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232)

출가2

***

호충이 품에 금자 주머니를 챙기고 걸음한 곳은 밖이 아니라 셋째 어미의 처소였다.

‘호성이 새끼는 아직 집에 있다고 했으렸다.’

정확히 말하면 셋째 호성이 머무는 전각이다. 진원우의 아내들에겐 하직 인사를 할 생각이 없었다. 호충은 지난번 대련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당한 것을 생각하면 최소한 한 번은 더 손을 봐줘야 했다.

‘앞으로 언제 볼지도 모르고···.’

오늘 진가장을 떠나면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묵은 원한을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호충은 셋째의 처소 근처에서 기합 소리를 들었다.

“하압! 핫!”

부웅.

바람을 가르는 목검소리가 무척이나 강맹했다. 또한 기합을 지르며 목검을 날리는 목소리가 상당히 친숙했다. 호성이 전각에 딸린 작은 연무장에서 혼자 검식을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지키는 놈도 없으니 오늘은 제대로 날을 잡았구나.’

진가장이 산서로 진출하며 진가장의 무사 대부분을 차출해 보낸 상태였다. 덕분에 진가장 내부가 한산했다.

“어흠.”

끼익.

호충은 일부러 인기척을 하며 문을 열었다.

“누구냐!”

밖에서 지키는 놈은 없었지만, 안에는 녀석의 수련을 봐주는 무사가 존재했다.

‘저런 놈이야 있으나 마나지.’

“가주님이 오시면 어쩌려고 함부로 말씀하시나 모르겠네.”

“사 공자께서 여긴 어쩐 일로···.”

무사는 자신을 밀치고 앞으로 나서는 호성 덕분에 말을 끝내지 못했다.

“너 잘 왔다. 너를 혼내주려고···. 아니 너를 지도하기 위해 세가의 검식을 필사적으로 수련했다. 덤벼라!”

“아아. 형님. 어찌 이리 저를 감동시키신단 말입니까.”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수작을 부리기도 전에 알아서 범의 아가리에 입을 들이밀지 않겠는가.

“막내가 형님께 깊이 감읍하나이다. 무사는 뭘 하는가! 어서 내게 목검을 주게!”

호성이 녀석이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얼른 붙어야 했다.

“검을 배우지도 못한 네가 목검은 무슨 필요냐! 너는 내 목검을 눈으로 쫓으며 배우기나 하여라.”

“······.”

목검도 들지 말고 그냥 얻어터지라는 말이었다.

“하하. 형님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저야 따라야지요.”

목검을 들지도 않은 상대에 맞았다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

‘오늘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구나.’

호성을 상대하는 것도 호충이 세운 계획의 일부였다.

호충은 연무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호성은 잔인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크흐흐.”

그건 호충도 마찬가지였다.

“히히히.”

“···넌 왜 그따위로 웃느냐?”

“존경하는 형님을 보고 따라 웃었을 뿐이옵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웃었어?”

“아. ‘크히히히’였던가요?”

“그것도 아니다!”

“그럼 어찌 웃어야 할까요?”

“나는 방금 ‘허허허’하고 웃었다.”

“허허허허. 이렇게 말입니까?”

“···따라 웃지 마라.”

“······.”

호충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호성의 태도를 보고 즐거웠던 마음이 차게 식어갔다.

‘너 이 새끼. 죽었다고 복창해라.’

“막내 동생이 형님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부디 오늘도 많은 가르침을 받길 바랍니다.”

“내일은 없을 것이다.”

‘그건 어찌 알았누?’

오늘 집을 나서면 한동안 녀석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앗!”

녀석은 목검도 들지 않은 호성을 향해 진심으로 검을 찔러왔다.

“으아아아.”

호충은 기겁하는 모습으로 검을 피하고 있었다.

‘아주 죽이겠다고 작정을 했구나.’

기겁하는 겉모습과 달리 호충의 마음은 평온했다.

‘진강십이검(眞强十二劍)을 육성(六成)까지 익혔다 봐도 되겠어.’

진강십이검의 특징인 쾌검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었고, 검식이 이어지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으며 풀어내고 있었다.

‘어쭈. 환검까지?’

호성은 자신의 쾌검을 피하는 호충을 옭아매기 위해서 진강십이검의 검식에 환(幻)을 더하고 있었다.

‘멍청이. 진강십이검은 쾌(快)에 정(靜)을 더해야 제 위력을 발휘하거늘.’

쾌(快)에 환(幻)을 더하면 위력이 더해질 것 같지만, 실제론 정(靜)을 더해야 쾌(快)검의 위력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야 저절로 환(幻)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연스럽게 환(幻)을 가미한 덕분에 녀석의 검식이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제 위력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검식이다.

“환검(幻劍)은 아직 안 되는데···.”

호성을 가르치던 무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존의 무공에 새로운 것을 더하자면 최소한 십성이상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호성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전에 호충의 몸이 진강십이검의 검식을 파고들었다.

스륵.

호충의 손가락이 호성의 옆구리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예전에 호충의 팔꿈치에 맞아 오래도록 아팠던 곳이다. 호성은 기겁하여 뒤로 물러섰다. 호충은 그런 호성을 향해 아주 조그맣게 말했다. 무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예전에 맞은 곳은 다 나으셨나 하고요···.”

“너 이 새끼!!”

호성은 멧돼지마냥 날뛰기 시작했고, 이는 호충이 바라던 바였다.

‘몇 대 맞았다고 꼬리를 말면 큰일이지 않겠어?’

“흐흐흐.”

“웃지 마! 새끼야!”

지금부터가 복수의 시작이었다.

툭. 투둑.

시작은 아주 가벼웠다. 잔주먹이 호성의 몸에 닿았지만, 무시해도 되는 수준이었다.

쩍.

낮은 위치에서 날아온 발차기는 호성의 넓적다리를 때리고 물러선다.

맞은 사람은 겉보기에 멀쩡하고 아무렇지 않게 보법을 밟고 있었다.

‘이게 누적되면 아주 재미있지.’

여전히 호성은 목검을 들고 날뛰고 있었다.

‘더 날뛰어라! 더! 더!’

호충의 주먹과 발이 자잘하게 호성의 몸에 닿고 있었다.

호성의 숨결은 점차 거칠어졌으나 오히려 호충이 숨을 크게 몰아쉬며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허억. 허억. 허억. 이러다 저 죽겠습니다.”

“크흡. 흐흑. 아직 멀었다!”

녀석은 호흡을 가다듬지도 않고 검을 찔러왔다. 이젠 검식에서 쾌(快)나 환(幻)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누적된 타격이 이제야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때가 됐구나. 이제 좀 맞자.’

쩌억.

호충의 손바닥이 안면을 강타며 낸 소리였다.

“윽.”

보법으로 검격에서 벗어난 호충은 몸통에 주먹을 찔러 넣기 시작했다.

뻐억. 뻑.

“커흡.”

호성의 팔이 몸통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밑으로 내려갔다.

텅 빈 안면과 가슴을 향해 빠른 권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반쯤 눈이 풀리기 시작한 호성을 본 호충은 다시 낮은 발차기로 녀석의 허벅다리 밖을 강하게 때렸다.

퍼억!

“큽.”

말을 듣지 않는 한쪽 다리 덕분에 녀석은 기동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방금 타격으로 가물거리는 정신을 되찾았지만,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

얼른 입을 열어 대련을 멈추고자 하였으나, 이미 녀석의 주먹이 얼굴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퍽.

호성의 머리가 뒤로 획 재껴지며 피가 튀겼다.

그 사이 호충은 큰 공격을 준비했다.

오른발을 박차며 뛰어오른 호충은 공중에서 몸을 뒤틀며 힘을 축적했다.

호충의 몸이 휘리릭 회전하는 동안 뒤로 재껴진 호성의 머리가 앞으로 돌아왔고, 회전하는 호충의 몸에서 다리가 튀어나왔다.

부웅.

호충의 다리가 공간을 가르며 상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 그만!!”

무사의 말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뻐억.

호충은 호성의 눈이 뒤로 뒤집히는 것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아직 형님의 검공이 완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뭘 배워야 할지 모르겠군요.”

“공자님! 공자님!”

무사는 얼른 뛰쳐나와서 호성의 몸을 잡아 흔들었지만,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호성은 깨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사 공자! 어쩌자고 이리하셨소!”

“대련이지 않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소.”

“후환을 감당할 수 있으시오!”

“허. 대련하면서 후환까지 생각해야 한단 말이오? 어디 무서워서 대련하겠소? 아차 대련이 아니라 지도였지.”

“여기서 기다리시오! 내가 셋째 마님께 보고 드리고 사 공자의 처분을 받아오겠소!”

“하! 이거 웃기는 종자가 아닌가. 일개 무사가 감히 진가장의 직계에게 명령해?”

“······.”

“배움이 부족하여 동생에게 얻어맞은 것이 뭐가 자랑이라고 그리 큰 소리인가? 게다가 넌 형님을 가르치는 지도 무사다. 네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놓고 내 탓을 해?”

“그, 그건···.”

“형님은 목검을 들었고 나는 맨손이었다. 네 가르침이 부족했다는 것밖에 말이 되지 않는다.”

지도 무사도 지금까지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특별한 무공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았다. 호충이 보인 것은 주먹질과 발길질이 전부였다. 그렇다고 자신이 부족하다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마, 말싸움은 필요 없소! 사 공자는 합당한 처분을 받을 것이오!”

“큭. 이 새끼들은 하나 같이 이 모양이야. 맨날 나를 무시하네. 네 마음대로 해 새끼야.”

지도 무사는 호성을 업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호충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했다.

진가장의 열린 대문 안에서 뒤를 돌아본 호충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호충은 진가장의 대문을 지키는 무사들을 지나치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대는 내가 보이지 않는가?”

“···보입니다.”

“그런데 왜 인사하지 않지?”

“···언제는 했습니까?”

평소에도 호충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 편이었다. 진가장에서 조심히 살아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러니까 하는 소리 아닌가. 첫째 형님과 둘째 형님이 지나가면 너희는 분명 예를 다해 인사했다. 헌데 나는 허깨비였나? 내가 오늘 먼 길을 떠나는데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이유 없이 진가장의 무사를 핍박한 사 공자께 보일 예는 없소.”

어제 동급무사 백천우를 반병신으로 만든 소문이 벌써 무사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었다.

호충은 대꾸한 무사에게 한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오호라. 무사를 핍박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예를 보일 수 없다?”

“그렇소.”

“나는 가주와 총관에게 그 이유를 다 설명했다. 그런데도 너는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구나. 상황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 것이냐?”

“···내가 들은 것은 백 무사가 이유 없이 맞았다는 것이오.”

호충의 손이 번개처럼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짝.

“또 말해보아라. 이유가 없다?”

짝.

무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쪽 뺨에 호충의 손바닥이 다녀갔다.

옆에 있던 무사가 얼른 다가오며 말했다.

“무슨 짓이오!”

퍼억.

“끄헉.”

가까이 다가온 무사는 온 것보다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호충이 발을 들어 차버린 것이다.

“예의도 모르는 무사가 감히 진가장의 수문을 맡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로다.”

스르릉.

뺨을 맞았던 무사가 검을 빼들었다.

“너도 내게 검을 빼드는 구나.”

“오늘 결단을 보겠다.”

녀석의 눈에 살기가 충천하였다. 호충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반기고 있었다.

“와라.”

너무 가까운 거리.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호충을 일도양단할 거리였다.

샤악.

무사는 거리낌 없이 검을 내리쳤고, 호충은 반걸음 옆으로 물러서며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무사의 머리가 뒤로 젖혔고, 호충은 복부를 향해 다른 주먹을 날렸다.

퍽.

새우처럼 몸이 접힌 녀석을 발로 밀어내며 마무리 했다.

툭. 털썩.

“또 보자.”

진가장 입구를 지키는 수문 무사 둘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호충은 여유롭게 진가장을 벗어났다.

“어우. 속이 다 시원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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