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화 (30/232)

정무맹과 협의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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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파의 인사에 답례하고자 협의맹의 당 가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천당문(四川唐門)이 협의맹을 대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문의 경우 보통의 세가나 무림 방파와 달리 독과 암기를 다루기에 상승 무공이 없이도 예전의 힘을 대부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과거 황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금까지 사천(四川)과 무림(武林)을 주름잡고 있었다.

“사천당문(四川唐門)의 당세천(唐跩天)입니다. 세가 연합인 협의맹을 정무맹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래 정파 무림(正派武林)은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이제야 무림(武林)이 제 자리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우리 정파가 하나로 거듭나는 발걸음을 시작하길 기원합니다.”

소림의 방장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미타불. 소림의 석영(釋永)이라 하외다. 당 가주님께서 오늘의 회합을 축언하시니 저 또한 거들겠습니다. 무림에 적을 둔 우리가 언제부터 쪼개져 있었겠습니까. 당 가주님의 말씀처럼 무림(武林)은 언제나 하나였고, 우리 또한 과거 어깨를 나란히 하고 피를 흘리지 않았겠습니까. 앞으로 자주 이런 자리를 갖고 두 맹의 화합을 도모합시다.”

뒤에 서서 이들의 대화를 듣는 호현은 평범한 대화에 숨겨진 욕심을 읽고 있었다.

‘무당이 주도권을 잡고자 하였으나, 당문이 뒤를 잡았다. 허나 당문이 주도권을 가져오려던 차에 소림의 방장이 나서서 다시 평수를 이루었구나.’

협의맹과 정무맹은 이미 두 개의 단체로 쪼개진지 오래였다.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두 맹을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는 분명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물론 마음이 너그러운 대표라면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어렵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맹 전체가 걸린 일이었다. 대표가 한쪽에 수그리면 대표가 속한 모두가 그 밑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오늘 회합은 아무런 성과도 없겠어.’

호현은 이들의 만남이 그저 서로의 간극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날 것이라 예상했고 실제로 같은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갔다. 하지만 변수는 언제나 존재하는 법이었다.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의 청진(淸進)이 무림의 영웅들에게 한 말씀 올리겠소.”

칼날처럼 날카로운 기도를 가진 화산의 청진 장문인은 모두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우리 화산(華山)은 하남에서 마인(魔人)의 흔적을 발견했소.”

“!!”

“!!”

“!!”

충격적인 소식에 모두들 청진의 입이 다시 열리기만 기다렸다.

“오백년 전 일차무림혈사와 삼백년 전 이차무림혈사를 겪으며 마교(魔敎)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사라져 버렸소.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요. 그들은 우리와 같은 무림 방파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 단체라는 것이오.”

황실의 무림 핍박은 정파 무림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사파는 물론이고 정사지간의 문파도 비껴가지 못했고, 새외무림에도 황실의 힘이 닿았다. 그 중에서도 마교(魔敎)는 일차무림혈사에 가장 큰 피해를 받았었고, 이차무림혈사에선 황궁의 편에 섰다가 토사구팽을 당한 바 있었다. 십만대산의 마교 본거지는 불타올랐고, 마공의 고수라고 불리는 장로들은 모조리 목이 잘렸다. 누구보다 많은 피해를 입은 것이 바로 마교(魔教)였지만, 정파에서 가장 경계하는 단체이기도 했다.

청진의 입에서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고 일반적인 사실이 거론되지 기다리다 못한 남궁 가주가 입을 열었다.

“마인(魔人)의 무공 수위는 파악되었습니까?”

마교(魔敎)를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마교(魔敎)의 마공(魔功) 때문이었다. 과거 황실에 사로잡힌 무림 방파의 인사들은 고문과 회유에 넘어가 상승 무공의 존재와 이를 익힌 사숙조의 이름을 토설하는 일이 많았으나, 마교(魔敎)는 마신을 위한 순교라 생각했다. 마신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아래 모두가 입을 다문 것이다.

당시 황실에서도 마교의 인물은 잡히는 대로 죽이라고 명령할 뿐이었다. 어차피 광신도인 이들에게 고문과 회유는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교인(魔敎人)들이 중원 전역으로 흩어진 덕분에 마교(魔敎)의 마공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누가 익혀 전해내려 오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들은 대놓고 황실과 척을 졌으니, 상승 무공을 전하고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아미타불. 마교의 마공은 빠른 성취가 가능하다 했으니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게다가 마교의 무공은 정파 무림의 정종무공과 달리 빠른 성취를 자랑했다. 일정 수준에 오르면 한계에 봉착한다고 하지만, 상승 무공조차 남아있지 않은 작금의 정파 무림은 마공을 상대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그저 수적인 우위로 피해를 감수하며 상대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마인(魔人)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지 마인(魔人)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림행을 떠난 현오(玄悟) 사질(師姪)이 발견하고 보고하였소. 살해당한 양민의 몸에서 마공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오. 마인(魔人)에게 맞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흔 주변에 검붉은 반점이 동심원을 그리고 있었다 하오.”

화산파와 이웃한 종남파(終南派)의 장문인 종무(終拇)가 청진(淸進)의 말에 반박하며 일어섰다.

“허어. 권장의 상흔에 동심원을 만드는 마인(魔人)이라면 일류의 마인(魔人)이 아니오? 어찌하여 마인의 무공 수위를 모른다 하시오? 화산의 무공이 예전과 같지 않다하더니 마인(魔人)의 구별법까지 잃으신 게요?”

“그, 그것은···.”

진원우는 화산파의 청진(淸進)이 곤란에 빠지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가장의 진원우요. 그 이상일 수 있기에 함부로 추측하지 않는 것이 외다. 어찌 화산파(華山派)에서 그 사실을 몰랐겠습니까. 만약 일류 무인 수준의 마인(魔人)으로 추정하고 쫓았다가 절정급 마인(魔人)이 나타나면 그대로 떼죽음이라도 당해야 옳겠습니까? 청진(淸進) 장문께서는 정파의 무인들이 상하는 것을 저어하여 저리 말씀하신 것이외다.”

“흠흠. 나 또한 걱정되어 하는 소리외다.”

진원우의 대변에 청진(淸進)은 크게 안도하며 눈으로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호현은 그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제때에 나섰음을 알았다.

‘역시. 아버지도 깊이 생각하고 움직이시는 구나.’

“자자. 진정들 하시지요. 회합이 끝나가는 시점에 너무 중요한 사건이 알려졌습니다.”

무당의 장문인은 서로 분쟁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만약 화산파에서 파악한 것이 사실이라면 마인(魔人)이 등장했다는 뜻이고, 이것은 마교(魔教)의 발호가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정파 무림은 한 마음 한 뜻으로 마교(魔教)의 발호를 막아내야 합니다.”

송호 장문인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정무맹의 구성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정무맹의 문파들은 중원 무림에서 마인(魔人)이 나타나지 않는지 감시하기 시작할 것이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자 이번엔 협의맹 인사들을 향해 말했다.

“협의맹은 이에 동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 두 맹이 자주 회합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오늘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 모인 목적에 도달하기도 쉽지 않겠습니까. 정파 무림이 하나가 된다면 마교(魔教)의 발호를 막은 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외다.”

“······.”

“······.”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 협의맹에서도 할 말이 없었다.

‘선수를 내줬다.’

호현은 무당의 장문인이 괜히 정무맹의 대표가 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말은 동조라고 했지만, 말을 꺼낸 것도 감시를 시작한다는 것도 정무맹이다. 결국 협의맹은 정무맹의 행사에 도움을 주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모든 공은 정무맹에서 차지할 것이다.’

당세천은 잠시 굳은 얼굴을 했지만, 곧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시의적절한 판단과 일처리라 생각되오. 협의맹은 정무맹 대표이신 송호(松護) 장문인의 말씀에 따라 마인(魔人)을 감시하겠소.”

예상치 못한 흔쾌한 수락이었지만, 송호 장문인은 냉큼 고마움을 표하며 확정지어버렸다.

“고마운 일입니다. 당 가주. 정무맹의 행사에 도움이 되어주신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습니다.”

호현의 예상대로 이번 행사를 정무맹이 주축이 되는 것으로 만드는 말이었다.

“허나 사전에 그에 대한 협조를 당부 드리겠습니다.”

“마인(魔人)을 감시하는 일이니 무엇이든 정무맹이 협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 가주는 상황을 어찌 뒤집을 것인가.’

호현은 당 가주가 어떤 방법으로 잃었던 점수를 만회할지 궁금했다.

당 가주가 입에 올린 협조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 당세천이 정무맹의 배포가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협의맹은 정무맹 무림 방파의 힘이 닿지 않는 지역에 무인들을 파견하여 마인(魔人)의 발호를 감시하고 시의적절하게 정무맹에 알려드리겠소이다.”

“!!”

“!!”

‘아. 역시 당세천 가주의 머리는 따를 자가 없구나.’

“협의맹의 무사를 외진 곳에서 만나셔도 편히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같은 정파 무림의 동도들끼리 날을 세우지도 않을 것이 아닙니까. 허허허.”

‘당 가주가 방점을 찍어버렸다. 이제 각 세가의 중원확장이 수월해졌어.’

마인(魔人)을 주제로 삼아 우위를 차지하려던 정무맹은 협의맹에 확장의 빌미만 주고야 말았다.

당세천이 마인(魔人)의 발호를 막겠다며 각 지역으로 협의맹 세가들을 파견한다면 그 지역은 곧 세가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무림 방파가 관리하는 지역이 아니라 그 외의 지역이라 했으니 정무맹에서 반대할 명분도 없음이다. 여기에 당세천은 무림의 동도이니 싸우지 말자는 선언까지 한 참이었다. 싸우기도 전에 이미 이긴 싸움이 되어버렸다.

“끄응.”

송호 장문인도 외통수에 몰렸음을 깨닫고 있었지만, 이미 자신이 협조한다고 내뱉은 다음이었다.

정무맹의 구성원들조차 자신을 향해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무인을 외부로 돌리시면 내부가 위험하지 않을지···.”

미련하게 마지막까지 협의맹을 행사를 줄이고자 하였지만, 당세천이 한 수 위였다.

“마교(魔教)의 발호를 막아내는 일이외다! 어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할 수 있겠소! 우리 협의맹은 마교(魔教)의 발호를 대비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외다. 또한 우리가 모은 마교(魔教)의 모든 정보를 기필코 정무맹에 전달하고야 말 것이오!”

“그리하는 것이 당연하긴 한데···.”

“협의맹 가주님들께서는 뭘 하시오. 정의맹 맹주께서 저리 훌륭한 결단을 내려주셨으니 인사를 드리셔야지요.”

당세천의 말에 진원우가 가장 먼저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진가의 진원우가 송 맹주의 훌륭한 판단과 일처리에 깊이 감명 받았습니다. 실로 정파 무림의 보배라 불리셔도 될 것이옵니다.”

“남궁가의 남궁곤 또한 마찬가지외다. 송 맹주는 능히 정무맹을 이끌 동량이시오.”

“제갈가의 제갈진은 송 맹주의 지계(智計)에 한 수 배웠사옵니다.”

세가의 가주들은 일부러 송호 장문인을 맹주라 칭하며 이번 일이 정무맹의 결정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협의맹의 인사들이 저리 칭찬을 하고 나서는데 정무맹에서도 가만히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우리 맹주께서 대단한 일을 하시었소.”

“맹주께서 하신 일이니 잘 풀어 가시겠지요.”

그렇다고 고운 인사가 나가진 않는다. 아무리 자신들의 힘이 닿지 않는 지역이라도 시일이 흐르면 누가차지할지 싸워야 했을 구역이다.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할 가능성이 있던 지역이 방금 맹주가 나눈 말 몇 마디로 인하여 영영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어진 인사에 송호(松護) 장문인은 무를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협의맹이 정무맹의 행사에 이리 동조해주시니···. 고마울 뿐이외다.”

얼굴은 하나도 고맙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회합을 이리 성공적으로 끝맺음 할 줄이야. 이제 회합을 파하고 저녁 연회에 참석하여 서로 친목을 도모하도록 합시다. 송 맹주께서도 꼭 와주시리라 믿겠습니다.”

분명 송호(松護) 장문인이 회합을 주도 하고 있었는데, 이젠 당세천이 회합을 주도하는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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