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65화 (165/175)

# 165

느릿하게 움직이는 주먹이지만 자운은 잘 알고 있다.

저 느릿함의 끝에서 빠름과 느림을 무시해 버리는 공간격이 날아든다.

피할 수 있을까?

견뎌낼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일성의 팔이 뻗어졌다.

“크옥.”

일성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 바람에 일성의 공격 역시 애먼 허공을 때린다.

쾅-

자운이 입힌 무형검의 상처가 욱신거려 팔이 흔들린 탓이다.

자운이 웃었다. 자운의 손이 다시 허공을 쥔다.

쐐애애액-

무형검이 수직으로 내려찍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엄청난 바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일성이 몸을 굴렸다.

바닥을 구르며 일성이 무형검의 공격을 피해낸다.

“헉헉헉!”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호흡을 힘들게 만든다.

하나하나가 생명을 끊을 듯한 공격이고, 공격을 당하는 사람이나 공격을 퍼붓는 사람이나 모두 지쳐 가는 싸움이다.

남우가 손을 꾸욱 말아 쥐었다.

손에서는 땀이 흘러나온다.

인간이 저런 몸이 되고도 움직일 수 있는 정신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아슬아슬한 공격을 이어갔다.

간발의 차이로 무형검을 피해내고, 간발의 차이로 공간격을 흘려낸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될 때도 있다.

마르지 않는 내공과는 달리 이것은 정신력의 문제, 지구력의 문제였다.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수들은 호적수를 만났을 때, 사흘 밤낮을 싸운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와전된 소문이다.

고수들은 무공을 펼칠수록 훨씬 더 많은 심력이 소모된다.

그 소모되는 심력은 감히 평범한 범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양이다.

그만한 심력을 삼 일 밤낮을 소비한다?

그 사람은 둘 다 광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고수들의 싸움은 대개 반나절 안에 끝이 난다.

자운과 일성이 싸우기 시작한 시각도 대충 반나절 정도가 되어간다.

“후욱! 후욱!”

거칠게 몰아쉬는 숨이 느껴진다.

입에서는 단내가 흘러나왔다.

둘의 앞에는 이미 피가 흥건하게 적셔져 있다.

무림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싸움은 이토록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자운이 거친 호흡 속에서 일성을 향해 물었다.

“이렇게… 이렇게까지 해서 무림을 먹어야겠냐?”

그 말에 일성이 반대로 묻는다.

“너 그냥 나랑 같이 손잡고… 허억, 무림을 정복하자. 이렇게까지 해서… 무림을 지켜야겠냐? 허억!”

자운이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럼 너와 내가 손을 잡으면 황룡문은 어떻게 되는 거냐?”

“허억! 허억! 어떻게 되는 거긴, 적성과 하나가 되는 거지.”

“이름은 황룡문으로 바뀌는 거고? 후욱! 후욱!”

웩 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자운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 그럴 리가 있나. 적성으로 가야지.”

자운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이 자식아.”

쐐애액-

무형검이 허공에서 내리찍었다.

일성이 공간벽을 방어형으로 펼쳤다. 공간이 쩌억 벌어지며 간신히 자운의 공격 방향이 틀어졌다.

“나는… 황룡문을 천하제일로 만들기로 약속했는데, 허억, 그렇게 되면 안 되지. 허억! 허억!”

“안타깝네. 후욱! 후욱! 너랑은 잘 맞을 것 같았는데.”

그 말에 자운이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염룡교로 지진 허리의 욱신거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허억! 남자 놈이랑 궁합 보는 취미 따위는 없어.”

양손으로 움켜쥔 공격을 일성이 간신히 막았다.

콰아앙-

자욱하게 먼지가 일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기감을 넓힐 체력조차 없다.

“허억!”

“쿨럭!”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공이 공격을 하기 위해 주먹을 뻗는 순간,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가 걷히고 자운이 주먹을 말아 쥐는 것이 보인다.

“너어어어어어어어!”

일성이 소리를 쳤다.

일부러 청강석이 조각난 곳을 때려 모래먼지를 일으킨 것은 속임수였다.

마지막 한 수를 위해서 펼친 속임수.

이공의 눈이 크게 치켜떠졌다.

피해야 한다.

무형검이 다가오고 있었다.

욱신-

하필 그 순간 자운에게 입은 양 어깨의 상처가 쑤셔왔다.

“제기이이이이일!”

무형검이 일성을 덮쳤다.

콰아아앙-

모래먼지가 일며 일성의 몸이 정확하게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자운이 웃으며 뒤로 넘어진다.

“헤헤헤헤! 내, 내가 이겼다.”

투욱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의식이 끊어졌다.

무림의 평화가 결정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잠자코 있던 독사가 독니를 드러내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자운과 일성이 쓰러지는 것을 본 일공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제8장 남은 반각, 마저 즐겨보도록 할까?

갑작스러운 일공의 행동에 모든 이의 시선이 일공을 향했다.

일공과 무림맹의 인사들 사이에는 자운이 쓰러져 있었고, 일성이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 채로 죽어있다.

“뭐가 우습지?”

남우가 자운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설혜 역시 자운의 앞으로 다가가 섰다.

일공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평범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하하하!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모든 것이 내 손에서 놀아났는데, 어찌 기뻐서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의 몸에서 기운이 솟구쳤다.

일공의 주변으로 공간이 우그러들기 시작한다.

쩌저저적-

무형검,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다.

설혜와 남우만이 느낄 수 있었다.

총 오십여 개에 달하는 무형검이 일공의 옆에서 생성되었다.

“나는 일성을 죽이지 못한다. 하지만 난신이라면 죽일 수 있지. 하나 일성이 난신을 죽인다면 나는 영원한 이인자로 남지 않겠느냐? 하여 난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운과 일성이 양패구상해 버린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자운은 죽지는 않았지만 당장에 숨이 끊어진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었다.

일공의 말에 남우가 당평청과 남궁인을 향해 눈짓을 했다.

자운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라는 의미였다.

“네놈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셈이냐?”

일성과 자운의 싸움, 그것을 끝으로 무림에서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겠다고 한 약속.

남우가 일공에게 그 약속을 물었다.

일공이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트린다.

“하하하하하하! 약속이라니! 그 약속을 내가 했던가? 그 약속을 한 사람이 지금 살아나 있나?”

일공이 두 쪽으로 갈라진 일성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역시 내 손에서 놀아났지. 흐흐흐흐. 결국 무림이라는 것은 내 손에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야.”

그가 남우와 설혜의 뒤에 있는 자운을 바라보았다.

“안타깝구나. 정도의 구성이었지만 내 계략이 한 수 위였어. 사실 무공도 그보다는 한 수 위지.”

자운이 무형검에 접어든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서 일공은 자운처럼 허공을 움켜쥐지도 않고 무형검을 쓸 수 있었다.

그렇게 부리는 무형검의 수가 무려 수십 개.

자운보다 몇 줄은 위에 있는 고수였다.

이러한 이를 칭하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고금제일일 것이다.

남우와 설혜가 이를 악물었다.

설혜의 주변으로 북풍한설이 몰아치고, 남우의 주변으로 독정기가 휘감기었다.

“과연 자네들이 나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까?”

남우와 설혜가 일공을 향해 다가선다.

“일각.”

설혜가 냉정하게 판단했다.

차를 한 잔 마실 정도의 짧은 시간.

안타깝기는 했으나 남우 역시 부정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일각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일공이 설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냉정한 아해로다. 무공과 성격이 닮은 것인가?”

적설심법을 익힌 이는 성격이 차가워진다.

물론 적설심법을 대성한다면 다시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설혜는 본래 냉정한 편이었다.

남우가 뒤를 돌아보며 남은 인물 셋에게 말했다.

“우리가 벌어줄 수 있는 시간은 단 삼 분이다. 삼 분 안에 자운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라. 인정하기 싫지만 저놈이야말로 무림의 구성이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눈앞의 이 영감에게 이길 확률이 일 할 이상 되는 녀석은 그 녀석밖에 없다.”

남우가 다시 시선을 일공에게 고정시켰다.

일공이 손을 뻗었다.

“어딜!”

가벼운 움직임에 열 발에 이르는 무형검이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마치 무형검으로 이기어검을 펼치는 듯하다.

남우가 독정기를 넓게 뿌렸다.

장막을 치듯 독정기가 뿌려진다.

“어딜!”

콰과과과광-

독정기가 출렁이며 무형검을 간신히 막아내었다.

하지만 장막처럼 넓게 펼쳤던 독정기에도 구멍이 술술 나있었다.

일공이 자신의 무형검을 막아낸 남우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호오, 제법이구나.”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일공이 다시 자운을 노리고 무형검을 뿌렸다.

괴걸왕이 자운을 업은 채로 멀리 내뺐다.

무형검이 그런 괴걸왕의 뒤를 쫓는다.

쩌저저적-

대기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어붙은 대기의 벽이 무형검을 통째로 얼렸다.

공간을 얼려 버리는 것이다.

무형검이 모습 그대로 얼어붙으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와장창-

바닥에 떨어진 무형검이 그대로 깨져 나간다.

설혜 역시 무형검을 막았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은 내력 소모가 심하기에 오래 막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감안해서 일각. 일각이라는 시간동안 괴걸왕이 자운을 데리고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최대한 멀리 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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