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룡난신-164화 (164/175)

# 164

자운이 천근추의 수법을 운용했다.

쾅-

그의 신형이 연무장 바닥에 내려서고, 청강석으로 만든 바닥이 산산이 부서졌다.

일성은 먹잇감을 쫓아 아래로 하강했다.

자운이 천근추의 수법이 풀리는 순간, 일성을 향해 마주 솟구쳤다.

위에서 내려찍는 힘과 아래에서 올려치는 힘, 두 줄기의 섬광이 세상을 양단해 버릴 기세로 충돌했다.

콰아앙-

대지가 진동하고 하늘이 갈라졌다.

싸움이 이어진 지 벌써 두 시진. 정말 쉼 없이 싸우고 있다.

‘무림의 운명을 결정할 싸움.’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이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대결의 승자에 따라서 무림의 운명이 결정된다.

번쩍하는 섬광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자운과 일성이 그 자리에 내려섰다.

“이제 각자 숨겨둔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들어보실까?”

“알고 있었나?”

자운의 말에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고작 칠 할이잖아.”

“숨겨둔 삼 할을 꺼내라는 말이군.”

“누가 먼저 꺼낼래, 친구?”

일성이 자운을 친구라 불렀다.

자운이 피식 웃었다.

확실히 정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어찌 보면 친구라 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자운은 거절했다.

“역겹다. 친구라고 부르지 마라.”

자운이 황룡신검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쑤욱 하는 소리와 함께 황룡신검의 절반이 바닥에 틀어박힌다.

“검을 버려?”

그의 행동에 일성이 놀라 소리쳤다.

검사가 검을 버리다니?

그렇다면 자운의 숨겨둔 한 수가 무엇이라는 말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자운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일성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었다.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콰과광-

폭음이 울리며 일성의 뒤쪽 땅이 쩍 갈라졌다.

자운의 한 수를 알아본 남우가 소리쳤다.

“저, 저……!!”

이공을 죽일 때 보인 한 수가 아닌가.

자운은 이제 그것을 체득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펼쳐내고 있었다.

이제 알겠다.

왜 자운이 조금씩 멀어진다고 느껴졌는지.

저 경지에 올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일성이 눈을 동그랗게 말아 뜨고 소리 내어 물었다.

“무형검?”

자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마음으로써 사람을 베고 죽인다는 심즉살(心卽殺).

심검(心劍)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운은 바로 그전의 경지에 올라있었다.

검을 든 자들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꼭 이루고 싶어하는 경지!

그 경지가 바로 무형검이었다.

무기의 구애를 받지 않는 경지와는 차원부터가 달랐다.

“그래.”

자운이 일성의 말을 순순히 인정했다.

검을 버린다는 것, 검을 포기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자운은 일평생 검술에만 매달려 온 검사다.

그런 검사가 검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검을 포기함으로써 새로운 검을 얻을 수 있다 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자운의 사고는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얻은 것이 무형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며 일성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

일성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심검은 아니었지만 일격필살에 가까운 공격.

일성이 자운이 쩍 갈라놓은 바닥을 보더니 박수를 쳤다.

“하하하하! 그렇군. 대단하군, 대단해. 무형검이라니. 나 역시 새로운 한 수를 보여주지.”

감탄하던 일성의 어조가 바뀌었다.

스옥.

일성이 주먹을 내밀었다.

너무나도 느린 속도였다.

그리고 그 순간, 일성의 주먹이 사라졌다.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든가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사라졌다.

일성의 주먹이 다시 나타난 곳은 바로 자운의 앞이었다.

일성과 자운의 거리는 약 십오 장.

그 거리를 주먹 하나만 사라졌다가 나타난 것이다.

자운이 황급하게 허리를 틀었다.

투콰앙-

공기가 흉측하게 뒤틀리며 자운의 뒤쪽으로 이어진 비무장 바닥이 다 날아가 버렸다.

자운이 일성이 그랬던 것처럼 놀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공간격(空間擊)?”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형검과 공간격이라니!

둘 모두 어느 한쪽이 높다 할 수 없는 경지다.

마지막 필승의 한 수로 남겨두고 있는 것이었는데 상대방 역시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자운이 이를 악물었다.

“진짜로 너, 괴물 같은 새끼구나.”

“그러는 너란 새끼는 괴물이 아닌 줄 아냐?”

동시에 일성이 주먹을 뻗었고, 자운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앙-

둘 다 고개를 비틀었다.

일성의 뒤쪽이 쩌억 갈라졌다.

자운의 뒤 역시 또다시 터져 나갔다.

공간격과 무형검, 어느 한쪽이든 닿는 순간 사망이다.

자운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진짜로 미친 새끼.”

정말 적성 놈들이 왜 일성이라는 존재를 필요로 했는지 알 것 같다.

과거 이백 년 전에 이런 녀석이 있었다면 무림은 필패다.

당시에 어떤 은거고수들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네놈이 이 시대에 있어서 다행이구나. 내가 막을 수 있으니까.”

이 시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일성이 반문한다.

“이 시대라니? 그건 무슨 소리지?”

“몰라도 돼!”

자운이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쾅쾅-

쩌어억-

십자형태로 교차된 무형검이 일성의 위로 떨어졌다.

일성이 빠르게 발을 굴러 십여 장 밖으로 벗어났다.

자운이 공격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둣 계속해서 무형검을 펼친다.

쾅-

쾅쾅쾅-

쾅쾅쾅쾅-

허공에서 무형검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하늘이 산산이 부서진다.

일성이 무형검을 모두 피해내었다.

느끼고 있는 것이 한계였지만, 공간격을 적절히 이용한다면 피해낼 수 있었다.

“흥! 공간격을 펼치지 못하게 하려는 심산이로구나.”

일성이 자운의 속셈을 눈치채었다.

공간격을 펼치는 시간을 없애어 공격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운의 오판이었다.

일성은 공간격을 몸으로 체득한지 오래였다.

자운이 무형검을 몸으로 체득한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몸으로 체득한 것을 펼치는 데는 찰나면 충분하다.

일성이 한다발의 무형검을 피해내는 동시에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공간이 쩍 갈라지며 자운의 바로 앞으로 일성의 주먹이 나타난다.

자운이 무형검의 형태를 변환시켰다.

마치 방패의 형상으로 변화하는 무형검이 일성의 공간격을 막았다.

투콰아앙-

공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자운이 충격파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공답보를 밟았다.

그의 몸이 높게 날아오른다.

날아오른 자운을 향해 일성이 발을 뻗었다.

발이 사라지고, 자운의 앞에 일성의 발이 나타난다.

“허업!”

자운이 경호성과 함께 몸을 비틀었다.

콰아앙-

자운의 허리가 터져 나간다.

공간격이 한 발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공격이 자운의 허리를 후려쳤다.

자운이 훨훨 나는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양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콰앙-

두 발에 이르는 무형검이 일성을 후려친다.

일성의 몸이 무형검의 충격에 휘청 뒤로 밀려났다.

자운이 바닥을 구르며 허리를 잡았다.

“쿨럭.”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내상을 입은 것인지 내장조각이 섞여 나왔다.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무형검에 적중당한 일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성이 입고 있는 옷은 넝마가 되었으며 길게 그어 내려진 검상이 둘이나 있었다.

‘제길.’

일성이 이를 악물었다.

선천지기로도 치료가 되지 않는다. 무형검에 담겨 있는 내력이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어깨에 입은, 무형검으로 인한 상처 때문에 두 손을 이전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다.

하지만 운신이 불편한 것은 자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운의 허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운이 염룡교를 펼쳤다.

손바닥 가득히 불꽃이 타오른다.

그 불꽃을 그대로 자신의 허리로 가져갔다.

“으아아아악!”

자운이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다.

살이 녹아들며 상처가 메워지기 시작한다.

공간격에 당한 상처 역시 선천지기로 치료가 되지 않았는데 그것을 살을 지져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일공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진짜로 미친놈!”

미친놈의 입에서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살을 지져서 상처를 봉합하다니.

저게 어지간한 정신머리를 가진 놈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인가?

자운이 빙글빙글 도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어느 정도의 충격은 정신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허리를 지지고 속살을 지지는 고통은 정말로 엄청났기 때문에 정신이 돌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 나가 버릴 뻔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하지만 자운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무림, 무림 전체가 지금 자신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물러설 수 없는 것은 일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어깨에는 적성의 대업이 달려 있었다.

몇 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한이 되어버린 업이다.

쉬이 물러설 수 없었다.

자운과 일성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의 몸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휘청거렸다.

자운이 힘겹게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허공을 움켜쥔다.

콰앙-

일성의 양옆이 터져 나갔다.

눈이 한순간 흔들려 조준을 잘못한 것이다.

자운의 공격이 빗나가자 일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주먹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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