도 이득을 노리고 이곳에 오지 않았습니다.”

‘달라는 돈이나 정확하게 줄 것이지. 또 왜 이 지랄이야?’

호충은 화산파에서 비급을 팔아먹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십만 냥에 팔려 했던 것을 이십만 냥에 팔아먹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삼십만 냥을 준다는 걸 부득불 깎은 결과였다.

‘사기 치는 놈 찔리게 자꾸 왜 이러냐고!’

“하하하. 오늘 정말 기분이 좋군. 아들은 사내가 되었고, 귀한 손님이 선한 마음과 귀한 보물을 갖고 오지 않았는가.”

“가주님. 제가 그 검보를 산 가격은···.”

호충이 얼른 가격을 말하려는데, 가주가 손을 들어막았다.

“그만! 옥 공자의 뜻은 이미 알았네.”

마침 총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가주가 부탁한 차를 직접 내온 것이다.

남궁 가주는 다가온 총관에게 물었다.

“총관.”

“예. 가주님.”

“우리가 실전한 가문의 무공을 구입하려 준비한 자금이 얼마인가.”

“······말씀드려도 되옵니까?”

비급을 판다는 사람이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총관은 비급이 진본이란 가주의 확언을 듣기 전에 밖으로 나갔기에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숨김없이 말해도 좋네.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은 틀림없이 우리 가문의 무공이며 진본이니까.”

“!!”

총관은 가주에게 인사부터 올렸다.

“감축드립니다. 가주님. 가주님 대에서 가문의 숙원을 이루셨나이다.”

“하하하하.”

“허나 우선 입단속을 철저하게 하시고···.”

“지금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여기 있는 넷이 전부로군.”

총관은 호충을 보며 비밀을 지킬 것인지를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저는 어디에도 오늘의 일을 알리지 않을 것입니다. 흑점에서 비급을 입수할 때도 얼굴을 감추었으니, 남궁 가의 지고한 검보가 돌아온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요.”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총관의 꼼꼼한 일 처리는 알아줘야지. 허허허. 그보다 지금까지 우리가 지출하려던 비급의 가격이나 말해보게.”

“가주님. 이 부분은 시일이 필요합니다. 오랜 협상을 거쳐 산정해야 옳지 않을지···.”

호충은 얼른 총관의 편을 들며 말했다.

“옳습니다. 제가 따로 총관님과 논의하여···.”

“옥 공자. 내 이미 결정했어. 이 이상 우리 가문에 뭘 더해주려고 그러는가. 그대의 마음은 넘치도록 받았네.”

‘받긴 개뿔! 그냥 빨리 끝내자고!’

“가주님···.”

“총관은 우리가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을 회수했을 때 지출하려던 금액을 말하게.”

“···그럼 말씀 올리겠습니다.”

총관은 과거 가주와 세웠던 계획을 하나씩 입에 올렸다.

“창궁무애검법을 찾으면 최대 삼십만 냥까지 지급할 생각이었고···.”

“······.”

“헙!”

호충은 가만있는데, 한천이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단 하나의 비급에 삼십만 냥을 주려 했다니! 그럼 두 권에 삼십오만 냥은 너무 싸지 않았는가. 비연이 정말 저렴하게 샀고, 또 산 가격에 넘기려 했던 것이 틀림없구나.’

“제왕검형은···. 세가의 전답과 장원을 모조리 팔아서라도 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주께서도 결국 가격을 산정하지 못하셨지요.”

“그래. 그랬지. 남궁의 전부인 제왕검형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호충은 아연한 얼굴이었다.

“······.”

‘이 미친놈들. 무림 방파는 왜 다 이 모양이냐!’

가문이 살아남아야 뭐라도 해보지 않겠는가. 사람이 있어야 무공도 있다 생각하는 호충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이 한꺼번에 돌아왔으니 오늘은 가격을 산정해야 할 것이네. 총관. 지금 가문의 재정적 여유가 얼마나 되는가.”

“무림맹의 전각 건립을 위해 각 무림 방파에서 각출한 경비가 있어 조금 비긴 합니다만···.”

잠시 셈을 하던 총관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입에 올렸다. 가난하던 화산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대략 금 칠십사만 냥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어허. 고작 그것뿐이던가?”

“전답과 장원을 담보로 전장에서 융통하고, 소유한 상회를 다른 곳에 팔면 이십만 냥은 더 마련할 수···.”

호충은 이 무공에 미친 자들과 더 대화하면 자신도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림없습니다! 제게 그런 거액을 떠넘길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호충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침 상단의 대규모 상행을 마치며 여유자금이 생겼고, 반신반의하는 상대에게 저렴하게 구입했습니다. 게다가 검보는 본래 주인이 있었으니 어찌 저의 것이겠습니까. 저는 검보의 주인에게 검보가 돌아가도록 전하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허.”

호충이 단호히 하는 말에도 가주는 총관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것 보게 총관. 이러니 내가 어찌 흥정을 하겠는가. 남궁 가의 무사라도 이렇게 지극한 충심을 보일 수 있겠는가?”

“···흥정이 왜 필요 없었는지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둘은 호충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이 진상들! 그런 징그러운 눈으로 날 보지 마!’

“제발 제 뜻을 알아주십시오. 친우의 가문에 누를 끼칠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적절한 가치를 산정하시어 가문의 부흥을···. 한천! 뭐라고 말 좀 해주게! 내가 얼마에 샀다고 말해주었는가!”

“···어. 난 모르네. 아무것도 못 들었네.”

한천은 모르쇠였다.

“하! 그럼 제 입으로 밝히지요.”

호충은 분명하게 말했다.

“저는 금 삼십오만 냥에 남궁 가의 검보를 구입하였습니다.”

호충의 말에도 가주와 총관은 못 들은 척 대화를 주고받았다.

“옥 공자가 검보의 필체만 보고 검보를 남긴 남궁 가의 선조가 고수라는 것을 알았다지 뭔가?”

“한천 도련님은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승부를 대련으로 바꾸고 도련님이 민망하지 않도록 친우가 되겠다고 하셨겠지요. 어찌 마음까지 이렇게 넓은지 모르겠습니다.”

“미련한 놈이 친우는 잘 사귀었어.”

“그 결과로 용(龍)을 입에 물고 봉(鳳)을 품에 넣어 돌아오셨지요.”

“허허허. 그 말도 말이 되는군. 어찌 용봉(龍鳳)이 아니라 하겠는가. 하하하하.”

“그럼 저는 자금을 융통하러 나가보겠습니다. 바쁘게 움직여야 자금을 빨리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대한 끌어모아야 할 것이네.”

“물론입니다. 가주님.”

‘이것들이···. 돈 못 써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호충은 총관이 자리를 비우기 전에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볼일이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실례를 용서하십시오.”

“!”

호충은 한천을 향해 말했다.

“대공자께도 실례 많았습니다. 오늘 드린 검보의 대금은 훗날 정확하게 청구하겠으니, 다른 잡음이 없게 해주십시오.”

“자, 잠깐. 이 친구야. 이렇게 가면···.”

“검보만 꿀꺽하시려거든 그리하시고요. 돈은 잃은 셈 치겠습니다.”

“어허.”

휘익.

남궁 가주는 총관보다 먼저 밖으로 나가려는 호충의 앞으로 훌쩍 내려섰다.

탁.

“······.”

호충의 불만 가득한 얼굴에도 남궁 가주는 온화한 미소만 가득했다.

“옥 공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던 것은 아닐세.”

“가주님. 저도 무공을 익힌 무림인입니다. 상승 무공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무공 때문에 한 가문의 기둥뿌리가 뽑히는 꼴은 볼 수 없습니다.”

“허허허. 자네는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구먼. 성혼은 하였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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