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자운의 말에 일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운 것인지 박수까지 치며 웃음을 흘린다.
“하하하하! 그렇지 내가 바로 그 미치광이지. 하지만 세상은 어차피 미친놈들 천국이 아닌가. 정파라고 해도 허울 좋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뒤로 잇속을 챙기지. 그런 미치광이들에 비하면 나처럼 대놓고 미친 게 훨씬 좋아 보이지 않아?”
자운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완전히 정상이 아니구나. 쯧쯧. 미친놈에게는 매가 약이라는데, 이번 기회에 이 형이 좀 패주마.”
자운의 말에 일성이 씩 웃었다.
“능력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보다 하루 정도 일찍 온 것 같은데? 밥이라도 얻어먹으러 왔나?”
자운이 웃었다.
“줄 건가? 준다면 얼마든지 먹지.”
“크크크크크큭, 최후의 만찬이라니. 좋아, 내어주지. 죽기 전에 호적수에게 식사 한 끼 정도는 대접할 수 있지.”
그가 몸을 휙 돌렸다.
“따라오도록 해.”
식사는 생각보다 조용히 이어졌다.
만찬이 펼쳐졌으나 누구 하나 쉬이 소리를 내는 이가 없었다.
극도의 긴장감이 식탁 위로 맴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자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배부르게 잘 먹었군. 내가 잘 곳은 어디지?”
그 말에 적성이 이마를 탁 쳤다.
“그렇지. 오늘은 아니지. 오늘은 아니야. 잘 곳을 내어줘야겠군. 좋아, 조금만 기다려. 수하를 시켜서 잘 곳을 내어주도록 할 테니까.”
일성이 그들에게 내어준 숙소는 과거 무당의 건물 중 하나였다. 적성의 침입에도 간신히 모습만을 유지하고 있는 건물을 내어준 것이다.
“혹시 몰라서 다 태우고 하나는 남겨뒀는데 이렇게 쓰이는군. 원한다면 여기서 자도록 해.”
일성의 말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무당의 심처에서 잠을 자다니, 꽤나 행운인데?”
“내일 죽을 거, 그 정도 호사는 누리라고.”
일성이 손을 흔들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자운이 일성이 사라지는 모양새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내일이다…….
* * *
아침이 밝았다. 환한 햇살이 쏘아지자 운기행공을 하며 심상에 잠겨있던 자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볍게 주먹을 움켜쥔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자운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가볍게 푸닥거리 한번 하러 가볼까.”
자운의 신형이 슥 사라진 자리 근처에 있던 석등 하나가 정확하게 반으로 쪼개졌다.
쩌저적-
다른 이들은 이미 모두 비무대 앞으로 와 있었다.
표정들을 보아아니 긴장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자운이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넓게 펼쳐진 비무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돈 좀 썼겠는데? 바닥이 모두 청강석이라니. 적성은 돈이 썩어 넘치나 보군.”
그 말에 맞은편에서 자운을 바라보던 일성이 웃었다.
“무림을 건 최후의 대결이니 이 정도는 돼줘야 격식에 맞지 않겠어?”
자운이 그 말을 맞받아치며 비무대 위로 올랐다.
“난 또 저 죽을 줄 알고 무덤에 돈을 처바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뜻이었네?”
“나의 호적수의 무덤이니 이 정도 돈은 아깝지 않지.”
적성이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풀었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뽑아들고는 검갑을 비무대 뒤쪽으로 던져버린다.
설혜가 날아오는 검갑을 받아들었다.
자운이 황룡신검을 움켜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족히 직경이 오십여 장은 될 듯한 비무대가 좁게 느껴진다.
오십여 장이라고 해봐야 한 걸음에서 두 걸음 거리다.
자운과 일성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휘휘휘휘휘-
뜨거운 바람이 불어와 비무대를 감싼다.
그것이 신호탄인 듯 자운과 일성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났다.
붉은 기세와 황금빛 기세가 연속으로 허공에서 충돌한다.
파직파직-
불똥이 튄다. 거대한 기세의 충돌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용권풍을 만들어내었다.
자운이 검을 뻗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검에서 황룡검탄이 쏘아진다.
일성이 두 손을 흔들었다.
두 손에서 뻗어나온 붉은 기운이 일성의 양팔을 감싸는가 싶더니 단번에 길어지며 황룡검탄과 충돌한다.
콰앙-
허공에서 충돌한 두 개의 기운이 단번에 소멸해 버린다.
자운과 일성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교차했다.
한 번의 공격 이후 둘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자운이 한 발짝 일성을 향해 다가갔다.
저벅-
일성 역시 자운을 향해 한 발 다가온다.
저벅-
둘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오십여 장에 이르는 비무대가 조금씩 좁혀지는 순간, 피잉 하는 소리와 함께 자운의 검술이 허공을 갈랐다.
일성이 고개를 흔들었다.
자운이 뿌려낸 검초가 일성의 뒤에서 쪼개졌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청강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이 갈라졌다.
연이어 공격하는 자운.
그의 손이 허공을 때린다 싶더니 단번에 화염을 만들어낸다.
염룡교의 수법으로 뻗어진 화룡이 일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넘실거리는 화염이 붉은 꼬리를 남기고, 자운의 주먹이 일성을 향해 쇄도했다.
일성이 붉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멸성기와 화염이 충돌한다.
허공에서 두 개의 붉은 기류가 어지럽게 충돌했다.
번쩍하며 환한 빛이 터져 나오고, 자운의 손이 빛살보다 빠르게 공간을 격했다.
일성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파바바바방-
주먹과 주먹이 여지없이 충돌한다.
두 사람이 딛고 있는 청강석 바닥이 계속해서 파여 나갔다.
펑펑펑-
청강석 조각이 튀어 오른다.
쾅!
자운과 일성의 주먹이 크게 충돌했다.
그 파동이 얼마나 강하게 뻗어 나간 것인지 청강석을 바둑판 모양으로 나열해 놓은 바닥이 출렁이며 몇 개의 판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져 내렸다.
쿠웅-
자운의 몸과 일성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그토록 격렬하게 주먹을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몸에는 전혀 상처가 없었다.
일성이 양팔에 멸성기를 휘감았다.
“사실 나는 자네가 나와 참으로 닮았다고 생각하네.”
“뭐, 둘 다 미친놈인 거?”
이야기를 듣던 괴걸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도 잘 알고 있구먼.’
그 모습을 흘깃 본 자운이 괴걸왕을 후려칠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단 눈앞에 있는 일성이 먼저였다.
“그렇지. 둘 다 미쳤지. 미쳤고말고. 미쳤으니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지. 미치지 않았으면 무공을 왜 익혔겠나. 그냥 밭이나 갈고 살지. 무림인은 모두 미쳤어.”
자운이 이죽거렸다.
“모든 무림인이 너처럼 미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모든 무림인을 미친놈이라고 한다면 넌 아주 상 미친놈이니까.”
“그 말은 틀렸어. 난 상 미친놈이 아니라 개 같이 미친 놈이지.”
적성의 몸이 허공을 갈랐다.
자운의 신형 역시 벼락처럼 하늘을 갈랐다.
귀청을 찢는 굉음이 울리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되었다.
십자 형태로 교차되는 시선.
붉은 선과 황금빛 선이 허공을 가득 채워 나간다.
번쩍하는 순간!
적성이 두 손을 뻗었다.
멸성기가 강력한 흡력을 발생시키며 자운을 끌어들인다.
홉자결을 운용해 자운을 당기는 것이다. 자운이 역으로 검을 이용해 방자결을 펼쳤다.
끌려들어 가던 자운의 몸이 제자리에 고정되었다.
방자결과 홉자결의 팽팽한 싸움.
자운이 황룡신검을 어검술의 수법으로 허공에 고정시켰다.
물론 방자결을 펼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한순간에 황룡신검에 담긴 방자결이 풀려 나간다.
쐐애애액-
홉자결만이 남자 황룡신검이 빠른 속도로 일성을 향해 날아갔다.
일성이 다급하게 고개를 틀었다.
홉자결을 통해 일성을 향해 쇄도하던 황룡신검이 그대로 허공을 가른다.
자운이 손가락 끝을 움직였다.
“끝이 아니야.”
쐐애애애액-
황룡신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날아든다.
뒤에서 일성을 관통하려는 기세.
일성이 허공을 밟았다.
그의 몸은 이미 십여 장 밖을 벗어나고 있었다.
자운이 어검술로 자신의 곁으로 돌아온 검을 움켜쥐었다.
“엄청나군.”
남궁인이 눈으로도 쫓기 힘든 두 사람의 싸움을 보며 말했다.
남우와 설혜의 눈에는 두 사람이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으나, 다른 초월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절대자들의 눈에는 그저 엄청난 싸움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격 일격이 자신들이 펼쳐내는 필살의 수법과 맞먹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고작 한 단계.
절대와 초월의 차이는 고작 한 단계일진대 이 정도로 힘이 달라지는 것이다.
사람이 저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니.
패애액-
자운의 검에서 금빛 광채가 일었다.
광채는 검을 덮어가며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낸다.
검강.
어지간한 고수들의 검강과는 그 힘부터가 달랐다.
속에 담긴 내기, 밀도, 예리함, 감히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격차가 나는 강기였다.
쾅-
자운이 강기가 넘실거리는 검을 내리찍었다.
금빛 선이 창공을 가르며 유성마냥 꼬리를 늘어뜨린다.
일성이 손날 가득 수강을 일으킨다.
의지가 전해지자 수도 위에서 붉은 멸성강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내리찍는 자운의 검을 향해 일성이 멸성강을 치켜들었다.
콰앙-
검강과 수강의 충돌. 붉은 기운과 금빛 기운이 넘실거리며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자운과 일성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다.
자운이 시선을 마주한 상황에서 일성의 얼굴을 후려칠 듯 주먹을 휘둘렀다.
일성이 손가락으로 허공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