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
공간이 뒤틀리며 자운의 공격 궤적이 틀어졌다.
자운이 내기를 이용해 뒤틀린 공간을 바로잡았다.
공간을 뒤트는 기운과 바로잡는 기운이 허공에서 얽히며 요상한 소리를 흘렸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
둘의 힘을 견디지 못한 공간이 그 자리에서 터져 나가며 소멸했다.
콰아앙-
둘의 신형이 다시 멀어졌다.
인간일진대 자연스럽게 공간에 개입하는 모습.
그들이 과연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나군.’
당평청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침이 꿀꺽 넘어간다.
같은 상황인 것은 벽력도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신, 난신 하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자운이 저 정도의 실력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사일귀의 귀로 설혜와 남우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 할? 아니, 삼할 오 푼인가? 제대로 싸우지 않고 있군.”
“정확하게 삼 할 칠 푼 오 리.”
“이 얼음땡이야, 대충해. 비슷하면 되는 거지.”
저 정도가 힘의 절반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엄청난 싸움이 고작해야 삼분지 일 정도의 힘으로 펼쳐내는 것이라니.
문득 남궁인은 절대의 경지에 오른 자신들을 향해 남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애들 장난…….’
저 정도가 힘의 삼분지 일이라면 정말로 자신들의 싸움은 아이들 장난 수준일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든다.
하나 정작 전투를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은 그리 조급해하지 않았다.
밑천을 드러내기는커녕 힘의 절반도 사용하지 않고 서로를 가늠하는 중인데, 조급할 리가 없다.
“제법 하네. 하도 부하들만 보내길래 난 또 허접할 줄 알았는데. 확실히 좀 뭔가가 있기는 하구나.”
자운의 말에 적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원래 수장은 좀 늦게 음직여야 무게감이 있는 법이지. 그래도 지금이라도 움직였으니 상관없잖아?”
둘의 대화가 마치 친근한 친우끼리 나누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서로를 향해 뿌려대는 공격은 어느 하나 살초가 아닌 것이 없었다.
모두가 치명적이다.
쐐애액-
자운이 뿜어낸 강기가 청강석 바닥을 두 쪽으로 쪼갰다.
이미 비무대는 넝마가 된지 오래였다.
“이렇게 되어서야 비무대가 전혀 쓸모가 없군.”
“원래부터 그냥 보여주려고 만든 거잖아. 안 그래?”
자운의 말에 일성이 웃었다.
“이래서 나는 네가 좋아. 흥미로워.”
자운이 손을 뻗었다. 손가락에서 기다란 용의 손톱이 솟아난다.
솟아난 용의 손톱은 놈의 얼굴을 그어버릴 것처럼 맹렬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일성은 어느새 발을 굴러 삼여 장 밖으로 벗어난 지 오래였다.
“남자의 호감 따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야.”
말을 하며 기합을 내질렀다.
“합!”
순간적으로 자운의 몸이 공간을 축약시켰다. 자운의 어깨가 일성을 들이박는다.
일성이 바닥을 발로 밟았다.
쿠웅-
강력한 진각으로 인해 발생한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자운의 몸을 밀어내었다.
바닥이 파도치는 것처럼 출렁였다.
자운이 지지 않고 무시무시한 내력을 모은 발을 내려찍었다.
충격파가 일성과는 반대 방향으로 터져 나오며 일성이 쏘아낸 충격파와 연신 충돌을 거듭한다.
쾅쾅쾅!
바닥이 쩌저적 하고 갈라졌다.
그 충격파 속에서 엄청난 힘으로 자운이 검을 휘둘렀다.
황금빛 광채가 단번에 빠르게 쏘아진다.
쾅쾅-
일성은 피하지 않았다.
그 역시 수도를 휘둘러 멸성강을 뿜어내고 자운의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쳤다.
콰과과과광-
귀청을 찢는 폭음을 가르고 두 사람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바닥을 박차는 순간, 이미 주먹은 서로를 향해 당도하고 있다.
콰앙-
공방의 전환이 수십 번씩 이어졌다. 한 번의 충돌에 백여합의 싸움이 이어진다.
난무하는 강기와 강기 속에서 자운과 일성은 편안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영역이라도 되는 양, 안전 구역이라도 되는 양 강기가 날아들지 않는 공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움직인다.
싸움이 점점 격해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조금씩이나마 실력을 높여가고 있었다.
사 할이 조금 안 되는 힘을 쓰며 싸우던 것이 이제는 사 할을 넘어섰다.
그에 따라서 싸움은 조금 더 복잡한 양상으로 변해갔다.
또한 조금 더 화려하게 치달았다.
쏴솨솨솨솨솨-
자운의 신검에서 검강이 파도처럼 밀려 나왔다.
검강의 파도가 대해를 이루고 일성을 향해 나아간다.
해일이 몰려오는 듯한 모습이다.
일성이 지지 않고 벼락처럼 양손을 휘둘렀다.
양손에서 그물처럼 멸성강이 움직였다.
그물처럼 넓게 펼쳐진 강기와 황금빛 파도가 충돌한다.
폭음이 울리지는 않았다.
대신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과도와 그물의 힘겨루기.
거대한 힘이 중앙에서 몰아친다.
콰앙-
바닥이 거대한 깊이로 파이며 자운과 일성의 몸이 둘 다 뒤로 밀려났다.
“크으.”
자운이 눈앞을 자욱하게 가리는 안개를 손을 휘저어 걷어내었다.
그러고는 전방을 주시했고, 일성 역시 자운을 노려보았다.
금안과 적안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제6장 미친놈과 미친놈이 싸워서 누가 더 상 미친놈인지 겨루는 승부인가?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함은커녕 오히려 긴장감만을 더욱 끓어오르게 한다.
자운이 근육을 팽팽하게 당겼다가 풀어놓기를 반복했다.
몸을 가득 채운 긴장감을 풀어냄으로써 딱딱해지는 움직임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자운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일성 역시 자운을 향해 한 걸음 다가온다.
둘은 그 상황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기를 잠깐, 일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과연 너는 하늘이 내린 나의 호적수구나. 너를 꺾는다면 무림에서 나를 상대할 이가 없겠지?”
자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사실 내가 좀 잘나기는 했어. 근데 너 말이야, 날 꺾을 자신은 있는 거냐?”
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거 참 별일이네. 사실 나도 널 꺾을 자신이 있거든.”
그 말에 일성과 자운이 동시에 씨익 웃었다.
“꽤나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물론이지.”
평온하게 말을 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서 몰아치는 기류는 더욱더 강해졌다.
“너, 힘 절반도 사용하지 않고 있지?”
“그러는 너도 마찬가지면서 새삼스럽네.”
일성과 자운은 서로 본 실력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오 할 정도 사용해 보려고.”
“나도 그럼 오 할 정도 끌어올려 보도록 하지.”
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금광과 적광의 색이 한충 더 진해졌다.
붉은빛과 금빛이 선명하게 대조되며 허공을 향해 치솟는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사방 백 리 밖에서 허공으로 치솟은 붉은 기둥과 금빛 기둥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지지지직-
뇌전이 튄다.
두 개의 기둥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던 구름을 걷어내었다.
마치 하늘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느낌이다.
괴걸왕이 하늘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하늘을 쪼개다니, 역시 사람이 아니야.”
그 말에 다른 이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과는 다르게 남우와 설혜는 일공을 주시하고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
분명 일성의 수하가 분명한데 그 여유로움은 일성보다 더 하다.
또한 저자, 불길하다.
둘은 직감적으로 그런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일공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눈에서는 날카로운 살기가 뿜어졌다.
‘역시 위험해.’
‘위험.’
뭐랄까, 뱀의 아가리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맹수의 아가리가 아니다. 독 내가 풍기니 분명 뱀의 아가리였다.
‘이 장소에, 이 일에 또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냐.’
남우가 고개를 들어 자운을 바라보았다.
‘불길하군.’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확증도 없는데 이런 기분이 드니 불쾌했다.
‘찜찜해.’
그러는 사이, 자운과 일성이 움직였다.
휘이익-
자운의 몸이 벼락처럼 뻗어나갔다.
한 걸음에 몇 장의 거리를 좁히고 들어간다.
엄청난 속도로 바람이 갈라졌다.
일성 역시 붉은 궤적을 남기며 자운을 향해 충돌해 나갔다.
번쩍하는 순간, 자운의 발이 일성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일성이 몸을 거칠게 틀어서 자운의 공격을 피해내는 동시에 일곱 번 허공을 때렸다.
멸성기가 쭈욱 늘어나며 자운의 전신을 후려친다.
자운이 신검을 끌어왔다.
용의 비늘이 화라락 일어났다.
용린벽, 동시에 역린을 터뜨렸다.
멸성기의 힘이 그대로 일성을 향해 돌아간다.
일성이 다시 멸성기를 뻗어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힘을 소멸시켰다.
동시에 좌수를 움직였다.
검강과 수강이 충돌하며 번쩍하고 빛이 터졌다.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순간, 자운의 몸이 번쩍하고 뒤로 날았다.
연이어 멸성기가 자운을 향해 쫓아온다.
자운이 몸을 빼는 동시에 신검을 휘둘렀다.
멸성기가 신검을 감싸고 있는 금광과 충돌하며 절반으로 쩌억 갈라졌다.
갈라진 멸성기가 자운의 뒤쪽을 향해 날아간다.
설혜와 남우가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