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사방으로 공간이 갈라지며 하나의 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평범한 무형검.
일공이 그것을 보고 웃음을 짓는다.
“하하하하하하하! 그까짓 무형검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하나 자운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운의 몸 위로 솟구친 선룡이 울음을 터뜨린다.
사방으로 선기가 뿜어져 나가고, 안개와 같이 뿜어져 나간 선기가 자운을 감쌌다.
그리고 자운의 몸 위로 무형검이 틀어박힌다.
파바바바박-
자운을 바라보던 남우가 소리쳤다.
“야!”
하지만 자운의 몸은 전혀 움직임이 없다.
빽빽이 무형검이 틀어박힌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와 같다.
그 순간,
자운의 몸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몸을 이끄는 것은 마음이다.
자운의 마음이 자신의 몸에 틀어박힌 무형검을 거부했다.
일공의 무형검이 밖으로 밀려나오기 시작한다.
일공이 그 사실을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다.
무형검을 더욱 깊숙이 박아 넣기 위함이다.
“허튼 반항을!”
일공의 손에서 쏘아진 세찬 기파가 자운을 찌르고 있는 무형검을 압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형검은 조금씩 밖으로 밀려 나왔다.
“으옥.”
일공의 손에서 힘줄이 돋아났다.
하나 그가 아무리 용을 써도 무형검은 밀려나온다.
마치 일공이 얼마의 힘을 쓰든 전혀 구애받지 않는다는 듯 천천히 본래의 속도를 유지하며 밖으로 밀려 나왔다.
자운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환한 빛이 더욱더 강력해졌다.
‘검은 나의 신체다.’
무공을 익힌 자라면 누구든 들기를 원하는 경지가 신검합일이다.
하지만 자운은 옛날 옛적 소싯적에 신검합일을 넘어섰다.
그런 그에게 신검합일의 무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자운에게 있어서 매우 간단한 그 무리가 합쳐졌다.
몸을 이끄는 것은 마음이고 검 또한 육체다.
검을 이끄는 것 역시 마음이다.
지금 자운의 손에 들려 있는 허공검 역시 검이 아닌가.
자운의 주위에서 안개처럼 퍼져 있던 선기들이 공명하며 잘게 떨었다.
우우우우웅-
일공이 자운을 향해 발광하며 소리쳤다.
그의 양손에는 힘줄이 가득히 돋아 있었고, 목소리는 악을 쓰고 있었다.
“죽어! 죽으란 말이다!”
엄청난 양의 내공이 자운을 짓누른다.
중력이 열 배는 강해진 듯한 중압감이 자운을 눌렀으나, 자운은 전혀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더욱 증가했다.
잘게 떨기 시작하는 선기가 점점 자운을 향해 몰려든다.
자운을 향해 모여든 선기는 자운의 손에 쥐어져 있는 무형검에 집중되었다.
무형검에 마음이 깃들었다.
무형검에 선기가 집중되었다.
두 가지가 이루어지는 순간, 자운의 손에 들려있던 무형검이 단번에 사라졌다.
그것을 느낀 일공이 크게 소리쳤다.
“하하하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포기를 한 모양이구나! 이것으로 무림은 나의……?”
말을 하던 일공의 눈에 비친 세상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핏물이 튀었다거나 일공의 몸이 두 조각으로 절단 난 것은 아니다.
그저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이 정확하게 절반으로 갈라졌다.
“어?”
의문성을 내뱉는 순간, 내공이 그의 의지를 따르지 않는다.
자운이 몸에 박힌 모든 무형검을 몰아내고 나서 숨을 몰아쉬며 일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욱!”
일공이 자운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달싹였다.
말을 하는 와중에도 온몸의 생기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무.엇.이.냐?’
성대는 이미 힘을 잃어 소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자운은 일공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심검(心劍).”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로 할 자신이 없다.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는 걸 선택하고 말 것이다.
온몸이 검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을 느끼는 순간, 이미 의지는 일공을 베고 있었다.
이것이 심검.
심력의 소비가 만만치 않다.
연달아 펼칠 자신도 없고 두 번 다시 펼치고 싶지도 않다.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막대한 자운의 심력이 단번에 바닥난 것이다.
일공이 그 자리에서 아래로 추락했다.
추락하는 그의 눈에 비친 세계가 계속해서 조각난다.
네 조각, 여덟 조각, 열여섯 조각…….
수를 늘려나가던 그 조각의 수가 마침내 더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을 때, 일공의 눈이 뒤집어졌다.
“끄륵.”
외마디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숨이 끊어진 것이다.
털썩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떠 있던 일공의 몸이 쓰러지고, 그 후에 자운의 몸이 넘어갔다.
불어온 바람에 넘어지듯 자운의 몸은 그렇게 뒤로 넘어갔다.
풀썩-
제11장 황룡난신 만만세!
천하에서 뽑은 열두 명의 기재이다.
그 기재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자운의 앞에 서있다.
자운이 그들을 주르륵 살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핀다.
맥을 잡아보기도 하고 때론 기운을 쏘아내 보기도 했다.
그들은 기대감에 가득 찬 눈으로 자운을 마주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들을 꼼꼼하게 확인한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번보다는 괜찮지만 역시 아니야.”
그 말에 열두 명의 아이의 눈에 실망감이 깃들었다.
운산이 자운을 향해 투덜거린다.
“천하에서 가장 이름난 기재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열둘이나 데리고 왔는데 모두 다 별로라고요?”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싯적의 나만 한 녀석이 없네.”
그 말에 운산이 미간을 찌푸린다. 듣고 있던 우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건 대사형이 너무 괴물인 겁니다.’
‘사람 사이에서 괴물을 찾아오라니 이건 무리한 요구야.’
자운이 손을 털었다.
“너희, 속으로 내 욕했지?”
빠악-
운산과 우천의 뒤통수가 후려지며 고개가 앞으로 튀어나왔다가 들어갔다.
“컥!”
“으악!”
두 사람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들이 보는 앞이라는 것을 의식이라도 한 듯 곧 벌떡 일어났다.
운산이 열두 명의 기재를 보며 말했다.
“안타깝구나. 너희들은 아니라고 하신다.”
아이들은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아니, 고금을 통틀어 유일하게 심검의 경지에 오른 무인, 자운의 제자가 되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이었다.
물론 하나하나가 천하에서 이름난 가문의 자제들이고 또한 기재들이다.
구파일방이 아이들을 본다면 앞 다투어 데려가기 위해 애를 쓸 만한 그런 기재들이다.
하지만 자운은 거절했다.
고금제일인의 제자가 될 자격을 박탈당한 아이들의 눈에 실망감이 감돌았다.
운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바라본다고 해도 소용없다.”
자운이 바라는 것, 그것은 자신의 뒤를 이어 다음 대 천하제일인이 될 만한 재목이었다.
아니, 어쩌면 다음 대 고금제일인이 될 만한 재목을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사형 같은 사람의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자운은 열두 명의 기재에게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한쪽에 놓여 있는 다과함을 열어 와삭와삭 소리를 내며 다과를 씹어 먹었다.
“이거 맛있네.”
그 모습을 보던 운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아이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또 자신이 해야 할 터였다.
‘후우! 빨리 대사형이 제자를 들여야 하는데.’
그런 운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운이 다과통을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으적으적! 이거 맛있는데 조금 더 없나?”
일공과의 격전 후 오 년, 황룡문은 천하제일의 문파가 되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룡문에는 그가 있다.
고금을 통틀어 가장 강한 존재, 심검에 오른 유일의 무인 황룡난신(黃龍亂神) 천자운.
그가 황룡문에 있었다.
황룡문은 천하제일문이 되었다.
자운이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부, 대사형, 어때? 마음에 들어?’
* * *
그 후로 오 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그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자운은 아직 제자를 들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자운보다 먼저 제자를 들인 쪽은 운산과 우천이었다.
운산과 우천 역시 무림에서 알아주는 명숙이 되었다.
운산은 강기지경에 접어든 뒤로도 계속해서 노력한 결과 어검술의 경지에 올랐다.
현 무림에서 어검술의 경지에 접어든 무림인은 정사마를 합친다 하더라도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운산이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이다.
우천은 아직 어검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사형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고 있었다.
그 실력은 무림에서 알아주는 정도.
자운이 말하기를, 이대로 간다면 길어야 십 년 안에 우천 역시 어검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 했다.
서른 살이 채 되지 않아 어검술에 오른 사형과 조금 늦기는 하였지만 역시 서른이 조금 넘어 어검술에 오를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형제.
엄청난 무재였지만 두 사형제가 닮은 것은 무재뿐만이 아니었다.
말로 다 표현 할수 없는 제자 팔불출이었던 것이다.
“우리 천명이가 이번에 검기지경에 올랐지.”
운산이 자신의 제자 천명을 자랑했다.
이제 열세 살 난 아이가 검기지경에 들었다고 말한다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운산이 제 제자를 자랑하자 우천이 지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제자를 자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