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어이쿠! 내 아까운 기운!”
남우가 날름 떨어지는 기운을 받아먹었다.
자운이 내공을 이용해 멍을 빼내며 그 모습을 보고 순수한 소감을 말했다.
“너희 둘, 변태 같… 캐액!”
설혜의 발차기가 자운의 복부를 향해서 파고들었다.
자운이 복부를 잡고 다시 데굴데굴 굴렀다.
“어이구, 죽겠다.”
자운이 몸을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그들 셋 주위로는 그 누구도 다가오려고 하지 않는다.
셋의 장난에 말려들었다간 그 순간 죽을 것이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꼴은 나기 싫었다.
“아, 죽겠다.”
자운이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운산과 설혜 역시 자운 옆에 풀썩 주저앉는다.
과거 적성에 맞서던 동지 셋이 이백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이 자리에서 만났다.
“어휴, 피곤해라.”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 지나갔다.
제4장 내려가서 밥이나 먹자고
바람을 쐬며 누워 있는 자운을 향해서 남궁인과 제갈운이 다가왔다.
“맹주와 문상이 아닙니까? 여기는 무슨 일로……?”
자운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무림맹에 관련된 일입니까?”
그 말에 제갈운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습니다.”
자운이 남우와 설혜에게 눈치를 보냈다.
그들은 무림맹을 원조하러 오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무림맹 소속은 아니다.
그러니 자리를 피해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자운의 눈치에 설혜와 남우가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함께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갈운의 말에 자운이 자리에 누워서 다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야, 여기 앉아 있어도 된대.”
둘은 동시에 자운을 노려보다가 제갈운을 노려보았다.
“똥개 훈련시키나?”
“빨리 말해. 좋잖아.”
졸지에 제갈운만이 초월한 자들의 눈치를 정면으로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억울해하는 제갈운을 뒤로하고 자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그럽니까?”
“근래에 사파연합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자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계속해서 지역을 옮겨 다녔다.
그러니 소문이 정착되기도 전에 자운이 떠나 버렸고, 요즘 결성되고 있는 사파연합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
“모르겠군요. 그건 또 뭡니까? 적성에 힘을 보태주는 단체입니까?”
자운의 말에 제갈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대라면 적성에 반하는 단체.
자운이 씨익 웃었다.
“꼴에 무림을 양분하는 축 중 하나였다고 완전히 죽지는 않은 모양이군.”
자운의 말에 제갈운과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적성에 협조하지 않고 봉문을 했던 문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연합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들을 이끄는 이의무위가 상당하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남우가 중얼거렸다.
“그래 봐야 애들 장난이지.”
남우의 말에 남궁인이 웃는다.
“세 분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이지만, 사파연합의 사람 수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걔들이 뭘 어쨌다는 말인데?”
자운이 어긋난 이야기를 본론으로 끌어왔다.
남궁인이 자운을 향해서 말했다.
“그들이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자운과 무림맹이 있는 이곳은 여산이다.
멀지 않은 곳에 섬서의 수도인 서안이 있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 화산파가 있었다.
자운이 반문했다.
“이곳으로?”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이 무림맹에 가입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사연맹이라는 말이지.”
자운이 말했다.
“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렇지요. 사실 문제는 이것이 아니라 다음 소식입니다.”
자운이 문제라는 말에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제? 또 적성이 뭔가 하나 터뜨린 거야?”
그 말에 제갈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적성이 일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당장에 이렇다 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당산에 무언가롤 건축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무당에?”
남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북두라 하여 소림과 무당은 무림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무당에 무언가를 한다니, 괜히 기분이 찜찜해졌다.
“뭘 하는 건지는 잡힌 게 없습니까?”
“무언가 건물을 축조 중이라는 사실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군요.”
무슨 잔재주를 부리고 있는 것이냐, 일성.
자운이 눈을 날카롭게 떴다.
“일단은 합류하러 온다는 자들부터 만나보는 것이 순서이겠군요.”
당평청이 이끌고 내려오는 사파연합의 수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그 수가 무려 오천을 헤아릴 정도였다.
생각보다 적성에 협조를 하지 않고 있는 문파는 많았다.
대부분 그 크기가 거대했던 문파일수록 협조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질적으로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무림맹의 총 인원수가 약 칠천 정도이니 사파연합이라고 해서 무림맹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주군, 이 능선만 넘으면 곧 무림맹이 있는 곳에 당도하겠습니다.”
사일귀의 말에 당평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이 산만 넘으면 난신을 볼 수 있다 이 말이지요?”
그는 무림에 나오고 난 이후로 난신에 대한 무용담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 무용담의 내용이 절반만 진실일지라도 난신은 정사를 뛰어넘어 존경하기에 충분한 무인이었다.
또한 목표로 하기에도 충분한 무인이었다.
당평청의 마음속에 자운이라는 존재는 어찌 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목표이자 길잡이,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스승과도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능선 너머를 바라보는 당평청의 눈이 복잡해졌다.
그런 자를 지금 만나러 가고 있는 것이다. 주목적이 정사연합군의 결성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초월하여 목표로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신선한 감각이었다.
그가 주먹을 쥐락펴락 반복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사일귀가 그런 당평청을 향해 물었다.
“호승심이 솟구치십니까?”
그 말에 당평청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무인입니다. 그런 무인을 생각하고 호승심이 솟구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겠지요.”
그 말에 사일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일귀 또한 벽력도마라 불리는 무인이다.
그 역시 자운의 무위에 호승심이 동하고 궁금증이 동하는데, 그의 주인이야 더 말할 것이 무엇 있으랴.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일귀 역시 당평청이 바라보는 능선 너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지 않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당평청이 고개를 끄덕인다.
능선 하나, 정사연합군이 결성되기 직전의 거리였고, 또한 자운과 당평청 사이에 놓여 있는 실질적인 거리였다.
멀지 않은 거리, 당평청이 능선을 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자운이 멀리서 몰려오는 사파연합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들 중 선봉에 있는 이가 사령진마라는 당평청일 것이고, 그를 호위하듯 서 있는 이들이 사파연합에 소속된 문파의 수장일 것이다.
본래 무림맹의 대표로는 남궁인이 서야 하는 것이 맞으나 그는 손사래를 치며 그 자리를 거부했다.
그 자리는 자운이 서 있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평청의 눈에 황룡이 그러진 금포를 걸친 이가 눈에 들어온다.
‘저 사람이 바로 난신.’
그의 속을 읽어보려 했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안개에 싸인 새벽 호숫가마냥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또한 오히려 새벽 호수의 이슬에 바짓단이 젖어오는 것처럼 자운의 기세가 역으로 자신을 읽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자운이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빨리 오라고! 기다리다가 배고파 죽는 줄 알았으니까!”
경박스럽다. 하지만 여유로웠다.
이 여유로움은 스스로의 실력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경박스러움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런 당평청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자운이 히죽히죽 웃으며 당평청을 향해 걸어갔다.
자운이 다가오자 당평청 역시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온다.
“무림의 후배가 난신을 뵙습니다.”
젊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운이 외모에 비해 훨씬 더 나이를 먹은 노고수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나이가 이백 살도 넘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당평청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을 것이다.
“멀리서 오느라고 고생했어. 데리고 온 애들 보니까 꽤나 쓸 만한 것 같네.”
자운의 말에 발끈한 것은 당평청을 호위하고 있던 문파의 수장들이었다.
“난신께서 아무리 정파무림의 구성이라고는 하나 주군 역시 사도무림의 구성입니다. 하니 부디 존대…….”
짜악-
자운이 박수를 치자 손바닥에서 엄청난 기운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아아아-
광풍이 불어오며 자운을 향해 짖어대는 문주들을 모조리 밀어낸다.
그 광풍에서 멀쩡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둘, 사일귀와 당평청 뿐이다.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애들이 끼어드는 거 아냐. 그리고 말이야, 너, 아까부터 나랑 한판하고 싶어하는데 아니야?”
자운이 목과 어깨를 우두둑 하고 풀었다.
자운의 말에 당평청이 웃어 보인다.
“맞습니다.”