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쩌정 하는 소리와 함께 설혜의 눈앞에 눈부시도록 시린 얼음의 벽이 생겨난다.
쾅-
독정기와 멸성기가 충돌하고, 얼음의 벽과 멸성기가 충돌했다.
자욱한 폭음이 일어나며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남우가 손을 들어 바람을 불러왔다.
불어온 바람이 가볍게 눈앞을 자욱하게 가리고 있는 모래먼지를 걷어내자, 황금빛 호선과 적색 멸성기가 사방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 것이면 길게 궤적이 남는다.
자운이 쾌검술을 펼쳤다.
파바바밧-
황금빛 검강이 그물처럼 뻗어 나갔다.
일성이 두 손을 들어 그물을 움켜잡았다.
멸성기를 손끝으로 보내는 것으로 그물을 찢어버린다.
콰직-
이것이 절반.
자신들의 힘을 절반 사용한 것이라 한다.
한 번 충돌할 때마다 자소봉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 게 고작 절반이라고?
남궁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의 마음을 읽어낸 남우가 물어온다.
“받아낼 자신이 없지?”
남궁인과 당평청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저 녀석이 팔 할 이상 힘을 쓰기 시작하면 받아낼 수 없다.”
아니, 이제는 팔 할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도 자운은 끝없이 자신의 실력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점점 더 격차가 멀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지금 자운이 아니라면 일성을 상대할 만한 인물은 없다.
분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자운에게는 천운이 따르고 있었으며 또한 천명이 따르고 있었다.
콰아앙-
지축이 강하게 울리며 자운과 일성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둘이 서로를 노려본다.
“크으으.”
자운이 입가에 흘러내리는 침을 닦았다.
튕겨 나오기 직전 일성에게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이다.
하지만 자운이 곱게 한 대 맞고 물러나 줬을 리가 없다.
뒤로 튕겨나며 일성의 손가락을 붙잡고 꺾어버렸다.
일성은 뒤틀어진 손가락을 바로잡았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선천지기가 솟구쳐 어긋난 뼈를 바로잡는다.
자운이 퉤 하고 입 안에 고인 침을 뱉어내었다.
침에서 피가 섞여 떨어져 내렸다.
“개자식.”
“개새끼.”
일성과 자운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욕을 내뱉는다.
개자식과 개새끼 둘 다 같은 말이다.
그것을 바라보던 괴걸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냐. 저건 미친놈들이야.’
욕지기를 내뱉은 두 사람이 다시 날아올랐다.
자운이 검을 휘둘렀다.
검이 물결치는 것처럼 움직이더니 단번에 일성의 아래에서 솟구친다.
파앗-
일성이 빠르게 턱을 들었다.
바로 눈앞으로 기다란 검강이 스치고 지나갔다.
자운이 검과 일성아 동일선상에 놓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패룡!’
자운의 부름에 대해와 같은 단전 속에서 잠자고 있던 패룡이 꿈틀거리며 자운의 팔을 타고 검을 통해서 튀어나왔다.
쾅-
패룡이 그대로 일성을 들이박고, 일성이 쌍장을 교차한 채로 패룡의 공격을 버텼다.
고작 한 걸음, 무지막지한 패룡의 육탄 돌격을 막아내고도 밀려난 거리가 고작 한 걸음이다.
자운이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 괴물 같은 자식.”
“홍! 그쪽에서 한 수 보여줬으니 이제는 내 차례군.”
일성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 주먹 위로 악귀의 얼굴이 드러난다.
키이이이이익-
악귀가 울었다.
그 소리는 황룡의 울음과는 다른 사특한 울음소리였다.
자운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 그런 건 안 보여줘도 되는데.”
단순한 손의 움직임이었지만 자운의 손에서 뻗어 나간 경력이 악귀의 형상을 때렸다.
퍼석-
하나 악귀에 닿은 기운이 맥없이 바스러졌다.
‘저 정도로는 꿈쩍도 안 한다는 말이지.’
그 순간 일성이 기합성과 함께 주먹을 뻗었다.
“막아봐라!”
파아아앗-
거대한 악귀의 얼굴 수십이 자운을 향해 날아왔다.
퍼버버버빙-
사방의 공간이 모여들었다.
악귀가 그대로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이 호룡을 불렀다.
패룡이 자운의 몸속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호룡이 솟구쳐 올랐다.
우우우우-
호룡이 자운의 몸을 휘감고 기다란 고개를 움직여 이로 악귀를 물어뜯었다.
콰직-
쾅쾅-
그 이빨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악귀의 형상들이 호룡과 충돌한다.
호룡이 크게 출렁였다.
하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일성의 공격이 끝나는 순간, 자운이 호룡을 불러들이고는 일성을 향해 뛰어나갔다.
쾅-
일성이 쌍장을 교차해서 자운의 공격을 막아낸다.
자운의 몸과 일성의 몸이 동시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유성이라 부르던가?
그렇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하늘로 솟구치는 별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긴 꼬리를 가진 별 두 개가 허공을 향해 솟구쳤다.
붉은 별과 금빛 별이 연달아 충격을 거듭하고, 사방으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콰앙-
한순간 충돌이 이어진 후 자운과 일성이 동시에 뒤로 밀려났다.
자운이 어깨를 싸잡았다.
일성은 허벅지를 부여잡았다.
자운의 어깨에 남은 선명한 손바닥 자국.
대수인의 수법과 비슷한 수법이 자운의 어깨를 때린 것이다.
일성의 허벅지에서 피슛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솟구쳤다.
자운의 검이 그의 허벅지를 스친 탓이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이 빠진 어깨뼈를 끼워 넣었다.
축 늘어졌던 팔이 제자리를 찾는다.
일성은 선천지기를 이용하여 베인 다리를 치료했다.
다리에 출혈이 심한 상처가 있으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림인은 전투 중에 다리로 내공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경공을 이용해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자운과 일성이 서로 허공에 뜬 채로 노려보았다.
“괴물 같은 놈.”
일성이 받아쳤다.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둘 다 사람으로 부르기는 어려웠다.
저토록 심하게 충돌을 해놓고도 아직 지친 기색조차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을 놓아야 하나?’
한 수가 떠올랐다.
하지만 충돌해 보니 알겠다.
그 한 수를 사용한다고 해도 필승을 장담하지 못한다.
어찌해야 할까.
자운이 고민을 했다.
필승을 장담할 수 있었다면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황룡신검을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허공을 움켜쥐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승을 장담할 수 없는 지금, 그 비장의 한 수를 선보인다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불리하게 만드는 일이다.
자운이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조금 더, 조금 더 상황을 두고 봐야겠다.’
그렇다면 이 한 수를 사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일성이 그런 자운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지?”
자운이 씨익 웃으며 받아쳤다.
“어떻게 죽여야 널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지 생각하고 있었지.”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생각하는 바도 통하는 게 있네. 나도 널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는지 소문이 날까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가 이죽거리자 새하얀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리도록 차가운 송곳니에 자운이 마주 웃었다.
“개 같은 자식.”
“너도.”
정말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괴걸왕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장면을 미친놈 대결전이라고 생각했다.
‘미친놈과 미친놈이 싸워서 누가 더 상 미친놈인지 겨루는 승부인가?’
괴걸왕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운이 일성을 향해 검을 움켜쥐며 말했다.
“자, 그럼 칠 할로 올려보자고.”
그 한마디에 대기가 진동했다.
쿠우우우우우우-
제7장 나는 황룡문을 천하제일로 만들기로 약속했는데
자운이 말을 한 순간부터 대기가 잘게 떨기 시작했다.
허공중에, 형체가 없는 것이 분명한 허공중에 실금이 쩍쩍 가기 시작한다.
자운과 일성의 기운을 견디지 못한 대기가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광풍이 몰아쳤다.
갈라진 대기 사이로 다른 대기가 들이닥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휘류류류류류류류-
그런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은 허공에 오연히 서 있었다.
모두가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일공 역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흐흐흐흐, 이이제이의 수법. 나는 일성을 죽일 수 없지만 난신은 죽일 수가 있지.’
다른 이의 손을 빌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야망을 이룬다.
일공이 일성과 자운의 움직임을 쫓았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저 정도가 칠 할이라면 자신보다 아래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아주 근소한 차이라고는 하지만 일성과 싸우고 난 자운은 지쳤을 것이다.
그 지친 상황에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자운은 감당할 수 없다.
자운의 목을 꺾고 난다면 무림천하에 자신을 상대할 만한 이는 없을 것이다.
‘내가 무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천하가 내 손으로 들어오게 되겠지.’
그가 입가를 씰룩이며 웃었다.
남우가 불안한 눈으로 일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일성과 자운의 움직임을 쫓는다.
자운의 발길질이 허공을 갈랐다.
일성이 단번에 자운의 가슴팍을 향해 파고든다.
손가락 가득히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자운을 향해 날아든다.
자운이 억지로 허리를 비틀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으로 일성의 공격이 지나간다.
일성이 팔을 구부렸다.
눈앞을 지나가던 공격이 단번에 방향을 바꾸어 자운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