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
성동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팽겸이 몸을 움직였다.
성동의 목검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단순한 움직임이다.
아무런 검초도 없고 어떠한 무리도 섞여 있지 않다.
팽겸은 이번에야말로 그의 검초를 피해내고 남은 한 번의 공격마저 흘려버린 후 성동을 찍어 누를 셈이었다.
‘흥. 우연이야. 우연일 거야.’
그의 눈에 보이는, 아무런 무리도 담겨 있지 않은 검초가 사실은 이름난 고수들이 바라본다면 경악을 토할 만한 무리라는 사실을 팽겸은 알고 있을까.
아니, 아마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고 있다면 팽겸은 성동보다 더한 기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성동보다 더한 기재가 아니었다.
팽겸이 발을 어지럽게 놀렸다.
보법이 일변하며 성동의 목검을 피해내었다고 생각한 순간, 성동의 목검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휘익 꺾어지며 대번에 팽겸의 이마를 때린다.
팽겸의 눈에 비친 성동의 목검이 점차 커졌다.
“흐익!”
팽겸이 꼴사납게 바닥을 구르며 성동의 목검을 피했다.
“어? 피했네? 헤헤.”
성동은 자신의 공격이 빛나가자 해맑게 웃어 보이며 세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성동의 목검이 허공을 갈랐다.
팽경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성동의 목검을 피하기 위해 움직였다.
“으아아아아!”
비명인지 기합성인지 알 수 없는 외침과 함께 팽겸의 몸이 튀어 올랐다.
단순히 무공을 배우지 않은 목검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치고는 과장된 면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공 역시 사용했다.
어린 나이지만 지니고 있는 내공을 사용했기에 그의 몸이 풀쩍 뛰어오른다.
성동의 목검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그 순간, 성동의 목검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검풍(劍風)?
아니, 그러한 것은 아니다.
검풍은 예리한 기운을 이용해 바람과 같이 쏘아 보내면 나무토막도 잘라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그런 검풍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허공으로 뛰어오른 사람하나 정도는 밀어낼 수 있을 그런 바람이었다.
퍼석-
바람과 팽겸의 몸이 충돌하는 순간, 팽겸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모래밭을 데굴데굴 굴렀다.
입안에 모래까지 한 움큼 들어갔다.
“퉤퉤!”
입안에 가득 찬 모래를 뱉어낸 팽겸이 씩씩거리며 성동을 노려보았다.
“너! 너! 죽여 버리겠어!”
그가 대번에 성동을 향해 두 주먹을 쥐고 뛰어간다.
경신법에 보법이 가미된 움직임. 거기다 사용하지 않겠다던 내력을 썼다.
아니,이전에 성동이 공격할 때 사용했으니 이미 그전부터 규칙을 어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주환이 그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말을 더듬었다.
“저! 저!”
팽겸의 움직임이 폭발적으로 달라지는 순간부터 팽겸이 내공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데 약조했던 그의 아비인 팽후는 자신의 아들을 말리지 않는다.
“이게 무슨 짓 입니까! 내공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지 않습니까!”
격정에 휩싸인 유주환의 말에 팽후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우리를 먼저 속인 쪽은 그쪽이 아닌가?”
“그게 무슨 소리요?”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은 아이가 어찌 우리 팽후의 움직임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말에 주변에서 구경하던 다른 무림인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저렇게 노골적일 줄이야.
그 말에 유주환이 쓰게 웃음을 지었다.
“결국 우리를 깔아뭉개기 위한 비무였구려.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좋소. 우리가 진 것으로 할테니 비무를 그만둬 주시오.”
그 말에 팽후가 비릿하게 웃었다.
“일단 시작한 비무는 끝까지 가봐야지.”
팽겸이 달려가 어깨로 성동을 들이박았다.
보법은 물론이고 경신법 하나 익힌 적 없는 성동은 그런 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적의 행동을 했다.
어깨를 가볍게 비트는 것.
“악!”
성동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어깨를 비튼다고 해도 모든 충격을 완전히 흘려 버릴 수는 없었던 탓이다.
욱신거리는 고통이 성동의 몸속을 엄습해 들어왔다.
단번에 어깨가 저리며 온몸이 축 늘어진다.
‘이이…….’
성동이 목검을 움켜쥐고 휘둘렀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팽겸의 몸이 주춤하며 비명이 흘러나왔다.
“으악!”
팽겸이 주먹을 말아 쥐고는 크게 휘둘렀다.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내공이 잔뜩 담긴 주먹질이 성동을 후려쳤다.
성동은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날려가 바닥을 형편없이 굴렀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기절했음이 분명했다.
아무리 천하에 다시없을 기재라 할지라도 내공의 유무는 굉장히 많은 차이를 가진다.
그중 하나가 힘이었다. 내력이라는 무지막지한 힘이 담기면 아이의 주먹이라 할지라도 어른이 막기 힘들다.
그런 주먹을 정통으로 맞았으니 성동이 일어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유주환이 빠르게 다가가 성동을 살폈다.
“성동아!”
맥을 짚어보자 아직 뛰고 있다. 단순히 기절만 했음이 틀림없었다. 입가로 흐르는 피도 없는 것으로 보아 내상 역시 없었다.
다행이라면 다행.
하지만 유주환은 알지 못했다.
내상이 없는 이유가 주먹이 몸에 추돌하기직전 성동이 몸을 틀어 충격을 어느 정도 홀려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정도면 되었소? 이 정도면 되었냐는 말이오. 무공을 배운적도 없는 하찮은 상인의 자제 하나 깔아뭉개면 기분이 좋소?”
악에 받쳐 소리치는 주환의 말에 팽후가 도끼눈을 떴다.
“이게 무공을 안 배웠다는 말인가? 내가 검초가 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 말이야!”
현란?
검초?
웃기는 소리.
성동은 그저 마구잡이로 마음 가는 대로 검을 휘둘렀을 뿐이다.
다만 그 마음이 검을 이끈 것일 뿐, 누가 봐도 그것은 검초가 아니었다.
검을 갓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휘두르는, 아주 엉망인 검으로 보였다.
일단 겉모습으로는 그러했다.
“그게 무슨 억지요! 우리 아이는 무공을 배운 적이 없다 하지 않았소!”
“끝까지 거짓을 말하려 하는구나! 좋다, 내 오늘 이 땅에 강호의 법도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리라!”
그가 소리치고 허리춤의 박도를 뽑으려는 순간, 구경하던 구경꾼 중 한 사람이 나왔다.
그러고는 팽후의 완맥을 움켜쥐었다.
“그만. 그만하지.”
그 말에 팽후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그를 노려본다.
“넌 뭐냐?”
이제 서른이 좀 안 되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완백을 움켜쥐고 있는 손아귀의 힘은 적지 않았다.
눈앞의 이자, 고수다.
팽후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당신은 누구신데 우리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오?”
그 말에 사내가 팽후의 완맥을 놓아주더니 성동에게로 다가갔다.
사내가 손을 뻗어 성동의 등을 탁탁 몇 대 때렸다.
“콜록콜록! 콜록!”
성동이 기침과 함께 눈을 뜬다.
“역시 내상은 없네. 거기다 내공도 없어. 쥐뿔만 한 단전도 느껴지지 않는데 이 아이, 무공 안 배운 거 맞네. 너도 알고 있잖아?”
사내가 팽후를 바라보며 묻자 팽후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귀하는 누구신데 우리의 일에 관여하는 것이오?”
“글쎄.”
그가 품속을 뒤지더니 철로 만든 패 하나를 꺼내 던졌다.
쩔그렁.
정확하게 팽후의 앞에 떨어지는 패 하나.
거기에는 황룡 다섯 마리가 음각되어 있었다.
“황룡문 장로패?”
사내, 아니, 황룡문의 장로가 된 우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란은 이쯤에서 끝내자고.”
방으로 돌아온 유주환이 이를 악물었다.
‘무력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유가상단은 그 지역에서나 꽤 알아주는 상단이지 천하에 이름난 상단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다 할 고수를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이런 수모를 받는 것이 분명하다.
유주환이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성동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황룡문을 찾아가겠다.”
처음에는 황룡문으로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림 문파들이 고깝게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일로 인해 확실히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밑져야 본전이지.’
* * *
자운이 자신의 앞으로 주르륵 늘어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운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에 있는 이가 고금제일인이다.
천하와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
아이들의 심장이 거세게 방망이질했다.
그중에는 성동도 있고 팽겸도 있었다. 팽겸이 흘깃 곁눈질로 성동을 바라보았다.
어제 비무에서 팽겸은 성동을 이겼다.
어린 생각에는 그것이 자질이 더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니 성동이 뽑히고 자신이 뽑히지 않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둘 다 탈락하면 모를까.
우적우적 닭다리를 뜯던 자운이 시선을 주르륵 옮겼다.
그러고는 갑작스럽게 한곳에서 고정되었다.
자운이 눈을 고정한 채로 닭다리를 우적우적 씹었다.
살을 잘 발라 먹고 뼈만 남은 닭다리를 움켜쥐고는 자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의 앞으로 다가간다.
성동.
그 아이는 바로 성동이었다.
자운이 아이의 앞에 서서는 아무렇게나 닭 뼈다귀를 휘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