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감숙성 기련산.
하늘을 찌를 듯 아아하게 솟아 있는 기련산은 중원의 정파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의 산이었다.
바로 이곳에 혈천신교가 있기 때문이다.
단일 세력으로는 가장 강한 혈천신교.
혈천신교는 그 교도들의 수만 해도 10만에 달하는 미증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 단체였다.
교주의 명이라면 불 속이라도 웃으며 뛰어드는 사람들.
때문에 중원의 정파들은 혈천신교가 한번 움직이면 언제나 발칵 뒤집어지곤 했다. 그들을 막기 위해선 온 중원이 피와 시신으로 덮여야 하는 탓이었다.
그만큼 강하고 두려운 것이 혈천신교였다.
하지만 원래부터 혈천신교가 강한 것은 아니었다.
중원 무림 역사상 소림사가 정도의 정신적 지주라면, 마도에서는 천마교가 정신적인 지주.
그러나 천마교와 비슷한 단체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혈마교였다.
두 문파는 마도의 종주 자리를 놓고 언제나 피 튀기는 혈전을 벌였지만,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어 늘 막상막하였다.
그런 천마교와 혈마교에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이었다.
혈마교의 당대 교주였던 마진천이 천마에게 일대일 결투를 제의, 기련산에서 천마를 굴복시켰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혈천신교였다.
천마교와 혈마교가 하나로 합쳐진 것을 알게 된 중원 무림은 기련산으로 근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언제 어느 때 혈천신교가 무림 일통의 깃발을 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런 혈천신교가 멸망하였다.
그것은 마도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고, 정도인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이었다.
기련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상상봉에 있던 혈천신궁의 모든 것이 거대한 폭발에 휩쓸렸다.
그리고 이어진 붉은 장포인들의 공격.
얼굴에 복면을 쓴 붉은 장포인들은 혈천신교인들을 가차 없이 죽여 버렸고, 그렇게 강하다던 혈천신교인들은 붉은 장포인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쓰러져 갔다.
장장 15일 동안 벌어진 대혈전은 혈천신교인들의 시체가 산을 이룬 후에야 끝이 났다.
훗날 홍의겁으로 기록된 기련산의 싸움은 그렇게 끝났고, 겨우 살아남은 혈천신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몸을 숨겼다. 중원의 정파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혈천신교 섬멸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7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중원은 정도 천하가 되었다.
<천하에 무림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문파들이 생겨나고, 또 괴멸되었다.
하지만 생겨난 순간부터 불패의 문파로 자리매김한 무림 문파가 있으니, 바로 혈천신교였다.
천마교와 혈마교의 통합, 그것은 혈천신교의 존주 마진천이 이룩한 쾌거였다.
그런데 그들이 핏빛 장포를 입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몰살당했다.
붉은 장포에 복면을 쓴 정체불명의 무인들은 혈천신교를 공격해 사람은 물론 개돼지 한 마리 살려 놓지 않았다.
그들의 손속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라면 아이, 어른,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목을 베었다. 단지 혈천신교인이라는 그 한 가지 이유로 무공을 모르는 일반 교인들까지 몰살시킨 것이다.
훗날 무림 사가들은 이 끔찍한 혈천신교 몰살 사건을 ‘홍의겁’이라고 불렀다.
아아, 글을 쓰는 나는 지금도 손이 떨린다.
홍의겁이 벌어진 후, 그곳에 도착하여 내가 본 것은 지옥의 참상이었다.
골짜기와 계곡마다 목이 잘리고 두 동강난 시신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곳, 온갖 겁탈을 당해 발가벗겨진 채 죽은 여인들의 시신이 사방에 널린 곳이 바로 기련산이었다.
그때 나는 수많은 사내들에게 겁간을 당하고 온몸이 난자되어 죽어가던 한 여자 애의 저주를 들었다.
‘악귀 같은 놈들아, 존주께서 네놈들에게 천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 어린 여아는 죽으면서도 혈천신교의 존주(교주)를 신처럼 믿었다. 반드시 자신들의 복수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 혈천신교의 존주는 다시 나타나지 못했다.
무림의 사가들은 존주 마진천이 이미 암습을 당해 죽었다고도 하고, 주화입마에 걸려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든 혈천신교는 그렇게 말살되었다.
나는 지금도 의혹을 금할 수 없다. 혈천신교에 그렇게 많던 고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정말 폭발 때 모두 죽은 것일까?
그들은 세상이 공인하는 초극의 고수들. 그런 그들이 단지 광천뢰의 폭발을 피하지 못하고 당했을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혈천신교는 그렇게 망했고, 그 덕에 중원의 정파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격이었다.
이제 중원 정파를 위협할 상대가 없어진 것이다.
지난 70년간 중원 정파가 번영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붓을 달리면서도 하나의 의혹을 지울 수가 없다.
붉은 장포인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왜 혈천신교를 몰살시켰을까? 그리고 전부 어디로 사라졌을까?
어쨌든 혈천신교가 없어진 덕에 중원은 정도 천하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이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는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어린 여아의 눈이 떠오른다.
그 여아의 바람대로 과연 존주가 다시 나타날지, 나는 늘 그것이 궁금하다.
-태호에서, 만박서생 제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