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67화 (167/175)

# 167

그들이 달리는 동안에도 자운의 의식은 내면 깊은 곳으로 침전했다.

대해와 같은 내공 속에서 노니는 황룡들이 보인다.

자운이 황룡들을 향해서 내려갔다.

‘그렇구나. 이곳이 너희가 사는 곳이구나.’

자신의 단전 속, 주인의 의식이 내려오자 황룡들이 반기며 일제히 울음을 터뜨린다.

우우우우우-

자운의 주변으로 황룡들이 이리저리 노닐었다.

열한 마리의 황룡이 자운을 보듬어 안는다.

‘하지만 얼마나 더 이곳에 있을 수 있을지…….’

자운 역시 알고 있다.

밖의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식이 수면위로 부상하지 않는다.

의식이 돌아와야 어떻게든 수를 써볼 텐데 육체가 의식이 부상하는 것을 막았다.

몸이 붕괴되는 고통을 정신이 견딜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운의 정신력이라 할지라도 온몸이 붕괴되는 고통을 겪는다면 광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운의 생각에 패룡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머리끝으로 자운을 툭툭 민다.

‘뭐하는 거야?’

자운이 물었으나 패룡은 답하지 않고 자운을 계속해서 떠밀었다.

우우우우-

패룡만이 아니다. 다른 용들 역시 자운을 떠밀었다.

자운이 용들에게 떠밀리듯 의식의 더욱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환한 빛에 둘러싸인 곳, 자운이 도달한 곳은 처음으로 패룡이 깨어난 곳이었다.

그곳에 있는 순백의 알, 여의옥.

자운이 여의옥을 향해 다가갔다.

황룡무상십이강은 모두 열두 마리의 황룡을 부리는 것이다.

자운의 육체를 치료하는 선천지기가 점점 바닥이 나기 시작한다.

자운이 마지막 여의옥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여의옥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너를 잊고 있었구나.’

여의옥이 잘게 떨리기 시작한다.

자운이 계속해서 여의옥을 쓰다듬었다.

생명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선천지기도 남지 않았는데, 육체의 붕괴는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우우우우응-

여의옥이 진동을 하며 환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선천지기가 모조리 바닥이 났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생명을 영위하지도 못할 것이고 육체 역시 곧 붕괴될 것이다.

선천지기가 바닥나는 순간, 여의옥의 떨림이 멎었다.

환한 빛이 여의옥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자운이 그 기운을 느끼고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건?’

선기(仙氣), 자운의 몸에서 새하얀 기운이 흘러나온다.

그 기운이 자운을 휘감았다.

‘선기?’

자운의 의문을 표하는 순간, 여의옥에서 뿜어져 나온 선기가 대해와 같은 단전을 가득 채우는 동시에 몸으로 뻗어나갔다.

굽이쳐 흐르며 선천지기를 보충한다.

선천지기가 무한대라도 되는 것처럼 자운의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상처가 단박에 치료된다.

쩌저적-

여의옥에 금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 황룡이 깨어났다.

콰아아아아아-

자운의 신형이 환한 빛에 휩싸였다.

온몸에서 줄기줄기 뿜어지는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갑작스럽게 뿜어지는 기운에 괴걸왕이 자운을 떨어뜨렸다.

“깜짝이야! 이게 뭐야?”

괴걸왕이 뒤를 돌아서 자운을 바라보자, 남궁인과 당평청이 멍한 눈으로 자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운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환한 빛을 뿜어내는 자운의 몸에서 그 무엇보다 깨끗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쏴아아아아-

선기 속에서 선천지기가 솟구쳤다.

솟구쳐 오른 선천지기가 멸성기의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한다.

멸성기가 거칠게 저항했다.

우우우옹-

그 저항을 선기가 막았다.

선기가 모든 멸성기를 움켜쥐고 몸 밖으로 밀어냈었다.

자운의 몸에서 솟구치는 기운에 남궁인과 당평청이 놀라서 중얼거렸다.

“선기?”

“…선기?”

괴걸왕이 잠시 후에 중얼거린다.

“허허, 미친놈도 신선이 되는구나. 아니, 반선인가?”

엄밀히 말하면 신선은 아닐 것이다.

반선, 자운의 몸에서 솟구치는 폭풍 같은 선기에 몸 전체의 상처가 치료되었다.

하나 기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운의 발끝이 분해되어 사라진다.

엄청난 선기를 이기지 못하고 인간의 육신이 붕괴되는 것이다.

“헛!”

남궁인이 붕괴되는 자운의 육신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발끝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자운의 육신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저… 저……!!”

하지만 남궁인은 곧 더 놀라 눈을 크게 치켜떠야 했다.

붕괴되었던 발끝이 재생되고 있었다.

하늘에서 휘날리는 금빛 가루와 백색 가루가 자운을 향해 모여들었다.

다시 다리를 일구기 시작한다.

발끝이 생겨나고, 무릎이 생겨나며, 허리가 생겼다.

상반신에서도 역시 같은 현상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육체를 버리고 신으로 화하는 것이다.

뇌와 심장을 제외한 육체가 모조리 화신으로 변했다.

우우우우우우웅-

자운의 몸을 열한 마리의 황룡이 뛰어나와 휘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열두 번째 황룡.

선룡이 뛰쳐나오는 순간, 자운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우우우우우-

열두 마리의 황룡이 일제히 울었다.

자운이 금안을 번득이며 바닥에 내려선다.

당평청과 괴걸왕, 남궁인이 자운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자운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왜? 못 볼 거라도 봤냐?”

자운의 말에 괴걸왕이 무어라 소리치려 하는 순간, 자운이 검지를 들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였다.

그의 시선이 뒤를 향한다.

남우와 설혜가 일공과 맞서고 있는 방향이다.

엄청난 거리로 떨어져 있는 것이 분명한데 눈에 똑똑히 보인다.

불가의 육신통 중 천신통이 열린 듯했다.

천 리 밖을 내다보는 눈, 자운의 눈이 그들을 살폈다.

“감히 나를 제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려고 해?”

자운의 몸 주변을 휘감고 있던 황룡들이 일제히 사라졌다.

그리고 자운이 발끝을 드는 순간, 신형이 사라진다.

곧이어 자운의 손에 잡혀 남궁인과 괴걸왕, 그리고 당평청의 신형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남우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 찢어진 어깨를 부여잡으며 일공을 노려보았다.

“크옥!”

설혜는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양다리가 무형검에 꿰뚫려 바닥에 고정된 것이다.

피가 줄줄 흘러나온다.

일공이 허공에 서서 그런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자, 이제 일각이라는 시각이 끝났다. 재롱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구나.”

‘고작 재롱이었다니…….’

자신들의 무위가 일공에게 있어서는 고작 재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인가.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이런 자가 지금의 무림에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성이라는 거대한 별의 그림자 밑에서 이제껏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대로라면 적성도, 붉은 별을 이끌었던 일성조차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는 말이었다.

그 정도의 고수가 아직도 이 무림에 남아 있었다니!

남우와 설혜는 까마득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공이란 자의 무위를 차마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일공이 손을 들어올린다.

허공에 수십 다발에 이르는 무형검이 떠올랐다.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는 무형검이지만, 거기서 뻗어나오는 무형지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고 있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저릿저릿한 기운이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막을 수 있을까.

내가 막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막아야 한다.

막아내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야 한다.

목숨을 내던져서 시간을 번다면 그만큼 자운은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며 기운을 끌어올린다.

독정기와 얼음이 방패와 방벽처럼 눈앞에서 솟구쳤다.

“재롱은 이미 끝났다고 했을 텐데?”

일공의 손이 남우와 설혜를 향하는 순간, 무형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바바바박-

수십 다발에 이르는 무형검이 방벽과 방패를 후려쳤다.

단번에 독정기에 구멍이 나고 얼음의 벽이 무너져 내린다.

아직도 힘을 잃지 않은 무형검이 떨어져 내렸다.

닿는 순간 전신이 난자되어 버릴 정도의 엄청난 개수였다.

그들이 죽음을 실감한 순간, 황룡이 그들의 앞으로 내려섰다.

콰과과과과광-

금강불괴에 준하는 경도를 자랑한다는 호룡이다.

호룡이 긴 몸통을 꿈틀거리며 모든 무형검을 막아내었다.

동시에 남우와 설혜의 몸이 환한 빛에 휩싸인다.

선기였다.

선기가 그들을 휘감자 온몸에 나 있던 상처가 사라진다.

무형검에 당한 상처 역시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들의 앞으로 서광에 휩싸인 자운이 내려섰다.

일공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인다.

남우와 설혜는 자신들에게 일어난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얼떨떨해져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 많던 상처가 사라졌다.

외상뿐만이 아니다.

내상 역시 사라지고, 몸에서는 새로운 힘이 치솟아 올랐다.

“이, 이게 대체…….”

남우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자운을 바라보았다.

자운이 남우를 향해 씨익 웃었다.

“오래 기다렸냐?”

자운의 말에 남우가 빽 소리쳤다.

“씨팔!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 새끼야!”

자운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인지 전혀 읽히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가 더더욱 강해졌다는 것이다.

어떠한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자운이 또다시 벽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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