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그러면 말이지 정사연합과 같은 딱딱한 문제는 접어두고 우리는 다른 데 가서 푸닥거리 한번 하자고. 나도 내상을 좀 입어서 관절에 기름도 칠할 겸 한번 움직여 줘야 하니까.”
자운의 말에 당평청이 자운의 눈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 남자,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웃고 있는 입꼬리와 달리 자운의 눈은 진지했다.
정말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당평청의 생각을 읽었는지 자운이 한마디 추가했다.
“눈치 볼 필요 없어. 난 머리 아픈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 근데 반대로 머리 쓰는 걸 잘하는 양반들이 있다는 말이지. 그런 건 그런 양반들한테 맡기는 게 좋아.”
자운의 말에 당평청이 사일귀를 바라본다.
잘할 수 있겠냐고 묻는 듯한 눈빛에 사일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심한 당평청이 입을 연다.
“좋습니다.”
자운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좋아, 그럼 따라오라고.”
당평청이 빠르게 경공을 전개해 자운의 뒤를 쫓았다.
풍광이 눈 뒤로 획획 넘어간다.
여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 중 하나.
자운이 사뿐히 그 위로 내려선다.
뒤이어 당평청이 내려섰다.
당평청의 눈에 기이한 열기가 어리며 자운을 바라본다.
자운이 두 손을 흔들었다.
“너무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난 남자 시선에 흥미 없으니까 말이야.”
자운의 말에 당평청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무림에 나온 이후로 당신은 주욱 저의 우상이자 목표였습니다.”
자운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능청을 부렸다.
“확실히 내가 좀 대단하기는 하지.”
“그래서 지금 당신과 저의 거리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차이가 클 수도 있어. 그래도 납득하겠다면 얼마든지 덤벼.”
스르릉-
자운이 황룡신검을 뽑았다.
당평청 역시 자운을 마주 본 상태에서 박도를 뽑아 든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인지 사령마기가 끌어올려진다.
츠츠츠츠츠츠춧-
박도의 주위로 묵광이 씌워진다.
자운의 검 역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난신께서는 전력을 다하실 때 열한 마리에 이르는 황룡을 부린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전력을 다할 가치가 없습니까?”
자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근자에 작은 깨달음이 있었거든. 황룡은 항상 꺼내두는 것보다 가끔 꺼내는 게 이득이다, 뭐 대충 이런 깨달음이었어. 그러니까 실망하지 말고 덤벼.”
그 순간, 스팟 하는 소리와 함께 당평청의 신형이 사라졌다.
단번에 십여 장의 거리를 격해 자운의 앞에 나타나는 당평청. 그가 묵광이 줄줄 흘러나오는 검을 아래로 내리긋는다.
자운이 신검을 들었다.
창-
너무도 간단하게 당평청의 공격이 막혀버린다.
‘절대의 경지 초입 정도인가?’
칠적과 비슷한 실력이거나 그보다 조금 아래다.
젊은 나이에 절대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은 대단하나 지금의 자운에게는 별 감흥을 주지 않는 경지이기도 했다.
반면에 자신의 검이 너무도 수월하게 가로막히자 당황한 쪽은 바로 당평청이었다.
‘과연 난신.’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발끝으로 방향을 틀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도초가 자운을 집어삼킨다.
자운이 좌수를 들어 손가락 끝을 세웠다.
검결지를 쥐며 단번에 그어 내리자 용린벽이 생겨 묵광의 폭풍을 막아낸다.
이공이 부리는 흑선은 이보다 훨씬 빨랐으며 다채로웠다.
어쩌면 국한되지 않은 병기라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국한되지 않은 병기라…….’
묵광의 폭풍이 너무도 쉽게 자운에게 가로막혀 버렸다.
“크으으으으으.”
당평청은 되레 손바닥이 저릿할 정도의 반탄력을 느끼며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평범한 공격으로는 자운을 상하게 할 수 없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공격해야 한다.
사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스승에게 자신의 성취를 보이는 것과 같다.
당평청은 사령혈마가 남긴 유지를 이었지만 스승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목표가 되어주었던 자운은 스승과 같은 존재이다.
그에게 자신의 성취를 보인다는 느낌으로 당평청이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그는 사파의 지존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는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씩 예리해지고 강맹해지는 공격에 자운이 양손을 움직였다.
파바바밧-
뇌전이 튀는 것처럼 자운의 검에서 경력이 뿜어져 당평청을 주르륵 밀어내었다.
“크윽.”
손아귀가 터질 것처럼 저릿하다.
가볍게 휘두른 검인데도 불구하고 막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당평청의 귓가로 자운의 말이 들려왔다.
“힘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 기본적인 거 까먹지 말자고.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잖아.”
가벼운 말이었지만 힘을 흘려내지 못하는 그를 탓하고 있다.
자운의 말에 당평청이 정신이 번쩍 든 듯 고개를 치켜든다.
힘을 흘려낸다.
그가 박도를 사선으로 세웠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자운을 향해서 달려든다.
보법을 이용해 단번에 자운을 향해 날아드는 당평청의 움직임에 자운이 검을 내리그었다.
직도황룡의 수법.
일곱 방위를 점하고 신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우우우웅-
신검이 잘게 떠는 순간, 일곱 개의 변화가 강기로 화하며 당평청을 노린다.
당평청이 달려드는 도중에 다급하게 경호성을 터뜨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자운이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힘을 흘려낸다.’
그가 천천히 자운의 공격 중 하나를 피하고 하나를 흘려내었다.
남은 공격은 다섯.
허리를 뒤트는 것으로 두 개의 공격을 피해낸다.
단 셋의 공격만이 남았다.
그가 묵광을 더욱 강하게 피워 올렸다.
이번에는 흘려내기가 어려운 각도다. 정면으로 맞부딪쳐야 한다.
뒤로 밀려나 신형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손아귀에 더욱 힘을 꽉 주었다.
묵광과 금광이 충돌하고, 빛이 번쩍하며 그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의 다리 아래로 황금빛 서기가 지나간다.
남은 공격은 단 하나.
그의 몸이 빙글 회전을 하며 자운의 공격을 흘려내었다.
공격을 흘려내고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어야 할 자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가 다급하게 고개를 돌려 움직이며 자운을 찾았다.
“여기야.”
자운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바로 그의 머리 위.
고개를 치켜들자 자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낙뢰가 떨어지듯 빠르게 내리찍는 황룡의 모습이 들어온다.
황룡검탄!
그가 힘을 주어 검으로 황룡검탄을 막았다.
어느 정도의 힘을 흘려내고 막을 수 있을 정도의 힘만을 막아낸다.
그런 생각으로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이 푹푹 파여 들었다.
발이 바닥을 파고들고, 그의 몸은 뒤로 점점 밀려났다.
과연 눈앞에 있는 사내는 목표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당신과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을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이를 악물고 황룡검탄의 검력을 버텨내며 그가 생각했다.
동시에 자운이 어깨를 이용해 그를 들이박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저 먼 곳으로 튕겨져 나간다.
“크윽.”
바닥을 형편없이 구른 당평청이 자운의 어깨와 충돌한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저릿저릿 쑤셔온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운신이 당분간 힘들 둣 했다.
“계속할 건가?”
자운이 검을 들어 그를 겨누며 말했다.
변변찮은 상처는 물론이고 그가 부린다는 황룡을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지금 자운과 당평청의 격차가 그 정도인 것이다.
자신과 자운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낀 당평청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장의 한 수인 묵검지옥도가 남아 있다지만, 묵검지옥도는 말 그대로 숨겨둔 한 수다.
무인은 죽을 위기가 오지 않는 한 실력의 삼 할은 숨긴다고 하지 않던가.
묵검지옥도는 비장의 한 수로 숨겨두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제가 졌습니다.”
그의 말에 자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신검을 검갑 속으로 갈무리했다.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고.”
속을 추스르는 당평청을 뒤로하고 자운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제5장 난 안 져
정사연합군이 결성된 이후로도 적성 측에서는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마치 거센 폭풍이 오기 직전, 폭풍전야를 보는 양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그 흔하게 있던, 하루에 몇 번씩이나 일어나던 크고 작은 충돌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 적성이 전혀 움직이지를 않는 것이다.
무당산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을 알지를 못하니 함부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지금 무당산은 그야말로 용담호혈이라 할 수 있었다.
적성의 모든 고위급 인사가 그곳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그에 관해서 무림맹의 의견은 분분했다.
지금 당장 무당산으로 가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완성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그 첫 번째였으며, 두 번째는 어느 하나 확실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함부로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두 개의 의견이 양립해 무림맹과 사파연합은 계속해서 시끄러웠다.
적성의 초대장이 전해진 것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당산으로 가보자고 결정이 났을 무렵이었다.
“허허, 그들도 참으로 웃기는 일을 하는군.”
남궁인이 적성에서 보내온 초대장을 바라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흘렸다.
이야기가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