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
“호운이는 검명을 울렸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검을 배운지 이 년째인데 벌써 검명이라니, 장래가 기대되는 아이지요.”
호운은 올해로 아홉 살에 올라가는 우천의 제자였다.
여섯 살이 되는 날 황룡문에 처음 입문하여 일 년간 기초를 닦고 검을 배운지 올해로 꼭 이 년이 되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검명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호운의 검이 찌르르 우는 순간, 우천도 놀라 경악성을 터뜨렸었다.
“대단하군. 아마도 사제를 닮았나 보네.”
운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홉 살에 검명을 울리는 재능이라면 천하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기재인 것이다.
“하하하! 그런가요? 천명이도 사형을 닮아서 그런지 참 똑똑한가 봅니다.”
둘의 제자 자랑이 한동안 이어지고, 자운이 품에 다과를 안고 둘의 옆을 지나가다가 짧게 중얼거렸다.
“아주 지랄들을 한다.”
우적 다과를 씹으며 자운이 운산과 우천을 지나친다.
멀어지는 자운을 향해 운산이 물었다.
“대사형은 언제쯤 제자를 들일 겁니까?”
자운이 손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인사를 하듯 가볍게 털어 보인다.
“천하제일이 될 만한 싹수가 보이는 녀석이 있으면 할게.”
자운은 그 스스로가 천재다. 아니, 천재 중에서도 천재다.
감히 천재라는 단어로는 그를 표현할 수 없다.
이백 년 전, 스무 살이 조금 넘은 나이로 그는 절대의 고수들과 논검 비무를 벌일 수 있을 정도의 무학을 얻었다.
다만 부족한 것은 내력이었을 뿐, 스스로가 그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지간한 기재들이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대사형, 대사형 같은 천재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니까요. 그냥 뛰어난 아이들을 제자로 받으시면 안 됩니까?”
자운의 제자가 되기 위해 황룡문으로 매년 몰려드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황룡문에서는 그들을 위해 매년 두 차례 황룡문의 이름으로 기재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자운의 앞에 세웠다.
얼마 전에도 그런 과정을 한 번 거치기는 했지만 자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들 모두를 거절했다.
마음에 차지 않는 기재라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는 남궁의 자제도 있었으며 그에는 못하지만 이름난 무가들의 자제들도 있었다.
그런 그들이 모조리 거부당한 것이다.
‘후우! 대사형이 원하는 기재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해야 하는 것인지.’
운산의 말에 자운이 뒤를 휙 하고 돌아보더니 입안에 있는 과자를 꿀꺽 삼키며 말했다.
“나 같은 놈은 바라지도 않아.”
‘그러다가 또 나 같은 천형을 타고나면 골치 아프니까. 이백 년 후에 깨어나서 또 다 죽고 저 혼자 설쳐대면 머리 아프다고.’
“딱 나의 절반 정도, 그 정도면 만족할게.”
자운이 씨익 웃었다.
그 정도가 딱 좋았다.
* * *
유성동은 올해로 아홉 살이 되는 유가상단의 소장주였다.
그가 장독 위에 올라가 힘차게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얍얍! 나의 정의의 칼을 받아라!”
그러고는 그가 장독대 위에서 풀쩍 떨어진다.
유성동이 장독대 위로 올라가자 말려야 한다며 안절부절 못하던 무사들이 대번에 그의 주위로 달려왔다.
“아이고, 소장주님. 그런 곳에 올라가면 위험합니다.”
유모가 손을 파르르 떨며 유성동을 향해 말했다.
그 말에 유성동이 눈을 동그랗게 말아 뜨고 물었다.
“왜? 왜 위험한 거야, 유모? 나 뛰어내렸는데도 발이 하나도 안 아팠어.”
그가 자신의 발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사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전혀 낙법을 쓰지 않은, 무지막지하게 뛰어내리는 것이었지만 이름난 무림의 고수가 봤다면 무릎을 탁 쳤을 것이다.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가벼운 변화가 발끝에서 일어나 바람을 탔다.
이제 아홉 살 난 아이가 보이기에는 어려운 기사였다.
아니, 나이를 그 두 배 정도 먹었다고 할지라도 저 정도의 무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진실을 알게 된다면 무림의 고수들은 또 한 번 놀랄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무리를 펼쳐낸 이가 무공을 단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아이라면?
경악을 토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유가상단의 소장주인 유성동은 지금까지 무공을 단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다.
“아이고, 소장주님. 그래도 그런데서 떨어지면 큰일이 납니다.”
그 말에 유성동이 해맑게 웃었다.
“헤헤, 그렇구나. 알았어, 유모. 안 올라갈게.”
성동은 해맑게 웃었고, 유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면 더 큰일이 생긴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말이다.
“히히히, 나는 천하제일이다! 하하하하하하!”
목검이 힘차게 바람을 갈랐다. 그 끝에서 바람의 결이 부욱 찢어져 바람이 불어왔다.
간단한 움직임이었으나 아홉 살의 아이가 펼쳐낼 만한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모가 발을 동동 굴렀다.
울 것만 같은 얼굴로 성동을 바라보고 있는 유모, 그녀가 성동을 향해 소리쳤다.
“아이고, 소장주님. 제발 움직이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으세요! 네?”
성동이 지금 올라가 있는 곳, 그곳은 바로 유가상단 건물의 옥상이었다.
고작 일 층 정도 높이였지만 아홉 살 아이의 몸으로 어떻게 저기를 올라갔는지도 의문이다.
저기서 발이라도 헛디뎌 떨어질까 봐 큰 걱정이 되었다.
“히히히히, 유모. 유모도 올라와 볼래?”
그 말에 유모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휘저었다.
성동이 말을 하며 처마 끝을 손으로 잡고 고개를 살짝 내민 것이다.
“제, 제발 도련님, 거기 그대로 있으세요. 곧 있으면 무사님들이 오실 겁니다. 그때까지만 그대로 있어주세요.”
유모가 손사래를 치며 성동에게 가만히 있어줄 것을 바라고 있을 때, 유가장의 장주인 유주환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게, 이게 무슨 일 인가, 유모?”
그가 고개를 들어 처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을 보며 물었다.
“자, 장주님, 그, 그것이… 제가 잠깐 한눈을 판 틈에…….”
유모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고는 곧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제,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발……. 제가 이 일을 하지 못하면 우리 가족은 다 굶어 죽습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유주환의 눈은 처마로 향해 있었다.
아들이 까르르 웃고 있는 모양새를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가 소리친다.
“성동아 제발, 제발 그대로 있어라!”
무사들이 오고 있다.
그들이 오면 어떻게든 성동을 다시 아래로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얻은 자식인데, 상처 하나 남겨서는 안 된다.
그가 그렇게 속으로 빌고 또 빌고 있을 때, 기왓장 하나가 간밤에 온 빗물에 미끄러졌다.
“어?”
그 바람에 발을 딛고 있던 성동의 몸이 아래로 휘청한다.
“성동아!”
유주환이 크게 소리치는 순간,
성동의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유주환이 당황하며 떨어지는 성동을 받기 위해 뛰어갔다.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동의 몸이 허공중에서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마치 제운종의 수법과 같은 모습.
가볍게 허공에서 두세 바퀴 정도 돌던 성동이 사뿐히 바닥에 내려섰다.
“웃차!”
그러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보인다.
“서, 성동아.”
주환이 다가가 어린 성동의 어깨를 잡았다.
방금 전에 일어난 광경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고작 아홉 살 난 아이가 일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지며 몸을 줄여 낙법을 펼친다?
어지간한 삼류무사는 꿈도 꾸지 못할 모습이다.
그대로 떨어져 충격을 몸으로 견디는 것이라면 삼류무사도 가능하겠지만, 허공에서 몸을 돌려 낙법을 펼치다니.
이것이 아홉 살짜리가 보인 일이 맞단 말인가.
의심이 들었다.
이걸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이능?
초능?
아니다. 이것은 무재다.
유주환은 자신의 아들이 보인 모습에 무재라 판단했다.
평범한 아이들은 가지지 못한 무공에 대한 재능, 그것을 무재라 한다.
‘내 아들이 무재를 타고 났구나.’
대대로 유가상단의 상단주들의 무재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아무리 무공을 익힌다고 해도 일류는커녕 이류에도 오르기 어려운, 재능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런 무재를 가지고 태어났다.
하늘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유가에게 무공 쪽에도 길을 틔워주려는 것인가?
유주환이 눈을 굴리며 얼마 전 황룡문에서 공표한 사실을 떠올렸다.
‘이번에도 난신의 제자를 뽑는다지?’
난신은 명실상부한 고금제일인.
그가 제일이라는 것은 정파의 자존심 강한 구파 장문인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아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운 혼자서 움직인다 하더라도 구파는 감히 그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두 자루의 무형검을 휘두르며 열두 마리의 황룡을 휘감고, 심검에 이르러 죽어도 죽지 않는 반선이 되어버린 자운을 어찌 상대한다는 말인가.
‘가능성이 있을까?’
그가 성동을 내려다보았다.
무림의 이름난 기재들이 난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모여들었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성동이가 가능할까?’
퇴짜를 맞은 기재 중에는 남궁의 핏줄도 있다고 했다.
그런 이름난 기재들도 퇴짜를 놓았는데 내 자식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 아닌가.’
상인인 이상 이해득실을 먼저 따진다.
사실 떨어진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무재라면 구파일방에라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