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232)

여정의 시작

***

‘황궁 비고(祕庫)에 가면 검(劍)과 도(刀)를 사용하는 무공들이 있을 것이다.’

호충은 가장 좋은 품질이 진열된 곳에서 각 세 자루의 검(劍)과 도(刀)를 골랐다. 이것만으로 벌써 발걸음이 무거워질 정도였다.

‘유엽비도(柳葉飛刀)는 빼먹지 말아야지.’

배에 둘러 비도(飛刀)를 수납할 수 있는 가죽 복대도 함께 챙겼다. 의복 안에 복대를 두르고 유엽비도(柳葉飛刀)를 촘촘하게 챙겨 넣었다. 비도는 잃어버릴 것을 감안해 유엽비도(柳葉飛刀) 한 벌을 추가로 챙겼다.

‘또 뭐가 있을까.’

숨겨진 무기라도 있을까 싶어 무기고를 둘러봤지만, 깔끔하게 정리되고 관리되는 무기고는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아차.”

그대로 나가려던 호충은 자신이 사용하던 회칼과 비슷한 길이의 단검을 생각해냈다. 얼른 다시 무기고 안쪽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 대로 단검을 챙겼다.

무기고에서 나오는 호충은 실로 우스운 꼴이었다.

“크흡.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십니까?”

“······.”

왼쪽 허리춤에 세 개의 검이 꼽혀 있었고, 오른쪽 허리춤에 세 개의 도가 꼽혀 있었다. 왼쪽 손에는 유엽비도(柳葉飛刀) 열두 개가 들어간 주머니가 들려 있었고, 오른쪽 손엔 단검이 가득한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호충의 배는 의복 속에 착용한 복대 덕분에 크게 부풀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사가 어린 호충이 무기에 욕심을 부렸다고 생각할 만 했다.

“···다 쓸 데가 있겠지.”

“공자님께서 허락을 받아 가져가시니 어쩔 수 없으나, 공연히 잃어버리지는 마십시오. 아깝지 않습니까.”

“염려 말아라. 부러질지언정 잃어버릴 일은 없을 터이니.”

호충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거처로 돌아갔다.

‘젠장 무겁긴 무겁네.’

그래도 지금까지 무공을 수련하고 신체를 단련해 왔기에 이정도지 예전이라면 감히 이걸 들고 여행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디 전쟁이라도 가십니까?”

송 영감도 무기고를 지키던 무사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바깥세상은 무뢰배로 가득하잖아. 전쟁이라면 전쟁이지.”

“세상을 구경을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일전의 단검이면 충분하실 터인데···.”

“내가 쓸 데가 있어서 그러니 영감 짐이나 잘 챙겨.”

“저야 언제든 준비되어 있지요.”

“그럼 오래 끌 것 없이 지금 가자.”

“가주님께 말씀 드리지도 않고요?”

“방금 다녀왔잖아. 뭐든 내 마음대로 하라셨어.”

“가주님도 속으론 분명 도련님께 관심이 있고 아끼고 계실···.”

“내가 애야? 그딴 관심 못 받아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좋아. 내게 관심이 생겨봐야 내 자유만 사라질 뿐이지. 흰소리 적당히 하고 움직여.”

“예. 도련님.”

“아! 숙수한테 얘기한 건량은 어떻게 됐어?”

“어제 다 받아두었습니다.”

“다행이네. 당장 가도 되겠어.”

그렇게 호충의 외유가 시작되었다.

***

호충은 진가장에서 짐을 꾸려 나오자마자 마(馬)시장에 갔다.

예전부터 계획한 일이라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말을 타시는 편이 좋긴 하지요. 하지만 적당한 말을 내놓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겨울이라 관리도 쉽지 않을 테고요.”

“말은 너무 비싸. 뒤에 수레를 실을 수 있는 나귀면 적당해.”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말은 나라에서 전략물자로 보는 터라 타고 다니기도 부담스럽고요.”

“무엇보다 내가 말 탈 줄을 모른다는 게 문제지.”

진가장 내에서 서책만 보던 호충이 어찌 승마를 배웠겠는가. 지금의 호충도 마찬가지였다. 승마는 배워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서 배우셔야겠습니다.”

“나중에.”

호충은 마(馬)시장에서 말이 아닌 나귀를 골랐고, 뒤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수레까지 한 번에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가장에서 바리바리 챙겨온 무기와 짐을 수레에 싣고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목재를 구해 수레 위에 조그맣게 천막을 만들었다. 마차는 아니지만, 충분히 한 사람이 들어가 추위를 피할만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천도 두껍게 깔아두었다.

“허허. 도련님은 손재주도 좋으십니다 그려.”

“이 쯤이야. 별거 아니지.”

“이제 저 없어도 잘 사시겠습니다.”

“또, 또 그런 소리. 됐고! 영감은 얼른 저리로 들어가.”

호충이 추위를 피하려고 만든 천막이 아니었다. 송 영감을 태우려고 만든 천막이었다.

“제가 어찌···. 도련님이 들어가셔야지요.”

“나야 젊고 건강하니 괜찮지만, 영감은 이런 추위 못 견뎌. 내가 노인네 병수발까지 들게 할 참이야?”

“···도련님.”

“잔소리 말고 어서 들어가. 영감 저기 안 들어가면 나 출발도 안 할 참이니까.”

호충은 송 영감의 눈에 고이는 물기를 보고도 모른 척 했다.

“···도련님이 그토록 고대하시던 여행을 제가 망칠 수는 없지요.”

“천막이라고 해봐야 바람이나 막아주는 정도니까 꽁꽁 싸매고 있어. 추우면 바로 얘기하고.”

“······예.”

호충은 송 영감을 수레에 태우고 나귀를 몰았다.

천막 안에 들어간 송 영감은 호충이 걱정 됐는지 안에서 말 했다.

“추우시거든 바로 말씀하십시오. 얼른 자리를 바꾸겠습니다.”

“내가 괜히 옷을 껴입고 나왔겠어? 걱정 말고 영감이나 싸매고 있어.”

호충이 나귀를 몰아가는 곳은 감숙 방향이 아니라 자장(子張)에 있는 한 전각이었다.

전각 입구에는 진가표국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감숙으로 간다던 호충이 진가장 소유의 표국으로 온 것이다.

“게 있느냐.”

“누구···. 사 공자님. 오셨습니까.”

진가장에서 자신을 봤던 무사였는지 입구에서부터 자신을 알아봤다.

“내가 물을 것이 있어 그러니 표사 하나를 데려와 주게.”

“예. 공자님.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밖에서 기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왔다.

“허억. 사 공자님. 소인 채수환이라 하옵니다.”

“채 표사. 내가 물을 것이 있어 바쁜 그대를 불렀네.”

“말씀하시지요.”

“내가 감숙으로 여행을 갈 참인데, 혹시 표국에서 감숙으로 가는 여정이 있는가? 길을 지날 때 편하지 않을까 싶어 그러이.”

“그건···.”

진가장의 막내 공자가 진가장 내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하나 가주의 직계임은 분명하다. 함께 가면 불편할 것이 뻔했다. 그러다간 표국의 배달 일정에 차질을 줄 수도 있음이다.

“멀리서 표국의 행차를 따르기만 할 생각이네. 되도록 표국의 인물들과 마주하지도 않을 생각이야. 그대들에게 공연한 수고를 끼치지 않겠네. 그저 길이나 안내 받으려 함이야.”

“감숙은 바로 옆이라 자주 오갑니다요. 오늘도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준비 중이지요.”

호충도 뻔히 알고 있었기에 이리로 온 것이다. 그간 황궁 비고(祕庫)로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익숙지 않은 중원의 지리를 안내해줄 인물을 찾아왔다. 중원의 지리를 잘 아는 직종은 당연히 중원 전역을 이동하는 표국의 인물들이었고, 마침 진가장에서 소유한 표국이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이후 진가표국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 감숙으로 가는 여정이 자주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그거 다행이군. 채 표사도 가는 가?”

“그렇사옵니다.”

“내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네. 채 표사가 출발하면 내가 시간을 두고 따르지.”

“저희 걸음이 빨라 놓치실 수도 있사온데···.”

“그건 내가 할 탓이지 않겠나. 지도를 챙겨 뒀으니 따르다가 놓치면 알아서 가겠네.”

“소인의 사정을 헤아려주시니 감사하옵니다.”

“도움을 받으려 왔으니 내가 이해해야지. 어서 가보시게. 할 일이 많을 터인데.”

“예. 공자님. 공자님을 안으로 안내 하시게.”

“예. 표사님.”

호충은 밖에서 기다리고자 하였으나, 진가표국의 인물이야 그럴 수 있겠는가. 호충은 표국이 진가장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기에 입구 무사의 안내에 따라 내실로 가서 표행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도련님은 이번 여행을 오래 준비하신 모양입니다. 저희 둘이 감숙까지 어찌 가나 했더니···.”

송 영감이 수레 천막에서 나와 뜨끈한 차를 마시며 하는 말이다.

“감숙에 도착하면 나머지는 대충 지리를 알아. 진가표국은 감숙까지 함께하고 헤어질 생각이야.”

“예. 그리하시지요.”

“혹시 내가 빼먹은 게 있을지 모르니까 영감이 필요한 물품이 있는지 잘 생각해봐.”

“여행에 완벽이 있겠습니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여행은 즐겁지요. 인생살이와 여행은 다르지 않음입니다.”

“······.”

송 영감의 말에 호충은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감이 오래 살아서 그런지 삶의 깊이가 있네.’

“맞아. 부족하면 현지에서 조달해도 되겠지.”

안 그래도 수레 가득 짐을 실었다. 여기서 더 챙겨봐야 나귀가 끌 수레만 무거워질 것이다.

오래 지나지 않아 진가표국의 표행 준비가 끝났고, 채 표사는 곧 출발할 것임을 알려왔다.

“이제 표행이 시작되옵니다. 공자님.”

“고맙소. 채 표사. 상행 일정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소.”

“가시지요.”

밖으로 나가니 짐마차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표사들과 쟁자수들도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채 표사가 일행에 합류하고 나서 표행을 이끄는 표두가 나섰다.

“공자님. 이번 표행의 표두인 홍 모라 하옵니다.”

호충은 홍 표두가 뒤에 끌러 매고 있는 창을 통해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아! 홍진 표두님. 홍 표두님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허허. 공자님께서 보잘것없는 제 이름까지 기억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홍 표두님의 창술이 일절이라 들었지요. 무림에서 귀창(鬼槍)으로 불리신다지요?”

귀신 같이 창을 잘 쓴다고 하여 귀창(鬼槍)이라는 별호를 갖게 된 홍진 표두였다. 표행 중에 산적들을 만나도 귀창(鬼槍) 홍진을 알아보면 줄행랑을 친다고 한다.

‘내공은 확실히 일류급이야.’

호충은 홍진의 내공이 일류에 다다랐음을 알아보고 있었다.

“무림의 별호야 과장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진가표국에 홍 표두님이 있어 안심입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표행에 임하십시오. 멀리서 따르겠습니다.”

“채 표사에게 듣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되도록 표행 속도를 올리지 않을 터이니 잘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배려에 감사합니다. 표두님.”

이런 배려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다.

호충은 표행이 출발하고 나귀와 함께 뒤따라 출발했다. 송 영감은 차마 표사들이 보는 가운데 수레에 오르지 못하고 호충과 함께 걷고 있었다. 호충도 송 영감의 사정을 알기에 그대로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힘에 부치면 바로 수레로 올라가.”

“예. 도련님.”

홍진 표두의 말대로 표행을 따르긴 어렵지 않았다. 수 장을 떨어져 뒤따르고 있었는데, 앞선 표행이 있어 눈으로 덮인 주변 경관을 살필 여유도 있었다.

“우아. 저기 눈 쌓인 것 봐.”

“허허.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가득합니다. 하얀 이불을 덮은 것 같습니다.”

노소(老少)는 그렇게 진가표국의 표행에 붙어 감숙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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