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흑패+허천흑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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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둘은 뒤에서 지켜보기만 해.”
“예. 대형.”
“예. 대형.”
사중환과 옥비연은 호충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호충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이다.
“보고 배우는 바가 있을 것이다.”
호충은 황왕을 따라 연안의 골목으로 들어갔고, 사중환과 옥비연만 뒤를 따랐다. 그 뒤로 황왕을 따르던 넷이 지키고 있었다.
“철필. 다들 비슷비슷하게 산다?”
자장의 흑패도 비슷한 곳에 위치했기에 하는 말이었다.
“그렇지요. 되도록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곳에 만드는 것이 철칙입니다.”
“비연. 여긴 도박장도 크겠지?”
옥비연은 연안이 자장보다 큰 연안의 성읍을 계산하고 말했다.
“성읍이 크니 규모도 크고 숫자도 많을 것입니다.”
“기대가 크네.”
“허허. 저희도 그렇습니다.”
“······.”
황왕은 범 아가리에 들어가면서도 편히 대화하는 셋을 보며 꺼림칙한 마음이었다.
‘이 녀석들은 뭘 믿고 이리 대범한가.’
끼이익.
이들의 발걸음은 연수흑패의 본거지에 닿았고,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녀석들이 분분히 일어나 다가왔다.
“황 형제. 이놈들은 뭐요?”
“···나도 모르겠소.”
“뭐요? 모르는 놈들을 이리로 데려온단 말이오?”
“···우리 다섯이 순식간에 당했소. 녀석들이 패주를 뵙고자 하오.”
“진즉에 그리 말씀하시지.”
안에서 황왕과 말을 주고받던 녀석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 했다.
“애들아. 쳐라!”
호충은 녀석의 신호에 맞춰 뒤에 있는 녀석들부터 정리했다. 사중환과 옥비연의 곁에 있던 녀석들이다.
빠박. 빡.
“너희는 뒤에서 내 움직임을 잘 봐둬라.”
““예! 대형.””
호충은 되도록 천천히 움직여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어제 연습한 권각을 펼쳤다.
뻥.
달려오던 놈 하나가 호충의 주먹에 맞아 뒤로 훨훨 날았다.
“···대형. 하나도 안 보입니다만.”
호충의 주먹이 언제 뻗어지고 회수되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냐?”
호충의 발이 무기를 들고 내리치는 녀석들의 다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빠박. 빡. 퍼벅.
“악!” “꺼흑.”
“지금은?”
“···흐릿하게 보입니다.”
호충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먹과 다리를 파고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퍼벙. 투둑. 투두두둑.
“억.” “으헛.” “피, 피해! 아아악.”
“이젠?”
“보입니다. 딱 좋습니다.”
“얼라? 왜 너 밖에 안 남았냐?”
이제 힘 조절을 끝내고 체술을 보이려 했더니 멀쩡하게 서 있는 놈이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아까 황왕과 대화하던 놈이었다.
“다, 당신이 그랬잖소!”
호충은 자신을 안내한 황왕까지 멀리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아차 했다.
“에헤이. 몇 놈은 남겨 놨어야 하는데···.”
“우리 애들이 다 모였으면···.”
“다 불러와.”
“······.”
하지만 다 불러온다고 상대가 될까 싶었다.
“아니면 너희 패주라도 데려오던가.”
“···패주가 나서면 그대는 죽소.”
“정말? 나 기대해도 되는 거야?”
“······.”
물론 이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사실 이미 패주라는 녀석은 안에서 기척을 살피며 숨죽이고 있었다. 소란이 일어난 처음부터 지켜본 것이다. 호충도 녀석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황왕 이 X새끼는 어디서 저런 놈을 데려왔단 말인가!’
연수흑패의 조직원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었음에도 모조리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그럼 안에 들어가서 기다릴까나?”
호충은 성큼 걸음을 디뎠고,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연수흑패의 패주는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기다!’
녀석이 뒷문을 발견하고 막 손잡이를 잡았을 때 들려온 목소리는 마치 저승사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동작 그만!”
“끅.”
“어디 면상 좀 볼까?”
“후흡.”
호흡을 가다듬고 당당하게 돌아선 연수흑패의 패주는 녀석의 손에 멱살이 잡혀 기절한 양소를 볼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너보다 먼저 튀려고 하더라고. 너도 발 떼면 이 꼴 나는 거다?”
“······어찌 그리 막무가내란 말이오. 예의를 지키시오.”
“푸흐흡. 비연아. 쟤가 지금 예의 지키란다.”
“크흡. 흑패주가 저런 소리를 하는 건 처음 듣습니다.”
“통성명은 해야겠지? 예의 차리라며? 큭큭.”
“···손님이 먼저 이름을 밝히시오.”
“얘들아. 손님부터 인사를 하라잖냐.”
“아. 예. 나는 자장 흑패의 사중환이다.”
“자장 흑패의 옥비연이다.”
“자장 흑패!!”
“나는 자장의 흑패주 번권이라 한다오.”
“!!”
“자 이제 연수흑패의 소개를 들어보고 싶소만.”
“나, 나는 연수의 흑패주 위지승이라 하오.”
“오오. 위 패주셨군.”
털썩.
호충은 손에 잡혀 있던 녀석을 바닥에 내려놓고 앞으로 나섰다.
“자아. 이제 마무리가 필요할 때 같은데···. 계속 그리 계시겠소?”
‘사나이 두 번 죽지 않는다. 녀석은 무기가 없으니 내게 기회가 있다.’
밖에서 또 누가 알아볼까 싶었기 때문에 객잔에서 나오기 전에 진가장의 수실이 달린 검을 숨긴 호충이다.
스르릉.
위지승이 도를 뽑자 호충은 뒤로 손을 내밀었고, 옥비연이 자신이 갖고 있던 커다란 도를 건넸다.
“!!”
그 모습에 위지승이 대경했지만, 호충의 호통이 이어졌다.
“야! 이거 말고! 내가 칼 잡으면 시체가 남아나겠냐? 여기 살점 튀기면 네가 청소할래?”
“죄송합니다.”
옥비연은 얼른 들고 있던 나뭇가지로 바꿨다.
덕분에 몽둥이라고 할법한 나뭇가지가 호충의 손에 들렸다.
‘어째···. 저게 더 무시무시해 보이냐.’
도가 들린 것보다 몽둥이를 든 호충이 더욱 위험해보였다.
호충은 잔뜩 긴장한 위지승을 보고 말했다.
“워워. 괜찮아. 괜찮아. 겁먹지 말고 들어와.”
“······.”
사실 당장일라도 도를 바닥에 던지고 꿇어앉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호충은 위지승이 쉽게 무릎 꿇기를 바라지 않았다.
“야. 사내새끼가 말이야. 엉? 흑패주까지 해먹으면서 그냥 꼬리를 말 거야? 사나이 이름이 있지! 위지승! 사내로 태어나서 호기롭게 싸워보는 거야!”
“···쓰펄. 간다! 가! 아자자!”
일도양단의 기세로 내려치는 위지승의 도에 호충은 손에 들린 나뭇가지를 들이댔다.
‘됐다!’
위지승은 자신의 도가 나뭇가지를 단숨에 자르고 녀석을 양단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휘잉. 착.
하지만 호충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에 붙어버린 도는 나뭇가지와 함께 속절없이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쿵.
“이것이 흡(吸)자 결이다. 내기의 운용에 따라 도는 전혀 다른 공능을 드러내지.”
“하압!”
위지승은 나뭇가지에서 도가 떨어지자마자 횡으로 휘둘렀다.
휘잉.
호충은 가볍게 뒤로 물러서 미세한 차이로 도를 피하며 말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할 때는 과도한 움직임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게 움직이면 상대에게 빈틈만 드러내는 꼴이다. 이 녀석처럼 힘이 과하게 들어간 공격도 마찬가지지. 중심이 흐트러지면 반응이 느려진다.”
따악.
“아윽.”
호충의 나뭇가지가 위지승의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녀석의 도가 지나간 자리에 빈틈이 크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따닥. 딱. 휘익.
이후 위지승의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호충의 가르침이 전해졌고, 계속 허탕을 치고 얻어맞은 위지승의 눈이 붉게 번들거렸다.
“우아악.”
위지승은 화를 참지 못하고 도를 앞세워 달려 나왔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공격이었다.
옆으로 돌아선 호충이 위지승의 어깨를 내리쳤다.
뻐억.
“큽.”
땡그랑.
녀석의 도가 바닥에 떨어졌고, 호충은 나뭇가지를 다시 들어올렸다.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뻑.
“꺼흑.”
“이 새끼처럼.”
빠각.
“억.”
“헛되이 목숨을 버리지 마라.”
퍽. 퍽.
“컥. 억.”
“차라리 비굴하게 살려달라고 빌어라.”
퍼벅.
“그렇게 살아남아서···. 나를 기다려라.”
퍽퍽.
“내가 너희를 구하러 갈 것이다.”
호충은 기절한 녀석을 보다가 나뭇가지를 비연에게 던졌다.
탁.
“예. 대형. 분명히 기억했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대형.”
“이 녀석은 물이라도 부어서 깨워라.”
호충의 명에 둘은 후다닥 움직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