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66화 (166/175)

# 166

할 수 있는 데까지 시간을 벌어야 할 것이다.

일공이 남우와 설혜를 바라보았다.

“끝까지 이 늙은이를 보내주지 않을 생각이군.”

“늙은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늙은 걸 알면 죽지 왜 이렇게까지 살아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거냐!”

남우의 외침에 일공이 입술을 씰룩였다.

“오만방자한 입술이로고.”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부서졌던 수만큼의 무형검이 그대로 다시 솟구쳐 오른다.

“일각이라는 시간, 벌 수 있다면 벌어보아라. 따라잡는 데는 그 절반도 걸리지 않을 테니 말이야.”

우르르르-

공기가 떨어졌다.

남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막아내어야 한다.

일각, 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시간을 버려내야 한다.

그것이 이자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일공이 손가락 끝으로 남우와 설혜를 겨냥했다.

단번에 손가락을 타고 무형검이 쏟아져 내린다.

무형검 전체가 이기어검의 수법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수십, 수백에 이르는 검의 참격이 되어 쏟아진다.

아무리 초월의 경지에 올라 있다 해도 그것마저 넘어선 신극(神極)의 경지에는 닿을 수가 없다.

신 중에서도 극에 이른 이, 그가 바로 일공이었다.

콰과과과광-

무형검이 비처럼 쏟아졌다.

남우가 몸속의 독정기를 짜내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변에 휘장처럼 두른다.

독정기의 위로 무형검이 내리꽂혔다.

퍼버버버버벙-

독기운과 무형검이 연달아 충돌하며 독정기가 출렁였다.

무형검은 남우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릴 것처럼 쏟아붓는다.

하아아아아-

한기가 불어 닥치며 대기가 얼어붙었다.

허공중에서 떨어지던 무형검의 일부가 그대로 얼어붙는다.

하지만 소용없다.

일공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무형검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실력자였다.

사샤샤샤샤악-

허공에서 비처럼 무형검이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일공이 하는 일이라고는 반복적으로 무형검을 만들고 둘을 공격하라는 의념을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남우와 설혜가 펄쩍 뛰어올랐다.

수십 다발의 무형검이 바닥을 때리자 바닥이 쩌억 갈라진다.

한 발 한 발이 자운이 펼치는 무형검에 비해서는 다소 약했지만 그 수는 자운에 비해서 월등히 많았다.

자운이 일격필살의 무형검을 휘두르는 것이라면, 일공이 펼치는 무형검은 일격필살이 아니라 무공 그 자체였다.

일공이 익히고 있는 무공 그 자체가 무형검이며 또한 무형검이 무공이다.

위력이 줄어드는 대신 다수를 이용한 초식의 압박이 이어졌다.

무형검이 허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며 남우와 설혜를 압박했다.

설혜와 남우가 펄쩍펄쩍 뛰었다.

무형검이라고는 하나 자운의 무형검과는 다르다.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운이 펼치는 무형검이 어떠한 형상도 존재하지 않아 보이지 않고 감으로 피해야 했다면, 일공의 무형검은 흐릿하게나마 보였다.

그래서 피할 수 있었다.

감으로 파악하고 눈으로 본 후 피한다.

또 한 가지, 그들이 무형검을 피해낼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공이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즐기듯,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듯 그가 남우와 설혜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다.

이 경지가 바로 극신에 이른 자들의 경지.

수십 발에 달하는 기운이 남우를 향해 쏘아졌다.

남우는 방금 전에 호흡으로 끌어온 독정기가 다한 터라 한순간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남우의 바로 앞 허공이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얼어붙었다.

남우를 향해 날아가던 무형검들이 단번에 대기와 함께 얼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설혜의 도움이었다.

남우가 다시 호흡을 끌어들이며 설혜를 향해 눈으로 까닥 인사를 해 보였다.

설혜는 그런 인사를 받은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무감각한 눈으로 다시 일공을 웅시했다.

설혜의 검이 춤을 추듯 풀려 나온다.

북풍한설이 휘감기고 설혜가 시리도록 투명한 검강을 휘둘렀다.

쐐애애애애액-

푸른 검강의 직도가 내리꽂는다.

설혜의 검을 향해 무형검이 모여들었다.

콰과과과광-

무형검과 검강이 충돌하며 사방으로 폭음이 비산한다.

공격이 막힌 설혜가 뒤로 물러났다.

일공이 팔짱을 낀 상태로 남우와 설혜를 보며 웃었다.

“자네들의 공격은 나에게 통하지 않네.”

분하지만 인정해야 하는가.

그들의 공격이 그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크옥.”

남우가 두 손을 말아 쥔다.

폐부 깊은 곳에 있던 호흡이 딸려 올라오며 독정기가 양손으로 말아 쥐어졌다.

남우가 만들어낸 것은 순수한 독정기로 이루어진 창.

양손만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일공이 무형검을 허공에 수십 발 만든 것처럼 독정기로 이루어진 창이 허공에 다섯 발 생겨났다.

총 일곱 개의 창.

남우의 얼굴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위력은 무형검보다 약하겠지만…….’

독기운은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공격이 미치는 범위 자체는 무형검보다 독정기의 창이 훨씬 더 넓을 것이다.

녹흑색의 창이 거무튀튀한 기운을 흘리며 허공에 떠오른 상태로 일공을 향해 날아들었다.

“흥!”

일공이 콧방귀를 뀌며 독정기의 창을 향해 무형검을 쏘았다.

무형검과 독정기의 창이 충돌하며 연신 폭발을 해나간다.

독정기의 창은 무형검과 폭발할 때마다 힘을 잃어갔다.

그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터져 나갈 때마다 무형검이 사라지고 있었다.

무형검이 사라지고 남우가 무형검 사이에 길을 열었다.

“설혜!”

남우가 크게 소리치자 설혜가 뛰어올랐다.

단번에 남우가 열어준 길을 향해 얼음의 기둥을 집어던진다.

콰아아아아-

얼음의 기둥이 아니다. 너무 거대하여 기둥처럼 보이는 것 뿐,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이 만들어낸 강기였다.

강기가 무형검의 길 사이로 날아든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일공이 양손을 교차했다.

강기를 맨손으로 잡을 수 없으니 손 위로 강기를 둘렀다.

수강과 검강이 충돌한다.

쾅-

일공의 몸이 한순간 흔들리기는 했으나, 뒤로 밀려나지는 않았다.

일공이 양손으로 설혜의 검강을 부여잡고, 뒤쪽의 무형검을 움직여 검강을 찢어 발겼다.

회심의 한 수마저 일공 앞에서는 무효로 돌아간 것이다.

“크으으으으”

남우가 신음을 흘렸다.

최소한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여의치 않은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눈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방법이 없을까.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남우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일공이 씨익 웃었다.

“말했지 않은가. 일각, 자네들은 나를 일각 이상 막을 수 없네.”

그가 절대로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둣 하는 말에 남우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진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다.

아무리 죽어라 용을 쓴다고 해도 일각 이상 버틸 수는 없었다.

“벌써 그 절반이 흘렀지.”

반각, 지금 자운을 업고 어디까지 도망을 갔을까?

지금 몸 상태로 보아 당장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자운이 위험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치료할 수도 없다.

‘살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무림을 구할 수 있다.

일 할이 안 된다고는 하지만 마지막 희망이다.

일공이 천천히 무형검을 일으켰다.

“그럼 남은 반각, 마저 즐겨보도록 할까?”

제9장 이제 상황이 또다시 달라지겠군

자운의 의식은 지금 깊은 곳으로 침전하고 었었다.

본의 아니게 육체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내면을 침전시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육체에 담긴 기운은 죽어가는 주인의 육신을 살리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다.

몸에서 선천지기가 솟구친다.

무형검의 경지에 오르면서 그동안 진전이 없던 선천지기의 양이 배는 늘어났다.

그것들이 모조리 몸 구석구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상처가 워낙 위중한 터라 선천지기를 아낌없이 쏟아붓는다고 할지라도 몸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살이 아물지 않는다.

공간격에 담겨 있는 멸성기의 경력이 맹렬하게 선천지기에 저항을 시작했다.

우드득-

그 저항의 여파가 뻗어 나가며 애먼 뼈가 두둑 부러져 내렸다.

경력과 선천지기의 다툼으로 인해 일어나는 힘 때문에 온몸의 장기가 상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간다면 반각도 지나지 않아 자운의 몸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시진 정도가 지난다면 그 자리에서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남궁인이 뒤에서 괴걸왕의 등에 업혀 있는 자운의 육신을 살폈다.

“잠시, 잠시 쉬어서 무상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절대의 반열에 오른 고수가 셋이다.

셋이서 힘을 합친다면 임시방편 정도의 방법은 생길 것이다.

그의 말에 괴걸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그 녀석에게서 벗어나는 게 먼저야! 안 그러면 뒤진다고! 뒤져!”

괴걸왕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더 빨리 속력을 올려서 일공에게서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

“하나 그전에 무상이…….”

남궁인이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한 표정이다.

괴걸왕이 달리는 와중에도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친놈이 오래 사는 건 알고 있지? 이놈은 미친놈이야. 그러니까 더 오래 살 거야. 지금 산 것보다 더 오래 살 거야. 아마도 분명해.”

괴걸왕답게 논리에는 맞지 않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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