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 진가장
***
마혈단이 진가장으로 돌격하는 그 시각.
호충이 자장에 도착하고 있었다.
“흠.”
호충은 혼자 자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송 영감은 일찌감치 떼어놓고 홀로 왔다. 자신이야 축골과 역용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지만, 송 영감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홀로 여정에 오른 덕분에 예상보다 조금 일찍 자장에 도착했다.
‘사중환과 옥비연이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지금 호충의 얼굴은 흑패에게 보였던 송재호의 얼굴이 아니라 기가 막히게 잘생긴 파진후의 얼굴이었다.
‘자꾸 정이 가는 얼굴이란 말이지.’
호충은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만족했다.
혹시나 나중에 송재호의 얼굴이 드러날 일을 염려하여 파진후의 얼굴로 바꾼 것이다. 흑패주들 앞에서는 다시 모습을 변화시키면 될 일이었다.
“어머!”
“어쩜. 어쩜.”
“나 가슴이 막 떨리는 거 있지.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지나가는 여인들은 호충의 변화한 얼굴을 보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흠흠.”
이런 시선을 즐기기 위함도 있었다.
‘역시 잘난 얼굴이 최고야.’
느긋하게 걸음을 옮긴 호충은 자장의 중심가에 가서 편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가장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자장에서 진가장의 무사를 찾기 어려웠다. 멀리 진가장의 정문에 번을 서고 있는 무사들의 무위가 상당히 낮음을 알 수 있었다.
‘집안의 무사들까지 모조리 보냈구나.’
그러니 번을 서지도 못할 동급 무사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호충은 어서 흑패의 본거지로 향할 생각이었다. 진가장엔 자신이 아끼는 인물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두두두. 두두두.
하지만 말을 달리는 소리가 호충의 발길을 붙잡았다.
‘진가장에 돌아올 무사들이 있었나?’
몸을 돌린 호충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진 가의 무사가 아니라 황궁 금의위 위사들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
‘어찌 저들이!’
황궁의 금의위는 살기등등하게 진가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주의 무위가 드러났음이던가?!’
절정에 오른 진원우의 무공 때문이라면 황궁 금의위의 방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절정에 오른 무위를 숨기고 있는 진원우는 금의위의 손에 잡혀가던지 그 자리에서 죽던지 둘 중에 하나였고, 진가장은 멸문 혹은 멸문이었다.
멸문은 확정이라는 뜻이다.
‘제기랄···.’
그렇다면 자신이 막지 못할 일이었다. 앞으로 진호충이라는 이름을 다시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문을 열어라!”
“헙!”
“당장 문을 열어라!! 우리는 황제폐하의 령을 받들어 이곳에 왔다!”
“자, 잠시만···.”
금의위는 머뭇거리는 정문 무사를 보고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감히 황궁의 일을 막아서는가!!”
촤악!
“으아악”
남은 무사는 얼른 대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도망쳤다.
“······!”
호충은 뒤에서 이들을 살피다가 금의위가 칼을 휘두르는 시점에서 크게 눈을 떴다.
‘저들은 황궁의 금의위가 아니다!’
호충이 태자를 만나며 황궁의 금의위를 마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저들의 칼에 비친 기운은 절대로 금의위가 가질 기운이 아니었다. 또한 금의위 복장을 하고 있는 이들 뒤에 따르는 황군의 기운도 읽을 수 있었다. 잠룡진으로 감춰져 있었지만, 지금은 무공을 사용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보였다.
‘마교의 마공!’
화산에서 이미 마교의 종자들이 활동하고 있음을 들었기에 추측이 어렵지 않았다.
‘마교의 마인들이 황궁의 금의위로 위장했음이다.’
호충의 신형이 황군이 들어간 정문을 향했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정문을 지나 말발굽 소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진천(眞天)대의 대주 황종현이 급히 가주전으로 들어왔다.
“가주님! 황실의 금의위가 정문을 통과했다 하옵니다!”
“뭐라!!”
대경한 진원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 어찌 황실에서 알았단 말인가!’
자신의 내공이 완연한 절정에 이른 것이 황실에 알려졌다고 여긴 것이다.
“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곧장 가주전을 향해···.”
이미 그들은 가주전 앞에 당도해 있었다.
“진씨 세가의 진원우는 오라를 받으라!!!”
“!!”
“황 대주는 진천(眞天)대와 함께 따르라.”
“예! 가주님!”
“이삼! 호위들은 모두 숨어라!”
“가주!”
“너희까지 잃을 수는 없다! 당장 뒷문으로 빠져나가! 첫째와 둘째를 찾아가라!”
“가주가 없이는 저희도 없습니다!”
“···앞으로 나서지만 마라. 명령이다!”
진원우는 답을 들을 시간도 없었다. 얼른 대주 황종현을 대동하고 밖으로 나갔다.
“······.”
‘가주···.’
***
진원우는 밖으로 나와 말에서 내려선 황궁의 금의위 위사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준비한 일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나, 시기가 너무 빨랐다.
‘내 무공에 관한 일이 아닐 수도 있음이다. 당당하게 나서야 해.’
“진씨 가문의 가주 진원우가 황실의 금의위를 뵈옵니다.”
“네 죄를 알렸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진씨 가문은 국법을 어긴 일이 없사옵니다.”
“감히! 우리가 이리 왔음에도 발뺌을 하는 가!”
“진씨 가문은 곧 맞이할 황실의 경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자저하의 배필이 되실 가문은 곧 제 처의 가문인 바. 어찌 진씨 가문에서 국법을 어기는 우를 범하겠습니까.”
“!”
진원우는 곧 황실의 외척이 될 모용 가를 통해 이번 일을 무마하자고 한 것이나, 마교의 무사는 이를 몰랐기에 잠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얼마 전 태자 저하께서는 제 자식의 의로움을 보시고 상까지 내려주신 바 있습니다. 당시 황실 금의위 위사님이 함께 오셨습니다. 같은 금의위 위사님이시니 아시지 않습니까.”
호충이 예전 태자를 만나 있었던 일로 황실에서 내려온 상이 있었다. 비단 몇 필과 우마(牛馬) 몇 마리였으나, 이는 황실의 상이 분명하였다. 황궁과의 인연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가문에서 어찌 국법을 어기겠나이까.”
“······.”
입이 막힌 인물이 단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혈단의 단주는 진원우 곁의 무사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무사들이 거의 없다. 이것이 전부라면 단숨에 끝낼 수 있을 터. 길게 끌 필요 없다.’
“어차피 이것이 전부라면 이유를 따지지 않아도 상관없을 터. 쳐라!”
“예! 모두 쳐라! 하압!”
진원우는 따지지도 않고 검을 들이미는 금의위에 대경하여 뒤로 물러서기 급급했다.
“멈추시오! 연유를 알아야 할 것이 아니오!”
“······.”
호충은 몸을 숨기고 이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
지금 마교인의 검에 상하는 무사들과 곤란에 빠진 진원우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찌하여 마교에서 진가장을 쳤을까.’
마교가 왜 진가장을 노리는지가 중요했다.
‘마교가 진가장을 쳐서 얻을 이익이 무엇이지?’
이익이 되기에 움직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원한 관계를 맺지 않은 이상 남은 것은 진가장을 치고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있었다. 이를 알게 되면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을 터였다.
‘모용 가와 황궁이 맺어진다는 것은 마교도 몰랐을 일.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을 터이고···.’
‘진가장이 정무맹과 협의맹의 협의 사항을 이행하고 있었을까? 아냐. 진가장은 마교의 마인들을 찾지도 않았어. 마교의 신경을 건드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호충은 답을 찾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진가장은 본래 섬서의 토박이.’
진가장이 섬서에서 자리 잡은 지 오래라 이 부분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산서(山西)에 진출하느라······. 산서?’
산서 곳곳에 무관을 설립하는 진가장이다. 만약 진가장이 무너진다면 산서에 설립하는 무관들도 모두 중단될 일이었다.
‘산서에 진출하는 진가장을 저지하려고? 왜?’
세가의 산서 진출을 막아야 할 것은 정무맹이지 마교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교가 이를 막아야 이득이 된다면 산서와 마교의 관계를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쯤이면 대부분 자리를 잡았을 터. 겨우 이정도 인원으론 가주와 내부의 인물들을 죽일 수 있을 뿐. 진가장의 세가 확장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는데···.’
첫째와 둘째가 밖으로 나가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둘을 잡지 못하는 한 진씨 세가의 씨를 말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이들이 확장을 주도하고 있으니, 자금을 대거 투입한 진가장의 확장을 되돌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호충은 뒤로 물러선 마교인들의 입을 통해 다른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너희 둘은 가서 셋째를 사로잡아라. 녀석을 진씨 가문의 가주로 세울 것이다.”
“!!”
호충은 셋째를 가주로 세운다는 말에 첫째와 둘째가 어찌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는 자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겠구나.’
이러면 말이 된다.
‘가주와 첫째, 둘째를 죽인다음 셋째를 허수아비로 세울 수 있어. 이후 진씨 세가가 마교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
실로 교묘한 계획이었다. 마교는 섬서와 산서를 단숨에 먹을 수 있었다.
‘그럼 내가 어찌해야 너희를 곤란에 빠지게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너희는 마교뿐이 아니라 진가장까지 싸잡은 표현이었다.
“멈추시오! 연유를 알려달란 말이오!”
진원우가 크게 낭패하여 뒤로 물러서는 와중에도 호충은 고민을 이어갔다.
‘진가장은 산서 확장에 애를 먹었다고 들었지. 그렇다면 진가장의 무사들이 산서로 빠져나간 것도 마교가 원흉이라는 뜻.’
호충의 머리는 진양의를 운용하며 급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마교가 산서에 똬리를 틀고 있었구나!’
화산의 원로들이 마교의 잔당을 찾으려 활동하는 지역도 산서 바로 아래 지역인 하남 북부였다. 산서가 마교의 중심지라면 지금까지 들었던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산서에 아무도 진출하지 못했던 거야!’
그런 산서에 진가장이 대대적으로 진출했으니 마교 입장에선 얼마나 눈엣가시였겠는가.
진가장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 대안도 떠올랐다.
‘혼란한 가운데 셋째가 가주가 되고 첫째와 둘째가 저들의 손에서 살아남는다면?’
진가장은 크나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급하게 가주 자리에 앉은 셋째는 첫째와 둘째를 맞이하여 얼마 버티지도 못할 것이고, 첫째와 둘째는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혈투를 이어갈 것이다.
“가주님을 보호하라!”
“가주님!”
가주의 호위들이 진원우가 곤란에 빠진 것을 보고 모습을 드러냈다. 가주의 호위들이 난장판에 끼어든 것이다.
‘진원우를 죽게 놔둘까?’
모친의 죽음과 깊은 연관이 있을 가주 진원우가 어려움에 빠져있었다.
‘아니면 살려?’
쉬이 선택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호충은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대의 시간은 끝이오. 진원우.’
죽기를 기다리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진원우가 가주로 남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래야 셋째를 가주로 세우고 첫째, 둘째와 싸움을 붙일 수 있었다.
“커헉!”
“종수!”
가주의 호위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끅.”
“마진!”
두 명 째였다.
“가주님! 자리를 피하십시오.”
“미(嵋).”
“가주님. 저들은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황궁의 금의위는 저리 무도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삼! 나도 그렇게 여기는 중이다.”
진원우도 이상함을 느끼던 차였다. 황궁에서 연유도 알려주지 않고 이렇게 핍박할 일은 없었다.
“내 너희를 잡아 황궁에 확인할 것이다!”
진원우가 지금까지 숨겨온 무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앗!”
빛살 같은 검기가 진원우의 칼끝에서 솟아났다.
‘오오. 광운쾌검(光雲快劍)이던가. 상승 무공을 드러냈으니 네 가주직은 끝장이다.’
호충은 진원우의 검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의 검식을 따르고 있음을 한 눈에 알아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