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황룡문이 안 된다면 제이, 제삼의 대안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가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그래, 한번 도전이나 해보자.’
결심한 다음날, 즉시 유주환은 아들을 챙겨 황룡문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유가상단은 황룡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보름 정도면 충분히 넉넉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에 부풀었던 유주환은 삼십 일 전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우리 아들이 난신의 제자가 된다면? 아니, 하다 못해서 황룡문주의 둘째 제자만 되어도 그게 어디야. 너무 큰 욕심을 가지면 안 돼. 그래, 황룡문주의 제자 정도로 생각하자. 하지만 기왕이면 난신의 제자가 좋겠지.’
벌써부터 머릿속은 꿈과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올라 있었다.
“짐은 다 챙겼나?”
그가 총관을 향해 말하자 총관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런데 상단주님, 너무 과하게 챙기는 것은 아닌지…….”
유주환은 황룡문의 방문을 앞두고 적지 않은 짐을 챙겼다.
그 수가 무려 금자로 오십 냥에 달할 정도였다.
유가장의 반년 수입을 챙긴 것이다.
“소림에는 속자제자라는 것이 있어서 제자가 되려면 뛰어난 무재와 함께 기부도 필요하다고 하네. 황룡문에도 그런 제도가 있지 않을까?”
그 말에 총관이 머리를 탁 쳤다.
“아, 그렇군요. 역시 상단주님의 혜안은 따를 길이 없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내가 유가상단을 이 정도까지 키웠지. 지금 성동이는 뭘 하고 있지?”
“목검을 들고 장원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 말에 유주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 웃었다.
“껄껄껄. 그래, 황룡문의 제자가 되려면 지금부터 검에 익숙해지는 게 좋지. 목검이든 진검이든 말이야. 내일쯤이면 출발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총관은?”
그 말에 총관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내일 말씀이십니까? 너무 빠르지 않을까요?”
“아니야. 미리 가서 눈도장이라도 찍어둬야 하지 않겠어? 잘 보여야 성동이를 뽑아주지.”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당하신 생각입니다.”
황룡문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사람들이 적지 않게 몰려들었다. 넉넉하게 한 달 정도의 기한을 두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자신이 내세우는 기재들을 데리고 황룡문으로 출발했다.
“홈흠, 사람이 많구나.”
유주환이 오리구이를 씹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고 아이를 하나씩 데리고 있는 것이 분명 난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난신의 제자는 우리 성동이가 될 거야.’
그가 주변을 살피더니 오리구이를 조물조물 씹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성동이만 한 인물이 없는 듯했다.
그런 유주환을 향해 중년인이 다가왔다.
“합석해도 되겠소? 마땅히 자리가 없어서.”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는 것이 무림인이다.
그의 옆에는 성동이 또래로 보이는 아이가 목검을 차고 있었다.
유주환이 고개를 선선히 끄덕이자 그가 자신을 소개하며 유주환의 맞은편에 앉는다.
“흠흠. 나는 팽가보의 팽후라고 하오.”
팽 씨라고 해서 오대세가의 하나안 팽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성씨도 있고 그중 하나가 팽가보였다.
팽가에 밀려 빛을 보지는 못했으나 박도를 이용한 팽가보의 무공은 그 지역에서 꽤나 알아주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인 팽겸이오.”
그의 말에 유주환이 가볍게 포권을 취해 보인다.
“팽 대협이셨군요. 저는 유가상단의 상단주 유주환이라 합니다. 이 아이는 제 자식인 유성동입니다”
그 말에 팽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가의 사람이셨구려. 한데 이곳에는 무슨 일로…….”
그의 눈빛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눈빛이다.
마치 너 따위 상인이 황룡문에 적을 두러 가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묻는 듯한 표정.
웃기다.
지금 이 길목을 지나가는 이들 중 반수 인상이 황룡문으로 향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묻는단 말인가.
하지만 유주환은 화를 내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고 여전히 미미한 웃음을 유지하며 그의 말에 답했다.
“혹시나 가능성이 있을까 하고 아들놈을 데리고 황룡문으로 가보는 중입니다.”
그 말에 팽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어쩐지 탐탁지 않아하는 표정이다.
“그렇구려. 그쪽 아들도 꽤나 뛰어난 재능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 후는…….”
팽후는 약 반 시진가량 아들인 팽겸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세 살부터 검을 잡았다느니 토납법을 다섯 살부터 익히기 시작해 지금은 꽤나 되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느니 하는 이런저런 자랑이었다.
그동안 유주환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예, 정말 대단합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끝내자, 그것이 유주환이 바라는 바였다.
한참을 신나게 아들 자랑을 하던 팽후가 눈썹을 가늘게 뜨며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댁의 자제분은 어떻습니까? 꽤 재능이 있어서 데리고 가보는 거겠지요?”
그 말에 유주환이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그러고는 일전에 있었던 일층 높이에서 낙법을 펼쳐 뛰어내린 사실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아이가 선보였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행동. 당연 팽후가 믿을 리가 없었다.
그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이자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군.’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소? 그것참 대단한 재능이군. 그럼 술도 들어갔는데 가볍게 아이들의 재롱이나 한번 보는 것은 어떻소?”
팽후의 말에 유주환이 반문했다.
“재롱이요?”
팽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소. 무재가 있는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다고 하지 않소. 그쪽의 아이도 무재가 있고 우리 아이도 무재가 있으니 한번 겨루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그 말에 유주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성동이는 토납법이나 내공심법을 배운 적도 없고 무공을 따로 익힌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호오, 그 말은 꼭 심법을 익히고 무공을 배웠더라면 우리 겸이를 이길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의 말에 유주환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다. 다만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 말에 팽후가 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까끌까끌하게 정돈되지 않은 수염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것이 보인다.
“좋소. 그렇다면 우리 겸이는 내공을 사용하지 않겠소. 그리고 두 주먹으로 하도록 하지요. 그쪽은 목검을 사용하도록 합시다.”
어떻게 되든 비무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런 이들이 있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을 짓밟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중명해 보이고자 하는 이들.
유주환이 유성동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물어보았다.
“할 수 있겠느냐?”
아비의 물음에 성동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응. 나 해보고 싶어.”
유주환이 고개를 들어 다시 팽후를 바라보았다.
“부디 손속에 사정을 두셨으면 합니다.”
팽후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쏴솨솨쇠솨솨-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객잔 뒤로 넓게 펼쳐진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독특한 음색이 퍼져 나갔다.
그 사이에서 아홉 살 난 아이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팽겸이 씨익 웃는다.
“너, 나 이길수 있어?”
그 말에 성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라.”
그러자 팽겸의 비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너, 나 못 이겨.”
“이씨! 그건 해봐야 아는 거야.”
팽겸이 어디서 본 듯한 대사를 하며 관대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 그럼 먼저 와. 내가 고수로서 삼 초를 양보할게.”
팽겸의 행동에 팽후가 기분 좋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허, 우리 아이가 소설책을 너무 많이 본 모양입니다.”
그 말에 유주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둘을 바라보았다.
“응. 그럼 내가 먼저 할게.”
성동이 목검을 잡았다.
그러고는 팽겸을 향해 뛰어간다.
타다다닷-
아이의 발걸음으로 뛰어간다. 경공을 펼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배운 바가 없으니 펼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팽후와 팽겸 부자의 입꼬리가 쓰윽 올라갔다.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
팽겸이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주먹으로 목검을 때리면 아프니 적당히 피한 후에 반격을 할 생각이다.
“받아라!”
성동이 검을 내리긋는다.
성동의 목검이 처마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람의 결을 탔다.
‘흥! 이쯤이야!’
그것을 모르는 팽겸이 단번에 성동의 목검을 피하려 했다.
두 발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움직인다.
팽가보에서 자랑하는 보법을 펼치는 것이다.
팽겸과 팽후 부자는 그 보법으로 단번에 성동의 검을 피해 낼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팽겸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순간,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팽겸의 어깨를 성동의 목검이 때렸다.
“악!”
너무 놀란 터라 비명이 반 박자 정도 늦게 나왔다.
분명히 피했다고 생각한 목검이 어깨에 닿아 있다.
팽겸은 물론이고 아비인 팽겸 역시 성동의 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이게 무슨……?’
눈을 비비고 바라보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했다는 말인가?
그러는 사이, 성동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헤헤. 세 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