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궁의 세력
***
[만약 나의 둘째 아들을 태자와 바꿔치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마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아니라도 마교는 새로운 황제를 얻을 테니까.]
[마교의 행사는 실로 간악하오. 당신이 실패할 것까지 생각해 이중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으니 말이오.]
호충은 마교가 어째서 진휘평의 아들을 태자로 바꿔치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진휘평을 황제로 만들어도 좋고, 안 되면 황태자 녀석이 황제가 될 때까지 기다려도 되겠지.’
[나는 황제가 될 생각이다.]
“······.”
아비가 황제가 된다는 말에도 호충은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마교를 통해 황궁을 전복하고 현 황제인 형님을 몰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동생을 구할 것이다.]
‘구하긴 뭘 구한다고···.’
진휘평의 말에 호충은 마른세수를 하며 전음을 보냈다.
[어찌 그리 순진하시오.]
“?”
[우선 하나 물읍시다. 어머니의 함자를 입에 올린 것은 오늘이 처음이오? 아니면 전에 마교도들에게 알렸소?]
진휘평은 책자에 간단하게 적었다.
[초연의 이름을 발설한 것은 오늘 처음이다. 당시 내 혼인은 황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는 인물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마교의 끄나풀일 거라는 의심은 없는 거요? 당신이 믿을만한 말이라고 해봐야 북궁초연이 내 어미라는 것과 내 이름이 전부요. 황태자의 얘기도 그렇지. 내가 마음대로 꾸며냈으면 어쩌시려고 이렇게 막 믿고 훗날을 계획한단 말이오? 그리고 마교의 장로가 그리 쉽게 당할 놈이오? 나같이 젊은 놈이 무슨 수로 녀석을 당해내겠소? 거짓이라는 의심은 왜 하지 않는 거요.]
“······.”
진휘평이 말이 없자 호충이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마교가 얼마나 당신을 이용해먹기 좋겠소. 내가 아니라도 곧 북궁초연이 내 어미였다며 나타나는 놈이 있을 것이오. 혹여 당신이 이미 아들을 만났다고 해도 자신이 진짜라며 소리를 높이겠지. 그때 당신은 속아 넘어가지 않을 자신이 있으시오?]
진휘평은 떨리는 손으로 글을 적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다루에서 너를 본 순간부터 나는 알 수 없는 친밀함을 느꼈다. 그리고 네 얼굴을 보면 볼수록 믿을 수 있었다.]
‘나도 당신을 처음 봤지만 기이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소.’
호충은 아들을 알아보는 아비의 마음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니라고는 안 했소.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 얼굴밖에 없지만···.]
[초연에게 증표를 주었다. 너는 받지 못했느냐?]
[증표? 내가 다섯 살에 돌아가셨는데, 내가 뭘 받을 수 있었겠소? 어미는 내 눈앞에서 살해당하셨소. 나는 당시 받은 충격으로 당시의 기억까지 잃었소. 이후 나는 피를 보면 기절하는 상태에 이르렀단 말이오.]
“!!!”
[이 애긴 괜히 했나 보오. 지금은 다 괜찮으니 걱정은 마시오.]
진휘평의 글이 알아보기 힘들만큼 날아다녔다. 분노와 조급함이 담긴 글이었다.
[누구냐? 누가 초연을 살해했느냐!]
[도적이 그랬다 하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기에 나도 조사하는 중이오.]
[그들?]
분노로 가득한 진휘평에게 지금까지 생각한 바를 입에 올렸다.
[어머니는 자신과 나를 숨기기 위해 진가장을 선택했소. 이후 어머니는 진가장 가주의 아내 신분으로 살았으나, 아마도 진 가주는 어머니의 사정을 알고 받아준 것 같소.]
“······.”
[하지만 어머니의 미모는 빼어나도 너무 빼어났지. 가주에겐 아내가 셋이나 더 있었고, 가주는 아주 젊었소. 누가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적의 짓으로 꾸몄는지는 모르오. 그저 진가장의 무사가 전해주는 말을 어머니의 종복이 들었을 뿐이오. 나도 얼마 전에야 종복에게 그 얘길 전해 들었소.]
“······.”
호충은 손을 부르르 떨며 분노를 참는 진휘평에게 조용히 전음을 보냈다.
[어머니의 복수는 내가할 것이오. 진가장 일에는 참견하지 마시오.]
[나의 일이기도 하다.]
[이미 내 복수는 시작되었소. 마교의 공격을 받은 진가장을 구원하긴 하였으나, 그것은 내 손으로 진가장에 복수하기 위함이었소. 남의 손을 빌려 복수를 행할 수는 없지 않겠소.]
“!”
[당신 아들은 진가장에서 모진 대우를 받으며 살았소. 본인의 아들도 아니니 얼마나 하찮게 보였겠소. 내가 황가의 자손이라는 것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겠지.]
[너는 나의 아들이니 남이 아니야.]
진휘평의 글에도 호충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 걱정은 관두시오. 나는 이미 다 컸소.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은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보다 하시오.]
진휘평은 붓을 툭 내려놓고 두 손으로 호충의 얼굴을 감쌌다.
그쳤던 그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자식이 아비도 없이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
그의 아혈이 막은 것이 다행이었다. 입을 뻐끔거리는 그가 분명 마교도들을 불러들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비는 아비로구나.’
[···절이나 받으시오.]
호충은 얼굴에서 진휘평의 손을 떼어내고 뒤로 물러서서 정성스럽게 절을 올렸다.
‘당신 아들의 영은 이미 어미의 손을 잡고 저승으로 갔으나, 내가 당신을 아비로 모실 것이오.’
호충은 다시 살아갈 몸을 준 은혜를 이렇게 갚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편히 대하던 말투를 고쳤다.
[아들 호충이 아버지께 처음으로 인사 올립니다.]
진휘평은 눈물이 앞을 가려 호충이 절하는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참 손 많이 가시네.’
호충은 품에서 벗어든 복면을 꺼내 진휘평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황제를 합니까. 그냥 나랑 갑시다. 나가서 편히 삽시다.]
진휘평은 다시 붓을 들었다.
[내가 황제가 되는 것은 숙명인 모양이다. 나는 마교의 힘을 빌려 황제가 될 것이다.]
[거참. 고집하고는. 마교가 무슨 힘이 있어서 아버지를 황제로 옹립하겠습니까! 지금 마교는 황실에 협잡이나 행할 수 있을 뿐. 거사를 행하자면 분명 외세의 힘을 빌릴 것입니다!]
마교의 위세가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가장에 보낸 마인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마교가 역천을 위해 거병할 세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번처럼 쉽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사에 남은 선택지는 외부의 힘을 빌린다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중원의 무고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을 것인가.
“!”
[세상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진휘평의 각오는 확고했다.
[황궁에서 태자를 바꿔치기 했다면 황궁 내에 마교의 힘이 강하게 미친다는 뜻이다. 내가 실패하면 형님에 의해 마교가 황궁에서 뿌리 뽑힐 것이야. 또한 성공하면 내가 마교를 뿌리 뽑아야지.]
[외세를 끌어오는 것도 상관없다는 말씀입니까?]
[외세는 필요 없을 것이다. 아직도 나를 기다리는 대신들과 장군들이 황궁에 즐비할 테니까.]
“!”
이 부분은 호충이 전혀 모르는 황궁의 일이었다. 황궁의 세력이 어떤 구도를 갖추고 있는지, 누가 누구를 지지하고 있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당시 형님과 같은 적자였다. 오히려 형님보다 내가 우세했지. 형님은 이미 승하하신 황후마마의 손이었지만, 나는 살아계신 황후마마의 손이었으니까. 지금도 태황후마마께서 태후전에 생존해 계실 것이다. 어마마마의 명이라면 황실 내의 세력까지 나를 위해 들고 일어난다. 마교는 내 아들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나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마교가 괜히 아버지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어.’
아버지 진휘평은 마교의 필승전략인 셈이었다. 이렇게 되면 마교는 크게 힘들일 것도 없이 역천에 성공해 황제를 손아귀에 넣게 될 것이다.
[다 좋습니다. 하지만 마교가 쉽게 당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젠 네가 있지 않느냐?]
“······.”
‘이건 또 뭔 소리···.’
[허공섭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아무리 내가 무공을 모른다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그런 무공이 전설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저 혼자 뭘 하겠습니까?]
[네가 무공을 배웠다면 가르쳐준 이도 있을 것이다. 너와 함께 배운 이들도 있겠지.]
[미안하지만, 저는 혼자서 무공을 배웠습니다. 스승도 없고 동문도 없습니다. 오직 비급만 보고 혼자 익힌 무공입니다.]
“······.”
황망한 표정의 진휘평을 보자니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하들은 있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문파라 크지 않으나, 수 년이 흐르면 널리 확장하고 높은 무공을 쌓을 것입니다. 제게 상승 절학이 있어 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호충은 화색이 도는 진휘평의 아혈을 풀어냈다.
그리고 전음을 이었다.
[지금 제가 세우는 문파는 보통의 문파와 다릅니다. 중원 뒷골목의 왈패들과 기녀들이 주축이 되는 문파입니다. 가장 비루한 이들이 모였기에 하오문(下汚門)이라 합니다. 이들이라도 괜찮겠습니까?]
[신분이 무슨 상관이겠느냐. 그간 마교의 손에 붙잡혀 있어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왕야의 신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똑같이 힘없는 인간의 하나일 뿐이야. 비루한 일을 해도 황가의 핏줄을 타고 났어도 다르지 않다. 또한 역천은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니다. 시일은 충분해.]
“······.”
자신은 그저 뒷골목의 우두머리가 되어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었을 뿐이다.
‘돈도 벌고 여자도 많이 만나고 자식도 낳고···.’
그런 삶을 원했지만 운명은 자신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이제 겨우 무림에 발을 디뎠거늘 역모에 가담하게 되다니···.’
[그럼 마교에 계속 머물 생각이십니까.]
[이미 십칠 년이나 머물렀다. 이후라고 다를 것 없다. 내가 그들의 계획에 동참한다고 하면 대우가 더 좋아질 지도 모르지.]
[한동안 아버지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마교의 본부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까지 이주야가 걸렸으니 참고하여라. 마차 안에서도 항상 너를 기억하겠다.]
[저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마교를 지켜보겠습니다.]
“······.”
진휘평은 붓을 내려놓고 호충에게 다가왔다.
꾸욱.
진휘평의 두 팔이 호충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들···.”
작은 목소리였기에 외부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아버지.”
호충은 잠시 진휘평의 품에 안겨 있다가 떨어져 나오며 물었다.
[아까 어머니께 주었다던 증표는 무엇입니까. 진가장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아내겠습니다.]
진휘평은 얼른 붓을 들어 글자를 적었다.
[황궁의 금잠(金簪)이다. 어머니이신 황후께 받은 것이지.]
“······.”
호충은 진원우의 서랍에서 가져온 금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너무 화려하다 싶었더니 황궁의 물건이었던 모양이다.
‘그 금비녀가 어머니의 것이구나.’
[어머니의 유품은 이미 제가 챙긴 모양입니다. 잘 보관해 두었으니, 나중에 돌려드리지요.]
진휘평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머물렀다.
호충은 품에서 회칼 하나를 꺼내 아버지에게 건넸다. 금잠을 대신한 증표의 의미였다.
“?”
[무림인 인지라, 드릴 거라고는 이런 험한 것밖에 없습니다. 잘 넣어두세요.]
진휘평은 회칼을 손에 들고 잠시 살핀 다음 품에 넣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신호였다.
호충은 은형술을 펼친 다음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전음으로 전했다.
[훗날 저를 찾으시려거든 섬서의 각 성에 위치한 도박장이나 기루를 찾으십시오. 진호충이 아닌 송재호라는 이름을 대고 서찰을 전해야 제게 도착합니다. 저는 낮에 보았던 그 모습으로 문파를 이끌고 있습니다.]
“······.”
호충이 떠나간 곳에서 진휘평은 한참이나 서 있었다. 창밖을 보는 진휘평의 눈은 여전히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초연. 그대가 나 없이 낳은 아들이 저리 장성했구려.’
마교에 붙잡혀 있는 동안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이었지만, 볼모로 잡힌 아내와 아들을 생각하며 버텨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들을 보니 다시 희망이 생겨났다. 마교의 손에 잡힌 둘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고, 장성한 첫째는 이제 아비보다 훌쩍 커서 의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호충아. 호충아. 내가 황제가 되겠다. 내가 황제가 되어 지난날을 모조리 보상해주마.’
진휘평은 품에 넣었던 회칼을 꺼내 자신의 옷가지가 있는 곳에 깊이 박아 넣었다. 그날 진휘평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회칼을 넣어둔 곳만 자꾸 확인했다. 진실로 자신이 아들을 만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들. 내 아들.’
***
추적
***
“나 다녀왔어. 영감.”
“수고 많으셨···. 도련님.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호충의 표정은 변함없이 그대로였지만, 송 영감은 호충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호층의 작은 표정 변화조차 놓치지 않는 것이다.
“표나? 에이···. 나도 별 거 없네. 안면신공은 아직 멀었어.”
“···있긴 있으셨나 봅니다.”
“아버지를 만났어.”
“가주님이 밖으로 나오셨단 말입니까?”
송 영감도 진가장의 일을 호충에게 전해 들었기에 진원우가 원로원에 들었음을 알고 있었다.
“진가장의 진원우 말고 내 진짜 아버지 말이야.”
“커흡! 어, 어떻게! 지금 어디 계십니까?”
“사정이 조금 복잡해. 앉아봐.”
숨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영감에게 숨길 일은 많지 않았다. 호충에겐 남의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호충이 자신의 아비로 여기는 사람은 바로 송 영감이었다.
다만 역천에 관한 것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다. 역모는 입에 올리는 것도 삼가야 할 일이었다.
“···해서 지금 아버지는 마교에 붙잡혀 있는 중이야. 내일부터 마교도 일행을 쫓을 생각이야.”
“······.”
송 영감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앉아 있었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도련님의 아버지께서 황궁의 왕야 신분이셨다니···.’
부스럭.
“지금 일어나서 절 할 생각이거든 받았다 칠 테니 그대로 앉아 있어.”
“······.”
송 영감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지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버지를 찾았어도 우리 관계는 하나도 변하지 않아. 송 영감은 내 할아버지고 나는 송 영감의 손자야.”
“하, 하지만···.”
이게 어디 보통 일이던가. 왕야의 아들이라면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했다. 종복에 불과한 자신은 감히 고개를 들고 마주할 수도 없는 신분이다.
“하지만이고 상지만이고 간에 영감은 지금 배우는 검법이나 계속 익히고 있어. 그리고 서안 흑패가 차지하고 있는 전각 말고 남은 두 개의 전각이 있어. 그 중에 하나를 내가 쓰려고 해. 나머지는 곧 도착할 하오문의 문도들이 공용으로 사용할 거야. 미리 서안 흑패 조직원들에게 청소하라고 해줘. 아! 그리고 마교도 일행을 쫓자면 한참 걸릴 거야. 건량을 준비해두면 새벽에 챙겨갈게.”
“······.”
호충은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송 영감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버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해.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거야. 덕분에 영감을 만났고, 진가장의 아들로 살 수 있었어. 지난날에 후회는 없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지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송 영감은 그간 나를 살뜰하게 보살펴줬잖아. 관직이라도 내려줘?”
“!”
“농담인데 너무 진지하게 듣네. 내일부터 바쁠 테니 얼른 자. 기다리지 말라고 해도 왜 맨날 기다려?”
“도련님···.”
출생의 비밀을 확인했어도 호충은 변함이 없었다.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나는 하오문의 수장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낼 생각이니까.”
“······.”
“가서 잠이나 자.”
호충은 아직도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는 송 영감을 두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
‘오늘 잠들기는 글렀군.’
지금까지 세워온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했다. 호충은 진양의를 끌어올리며 앞날을 예상했다.
‘아버지가 황제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모양이야.’
진휘평과 마교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십중팔구 역천에 성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교는 무엇을 원할까.’
호충은 자신이 다루에서 했던 말에 반응하던 마화평을 떠올렸다.
[실로 지혜로운 말씀이오. 무림인도 아닐 진데 어찌 그리 현명한 말씀을 하신단 말이오.]
[상인이니 이런 일에 더욱 민감하지요.]
[실로 고견을 들었습니다.]
마화평은 상승 절학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자신의 말에 화색을 띄며 좋아했었다.
‘마교는 상승 절학의 철폐를 반긴다.’
중원 무림 방파의 상승 절학이 실전된 상황에서 마교는 비밀리에 자신들의 상승 절학을 이어왔다. 이 상황에 갑작스럽게 상승 절학 규제가 철폐된다면 중원 무림은 마교의 맛있는 먹잇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아무리 정파 무림에서 상승 절학을 숨기며 익혔어도 절정에 이른 무인은 손에 꼽을 터.’
정파 무림이 상승 무공을 실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사정을 달라지지 않았다. 마교는 진가장에 절정급 마인 다섯을 보낼 여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인 이들만 다섯이었으니, 중원 전역에 숨겨진 고강한 마인들을 따지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들이 모여 무림 방파를 하나씩 상대하면 중원 무림은 마교로 일통될 것이다.
‘···비급 판매에 속도를 올려야겠군.’
화산에 매화검법을 팔아먹은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앞으로 정무맹과 협의맹의 무림 방파를 돌며 그들이 실전한 비급을 천천히 팔아먹을 계획이었는데, 조금 앞당겨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로 인해 생긴 자금은 다시 하오문의 확장에 투입한다.’
하오문의 확장은 각 지역의 거점 확보와 구성원의 무공 수준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사업을 확장하며 하오문이 지속성을 띄게 만드는 것도 포함된다.
‘마교가 원하는 것은 하나가 아닐 터.’
마교가 원하는 것은 고작 중원 무림을 일통하는 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황제를 손에 넣는다면 공식적으로 마교가 인정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마교가 이 나라의 종교가 될 수도 있어.’
마교의 무공과 교리서가 황궁을 통해 백성에 전해질 수도 있음이다. 지금까지 무관에 돈을 내고 배우던 무공을 공짜로 알려준다고 하면 누가 마교에 입회하지 않을 것인가.
‘···지옥이 도래하겠군.’
호충은 마공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화가 치솟고, 수시로 혈기가 끓어오를 것이다.’
마공은 정법을 역행하는 운기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역행하는 마공의 내공을 일정 이상 쌓으면 중단전과 상단전에 불순한 기운을 만들어내고 이는 곧 행동으로 드러나게 된다. 마교의 마공이 정파 무림의 정공과 달리 세간에 배척받는 이유였다. 마공이 빠른 무공의 향상을 보이지만, 인성의 말살을 초래하고 오직 같은 마공을 익힌 이들에게만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기에 마교에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날 길이 없었다.
‘길거리엔 시체가 넘쳐날 것이다.’
마교의 강자존은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살인과 폭력이 당연하게 용인되는 마교의 교리가 세상에 전파되면 국가의 존립도 위태로웠다. 법이 무슨 소용이고 관부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모든 일의 옳고 그름이 강자의 선택에 좌우되는 세상이다.
“······.”
호충은 이후에 도래할 미래까지 추측할 수 있었다. 마교는 여기까지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마교가 나라를 손에 넣겠구나.’
혼란한 중원에 절대지존이 될 교주가 나타난다면, 황궁이 무너지고 마교의 세상이 도래한다.
“미친놈들···. 지금까지의 실패를 단 번에 뒤집으려고?”
황제를 세우고 이후 마교를 정식으로 인정받으려 했던 과거와 달랐다.
‘···아니지. 그때도 지금과 같은 계획이었을 수 있어. 과거엔 실패했을 뿐.’
마교가 황제에 의해 국교로 지정된다면 결과는 언제나 같았을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다른 것은 황제와 신뢰를 쌓느냐, 황제를 겁박하느냐의 차이였다. 마교는 과거 두 번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었다.
‘아무리 높은 신뢰를 가졌어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깨질 수 있다. 확실하게 황제를 손아귀에 넣어야 마교의 세상을 도래하게 만들 수 있었을 거야.’
호충은 자신이 마교의 구성원이라 가정하며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현 황제를 내리고 새 황제를 세운다. 새 황제의 칙령 반포로 상승 절학 규제를 철폐, 이후 마교에 대항할 무림 방파를 멸하고 중원 무림을 손에 넣는다. 무림의 세력이 사라지면 거추장스러운 세력은 전무. 남은 것은 마교를 국교로 삼고 무공과 교리를 전파하는 것.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어려울 일이 없어.’
이렇게 세운 마교의 계획에 자신이 끼어들어야 했다.
‘나는 하오문이 있고, 하오문 또한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가 계시니까.’
아버지가 자신과 하오문에 기대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자신도 새로 황제에 오를 아버지를 염두에 두어야 했다.
‘동생 놈은 어찌 한다···.’
현 황제를 끌어내리면 당연히 태자로 책봉된 녀석이 위태롭다.
‘아버지가 계획에 동참해도 녀석들은 끝까지 대안을 남겨두고 싶어 할 거야.’
하지만 마교는 자신들이 세워놓은 황태자를 쉬이 버리진 않을 것이었다.
치밀한 마교의 행사를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녀석은 아버지가 알아서 하쇼.’
호충은 날이 밝을 때까지 진양의를 운용하며 머리를 굴렸다.
.
.
.
새벽녘이 밝아오자 호충은 잠시의 운기로 피로를 날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들이 어디로 움직일지 모르니 일찍 따라붙어야겠군.’
아버지가 머무르던 마교의 본부에서 서안까지 이주야가 소요되었다 했으니 자신도 같은 시간을 밖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
호충은 자신의 거처에서 나오며 건량이 가득 담긴 보따리와 고이 챙겨둔 옷가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진양의에 집중하느라 밖에 영감이 다녀간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하여튼 부지런해.”
호충은 영감에게 인사하는 것을 생략하고 바로 밖으로 향했다.
호충이 사라진 전각 구석에서 송 영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자신의 기척을 감추는 수준까지 내공을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송 영감은 예전과 달리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도 무공을 익히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도련님을 상하게 할 무인이 있기나 할지 모르겠군.’
자신이 강해질수록 호충의 무공이 가진 경지가 새로이 보였다. 강해진 만큼 보인 것이다.
이쯤이면 되겠지 하고 바라보면 저만치 멀리 가있었고, 또 이쯤이면 되겠지 하면 가물가물 끝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추측할 수도 없는 경지의 무인을 대체 누가 상대할 수 있겠는가.
***
호충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다시 역용술을 펼쳤다. 마교를 미행하며 송재호의 얼굴을 사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우드득. 드득.
새로운 얼굴은 화산의 정문에서 인사하던 접객각주 현수의 얼굴이었다.
“···계속 현 자 배로 바꿔가며 미행하면 되겠네.”
마교가 아무리 경계를 철저하게 해도 매번 다른 사람의 얼굴과 복색으로 나타나는 호충을 알아볼 방법은 없을 것이다.
마교도와 아버지가 머물던 객잔 근처에 도착한 호충은 이미 마차를 출발시키는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보통 사람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는 군.’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꺼려하리라 예상한 바였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면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당연했다.
덕분에 호충도 조금 난감했다.
‘사람들 사이에 숨는다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마차를 쫓아야 안전하고 확실했지만, 이렇게 되어도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다음 성읍에 도착할 때까지 조금 멀리서 따라가야겠어.’
호충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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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새끼들은 어째 성읍에 들르질 않냐.’
다음 성읍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들어 가까이 접근할 생각이었다. 마차 안의 아버지에게 자신이 따르고 있음을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교의 마차는 인적이 드문 곳만 골라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관도에서 사람을 마주친들 스쳐지나가는 정도였기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에효. 그래도 쉬기는 제때 쉬니 다행이지.’
늦은 저녁 마차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고, 호충은 상당히 먼 거리에서 마차를 시야에 넣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버지.’
먼발치에서나마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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